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6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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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고백

Confession

기도 세계 선교를 위하여

1.

선교사님들을 통하여 그 땅에 예배가 살아나게 하시고 복음의 씨앗이 심어진 곳마다 하나님의 때에 아름답게 열매 맺게 하소서.

2.

선교사님들에게 성령의 충만함과 영적 분별력을 허락해 주셔서 탁월한 선교 전략으로 접근하게 하시며 모든 질병과 풍토병으로부터 보호하여 주소서.

3.

치열한 영적 전쟁 가운데 있는 선교 현장을 예수님의 보혈로 덮으셔서 2만 8천여 명의 선교사님들이 사명 붙들고 사역하게 하소서.

부형들아 내가 지금 여러분 앞에서 변명하는 말을 들으라 그들이 그가 히브리 말로 말함을 듣고 더욱 조용한지라 이어 이르되 나는 유대인으로 길리기아 다소에서 났고 이 성에서 자라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우리 조상들의 율법의 엄한 교훈을 받았고 오늘 너희 모든 사람처럼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이 있는 자라 내가 이 도를 박해하여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고 남녀를 결박하여 옥에 넘겼노니 이에 대제사장과 모든 장로들이 내 증인이라 또 내가 그들에게서 다메섹 형제들에게 가는 공문을 받아 가지고 거기 있는 자들도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끌어다가 형벌 받게 하려고 가더니

행22:1-5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부형들아 내가 지금 여러분 앞에서 변명하는 말을 들으라 그들이 그가 히브리 말로 말함을 듣고 더욱 조용한지라 이어 이르되"

행22:1-2

오늘 본문은 사도 바울이 성난 유대군중 앞에서 자기변명을 하는 내용입니다. 본문에서 사도 바울이 변명하는 내용을 자세히 보세요. 가만히 보면 그 테마가 전부 한마디로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결코 추상적인 얘기나 철학적인 이론을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옛날 아덴에서 설교할 때처럼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이 어떻고…… 그렇게 얘기하고 있지 않습니다. 알지 못하는 신을 알게 하겠다든가, 하는 얘기도 아닙니다. 이 시간에는 순전히 자기가 겪은 사건을 말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사실, 자기가 만난 사건, 그 경험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논리적으로 이 내용은 두 가지로 요약됩니다. 하나는 나와 다른 사람의 같은 점을, 또 하나는 다른 점을 말씀합니다.

전도학적으로 보아도 가장 중요하고, 복음적으로 보아도 가장 귀한 의미가 여기에 있습니다. '당신과 나는 꼭 같습니다. 그런데 다른 것이 있습니다' 하고 설명합니다. 같은 점이 분명하고, 다른 점이 분명할 때에 전도가 되는 것입니다.

"나는 유대인으로 길리기아 다소에서 났고 이 성에서 자라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우리 조상들의 율법의 엄한 교훈을 받았고 오늘 너희 모든 사람처럼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히 있는 자라"

행22:3

무슨 말을 하고 있습니까? 나는 당신들과 똑같은 히브리사람입니다. 본문에는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만 그의 의도는 이러했을 것입니다. '나도 예수 믿기 전에는 당신들과 똑같았습니다. 예수 믿는 것만 빼놓고는 나도 당신들과 똑같은 사람이요, 오히려 당신들보다 더 극성스러운 히브리인이었습니다.".

나는 당신들과 본질적으로 달라 하는 얘기가 아닙니다. 예수 믿기 전에는 나도 당신들과 똑같은 사람이었소, 하고 설명해 들어가기 시작합니다. 먼저는 같은 민족이요, 같은 히브리 언어권이요, 동질의 문화권에 속한다는 말씀입니다. 뿐만 아니라, 히브리 전통에서 살았다는 것이 같다는 말입니다. 같은 전통을 이어받은 사람들이라는 것이지요. 무릇 같을 때에 우리가 마음이 통할 수 있습니다.

다르면 마음이 닫히는 법입니다. 사도 바울은 말씀합니다. '나는 당신들과 같이 태어났고, 당신들과 같이 자랐고, 당신들과 같이 교육을 받았고, 당신들과 같은 행동을 했었습니다.'

여러분, 혹 누구인가 특별히 전도하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우선 그와 나의 동질성을 확인해야 합니다. 그러고야 전도가 됩니다. 당신과 나는 같습니다, 본질적으로 같습니다, 해야 합니다. 빚을 지고 마음 고생을 많이 하고 있는 사람에게 전도하는데, 나는 평생 빚을 져 본 일이 없습니다. 이렇게 전도하면 되겠습니까? ‘오죽 못났으면 그렇게 빚을 지고 살까?’라고 생각한다면 무슨 전도가 되겠습니까?

