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9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기도 환경과 생명을 위하여
온 인류가 피조 세계를 향한 하나님의 명령을 기억하여 인간의 욕심이 아닌 하나님의 질서대로 환경을 다스리게 하소서
모든 생명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낙태와 아동 학대 등 생명 경시 풍조가 사라지게 하시고 우리에게 주신 생명을 존중하고 사랑하게 하소서
환경과 생명을 위해 일하는 관계자들에게 지혜를 허락하셔서 효율적인 정책이 세워지게 하시고 교회와 사회가 함께 힘을 모아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가게 하소서
나는 그 빛의 광채로 말미암아 볼 수 없게 되었으므로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의 손에 끌려 다메섹에 들어갔노라 율법에 따라 경건한 사람으로 거기 사는 모든 유대인들에게 칭찬을 듣는 아나니아라 하는 이가 내게 와 곁에 서서 말하되 형제 사울아 다시 보라 하거늘 즉시 그를 쳐다보았노라
행22:11-13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나는 그 빛의 광채로 말미암아 볼 수 없게 되었으므로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의 손에 끌려 다메섹에 들어갔노라"
행22:11사도 바울은 빛을 본 후에 그 빛의 광채 때문에 순식간에 시력을 잃었다고 했습니다. 너무 강렬한 빛을 보면 눈에 무리가 오는 것이 당연합니다. 예수님의 빛이, 그 영광스럽고 거룩한 빛이 바울에게 임했을 때 그는 순식간에 시력을 잃었습니다. 그는 예수 믿는 사람을 잡으려고 많은 사람들을 데리고 가던 중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갑자기 시력을 잃었습니다. 이제 그는 어떻게 될까요? 그는 함께 있는 사람들의 손에 이끌려 다녀야 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그 심정을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눈 뜨고 살다가 시력을 잃어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앞이 캄캄한 사람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이렇게 하신 뜻은 무엇일까요? 여기에는 굉장한 뜻이 숨겨져 있습니다.
하나님은 순식간에 바울의 시력을 잃게 하심으로 세상에 대해서 눈을 감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에 대해서 눈을 너무나 크게, 그리고 부릅뜨고 지냅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우리의 눈을 감게 만드십니다.
이런 비유를 들어서 미안하지만, 오늘 갑자기 우리의 눈이 멀게 된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래서 아무 것도 안 보이고, 낮인지 밤인지도 구분이 안되고, 잠잘 때가 밤이고, 잠이 깨면 낮인 그런 상황이 된다면 무엇을 하겠습니까? 또 무슨 생각을 하겠습니까?
요즈음처럼 라디오나 텔레비전이 없었던 시대에 살았던 바울은 하나님만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는 자신이 들었던 그 분의 음성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었겠습니까? 기도였을 것입니다.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모든 것을 제한받는 상황입니다. 그리고 세상에 대해서 눈을 감았다는 것은 오히려 하나님에 대해서 눈을 떳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울은 세상에 눈먼 대신 하나님에 대해서 눈을 뜨기 시작했습니다.
바울의 회심 사건이 기록되어 있는 행9장을 보면, 이즈음 아나니아도 환상 중에 주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주님은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때에 다메섹에 아나니아라 하는 제자가 있더니 주께서 환상 중에 불러 이르시되 아나니아야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주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직가라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의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이라 하는 사람을 찾으라 그가 기도하는 중이니라"
행9:10-11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바울이 앞을 보지 못하게 되었을 때 기도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세상에 대해서, 사물에 대해서 시력을 잃어버린 순간에 그는 하나님에 대해서 눈을 뜨기 시작한 것입니다.
부도난 것을 그렇게 슬프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사업이 안되고 몸이 병든 것도 때로는 나쁜 것이 아닙니다. 이 모든 것이 우리가 우리의 욕심과 세상에 눈을 감는 계기가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 힘으로는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우리가 무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우리 발로는 걸어갈 수 없고, 누군가의 손에 의지해서만 걸어 다닐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그때 하나님은 우리 안에 자리 잡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눈이 그때부터 우리에게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병원에 입원하면 보통 링거 주사부터 딱 꽂아 놓습니다. 그러면 환자는 꼼짝 못하고 침대에 누워 있어야 합니다. 환자들은 대부분 그때 비로소 자신의 참 모습을 돌아보게 된다고 합니다. 우리 인간은 이렇게 아프면 자기를 돌아보게 됩니다.
또한 우리는 정지해야 사물을 제대로 볼 수 있습니다. 움직이면 못 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때로 안식과 정지가 필요합니다. 세상에 대해서 잠깐 눈을 감는 일이 필요합니다. 그래야만 하나님에 대해서 눈을 뜨고 우리 자신의 삶의 현주소를 제대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야만 우리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으며, 현제 잘 가고 있는지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율법에 따라 경건한 사람으로 거기 사는 모든 유대인들에게 칭찬을 듣는 아나니아라 하는 이가 내게 와 곁에 서서 말하되 형제 사울아 다시 보라 하거늘 즉시 그를 쳐다보았노라"
행22:12-13"내가 이르되 주님 무엇을 하리이까 (질문에) 주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다메섹으로 들어가라 네가 해야 할 모든 것을 거기서 누가 이르리라 하시거늘 - 사람들의 손에 이끌려 다메섹에 들어가서 기도하고 있었더니 하나님께서 아나니아를 보내 주신 것입니다. 자세한 내용이 행9:10-18에 나옵니다."
