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4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기도 세계를 위하여
전 세계 80억 명의 영혼들, 특별히 6,500여 미전도 종족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이 전리 전파되게 하시고 방황하고 죽어가는 영혼들을 위해 교회가 열방 곳곳에 세워지게 하소서
경제적으로 어려운 해외 교회들이 회복되며 현지인 사역자들이 세워지게 하시고 하늘 길이 막혀 현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는 선교사들이 속히 선교 현장으로 돌아가 교회와 사역지를 지키게 하소서
자연 재해와 내전, 박해로 인해 고통 받고 있는 영혼들을 불쌍히 여기서 자비와 평안을 베풀어 주시고 각 나라가 연합하여 상생하는 역사가 일어나게 하소서
무리 가운데서 어떤 이는 이런 말로, 어떤 이는 저런 말로 소리 치거늘 천부장이 소동으로 말미암아 진상을 알 수 없어 그를 영내로 데려가라 명하니라 바울이 층대에 이를 때에 무리의 폭행으로 말미암아 군사들에게 들려가니 이는 백성의 무리가 그를 없이하자고 외치며 따라 감이러라 바울을 데리고 영내로 들어가려 할 그 때에 바울이 천부장에게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 말할 수 있느냐 이르되 네가 헬라 말을 아느냐 그러면 네가 이전에 소요를 일으켜 자객 사천 명을 거느리고 광야로 가던 애굽인이 아니냐
행21:34-38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무리 가운데서 어떤 이는 이런 말로, 어떤 이는 저런 말로 소리치거늘 천부장이 소동으로 말미암아 진상을 알 수 없어 그를 영내로 데려가라 명하니라 바울이 층대에 이를 때에 무리의 폭행으로 말미암아 군사들에게 들려가니 이는 백성의 무리가 그를 없이하자고 외치며 따라 감이러라 바울을 데리고 영내로 들어가려 할 그 때에 바울이 천부장에게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 말할 수 있느냐 이르되 네가 헬라 말을 아느냐"
행21:34-373차 선교를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간 사도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체포되었습니다. 이상하게도 그 죄목은 로마를 반역했다던가 소란을 일으켰다던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반유대적이라는 것과, 반율법적이라는 것, 그리고 성전을 더럽혔다고 하는 죄목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까지 공부해서 아는 바와 같이 그들이 사도 바울을 죽이고자 하는 까닭은 다른 데에 있습니다. 유대인들의 시기 때문이요, 질투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가졌던 종교적, 정치적 특권을 빼앗기지 아니하고자 함입니다. 어쨌든 그들은 다른 트집을 잡아서 사도 바울을 죽이려고 합니다.
"그들이 (대제사장, 서기관, 장로들이) 예수의 이 비유가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알고 잡고자 하되 무리를 두려워하여 예수를 두고 가니라 그들이 예수의 말씀을 책잡으려 (다른 트집을 잡으려고) 하여 바리새인과 헤롯당 중에서 사람을 보내매 와서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참되시고 아무도 꺼리는 일이 없으시니 이는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않고 오직 진리로써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심이니이다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옳지 아니하니이까"
막12:12-14이렇게 한 것이 소위 종교지도자들입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바울을 죽이려고 하는 쪽은 유대사람들이요, 그 바울을 죽지 않도록 보호하기 위하여 체포하는 쪽은 로마사람들입니다. 그러니까 로마법을 어겼다고 체포하는 것이 아니라 유대사람들이 죽이려 하니까 그렇게 되지 않도록 보호하기 위하여 로마 천부장이 군사들을 동원하여 바울을 체포한다―이것이 지난 시간에 살펴본 내용입니다.
오늘 읽은 본문을 보면 바울을 체포한 천부장이 바울의 죄목을 알고자 하여 무리들에게 묻자 성난 군중들은 저마다 여러 말로 대답했지만 소동만 일어났을 뿐 그 실상을 알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천부장은 바울을 다시 영문 안으로 데려가라고 명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을 데리고 영내로 들어가려 하는 바로 그 때에 사도 바울이 천부장에게 “잠깐만”하고 소리를 지릅니다. 그리고 당당하게 말합니다. “내게 말할 기회를 주십시오”
사도 바울은 지금 실컷 매를 맞고 죽을 뻔했다가 로마 군인들에게 잡혀서 영문으로 들어가는 길입니다. 그렇지만 사도 바울의 관심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어떤 상황에서든지 예수를 전하는 것에 사도 바울의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자기가 중요합니다. 월급이 중요합니다. 진급이 중요합니다. 자녀가 중요합니다. 자기와 자기 생각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어도 자기 식으로 믿습니다.
