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8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기도 청년 세대들을 위하여
이 땅의 청년들이 대세가 아닌 진리를 따르고 야망이 아닌 하나님이 주시는 건강한 비전을 품고 전진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 구원의 기쁨과 감격을 가지고 살아가게 하시고 어떤 상황 속에서도 그리스도를 선택할 수 있는 믿음의 세대, 기도로 기적을 일으키는 부흥의 세대가 되게 하소서.
성적 타락 및 각종 중독으로부터 청년들을 지켜 주셔서 거룩하고 순결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도록 친히 인도하여 주소서.
내가 이르되 주님 무엇을 하리이까 주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다메섹으로 들어가라 네가 해야 할 모든 것을 거기서 누가 이르리라 하시거늘
행22:10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내가 이르되 주님 무엇을 하리이까 주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다메섹으로 들어가라 네가 해야 할 모든 것을 거기서 누가 이르리라 하시거늘"
행22:10오늘 본문은 사도 바울이 성난 유대군중 앞에서 자기변명을 하는 내용입니다. 본문에서 사도 바울이 변명하는 내용을 자세히 보세요. 가만히 보면 그 테마가 전부 한마디로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사실, 자기가 만난 사건, 그 경험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논리적으로 이 내용은 두 가지로 요약됩니다. 하나는 나와 다른 사람의 같은 점을, 또 하나는 다른 점을 말씀합니다.
사도 바울은 먼저 '당신들과 나는 꼭 같습니다, 다른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라고 말씀을 시작합니다. 특별히 예수를 핍박했던 것이 같다고 말씀합니다.
당신들은 지금 나를 죽이려고 흥분하고 있지만 나는 그 정도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이 도를 박해하여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고 남녀를 결박하여 옥에 넘겼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단계는 바로 '다르다'라는 것입니다,
당신들과 나는 다른 점이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예수를 만났다는 것입니다, 다른 것은 그것뿐입니다. 그것 외에는 당신들과 내가 달라질 아무 이유도 없습니다. 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만난 사건만이 다르다. 하나님의 강권적인 역사 때문에 당신들과 꼭 같았던 내가 지금은 이렇게 다른 사람이 되었다 라고 설명해나가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만나 그 분의 음성을 듣게 되었을 때 그의 질문이 무엇이었습니까? “주님 무엇을 하리이까?” 이것은 굉장한 질문입니다. 이 물음은 우리의 사역과 관련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부르심과 사역의 관계입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부를 때는 분명히 무엇인가를 묻거나 시키기 위해서, 즉 목적이 있어서 부르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이와같이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셨다는 것은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시키기 위해서입니다. 그것이 바로 미션, 사역이 되는 것입니다. ‘네가 이것을 좀 해라.’그러기 위해서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부름과 사명, 부름과 미션의 관계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것 자체가 벌써 사명을 가진 것입니다. 무의미하게 살다가 죽으라고 태어난 인생이 아닙니다. 우리는 분명한 사명을 가지고 이 세상에 태어난 것입니다. 바울이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던진 질문은 바로 그런 사역과 관련된 질문이었습니다. 주님, 그러면 제가 무엇을 하면 좋겠습니까?
그런데 주님의 대답이 재미있습니다. “너는 이방인을 위해 택한 나의 그릇이다” 처음부터 이렇게 말씀하셨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런데 주님은 그렇게 대답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냥 ‘다메섹으로 들어가라’고 하셨습니다.
지금 바울이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다메섹입니다. 그런데 예수님도 바울이 가던 길, 즉 다메섹으로 계속 가라고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뭔가 다른 명령이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어찌된 일일까요?
‘다메섹으로 들어가라’ 그렇습니다. 장소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변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의미입니다. 목적입니다. 즉 다메섹으로 가는 의미와 목적이 변한 것입니다.
