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6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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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고백

Confession

기도 방송 연예 종사자들을 위하여

1.

연예인들이 세상의 인기와 명예보다 더 고결한 가치가 있음을 알게 하시고 그들을 통해 우리 사회에 건강한 대중문화가 실현되게 하소서.

2.

크리스천 연예인들이 주님이 주신 달란트로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며 왜곡된 세상을 그리스도의 문화로 회복하는 사명을 감당하게 하소서.

3.

방송·연예계의 우상숭배와 미신의 관습이 끊어지게 하시고 음란하고 퇴폐적인 죄의 문화들이 방송계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하소서.

예루살렘에 이르니 형제들이 우리를 기꺼이 영접하거늘 그 이튿날 바울이 우리와 함께 야고보에게로 들어가니 장로들도 다 있더라 바울이 문안하고 하나님이 자기의 사역으로 말미암아 이방 가운데서 하신 일을 낱낱이 말하니

행21:17-19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예루살렘에 이르니 형제들이 우리를 기꺼이 영접하거늘"

행21:17

이제 3차 선교 여행을 마친 사도 바울과 그 일행이 예루살렘으로 들어갑니다. 오늘은 그곳에 도착하면서부터 되어진 이야기를 공부하게 됩니다.

맨 먼저 "형제들이 우리를 기꺼이 영접하거늘(17절)"

형제들이 와서 기쁘게 맞아주었다고 합니다. 예루살렘 성도들에게 있어서 사울은 어떤 인물입니까?

"사울은 그가(스데반)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있어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경건한 사람들이 스데반을 장사하고 위하여 크게 울더라 사울이 교회를 잔멸할새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기니라"

행8:1-3

그런 과거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바울에 대한 여러 좋지 못한 소문에도 불구하고 바울 일행을 반갑게 맞이하였습니다. (과거를 묻지 맙시다.)

오늘 본문을 보면 예루살렘 성도들을 일컬어 '제자들'이라고 하지 않고 '형제들'이라고 표현합니다. 사도행전에 있어서 예수 믿는 사람의 지칭이 첫째가 '그리스도인'이요, 둘째가 '제자'요, 셋째가 '형제'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께 속한 자'라는 의미입니다.

성경은 예수님을 따라다닌 수많은 사람들을 보통 무리(crowd)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오직 소수의 사람들만을 제자(disciple)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제자는 주님을 닮기를 원하고, 주님의 뜻대로 살기로 결단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지고 가야 할 십자가가 있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예수 믿기 때문에 당하는 고통과 억울함, 손해 보는 것도 세상 사람의 비웃음에 굴하지 않고 감당합니다. 그러나 거룩한 부담감은 지고 싶지 않고, 대가 지불도 하고 싶지 않고. 그저 좋은 말씀만을 듣기 원한다면 무리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무리에서 제자로 옮기는 결단이 있기를 바랍니다.

그 다음이 오늘의 본문에 보는 대로 '형제'입니다.

"(부활하신) 예수께서 (마리아에게) 이르시되 나를 만지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못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누구를 가리키는가요? 두려워서 떨고 있는 제자들)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하신대"

요20:17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요1:12-13

"거룩하게 하시는 이(예수님)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우리)들이 다 한 근원(하나님)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히2:11

그런고로 우리는 피부, 언어, 혈색, 나라를 초월하여 다 형제입니다.

"그 이튿날 바울이 우리와 함께 야고보에게로 들어가니 장로들도 다 있더라 바울이 문안하고 하나님이 자기의 사역으로 말미암아 이방 가운데서 하신 일을 낱낱이 말하니"

행21:18-19

본문에 보니 사도 바울이 먼저 야고보를 만났다고 합니다. 야고보는 예루살렘교회의 1대 감독이었고, 30년 동안을 감독으로 일하다가 마지막에 순교했다고 전해집니다. 그런고로 바울이 예루살렘에 들어가자마자 맨 먼저 만난 사람이 야고보입니다. 예루살렘교회가 모든 교회의 어머니 교회요, 제1교회이기에 저를 만나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안디옥 교회의 파송을 받아 세계를 다니면서 선교를 했습니다. 예루살렘교회에서 파송 받은 사람이 아닙니다. 따라서 예루살렘 교회에는 보고할 의무가 전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고보에게 보고를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것은 그의 겸손이요, 공동체 의식을 바로 하는 행위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로 직접 불러 택하여 세우신 사도입니다. 갈1;1에서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가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다른 사람의 말을 들을 필요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보고할 필요도 없는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야고보에게 찾아가서 그 동안 사역한 바를 보고합니다. 이점에서 바울이 위대한 것입니다.