요즘 재정 강의를 하는 김미진 간사님의 간증이 우리 마음에 와 닿은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동질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빚 진 사람이 있습니까? 저는 무려 50억이나 되는 빚, 이자까지 합치면 100억이나 되는 빚이 있어서 자살을 두 번이나 시도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했더니 그 많은 빚을 4년 반만이 다 갚고 경제적으로 윤택한 복을 받아, 이제는 성경적 재정 원칙을 가르쳐 주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하니 공감이 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사도 바울은 지금 '당신들과 나는 꼭 같습니다, 다른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라고 말씀을 시작합니다. 특별히 예수를 핍박했던 것이 같다고 말씀합니다.

"내가 이 도를 박해하여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고 남녀를 결박하여 옥에 넘겼노니 이에 대제사장과 모든 장로들이 내 증인이라 또 내가 그들에게서 다메섹 형제들에게 가는 공문을 받아 가지고 거기 있는 자들도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끌어다가 형벌 받게 하려고 가더니"

행22:4-5

당신들은 지금 나를 핍박하고 죽이려고 흥분하고 있지만 나는 그 정도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이 도를 박해하여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고 남녀를 결박하여 옥에 넘겼노니 그리고 덧붙이기를, 그러한 사실들은 대제사장과 장로들이 다 알고 있는 사실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계속해서 자신의 과거를 이야기 합니다. 또 내가 그들에게서 다메섹 형제들에게 가는 공문을 받아 가지고 예수 믿는 사람을 잡으려고 다메섹까지 극성스럽게 쫓아가기 까지 했던 사람입니다. 라며 그 동질성을 부각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첫 번째 단계입니다.

두 번째 단계는 바로 '다르다'라는 것입니다.

"가는 중 다메섹에 가까이 갔을 때에 오정쯤 되어 홀연히 하늘로부터 큰 빛이 나를 둘러 비치매 내가 땅에 엎드러져 들으니 소리 있어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행22:6-7

당신들과 나는 다른 점이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예수를 만났다는 것입니다, 다른 것은 그것뿐입니다, 그것 외에는 당신들과 내가 달라질 아무 이유도 없습니다, 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만난 사건만이 다르다. 하나님의 강권적인 역사 때문에 당신들과 꼭 같았던 내가 지금은 이렇게 다른 사람이 되었다라고 설명해나가고 있습니다.

여기 사도 바울이 예수님을 만나는 대목에서 우리가 건져야 할 중요한 사실 하나가 있습니다. 그것은 사도 바울이 예수를 어떻게 만났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는 율법학자였습니다. 그리고 가말리엘 문하에서 최고의 교육을 받은 지성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어떻게 예수를 만났습니까? 그는 논리로 해석하거나 지식적으로 예수를 만나지 않았습니다. 이성으로 따지고 세미나에 참석해서 믿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신학교에 가서 믿은 것도 아니고 공부해서 믿은 것도 아닙니다.

예수는 지식으로나 공부로나 논리로 믿어지는 분이 아닙니다. 어느 정도는 그런 것으로 도움을 받지만 그런 것을 통해서만 믿으려 하면 결국 마지막에 또 질문이 남습니다. 논리는 논리를 낳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예수를 믿습니까? 만나는 것입니다. 간단합니다. 사도 바울도 율법을 연구하거나 논리로 따지거나 해서 믿게 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예수 믿는 사람을 잡으러 가다가 오히려 예수님을 만나 그 분께 붙잡혔습니다. 이게 예수 믿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도 이렇게 예수님을 만나기를 원합니다.

그러면 이렇게 반문할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누구는 안 만나고 싶나요? 안 되는 걸 어떻게 합니까?” 정말 그 분을 만나고 싶습니까? 그러나 사실상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정말 예수님을 만나야겠다는 절박성이 없습니다. 그렇게 예수님을 만나고 싶은 절박성이 없는 것입니다. 정말 우리가 절박했다면 그분은 만나 주십니다.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렘29:13

여러분, 바울은 논리로 예수님을 만나지 않았습니다. 이성으로 만나지도 않았습니다. 율법으로 만난 것도 아닙니다. 인격적으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것은 그 분이 만나 주시는 것입니다.

때로는 질병을 통하여, 때로는 실패를 통하여, 때로는 배반당하는 것을 통하여, 혹은 어떠한 역경에 처했을 때 이렇게 만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분의 실체를 우리가 보고 인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야 이성과 해석이 뒤따라 오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계시적이라는 것입니다. 행26:19절에 보면 "하늘에서 보이신 것을 내가 거스리지 아니하고" 라고 말씀합니다. 하늘에서 보였다 - 이것은 계시를 받음입니다. 내가 하늘로부터 음성을 들었고, 하늘에서 오는 사건을 만났는데, 이것은 계시를 받았음이다, 나는 이것을 저버릴 수 없다, 그래서 내가 순종하는 것일 뿐이다. 함입니다.

이 말씀의 근본적인 내용은 무엇이냐 ― 하나님의 역사라는 것입니다. 내가 복음을 전하는 것은 하나님의 역사요, 내가 이렇게 되는 것도 하나님의 역사요, 모두가 하나님의 친히 역사하심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것을 강조합니다.

2024년 3월 7일 오전 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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