3월 14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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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고백

Confession

기도 경제와 문화를 위하여

1.

경제성장과 분배가 잘 이루어지게 하시고 어려운 경제 상황 속에서도 분투하고 있는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을 붙들어 주시고 축복하소서.

2.

기독교 기업들이 청지기 정신으로 하나님의 나라와 이웃을 섬기고 정직하고 투명한 경영을 통해 선한 영향력을 끼치며 하나님 나라 확장에 앞장서게 하소서.

3.

이 땅의 미디어와 언론이 진리와 정의의 편에 서게 하시고 건강하고 균형 잡힌 가치관을 가지고 방송을 제작하는 문화 창출이 일어나게 하소서.

나더러 또 이르시되 떠나가라 내가 너를 멀리 이방인에게로 보내리라 하셨느니라

행22:21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나더러 또 이르시되 떠나가라 내가 너를 멀리 이방인에게로 보내리라 하셨느니라"

행22:21

사람들이 나를 배척한다고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는 더 놀라운 계획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모세를 배척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모세를 하나님은 그를 배척한 사람들을 구원하는 위대한 지도자로 사용하셨던 것입니다.

"그들의 말이 누가 너를 관리와 재판장으로 세웠느냐 하며 거절하던 그 모세를 하나님은 가시나무 떨기 가운데서 보이던 천사의 손으로 관리와 속량하는 자로서 보내셨으니 이 사람이 백성을 인도하여 나오게 하고 애굽과 홍해와 광야에서 사십 년간 기사와 표적을 행하였느니라"

행7:35-36

예수님은 더 심했습니다.

"이스라엘 온 집이 정녕 알지니 너희가 (배척할 정도가 아니라)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행2:36

온 세상 날 버려도 주 예수 안버려

끝까지 나를 돌아보시니

주는 저 산 밑에 백합 빛나는 새벽별

이 땅 위에 비길 것이 없어라

언뜻 보면 주님의 생각과 바울의 생각이 비슷한 것 같지만 더 깊은 속을 보면 이 둘 사이에는 차이가 있었습니다. 주님이 바울에게 예루살렘을 떠나라고 말씀하신 동기는 바울이 생각한 동기와 달랐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예루살렘을 떠나야 하는 이유를 주님께서 이미 말씀하셨듯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과거를 알고 있어서 자기를 환영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라고만 해석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단지 그것 때문에 바울에게 예루살렘을 떠나라고 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21절 말씀대로 그를 이방인에게 보내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즉 주님은 바울을 향한 놀라운 계획과 섭리를 가지고 계셨기 때문에 그를 부르시고 예루살렘을 떠나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너는 예루살렘을 떠나서 멀리, 가까운 데가 아니라 멀리 이방인에게로 가야 한다. 내가 너를 그 곳에 보낸다” 이것이 바울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바울과 주님의 생각에 큰 차이가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사55:8-9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너희의 생각) 아니라 곧 평안(나의 생각)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 하는 생각이라"

렘29:11

그렇습니다. 예수 믿는 우리들이 늘 주의해야 할 것은 생각의 틀, 선입관에 사로잡히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보기에 좋은 일이면 하나님 보시기에도 좋은 일이라고 쉽게 속단해서도 안된다는 것입니다. 늘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주의 뜻을 알아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늘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하면서도 실제로는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생각을 알려고 하지 않고 우리의 뜻, 우리의 선입관, 우리의 생각이 옳다고 생각하며 살 때가 많습니다. 성경을 읽지만 하나님의 생각을 받아들여 나의 생각을 바꾸려고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고 내 상황, 내 형편, 내 선입관, 내 가치관 속에서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그러면서 내 뜻이 하나님의 뜻이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언제나 그렇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지 못했을 때, 섭섭함과 원망과 불평이 생기는 것은 당연합니다. 이런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이 있습니다. 요나입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성내는 것이 옳으냐 (요나가 성을 내고 있었거든요. 왜? 다메섹 사람들이 요나의 외침을 듣고 금식하면서 회개하거든요. 저 놈들은 망해야 하는데 회개하니 성을 낸 것입니다) 하시니라 요나가 성읍에서 나가서 그 성읍 동쪽에 앉아 거기서 자기를 위하여 초막을 짓고 그 성읍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를 보려고 그 그늘 아래에 앉았더라 하나님 여호와께서 박넝쿨을 예비하사 요나를 가리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머리를 위하여 그늘이 지게하며 그의 괴로움을 면하게 하려 하심이었더라 요나가 박넝쿨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였더니 하나님이 벌레를 예비하사 이튿날 새벽에 그 박넝쿨을 갉아먹게 하시매 시드니라 해가 뜰 때에 하나님이 뜨거운 동풍을 예비하셨고 해는 요나의 머리에 쪼이매 요나가 혼미하여 스스로 죽기를 구하여 이르되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으니이다 하니라 하나님이 요나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 박넝쿨로 말미암아 성내는 것이 어찌 옳으냐 하시니 그가 대답하되 내가 성내어 죽기까지 할지라도 옳으니이다 하니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재배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말라 버린 이 박넝쿨을 아꼈거든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 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욘4:4-11

요나는 선지자로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편견에 싸여 하나님의 깊은 뜻을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또 있습니다. 바로 아나니아입니다.