예수님 식으로 믿으면 오히려 간단할 텐데, 자기 고집대로, 자기 성격대로, 자기가 좋아하는 대로 예수를 믿으려 합니다. 자기를 포기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물을 보는 관점이 언제나 자기 식이고, 자기 일에 관심이 많고, 모든 일을 자기 식으로 해석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무엇에 관심이 있는가가 그 사람을 말해 줍니다.
어떤 장로님은 선교차 외국에 가도 시간만 나면 구두점을 찾아 보니다. 늘 다른 사람의 구두를 봅니다. 왜 그렇습니까? 엘칸토 구두 사업을 하시거든요.
여의도 순복음 교회 아프리카 선교회 회장을 하셨던 안종주 장로님은 어디를 가시든지 일회용 스푼을 버리지 않고 깨끗이 닦아 가져가시더라고요. 왜 그렇습니까? PS 코리아라는 일회용 스푼 및 그릇 제작 사업을 하시거든요.
천부장의 관심은 무엇입니까?
"그러면 네가 이전에 소요를 일으켜 자객 사천 명을 거느리고 광야로 가던 애굽인이 아니냐"
행21:38치안 책임자로서 그의 관심은 치안을 방해하는 사람을 체포하는 것에 있었습니다. 본문을 통해서 그의 구체적인 관심을 알 수 있는데, 그는 전에 난을 일으켜 사천의 자격을 거느리고 광야로 가던 애굽 사람이 아직 체포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를 잡는데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바울로 인하여 일어난 소동을 보고 혹시 이 사람이 그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사람의 눈에는 그런 것 밖에 안 보이는 것입니다.
한편 사도 바울은 무슨 생각을 했습니까? 어디에 관심이 있었습니까? 죽으나 사나 예수였습니다. 어떻게 하면 예수님을 좀 전해볼까? 그 생각을 제일 많이 했습니다.
누구나 억울하게 맞으면 감정이 생기지 않습니까? 사도 바울에게는 그런 감정조차 없는 듯 했습니다. 그는 자기가 맞는 것, 욕 먹는 것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었고, 예수를 전하는 것, 그것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성난 유대인들을 피해 로마 군사들에게 들려가는 중에도 복음 전할 기회를 구해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할 수 있는 한, 빨리 그 장소를 벗어나는 것만이 상책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아마 손수건으로 얼굴에 묻은 핏자국을 닦으면서 늠름한 모습으로 층계 위에 서서 입을 열었을 것입니다.
저 성난 군중이 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거의가 몰라서 휩쓸리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바울은 그 점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고로 알게 해서 구원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간절합니다.
아마도 바울은 그 옛날, 자기가 돌로 쳐죽였던 스데반의 죽던 장면을 생각했는지도 모릅니다. 스데반은 돌에 맞아 죽습니다. 그러나 죽으면서 일장 설교를 했습니다. 긴 설교를 합니다. 그것을 누가 듣겠습니까? 들을 사람 없을 것 같은데도 성난 군중 앞에서 천사의 얼굴을 하고, 설교를 하고, 그리고 돌에 맞아 죽은 것이었습니다.
그 광경을 본 충격이 바울에게 되살아납니다.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그 때에 받은 충격으로 구원을 받고, 그리스도인이 된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시간에 사도 바울은 아무리 저들이 성난 얼굴을 하고, 자기에게 돌을 던지려고 하고, 찢어 죽이려고 대들어도 오히려 저들을 불쌍히 여깁니다.
그들 가운데에는 모르고 행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하신 말씀처럼 '하나님이여 저들의 죄를 사하여 주시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는 마음입니다.
사실 그들이 잘못된 것을 몰라서 그렇지, 다 알고야 이렇게 하겠습니까? 그러기에 사도 바울은 이 시간에 그들을 향해서 설교를 합니다. 자기변명을 합니다. 담대한 마음으로 성난 군중들을 향해서 일장 연설을 하게 됩니다.
여기서 우리는 참된 예수 그리스도의 종에게서만 볼 수 있는 용기와 여유와 힘을 그에게서 느낄 수가 있습니다. 사도 바울에 비해 우리는 매사에 너무 사람들을 의식하는 비겁쟁이라고 생각되지 않습니까?
우리 모두 사도 바울처럼 고난과 핍박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와 담력, 그리고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 또한 하나님의 관심이 있는 곳에 나의 관심이 있도록 도와 달라고 다 함께 기도합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