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3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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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고백

Confession

기도 이단 세력을 물리치기 위하여

1.

세상과 교회를 어지럽히는 신천지와 이단 세력들의 거짓된 정체를 밝히 드러내사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구원자이심을 열방이 알게 하소서.

2.

미혹의 영에 사로잡힌 자들이 복음으로 돌아오게 하시고 거짓된 말과 유혹에 성도들이 흔들리지 않도록 말씀의 능력과 영적 분별력을 허락하소서.

3.

교회와 가정을 무너뜨리고 사회를 혼란스럽게 하는 이단과 사이비 세력, 그들을 조종하는 더러운 세력이 무너지게 하소서

바울이 대답하되 여러분이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당할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하니

행21:13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바울이 대답하되 여러분이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였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당할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하니"

행21:13

사도 바울이 3차 선교 여행을 마치고 드디어 가이사랴에 도착했습니다. 거기서 전도자 빌립의 집에서 며칠을 머물러 있었는데 아가보라 하는 한 선지자가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바울의 띠를 가져다가 자기 수족을 잡아매고 말하기를 성령이 말씀하시되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이같이 이 띠 임자를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주리라고 예언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주의 깊게 관찰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그가 예루살렘으로 가면 결박과 환난이 기다린다고 성령께서 분명히 말씀하셨지만, 예루살렘으로 가지 말라고 말씀하시지는 않았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가지 말라는 말을 누가 했습니까? 사람들이었습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메시지가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인간적인 생각으로 바울에게 결박과 환난이 기다리고 있는 예루살렘으로 가지 말라고 권했지만, 성령님은 그가 예루살렘에서 겪을 일에 대해서만 말씀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이 가지 못하게 한 것은 성령의 감동이 아니라 순전히 인간적인 정 때문이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십자가를 지지 못하도록 예수님을 만류하던 베드로를 연상하게 됩니다. 그 때에 예수님께서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마16:23)" 하셨습니다.

베드로가 갑자기 사단이 되는 순간입니다. 그는 조금 전에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고백하여 칭찬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의 메시야됨을 인정하였지만 십자가는 부정하고 있습니다. 그런고로 그 순간에는 사단이었습니다.

즉 하나님의 일은 생각지도 않고, 나 자신의 일만 생각하는 순간에 사단이 됩니다. 이 얼마나 무서운 얘기입니까?

그 사단이 바울에게도 역사합니다. 하나님의 일은 생각하지 말고, 너 자신의 일, 너 자신의 입장, 너 자신의 처지만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지금 예루살렘으로 가려는데 유혹합니다. 유혹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를 피하라는 것입니다.

왜 하필이면 그리로 가느냐, 예루살렘으로 가지 말고 갈릴리로 가면 되지 않느냐, 로마로 바로 가면 되지 않느냐, 구제금은 디모데 손에 보내주고 너는 로마로 가라, 왜 위험한 일을 네가 맡으려고 하느냐, 비켜가라, 피하라 - 이렇게 사단은 유혹합니다. 이런 시험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서양 사람들의 격언에 사단의 시험에 대한 재미있는 얘기가 있습니다. 사단이 어떤 유혹을 할 때에 '누구든지 하는 일인데'라고 한답니다. 또 '이까짓 것 별것도 아닌데' '이번에 딱 한 번뿐이다'하고 유혹을 한다는 것입니다. 또 '앞날이 많은데'하고 유혹한다고 합니다. 그럴듯한 얘기입니다.

우리들이 십자가를 지려고 할 때에도 꼭 이런 유혹이 따라옵니다. 비켜가라, 이 길 아니고도 다른 길이 있지 않느냐, 너 아니면 사람이 없느냐, 이 일만이 하나님의 일이더냐, 네가 십자가를 지다니, 너는 바보다, 앞으로 있을 숱한 오해와 비난은 어떻게 감당할 것이냐 ― 그래서 목숨은 바칠 수 있는데 명예는 못 바칩니다. 물질은 바칠 수 있는데 자존심은 못 바칩니다. 이래서 십자가를 기피하려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예수님께서는 사단아 물러가라, 하고 아주 단호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중요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십자가 없는 믿음, 가짜입니다. 십자가 없는 충성, 거짓말입니다. 십자가 없는 사랑, 그것도 별것 아닙니다.