예수 믿기 전에는 예수 믿는 사람을 잡으러 가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고 난 후에 다메섹으로 가는 목적이 달라졌습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다메섹은 이미 다른 장소로 변한 것입니다. 이런 것이 사명이요 미션입니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요한복음 4장에 나옵니다. 수가 성의 여인은 물동이를 내버려 두고 어디로 뛰어갑니까? 동네로 들어갑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만난 이 여인에게 있어서 동네는 예전의 그 동네가 아니었습니다. 이제는 그 동네가 그녀에게 다른 의미로 다가온 것입니다. 전에는 정말 돌아다니기 싫었던 동네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아닙니다. 그가 한걸음에 뛰어 들어간 동네는 ‘내가 메시아를 만났다’고 외치는 동네가 되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의 직장은 달라져야 합니다. 어제도 간 직장이었지만, 예배드리고 간 다음날의 직장은 다른 의미가 있어야 합니다.
시집살이가 고통스럽고 힘든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어느 날 그가 주님을 만났습니다. 그러면 주님은 그에게 뭐라고 말씀하실까요? ‘그 집에서 탈출해라.’ 이러실까요? 아닙니다. ‘그 집으로 다시 가라’고 하실 것입니다. 아무리 형편없는 남편이라도 주님은 ‘그 남자에게서 도망가지 말고 다시 그에게로 가라’고 하실 것입니다. ‘남편을 세워라’ 하실 것입니다. 김덕자 장로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는 성령님의 음성에 순종했더니, 하나님께서 놀라운 남편을 사용해서 주의 일을 하게 하시려고 큰 복을 주셨다는 간증을 들어보셨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우리에게 직업은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우리는 그 답의 영적인 힌트를 ‘다메섹으로 들어가라’ 하시는 주님의 말씀 속에서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다메섹으로 들어가라 네가 해야 할 모든 것을 거기서 누가 이르리라’는 말씀을 통해 우리가 배우게 되는 또 하나의 진리를 살펴보겠습니다. ‘신앙이란 무엇인가?’하는 것과 관련된 진리입니다.
‘신앙이란 무엇인가?’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분이 가라시는 곳으로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바라봄으로 말미암아 ‘내일 일은 난 몰라요’가 아니고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는 태도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신앙은 하루 분입니다. ‘우리에게 한 달 양식을 주옵시고’는 신앙이 아닙니다.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가 참 신앙입니다. 신앙에는 이틀분도 안됩니다.
예수님은 이와 관련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이 모든 것은 하나님 없이 사는 사람들이 구하는 것이요,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사는 인생들이 살아가는 삶의 방법이다. 하나님을 믿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한다.”
여러분, 오늘 하루 살았으면 감사한 것입니다. 내일 일은 내일 또 하나님이 인도하실 것입니다. 그렇게 믿고 사는 것이 신앙입니다. 따라서 정말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은 ‘오늘 죽어도 좋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는 며칠 더 살아야 한다.’라든지 ‘나는 몇 달은 더 살아야돼.’라고 말하지 않고, ‘오늘 죽어도 나는 여한이 없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삶이 신앙인의 삶입니다. 이것이 신앙의 본질입니다.
참된 신앙인은 오늘 사는 것으로 만족합니다. 그리고 무엇이 있어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 자체 때문에 만족합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합니다.
주님은 바울에게 다메섹으로 가라 하시면서 한 가지 말씀을 덧붙이십니다. “네가 다메섹으로 가면 어떤 사람을 만날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은 예비해 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선교사가 선교를 하러 한 지역으로 갑니다. 전혀 알지 못하는 곳인데도 가보면 준비된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예비된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슨 일을 만나든지 걱정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다 살게 되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아나니아라는 사람을 어떻게 알겠습니까? 그렇지만 사도 바울은 주님의 말씀을 믿고 다메섹으로 가서 기다렸습니다. 기도하며 기다리고 있으니 아나니아가 자기 발로 찾아왔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우리의 삶을 한번 돌아봅시다. 과연 우리가 노력해서 얻은 것이 몇이나 됩니까? 있다 해도 우리가 노력해서 얻은 것은 다 시시한 것입니다. 소중한 것들은 다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도 바울에게 아나니아를 보내셨던 것처럼 오늘날 기도하는 사람들에게도 아나니아를 준비해 주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