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5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기도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우리 대한민국을 불쌍히 여기사 강력한 성령의 바람이 불어오게 하시고 진정으로 애통하며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나게 하소서.
주변국가들로 부터 우리 대한민국을 지켜주시고 복음 안에서 평화적인 통일이 이루어지게 하소서.
창조의 질서를 부정하는 비성경적 법률이 제정되지 않게 하시고 대통령을 비롯한 위정자들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이 되게 하소서.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주의 명령에 순종하여 저출산의 문제가 해결되게 하시고 세상으로 보냄을 받은 우리의 희생과 섬김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게 하소서.
예수님의 보혈로 이 땅을 덮어 주셔서 우상 숭배의 죄악들이 끊어지게 하시고 교만과 자살과 음란의 분열의 영이 묶임을 받고 떠나가게 하소서
바울이 이르되 나는 유대인이라 소읍이 아닌 길리기아 다소 시의 시민이니 청컨대 백성에게 말하기를 허락하라 하니 천부장이 허락하거늘 바울이 층대 위에 서서 백성에게 손짓하여 매우 조용히 한 후에 히브리 말로 말하니라
행21:39-40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바울이 이르되 나는 유대인이라 소읍이 아닌 길리기아 다소 시의 시민이니 청컨대 백성에게 말하기를 허락하라 하니 천부장이 허락하거늘 바울이 층대 위에 서서 백성에게 손짓하여 매우 조용히 한 후에 히브리 말로 말하니라"
행21:39-40바울은 먼저 자신은 애굽인이 아닌 유대인이라고 자기 신분을 밝혔습니다. 그리고 소읍이 아닌 길리기아 다소의 시민이라고 말했습니다. 즉 자신은 시골 촌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드러낸 것입니다. 이는 그가 발언권을 얻기 위함이었습니다. “나는 시민이니 나에게 말하기를 허락하다”는 뜻입니다.
그러자 천부장이 그의 청을 허락했습니다. 허락은 받은 사도 바울의 얼굴이 저는 상상이 갑니다. 그렇게 많이 맞았어도 그 순간 그의 눈은 반짝거리고 입에는 미소가 떠올랐을 것입니다. “이제 됐다”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층대 위로 올라갔을 것입니다.
바울은 손짓하며 백성들에게 조용할 것을 부탁했습니다. 행21:33에 비추어 볼때, 그는 여전히 쇠사슬에 묶여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만약 그가 말하려고 층대에 올라갔을 때 쇠사슬을 풀어 줬다면 안 묶여 있었을 것이고, 쇠사슬을 안 풀어 줬다면 묶인 채 손짓을 했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 부름을 받은 사람입니다. 유대인이지만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고 이방인을 위해 살도록 부름 받았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의 마음 속에는 자기 동족에 대한 아픔이 있었습니다. 그는 어떻게 해서든지 시간만 나면, 기회만 있으면 자기 동족에게 예수를 전하고 싶어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1차, 2차, 3차 선교 여행을 하면서 가는 곳마다 꼭 유대인의 회당을 먼저 찾았습니다. 그리고 유대인에게 복음 전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그런 상황입니다. 조금 전까지도 성난 유대인들이 자기를 죽이려고 때렸습니다. 그렇지만 사도 바울은 그들이 자기를 얼마나 때렸느냐에 대해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헤어지기 전에, 지금 자신이 성문으로 들어가면 이 청중과 헤어지게 되는데 그 전에 그 유대인들에게 예수님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사도 바울의 간절한 심정을 만나게 됩니다. 연민의 정도 간절한 심정도 없이 그냥 일만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반면에 정말 간절한 심정을 가지고 일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그러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사람에게 전달되는 것은 일이 아니라 마음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에게 남아 있는 것이 있다면 오직 예수였습니다. 예수를 위할 수만 있다면 감옥에 들어가서 매를 맞아도 좋고, 굶어도 좋고, 죽어도 좋았습니다. 그에게 그런 것은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 자신이 중요합니까? 예수님이 중요합니까? 우리 자신을 위해서 예수님이 필요한 것입니까? 예수님을 위해 우리가 필요한 것입니까?
여기에 우리 신앙의 딜레마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안 믿는 것은 아닙니다. 교회에 안 다니는 것도 아닙니다. 교회 다니면서도 언제나 내 상황, 내 입장, 내 환경이 중요한 것이 문제입니다.