여러분은 인간의 정에 호소하면서 주님의 뜻을 따르지 못하게 하는 가까운 사람들의 시험을 받은 일이 있습니까? 여러분은 그때 어떻게 대처했습니까?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사도 바울이 대처하는 방법을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이 대답하되 여러분이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였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당할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하니"

행21:13

각오하였노라. 그의 마음은 이미 결정되어 있었습니다. 그는 죽기로 결심 했습니다. 죽기로 결심한 사람은 무서울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결심을 하지 못합니다. 자기 인생을 결정하지 못합니다. 이렇게 살아도 좋을 것 같고, 저렇게 살아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이것도 해야 될 것 같고, 저것도 해야 될 것 같습니다. 어느 날은 헌신해야 할 것 같고, 어느 날은 그게 아니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것을 가리켜 방황이라고 합니다.

무엇이든지 결정하지 못하면 우리는 방황하게 됩니다. 영원을 결정하지 못하면 현실에서 방황하게 됩니다. 천국이 결정되지 않는 사람은 방황하게 됩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이미 결정한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는 13절에서 사도 바울의 대답 중에 세 가지 중요한 말들을 살펴 보겠습니다.

1너희가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하는 말입니다.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 왜 감상적인 눈물을 흘려 내 마음을 약하게 만드느냐, 왜 내 마음을 흔드느냐는 뜻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미 죽을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이 감상적 눈물, 바울에게 예루살렘에 가지 말라고 하는 것은 베드로가 예수님께 십자가 지시지 말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 아닙니까? 바울도 여기서 '사단아 물러가라' 할 수 있지마는 다만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쓸데없는 눈물 흘리지 말라, 하는 정도로 쐐기를 박고 맙니다. 그 같은 감상적 눈물이 문제인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미 예수님의 마음을 이해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마음만 먹으면 십자가를 안 질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기로 결정하셨습니다. 사도 바울 역시 예루살렘으로 가지 않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가기로 결심한 후에 그렇게 했습니다.

여러분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를 수도 있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그렇게 하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는 십자가를 향하여 걸어가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이해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예수를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예수를 아는 정도는 다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천박한 지식만을 가지고 있습니다. 껍데기만 아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십자가의 예수님 심정까지 아는 사람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느 정도입니까? 어느 정도까지 예수님을 알고 계십니까? 예수님이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피 흘려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알고, 그렇게 말할 수 있다고 해서, 여러분이 진정으로 십자가의 참된 의미를 안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아닙니다. 그것은 객관적인 지식일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 뜻을 버리고 주님의 뜻을 따를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2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라는 말입니다.

"바울이 대답하되 여러분이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였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당할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하니"

행21:13

바울은 로마서 1:5에서도 이와 비슷한 표현을 썼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하게 하나니"

롬1:5

왜 사도 바울이 그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당할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했습니까?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골리앗과 싸운 이유가 어디에 있었습니까?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삼상17:45

오늘날 우리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모욕을 당하는 것에는 민감하게 반응하지만,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모욕을 당하는 데는 둔감하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그 반대였습니다.

"장형 엘리압이 다윗의 사람들에게 하는 말을 들은지라 그가 다윗에게 노를 발하여 가로되 네가 어찌하여 이리로 내려왔느냐 들에 있는 몇 양을 뉘게 맡겼느냐 나는 네 교만과 네 마음의 완악함을 아노니 네가 전쟁을 구경하러 왔도다"

삼상17:28

민감할 때 민감하고, 둔감할 때 둔감하자.

사도 바울의 권면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고전10:31

3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했다 는 말입니다.

"바울이 대답하되 여러분이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였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당할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하니"

행21:13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다니, 무슨 말입니까? 바울은 로마로 가서 서바나까지 복음을 전할 계획이 있습니다. 그런데 로마에 못 가도 좋아, 예루살렘에서 죽어도 좋아, 그래도 가겠노라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로마 못 가도 좋고, 더 큰 일을 못해도 좋다, 여기서 끝나도 좋다, 앞으로 해야 할 일과 포부와 생각은 많지만 그것 다 못해도 괜찮다, 오늘 내게 맡겨진 내 몫의 십자가, 예루살렘에 가는 일, 여기서 끝나도 좋다는 것입니다.

때때로 우리는 앞으로 더 큰일을 하겠다며 현재의 일을 등한시합니다. 하나님의 일, 굉장한 일을 하겠다고 하면서 내게 맡겨진 내 몫의 십자가를 피하려고 합니다.

사도 바울은 엄청난 계획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말씀합니다.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눈물의 권면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2024년 2월 24일 오전 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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