"주께서 환상 중에 불러 이르시되 아나니아야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주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직가라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의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이라 하는 사람을 찾으라 그가 기도하는 중이니라 그가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들어와서 자기에게 안수하여 다시 보게 하는 것을 보았느니라 하시거늘 아나니아가 대답하되 주여 이 사람에 대하여 내가 여러 사람에게 듣사온즉 그가 예루살렘에서 주의 성도들에게 적지 않은 해를 끼쳤다 하더니 여기서도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사람을 결박할 권한을 대제사장들에게서 받았나이다 하거늘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고난을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행9:10-16

아나니아는 경건한 사람으로서 모든 유대인들에게 칭찬을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깊은 뜻을 몰랐습니다. 주님의 음성을 듣고 나서야, 그는 자기의 선입관과 기존의 자기 생각을 버리고 사울을 찾아가서 그에게 말씀을 전하고 안수하며 기도해 주고 세례를 베풀어주었습니다.

이런 사람이 또 한 사람 있습니다. 베드로입니다. 어느 날 그는 환상을 보았습니다.

"그가 시장하여 먹고자 하매 사람들이 준비할 때에 황홀한 중에 하늘이 열리며 한 그릇이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보자기 같고 네 귀를 매어 땅에 드리웠더라 그 안에는 땅에 있는 각종 네 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있더라 또 소리가 있으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어라 하거늘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하지 아니한 것을 내가 결코 먹지 아니하였나이다 한 대 (베드로가 이렇게 말한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그가 이제까지 받아왔던 교육과 종교적인 관념 때문) 또 두 번째 소리가 있으되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하더라 이런 일이 세 번 있은 후 그 그릇이 곧 하늘로 올려져 가니라"

행10:10-16

하나님이 왜 베드로에게 이런 환상을 보여 주셨습니까? 이방인 고넬료 집안에 구원의 말씀을 전하러 보내기 위해서, 할례자들의 비난에서 베드로를 보호하시기 위해서

"베드로가 예루살렘에 올라갔을 때에 할례자들이 비난하여 이르되 네가 무할례자의 집에 들어가 함께 먹었다 하니 베드로가 그들에게 이 일을 차례로 설명하여 .... 그들이 이 말을 듣고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하니라"

행11:2-18

아나니아는 주님의 큰 뜻을 깨닫고 사울에게로 갔고, 베드로는 이방인 고넬료를 만났습니다.

"나더러 또 이르시되 떠나가라 내가 너를 멀리 이방인에게로 보내리라 하셨느니라"

행22:21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관심은 복음이 모든 민족과 열방에게 전달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땅 끝까지 복음이 전달되기를 원하십니다. 이 일을 위해 하나님은 바울이라는 사람을 쓰기 원하셨습니다.

이 말씀에 나오는 ‘멀리’라는 단어와 ‘이방인’이라는 단어는 행1:8을 생각나게 합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행1:8

우리 하나님은 복음이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에만 머물기를 원치 않으시고 땅 끝까지 전달되기를 원하셨습니다. 멀리 이방인에게까지 이 복음이 전달되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복음은 유대인을 통하여 왔지만 모든 이방인에게까지 전달되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복음은 오순절날 예루살렘을 통하여 구체적으로 이 땅에 나타났지만 땅 끝까지 전파되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의 입장에서는 이 사실을 믿을 수도, 이해할 수도 없었습니다. 요즘에도 보면, 예수 잘 믿는다는 사람이나 혹은 믿은 사람들이 늘 문제입니다. 그들은 자기 의가 많습니다. 자기 선입관이 많습니다. 유대인과 같은 모습입니다.

이런 모습은 개인뿐만 아니라 교회에도 있습니다. 모든 교회가 처음에는 잘 합니다. 그러나 한 십년, 이십 년 지나가면 굳어지기 시작합니다. 왜냐하면 처음에는 열린 마음으로 예수님을 잘 믿던 사람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자기 경험과 자기 선입관과 자기 생각과 자기 믿음으로 하나님과 하나님의 교회를 제한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더 큰 일을 하기 원하시고 새 일을 하기 원하시는데 교회는 그것을 따라가지 못하고 자기 생각으로 그것을 제한하기 때문에 굳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새 일을 행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과거에 아무리 큰일을 했다 할지라도 그것들을 벗어 버리고 언제나 주님이 주시는 그때 그때의 음성에 예민해야 합니다. 그리고 언제나 성경을 새롭게 읽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만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많은 교회가 자기 본위로 성경을 읽다가 율법을 만들고, 교파와 교리를 만듭니다. 그리고는 그 교리와 율법과 교파 안에 예수님을 거두어 버립니다. 그래서 전통적인 교회에서는 지금도 살아계신 예수님, 역사하시는 예수님, 전세계를 향하여 복음이 활발하게 전개되기를 원하시는 예수님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이 얼마나 어리석은 모습입니까? 하나님은 이런 것을 원하시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귀를 열고 눈을 뜨고 마음을 열어야 합니다. 그리고 성경을 통하여,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떠나가라”

2024년 3월 15일 오전 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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