행22:10"그 때에 다메섹에 아나니아라 하는 제자가 있더니 주께서 환상 중에 불러 이르시되 아나니아야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주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직가라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의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이라 하는 사람을 찾으라 그가 기도하는 중이니라 그가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들어와서 자기에게 안수하여 다시 보게 하는 것을 보았느니라 하시거늘 아나니아가 대답하되 주여 이 사람에 대하여 내가 여러 사람에게 듣사온즉 그가 예루살렘에서 주의 성도들에게 적지 않은 해를 끼쳤다 하더니 여기서도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사람을 결박할 권한을 대제사장들에게서 받았나이다 하거늘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고난을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니 아나니아가 (즉시) 떠나 그 집에 들어가서 그에게 안수하여 이르되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셨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니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행9:10-18가라 이 사람(사울)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 이해가 됩니까? 그렇게 몹쓸 짓을 한 놈을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으로 택하셨다니요?
하나님이 귀하게 사용하시는 사람들의 특징? 주님이 말씀하시면 이해가 안 되어도 무조건 순종합니다. 왜? 하나님을 신뢰하니까요.
아브라함 - 창22:2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 이해가 됩니까? 그럼에도 아브라함은 무조건 순종했습니다. 그랬더니 어떤 일이 생기더라고요?
"이르시되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창22:16-18다윗 - 삼상22:5 선지자 갓이 다윗에게 이르되 이 요새에 있지 말고 떠나 유다 땅으로 들어가라 (이해가 됩니까?) 다윗이 떠나 헤렛 수풀에 이르니라
순종한 다윗을 사울 왕의 손에서 지키시고 마침내 왕으로 세우셨습니다.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때에도 지켜 주셨습니다.
"사자가 사울에게 와서 가로되 급히 오소서 블레셋 사람이 땅을 침노하나이다"
삼상23:27김미진 간사 - 제주도 생활을 끝내고 인천으로 돌아왔을 때 하나님께서 첫 사업체를 일산에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천에서 일산가는 것이 차로 가면 1시간도 알 걸리는 거리지만, 전철, 버스는 바로 가는 것이 없어서 빙 돌아서 가야 하니까 무려 3시간 정도 걸리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차를 사려고 아끼고 아껴 저축한 돈이 5백 만원을 찾았을 때 하나님께서 ‘미진아 그 돈 선교사에게 드려라’ 그것도 자기가 좋아하지도 않는 분에게. 마지 못해 순종했더니 어떻게 되더라고요? 더 좋은 차, 고급차로 주시더라는 것입니다.
또 비밀한 말씀입니다만 이 선택에 평가 기준이 전혀 없었던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확실하게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입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전서 1장 12절에서 "나를 충성 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라고 말씀합니다.
내가 예수 믿는 사람을 핍박했다, 그러나 그것은 모를 때에 한 것이다―그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충성과 진실은 있었어요. 충성 하나는 있고 볼일입니다. 그러니까 율법에 충성한 사람은 그 방향만 확 돌리면 그리스도께 충성할 수 있습니다. 미안한 말씀입니다만 불교를 믿던 사람도 열심히 하던 사람은 예수 믿어도 열심입니다.
사도 바울은 비록 예수 믿지 않았지만 율법에 대해서는 충성한 사람이었습니다. 자기가 아는 지식과, 자기가 아는 경건에 대해서는 생명을 걸만큼 충성된 사람이었습니다. 아마 하나님께서 이 점을 보시고 '그것, 쓸만한데. 방향만 돌리면 괜찮겠는데' 하셨을 것입니다. 보십시오. 바울이 그 다음부터 달라지지 않았습니까? 기본적인 충성이라고 하는 것은 열심, 진실입니다. 이런 것은 꼭 있어야 합니다.
"주는 하나님 여호와시라 옛적에 아브람을 택하시고 갈대아 우르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아브라함이라는 이름을 주시고 그의 마음이 주 앞에서 충성됨을 보시고 그와 더불어 언약을 세우사 가나안 족속과 헷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여부스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의 땅을 그의 씨에게 주리라 하시더니 그 말씀대로 이루셨사오매 주는 의로우심이로소이다"
느9:7-8아론과 미리암이 모세를 비방했을 때 하나님이 하신 말씀
"내 종 모세와는 그렇지 아니하니 그는 나의 온 집에 충성됨이라 그와는 내가 대면하여 명백히 말하고 은밀한 말로 아니하며 그는 또 여호와의 형상을 보겠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내 종 모세 비방하기를 두려워 아니하느냐"
민12:7-8예수님
"저가 자기를 세우신 이에게 충성하시기를 모세가 하나님의 온 집에서 한 것과 같으니"
히3:22024년 3월 10일 오후 12: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