바울은 사람들을 조용히 시킨 다음에 유대인들에게 익숙한 히브리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다시 한번 생각할 것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지금 자기를 죽이려고 하는 성난 군중들 앞에서 말하는데, 그 태도가 어떠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저 벌벌 떨면서 자기 생명이나 보존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놀랍게도 그 사람들을 구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단한 의미가 있습니다. 모름지기 우리는 어떤 형편에서든, 어떤 처지에서든 전도를 해야 합니다. 그 본래적 사명을 추호라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의 본문에 나타난 바와 같이 사도 바울은 아주 담대합니다. 사도행전의 저자인 누가는 바울이 담대하였다고 그렇게 기록하고 있지는 않습니다만, 아마도 스데반의 모습처럼, 천사의 얼굴과 같이 온유하고, 밝고, 여유 있는 얼굴이었을 것이라고 짐작이 갑니다. 그리고 바울은 확신에 차 있고 사명에 넘쳐 있습니다.
바로 이 시간의 바울의 전도 자세는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우선 사도 바울은 지금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말씀하는 것 같습니다.
전도는 그렇습니다. 전도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언제든지 그 때가 종말론적 기회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내가 누구에게 전도할 때, 이게 마지막 기회입니다. 다시는 저 사람을 못 만날 수도 있습니다. 내가 전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교회에 나올 때마다 다음 시간에 또 교회에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이 시간이 나의 마지막 시간이라는 생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 사도 바울의 운명이 바야흐로 경각에 달렸습니다. 이렇게 설교한 다음에 그 옛날 스데반이 돌로 쳐 죽임을 당했듯이 자기도 당할지 모른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이야말로 종말론적 기회, 마지막이라는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서서 설교하고 있는 것입니다. 무릇 언제고 항상 그런 마음으로 임해야 할 것입니다.
또 하나는 최선을 다합니다.
전도할 때에는 가장 귀중한 말, 그야말로 기본적인 복음, 꼭 전해야 할 말만 하세요. 긴 얘기 할 시간이 없어요. 몇백 번 말했든 간에 꼭 알아두어야 할 그러한 말을 최선을 다해 전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내가 이렇게 전한 다음에 되어지는 일에 대해서는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 복음을 다 들었습니다. 이제 그 다음에 되어지는 일은 내게 책임이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내게 어떤 결과가 와도, 돌에 맞으면 맞고, 죽으면 죽고, 살면 살고, 상관이 없어요. 단지 이 시간만은 내가 할 일은 다 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것이 설교입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는 대로, 평양의 대동강변에 가면 옛날에 토머스 선교사가 우리나라에 배를 타고 전도하러 왔다가 순교를 당했던 순교 유적지가 있습니다. 토머스 선교사는 우리 민족을 구원하기 위하여 쪽 복음(마가복음) 성경을 만들어 가지고 와서 전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그에게 돌을 던지고, 횃불을 던지고, 불덩이를 던지는 바람에 배가 그만 전소되고 말았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토머스 선교사는 성경책을 계속해서 강물에 던졌습니다. 자기는 죽지만 이 성경책은 받으라는 것이지요. 그 때 그 성경을 몰래 주어다가 읽고 예수 믿은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 민족이 복음을 받는 맨 처음 사건입니다.
나는 이대로 전도하고 갑니다. 그러나 이 복음만은 믿으세요 ― 이것이 전도자의 자세입니다. 사도 바울이 가만히 보니까 지금이 성난 사람들 앞에서 자기가 무사할 것 같지 않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대로 맞아 죽어도 좋소, 하지만 내가 하는 말은 들으시오, 하고 마지막으로 최선을 다합니다. 하나님께 위탁하고 종말론적으로 복음을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귀부인이 길거리에 나왔다가, 노방전도 하는 사람한테 붙들렸습니다. 전도자는 부인을 딱 붙들어 놓고, 30분 동안 계속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부인은 오도가도 못하고, 한마디로 그 자리에서 30분 동안 꼼짝 못하고 시달렸습니다. 그리고 그가 전하는 복음을 고스란히 다 들었습니다. 마음에 많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부인은 집에 돌아가서 남편에게 내가 오늘 이렇게 이렇게 곤욕을 치렀다고 얘기했습니다.
남편은 껄껄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다음에 혹 그런 사람을 만나거든 쓸데없는 일은 하지 말고, 당신이 해야 할 일이나 제대로 하라고 하오. 아까도 그렇게 말하지 그랬소?" 부인은 대답합니다. "당신도 내가 오늘 만났던 사람을 만난다면 그 사람은 자기가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확신에 차 있으니까요. 꼭 전도해야겠다고, 이 말은 꼭 상대방이 들어야 한다는 간절한 마음, 확실한 믿음 가진 것을 저는 보았거든요." 여러분, 이것이 전도자의 자세입니다.
2024년 3월 6일 오전 6:4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