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7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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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고백

Confession

기도 세계 선교를 위하여

1.

선교사님들을 통하여 그 땅에 예배가 살아나게 하시고 복음의 씨앗이 심어진 곳마다 하나님의 때에 아름답게 열매 맺게 하소서.

2.

선교사님들에게 성령의 충만함과 영적 분별력을 허락해 주셔서 탁월한 선교 전략으로 접근하게 하시며 모든 질병과 풍토병으로부터 보호하여 주소서.

3.

치열한 영적 전쟁 가운데 있는 선교 현장을 예수님의 보혈로 덮으셔서 2만 8천여 명의 선교사님들이 사명 붙들고 사역하게 하소서.

우리는 앞서 배를 타고 앗소에서 바울을 태우려고 그리로 가니 이는 바울이 걸어서 가고자 하여 그렇게 정하여 준 것이라

행20:13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우리는 앞서 배를 타고 앗소에서 바울을 태우려고 그리로 가니 이는 바울이 걸어서 가고자 하여 그렇게 정하여 준 것이라"

행20:13

우리는 : 3차 선교를 마치고 고린도에 들려서 3개월을 머물게 되는데, 이때 로마서를 기록합니다. 본문에서 우리는 고린도를 출발할 때 사도 바울과 함께 떠난 사람들을 말합니다.

"아시아까지 함께 가는 자는 베뢰아 사람 부로의 아들 소바더와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와 세군도와 더베 사람 가이오와 및 디모데와 아시아 사람 두기고와 드로비모라 + 사도행전을 기록한 의사 누가"

행20:4

사도 바울은 선교 여행을 혼자 하지 않았습니다. 왜냐고요?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이 교만하지 못하도록 몸에 가시를 주셔서 누군가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했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의사 누가를 붙여 주셔서 사도 바울이 가는 곳에는 의사 누가가 그림자같이 동행하여 도와주었던 것입니다.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그들이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혹시 그들이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전4:9-10

우리가 구역에 속해야 할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혼자 신앙생활을 하다가 혹시 넘어지면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구역에 속해 있으면 구역장과 구역원이 속히 달려와 도움을 주기 때문에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하나니 삼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전4:12

"이 후에 주께서 달리 칠십 인을 세우사 친히 가시려는 각동 각처로 둘씩 앞서 보내시며"

눅10:1

영적 전투에서 원수의 불화살을 막을 믿음의 방패는 어떻게 만듭니까? 혼자서는 안됩니다. 불화살이 어느 방향에서 날아올지 알 수가 없으니까요? 효과적으로 방어하기 위해서는 여럿이 같이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영적 전투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같이 더불어 함께 싸워야만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군에 다녀온 사람을 다 압니다만, 전투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전투 부대가 있는 가 하면 전투 물자와 식량을 공급하는 보급 부대, 후방에서 지원 사격을 하는 포대가 함께 싸웁니다. 인천 상륙 작전을 보면 그 당시 전투는 낙동강에서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인천 상륙 작전이 성공하여 보급을 차단하니 북한군이 패배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각개 전투라는 것이 있습니다만 각개전투도 혼자는 안됩니다. 적진을 향하여 각개 전투를 해도, 뒤에서 누군가는 반드시 엄호 사격을 해 주어야 할 수 있습니다.

영적 전쟁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더불어 함께 싸워야 승리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언제나 함께 선교를 했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사도 바울은 흉년이 든 예루살렘 교회를 돕기 위한 헌금을 각 교회에 요청했습니다. 이 헌금을 사도 바울이 혼자 운반하면 마귀의 참소를 받을 우려가 많습니다. 반드시 증인이 있어야 마귀의 참소를 이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와같은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하여 사도 바울은 여럿이 함께 선교 여행을 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앞서 배를 타고 앗소에서 바울을 태우려고 그리고 가니 : 드로아에서 그 주간의 첫날에 떡을 떼려하여 모여서 날이 새기까지 이야기하고 바울은 또다시 드로아를 떠났습니다. 앗소로 가는데 제자들과 다른 사람은 배를 타고 가고, 바울은 걸어갔습니다. 앞뒤 설명 없이 도보로 갔다는 말만 있습니다. 드로아에서 앗소까지 약 20마일, 즉 80리 정도 되는 거리입니다. 그 길을 걸어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무 것도 아닌 말씀일지는 모르지만 저에게는 굉장히 눈에 띄는 사건입니다.

