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2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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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고백

Confession

기도 정치와 사회를 위하여

1.

대통령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시고 정치 지도자들이 권모술수를 행하지 않게 하소서.

2.

이 땅의 위정자들이 그릇된 이념이나 선동이 아닌 공의와 정의로 나라를 다스리게 하소서.

3.

주변 강대국과의 경제, 안보 갈등이 조속히 해결되게 하시고 한반도의 평화적 정세가 이뤄지게 하소서.

네가 그를 위하여 모든 사람 앞에서 네가 보고 들은 것에 증인이 되리라

행22:15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네가 그를 위하여 모든 사람 앞에서 네가 보고 들은 것에 증인이 되리라"

행22:15

하나님이 사도 바울에 관하여 아나니아에게 하신 말씀이 무엇이었습니까?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행9:15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에게 보내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바울을 선택하셨습니다. 이 사람이 적절하거든요. 어쩌면 그래서 길리기아 다소에서 바울을 태어나게 하셨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가말리엘 문하에서 공부하게 하셨는지도 모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듯 다 준비해놓으시고, 이 사람을 쓰신 것입니다.

확실히 바울은 높은 지성의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더욱 소중하게 쓰임을 받습니다. 그러나 그 지성이 먼저 있은 게 아닙니다. 선택된 자로서 그 지성의 길을 갔어야 했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소중한 의미가 여기에 있는지 모릅니다. "이방인에게로 보내리라" 확실한 사명이 있고, 선교지가 있고, 목적지가 있습니다.

더욱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바울의 생애를 가만히 음미해보세요.

바울은 분명히 이방인에게로 보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유대인에게 전도하려다가 핍박을 당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정한 길이 아닌 다른 길로 가려고 할 때마다 그는 필요 없는 많은 핍박을 당해야 했습니다. 무릇 제대로 놓일 자리에 놓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너를 이방인에게로 보내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그때부터 마음먹고 이방인에게로만 갔어야지요. 그랬으면 오히려 핍박을 더 적게 받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가 실패한 일들이 있었다면 전부 유대사람들과의 관계에서였습니다. 이방인과의 관계는 대체로 다 성공적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선택하셔서 이방인의 길로 보내시는데도 사도 바울의 마음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유대인에 대한 사랑, 유대인을 인도해야겠다는 간절한 마음이 그 마음에서 항상 떠나지 않았어요.

그래서 그는 로마서 9장에서 말씀합니다.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3절)" - 골육친척이 그리스도에게 돌아온다면 자기가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그것을 원한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간절한 소원이 있었기 때문에 바울은 이방인에게 전도하면서도 유대사람에게 전도하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바로 그것이 큰 핍박을 초래하게 되는 이유입니다.

그러니까 사명에 충실했어야 했습니다. 그가 이렇듯 핍박을 받지 않았다면 어떠했을까요? 아마도 예루살렘에 머물러 가말리엘 문하에서 유대사람을 상대로 아주 학술적으로 복음을 전하는 일을 하려고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를 이방인에게 보내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유대사람과는 영 맞지 않았습니다. 유대사람에게 전도하는 일은 항상 핍박을 받았고, 성공적이지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이방인에게로 보냄 받은 사명에 대해서 보다 더 직선적으로 충성했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나를 어디로 보내시는가 가만히 생각해보세요. 하나님께서 나를 어디에서 쓰이게 하시려는가 - 그 길 외에 다른 길로 갈 생각은 마세요. 그것이 성공의 길입니다.

또한 좀 더 깊이 생각해보세요. 이방인에게 보내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을 부르셨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선택하셨는가, 선택의 구체성을 본문에서 네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첫째, "자기 그 뜻을 알게 하시며(14절)"

바울에게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셨습니다. 상당히 중요한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비밀, 하나님의 깊은 뜻을 바울에게 알게 해주셨습니다. 이것은 영감입니다. 이것은 계시입니다.

바울 신학의 특성 중에 가장 중요한 핵심 몇 가지가 있습니다. 그 첫 번째가 바울에게만 주신 특별한 은사라고도 볼 수 있는데 그것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는다는 교리입니다. 이는 로마서, 갈라디아서에만 있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진리를 깊이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에게 알게 하셔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는다 ― 구원의 교리를 법적 관계에서 이해하게 되는 이 놀라운 진리를 바울이 깨달았습니다. 신비로운 진리, 칭의(稱義)의 교리를 깨달은 것입니다.

특별히 십자가를 하나님의 의가 충족되는 사건으로 보았습니다. 십자가를 계시 사건으로 보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를 깨닫고, 하나님의 뜻을 깨달은 상당히 중요한 부분이 이것입니다.