이 같은 사실은 교회의 하나 됨을 말해주는 중요한 증거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루살렘교회가 있고, 바울의 교회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 그리스도의 교회요, 하나의 교회입니다. 그것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이 보고하는 부분을 눈여겨보세요.

"바울이 문안하고 하나님이 자기의 사역으로 말미암아 이방 가운데서 하신 일을 낱낱이 말하니"

행21:19

이 짧은 문장에서 우리는 대단히 중요한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내가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고, 내가 몇 사람에게 세례를 주고, 내가 어느 어느 교회를 세우고……' 이렇게 보고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내가가 아닙니다) 자기의 사역으로 말미암아 이방인 가운데서 하신 일을 낱낱이 고하니...

참 이상하지 않습니까? ‘나’라는 자기 존재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이' 하나님께서 몸소 역사 하셨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되어진 사건 전부가 하나님이 하신 일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셨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교회를 세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세우신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신앙적 인식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놀라운 능력을 행하게 하시니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

행19:11-12

"베드로가 성전 미문에 앉아서 구걸하던 앉은뱅이를 일으켰을 때 사람들이 베드로를 주목하자, 이것을 보고 백성에게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놀랍게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가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

행3:12

우리는 어떤 일을 두고 내가 한 것이다, 또 누가 한 것이다, 하고 왈가왈부하는데,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런 행동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나 왕이 말하여 이르되 이 큰 바벨론은 내가 능력과 권세로 건설하여 나의 도성으로 삼고 이것으로 내 위엄의 영광을 나타낸 것이 아니냐 하였더니 이 말이 아직도 나 왕의 입에 있을 때에 하늘에서 소리가 내려 이르되 느부갓네살 왕아 네게 말하노니 나라의 왕위가 네게서 떠났느니라 네가 사람에게서 쫓겨나서 들짐승과 함께 살면서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요 이와 같이 일곱 때를 지내서 지극히 높으신 이가 사람의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는 줄을 알기까지 이르리라 하더라"

단4:30-32

다윗이 솔로몬 성전 건축을 위하여 엄청난 금과 은을 드립니다. 그리고 이렇게 기도합니다.

"나와 내 백성이 무엇이기에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

대상29:14

우리 또한 이런 마음으로 봉사하고 헌신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 다음으로 두 번째 보고의 내용은 "자기의 사역으로 말미암아" 입니다.

나를 통해서 이루었다는 것입니다. '나의 사역, 나의 수고, 나의 봉사를 통하여'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분명히 알 것은 주체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나를 통해서 역사 하신 것입니다.

내 입을 통하여, 내 말을 통하여, 내가 하는 설교를 통하여, 그리고 내 지혜를 통하여, 내 건강을 통하여, 내가 하는 수고를 통하여, 내가 뿌린 눈물을 통하여, 나아가서는 내가 당한 많은 핍박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당신의 일을 이루셨다는 것입니다.

나는 도구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 시작도, 그 과정도, 그 결과도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이요, 나는 봉사하고 있을 뿐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내가 봉사하는 것은 별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만이 큰 것입니다.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심는 이와 물 주는 이는 한가지이나 각각 자기가 일한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고전3:6-8

나라고 하는 사람의 봉사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생각해보세요. 가을에 농사를 다 지어놓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곡식을 주셨다고 우리는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하늘로부터 쌀가마를 떨어뜨려 주신 것은 아닙니다. 분명히 우리가 수고했습니다. 씨를 뿌렸고, 땀을 흘렸고, 가꾸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비를 내리시고, 모든 것을 풍족하게 해주셔서 우리가 곡식을 거두었습니다. 내가 하는 수고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이루신 것입니다.

바울은 여러 해 동안 선교 여행을 했습니다. 많은 고생도 했습니다. 그러나 '나의 사역과 수고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이렇게 큰 일을 이루셨습니다'라고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드리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나의 사역과 수고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내 눈물과 내 헌신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내 지혜가 필요하고, 내 노력이 필요하고, 내 희생이 필요하고, 내 돈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이것을 통하여 역사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것을 필요로 하고 계십니다.

문제는 이것을 내놓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대로 예수님께서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셨습니다. 어린아이가 먹였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어린아이가 예수님께 즐거이 바치는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이것을 통하여 역사 하신 것입니다. 자기의 사역으로 말미암아, 여러분의 사역, 여러분의 헌신, 여러분의 눈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나라가 풍성한 열매를 맺는 복을 받게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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