왜 그랬을까? 아마 고린도에서처럼 자기를 핍박하는 유대인들이 또 기다리니까 배를 못 탔을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그곳에 심방해야 할 성도들이 있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제가 이 말에 주목을 하는 것은 그가 80리의 길을 홀로 걸어갔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기적을 베푸시고, 능력을 베푸시고,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 때마다 대중을 피해서 홀로 어디론가 가셨습니다. 밤이 맞도록 혼자 산에 가서 기도하시고, 새벽 오히려 미명에 한적한 곳을 찾아가기도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대중 속에 계셨지만 언제나 대중과 함께 계시지는 않았습니다. 대중을 떠나 홀로 하나님과 만나는 시간, 제자들을 사랑했지만 제자들마저 떠나서 홀로 하나님과 만나는 시간을 가지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사역자는 이런 고독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홀로 하나님과 대면하는 시간이 필요한 것입니다. 자기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우리의 잘못을 깨닫게 되고, 우리의 흐트러졌던 헌신을 가다듬게 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대면하는 일입니다. 사람이 많고 역사와 기적들이 일어나는 곳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곳을 떠나서 외롭고 고독하지만 혼자 시간을 갖는 일이 사역자에게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사도 바울은 그 길을 걸어가면서 그 동안 자기가 했던 일들을 회상해 볼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일들 중에서 실수한 것들, 여러 가지 부족했던 것들을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더욱더 하나님에게 집중하면서 그 길을 갔을 것입니다.

우리들의 문제는 무엇입니까? 주님의 일을 한다고 하면서 주님을 잊어버리기 쉽다는 데 있습니다. 모든 일들이 잘되고 기적이 일어날 때는 하나님께 영광도 되지만 사실은 자기에게 도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영광에 도취되어서 주님을 잊어버리기가 쉬운 것입니다.

반대로 어떤 계획된 일이 되지 않고, 어떤 목표가 성취되지 않을 때는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고 오히려 하나님을 원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주님을 바라보지 못하고 자기의 무력함과 비참함 속에서 자꾸 섭섭한 감정만 생기기가 쉽습니다.

설교자의 최대의 위기는 무엇일까요? 설교에만 관심이 있고, 주님께는 관심이 없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설교를 잘 할 수 있을까? 그래서 열심히 준비하지만 이 설교를 통하여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영광을 받으시며, 예수님을 어떻게 보여 주는가에 대해서는 잊어버리는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모든 사역자의 문제가 여기에 있습니다. 주님을 위해서 일을 하지만 그 속에는 주님이 계시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냥 일에 빠져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저는 여기서 사도 바울의 지칠 줄 모르는 열정을 봅니다. 사도 바울이 1차, 2차, 3차 선교 여행을 하면서 여러 지역을 선교한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도 바울의 마음 속에 있는 주님을 사랑하는 열정입니다.

사역은 할 수도 있고, 안할 수도 있습니다. 그가 로마를 보아야하겠다고 말했을 때도 중요한 것은 로마가 아니었습니다. 로마보다 더 중요한 곳이 있다면 그는 그 곳으로 갔을 것입니다. 그는 제도나 방법이나 일을 중요시하지 않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선교사로 갑니다. 가서는 선교 센터부터 짓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선교 센터를 짓는 일이 없었습니다. 그 자신이 선교 센터였습니다. 그의 관심은 오로지 복음 전도였습니다. 어떻게 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전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복음이 듣지 못한 곳으로 갈 수 있을까? 그에게 있어서 성공과 실패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자기의 계획 속에 주님을 집어넣으려고 합니다. 계획이 좀 엉성하면 어떻습니까? 그렇다고 주먹구구 식으로 하면 좀 힘들겠지요. 그러나 그렇게 해도 일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면 우리가 그렇게 한 일도 쓰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주님입니다. 우리는 사도 바울에게서 그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동족의 위험, 이방인의 위험, 도적의 위험, 강의 위험, 배고픔을 겪고, 매 맞아 죽을 뻔하고, 멀리 피해 돌아가야 하고, 도망가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지만 성경 어디를 봐도 사도 바울이 그것 때문에 상처 받았다는 말은 없습니다. 그것 때문에 고통을 받고 좌절감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내가 마음에 사형 선고를 받고 살 소망까지 끊어졌지만, 그러나 내가 더 고통하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주님의 교회를 위한 고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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