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3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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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고백

Confession

기도 정치와 사회를 위하여

1.

대통령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시고 정치 지도자들이 권모술수를 행하지 않게 하소서.

2.

이 땅의 위정자들이 그릇된 이념이나 선동이 아닌 공의와 정의로 나라를 다스리게 하소서.

3.

주변 강대국과의 경제, 안보 갈등이 조속히 해결되게 하시고 한반도의 평화적 정세가 이뤄지게 하소서.

보라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 못하노라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행20:22-24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보라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 못하노라"

행20:22

우리는 여기서 두 가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첫째는 지금 사도 바울이 오순절이 되기 전에 예루살렘으로 급히 가려고 하는데 그렇게 하는 이유가 자신에게 있지 않고 성령의 강권적인 역사에 있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선교 역사상 가장 귀하게 쓰임 받은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성령에 매여 - 내가 원하고 내가 계획하던 일을 한 것이 아니라 성령에 매여, 성령의 인도를 받아 했기 때문입니다.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행13:2-3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그들이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 무시아를 지나 드로아로 내려갔는데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이르되 마게도냐로 건너 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바울이 그 환상을 보았을 때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행16:6-10

우리도 이러한 경험을 할 때가 가끔 있습니다. 내가 원하지도 않는데 성령님이 나를 어디론가 보내실 때가 있습니다. 그때 여러분이 계획을 것을 내려 놓고 순종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또 한 가지 성령님이 가르쳐 주신 것은 예루살렘에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예루살렘으로 가라고 하시고, 또 한편으로는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 못한다고 하시니 사도 바울이 얼마나 고민이 되었겠습니까? 하나님은 그곳으로 가라고 강권하시고 또 그 곳에서 고난을 겪을 것이라는 두 가지 사실을 동시에 알려 주셨습니다. 도대체 예루살렘에 돌아가면 무슨 일이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23절에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행20:23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라는 말에서 우리는 바울만 그렇게 느끼는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예언하는 모든 사람들도 그 사실을 깨닫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면 굉장히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인데 왜 가려고 하느냐며 걱정했을 것입니다.

"이튿날 떠나 가이사랴에 이르러 일곱 집사 중 하나인 전도자 빌립의 집에 들어가서 머무르니라 그에게 딸 넷이 있으니 처녀로 예언하는 자라 여러 날 머물러 있더니 아가보라 하는 한 선지자가 유대로부터 내려와 우리에게 와서 바울의 띠를 가져다가 자기 수족을 잡아매고 말하기를 성령이 말씀하시되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이같이 이 띠 임자를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주리라 하거늘"

행21:8-11

아가보라는 사람은 아예 띠까지 묶어 주면서 이렇게 묶임을 당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들도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이런 질문에 부딪히게 됩니다.

예를 들면 선교사로 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데, 그렇다면 모든 것을 버리고 가야 하는가? 가라는 음성도 있고 죽을 고생을 한다는 음성도 있는데 가야하는가? 이런 갈등 속에서 사도 바울의 반응은 어떠했는지 24절에서 보겠습니다.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행20:24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이 나의 생명보다 더 귀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결정은 내가 하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힐 수 밖에 없는 막다른 골목에서 예수님도 “아버지여, 내가 이 잔을 마셔야 하니까? 안 마시는 방법은 없습니까?”라고 물으셨습니다. 얼마나 고민하셨던지 땀방울이 핏 방울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러한 고민과 갈등의 벽을 넘는 과정을 우리도 겪어야 합니다. 그 기도가 얼마나 힘드셨으면 땀이 핏방울같이 되겠습니까? 나중에 “아버지여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하셨지만 예수님은 이 문제를 놓고 한 번만 기도하지 않으셨습니다. 세 번씩이나 기도하셨습니다. 그러나 마지막에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하셨을 때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오늘 이런 결단을 한 것입니다. 성령이 주신 갈등되는 두 가지 길에서 사도 바울은 결단합니다. 나의 달려갈 길, 그것은 곧 주 예수께 받은 사명, 하나님의 복음을 증거하는 일인데 이 복음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가치 있는 것으로 여기지 않겠다는 결단을 합니다.

여러분의 달려갈 길, 여러분의 인생의 목적은 어디에 있습니까? 인생의 방향은 어디 있습니까?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합니까?

여러분, 우리가 지금처럼 살면 세상이 변하겠습니까? 교회는 이득이 되겠지요. 여러분의 직장도 유지 되겠지요. 그러나 세상이 변할까요?

여러분, 세상에서 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사람들 중에는 교인들도 많이 있습니다. 교회에서 예배드리고 기도하고 찬송하지만, 세상에 가서는 내 마음대로 사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변화와 결단이 없는 한 세상은 변하지 않습니다. 내가 안 변하는데 어찌 세상에 변하겠습니까?

사도 바울은 이러한 양 갈래 길에서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는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거함을 마치려 함에는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유명한 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은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은 두 가지 삶의 양식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소유의 양식이요, 또 하나는 존재의 양식이다"라고.

소유의 양식이란 물질을 얻고, 권세를 얻고, 명예를 얻고, 얻고 얻고 또 얻으려 하다가 아무 것도 못 얻고 죽는 것입니다. 그런 인간이 있고, 또 하나의 양식인 존재의 양식은 의미를 생각하고, 목적을 생각하고, 사명에 사는 것입니다. 무엇을 얻었느냐가 아닙니다.

얼마나 사명에 충실했느냐 입니다. 그것만 입니다. 사명을 위해 삽니다. 왜요? 사명이 내 생에 생명보다 더 중요하니까요. 살고 죽는다는 것보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이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내 목숨 아무 것도 아니다, 언제 죽어도 좋다, 그런 생각이라는 말입니다.

주 예수께 받은 사명,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이것을 증거하기 위해서 세상에 났으니까, 나는 이것 때문에 세상에 태어난 사람이니까, 이것 전하고 어디서 어떻게 끝나도 상관이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생명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생명보다 더 중요한 것을 알고, 그것을 위해 사는 사람이 위대한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빌립보서 2장 17, 18절에 보면 "내가 나를 관제로 드릴지라도" 기뻐하리라 합니다. 피를 쏟아 붓는다고 해도 나는 기뻐하리라 합니다. 살고 죽고, 편안하고 편안하지 않고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다만 내게 맡긴 사명에 충실할 뿐입니다. 그것이 내 생명보다 훨씬 더 높은 가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름지기 이런 생을 사는 사람, 다시 말하면 존재의 양식으로 사는 생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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