또 하나는 믿음을 생각할 때에 베드로나 야고보, 요한이 생각하는 것 같은 그러한 일반적 믿음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믿음에 대하여 아주 깊이 분석적으로 이해합니다. 그래서 모세적 신앙과 아브라함적 신앙을 구분합니다.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창 15:6)"-이 맥락을 그의 교리인 중심으로 삼습니다. 바울이 말씀하는 믿음의 개념,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의 뜻입니다. 놀라운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바울을 선택하셨습니다. 바울에게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해주셨습니다. 그래서 그가 우리에게 전해준 것입니다. 이것이 선택입니다.

둘째, "저 의인을 보게 하시고(14절)"

그 의인이 누구냐, 사도행전 3장 13, 14절에 보면 그는 곧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셨습니다. 일반적인 사람들, 믿음 없는 사람들이 볼 때에 예수는 저주를 받았고, 죄인의 모습으로 죽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저 의인을 보게" 하셨습니다. 절대로 '죄인'이 아니라 '의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의가 계시되었다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선택된 자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참으로 놀랍고 큰 진리입니다.

셋째, "그 입에서 나오는 음성을 듣게 하셨으니(14절)"

하나님께서 친히 바울에게 음성을 들려주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계속 들으면서 성경을 썼고 우리에게 귀한 말씀을 전해준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도 들을 수 있습니다.

어떻게 들을 수가 있습니까?

성령님을 통해서 들을 수가 있습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요14:26

성령님은 대부분 성경으로 말씀해 주십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이 말씀하심에도 불구하고 듣지 못하는 것은 성경을 읽지 않아 그 안에 말씀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원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읽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성경을 읽거나 설교를 듣다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가 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 말이 불 같지 아니하냐 바위를 쳐서 부스러뜨리는 방망이 같지 아니하냐"

렘23:29

"저희가 서로 말하되 (부활하신 예수님이 엠바오)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눅24:32

꿈과 환상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도 합니다.

"이르시되 내 말을 들으라 너희 중에 선지자가 있으면 나 여호와가 환상으로 나를 그에게 알리기도 하고 꿈으로 그와 말하기도 하거니와 내 종 모세와는 그렇지 아니하니 그는 내 온 집에 충성함이라 그와는 내가 대면하여 명백히 말하고 은밀한 말로 하지 아니하며 그는 또 여호와의 형상을 보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내 종 모세 비방하기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

민12:6-8

하나님이 선택하신 일꾼을 통하여 듣게 하십니다.

"이는 내가 내 종 선지자들을 그들에게 보내되 부지런히 보내었으나 그들이 나 여호와의 말을 듣지 아니하며 듣지 아니함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렘29:19

선택에는 그런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대표적으로 듣고, 그래서 설명을 하고―바울은 이렇게 선택된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사람이었고, 성경을 기록했습니다. 자,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에 직접 들을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꼭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부르신 선택한 자로 인해서 간접적으로 듣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늘의 본문에 보는 대로 증인되게 하셨습니다. 당신의 들은 바를 증거 하는 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을 선택하셔서 당신의 뜻을 알게 하시고, 의인을 보게 하시고, 음성을 듣게 하시고, 그리고 그의 온 생애를 통하여 증거하게 하셨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바울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알고, 바울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의를 알고, 바울을 통해서 주의 음성을 듣고, 바울을 통해서 그 사건의 증거를 내가 수용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그 사건이 내게 주신 사건이 됩니다. 여기에 엄청난 진리가 있습니다. 이것이 선택입니다. 하나님께서 분명히 사도 바울을 선택하셨습니다. 그 선택은 우리 모두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여기에 엄청난 의미가 있습니다.

이 선택의 교리, 이 신앙에, 사도 바울은 완전히 순종해야 했습니다. 나는 그저 끌려간 것뿐이고, 충성을 다한 것뿐이다―이것이 그의 마지막 결론입니다.

유명한 얘기가 있습니다.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아버지 콘스탄티누스가 왕으로 있을 때의 일입니다. 어느 날엔가 그는 관직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예수 믿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콘스탄티누스 왕은 칙령을 내렸습니다. "예수를 믿든지, 관직을 그만 두든지, 둘 중에서 하나를 택하라." 이렇게 하면 사람들이 예수를 버릴 줄로 알았던 것이지요.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그것도 인격이 훌륭한 사람들이 "그렇다면 우리는 예수를 믿겠습니다" 하며 관직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가 버린 것입니다.

왕은 깜짝 놀랐습니다. 그들이 없이는 제대로 정치를 할 수가 없거든요. 드디어 그는 신중하고도 깊이 생각한 끝에 이런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리스도께 충성하지 않는 사람은 결국 내게도 충성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콘스탄티누스 왕은 예수 믿으면서도 이제 안 믿겠다며 관직을 버리지 않은 사람들을 다 내쫓고, 관직을 버리고 예수 믿고자 한 사람들을 다시 불렀습니다. 그리하여 훌륭하고 성공적인 정치를 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명에 충실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신 그 부름에 충성을 다해야 합니다. 나를 어디로 부르셨는지, 무엇을 위해 부르셨는지 분명히 깨닫고 그 길을 걸어가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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