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6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기도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우리 대한민국을 불쌍히 여기사 강력한 성령의 바람이 불어오게 하시고 진정으로 애통하며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나게 하소서.
주변국가들로부터 우리 대한민국을 지켜주시고 복음 안에서 평화적인 통일이 이루어지게 하소서.
창조의 질서를 부정하는 비성경적 법률이 제정되지 않게 하시고 대통령을 비롯한 위정자들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이 되게 하소서.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주의 명령에 순종하여 저출산의 문제가 해결되게 하시고 세상으로 보냄을 받은 우리의 희생과 섬김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게 하소서.
예수님의 보혈로 이 땅을 덮어 주셔서 우상 숭배의 죄악들이 끊어지게 하시고 교만과 자살과 음란의 분열의 영이 묶임을 받고 떠나가게 하소서
우리가 모인 윗다락에 등불을 많이 켰는데 유두고라 하는 청년이 창에 걸터 앉아 있다가 깊이 졸더니 바울이 강론하기를 더 오래 하매 졸음을 이기지 못하여 삼 층에서 떨어지거늘 일으켜보니 죽었는지라 바울이 내려가서 그 위에 엎드려 그 몸을 안고 말하되 떠들지 말라 생명이 그에게 있다 하고 올라가 떡을 떼어 먹고 오랫동안 곧 날이 새기까지 이야기하고 떠나니라 사람들이 살아난 청년을 데리고 가서 적지 않게 위로를 받았더라
행20:8-12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우리가 모인 윗다락에 등불을 많이 켰는데 유두고라 하는 청년이 창에 걸터 앉아 있다가 깊이 졸더니 바울이 강론하기를 더 오래 하매 졸음을 이기지 못하여 삼 층에서 떨어지거늘 일으켜보니 죽었는지라"
행20:8-9여기서 우리는 초대 교회의 또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지금 바울을 모시고 예배를 드리고 말씀을 나누는 곳은 다락이 있는 어떤 3층짜리 가정집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 곳 3층에 유두고라는 청년이 창에 걸터앉아 있었습니다. 사람이 너무 많으니까 3층으로 가야했고, 그나마 난간에 비집고 앉아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에서 그 당시의 열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얼마나 뜨거웠을까요? 사람이 많으니 땀내가 오죽 많이 났겠습니까? 사람 냄새, 땀 냄새가 나고, 방안은 덥고 통풍조차 제대로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 일들이 여기에 그대로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교회라는 것입니다. 그 당시에는 시계가 없었으니까, 얼마만큼 하기로 되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말씀을 가르치다 보니까 밤중까지 계속 가르친 것입니다.
저는 여기서 진정한 교회의 한 모습을 봅니다. 교회는 건물이나 사람의 숫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생각하는 성만찬과 말씀으로 인한 열기와 사랑이 교회 안에 진정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교회를 다니면서 제일 안된 사람들은 주일에만 교회에 나오는 사람입니다. 설교만 듣고 예수 믿는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공동체는 그 이상의 것입니다.
이름이 ‘다행이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유두고는 3층 난간에서 예배를 드리고, 말씀을 듣고 있었습니다. 사람은 많고 공기를 탁한 상태에서 사도 바울의 말씀을 듣고 있던 유두고는 피곤에 못 이겨 졸다가 그만 3층에서 떨어져 죽었습니다. 말씀을 듣던 도중에 일어난 사건이라 사람들이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여러분, 유두고가 죽게 된 것을 너무 악의적으로 해석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유두고는 예배드리는 자세가 나쁘다’ ‘예배 시간에 졸다가 잘된 일이다’라는 식으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사도 바울도 그를 나무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말씀을 듣다가 졸수도 있습니다. 사람은 많고 말씀이 오래 계속되니까 졸 수 있습니다.
일본의 전도사 미요시라는 분이 어느 날 미국 선교사를 만났습니다. 원이라고 하는 이 미국 선교사가 미요시 전도사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원 선교사가 미요시에게 이렇게 말하더랍니다. "사도행전 20장 7절로 12절을 읽어보십시오." 바로 오늘의 본문입니다. 미요시 전도사가 읽어본즉 유두고가 졸다 떨어진 얘기가 나옵니다. 그래서 "하필이면 왜 여기를 보라고 합니까?"하고 물었더니 원 선교사가 이런 대답을 합니다. "당신이 앞으로 설교할 때에 조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고 설교하십시오. 위대한 사도 바울이 설교할 때에도 조는 사람이 있었는데 하물며 우리가 설교할 때이겠습니까? 그러나 조는 사람이 있다고 낙심하지 마십시오." 미요시 전도사에게는 이 충고가 큰 귀감이 되었다고 합니다.
초대 교회 신자들의 70%가 노예거나 노예 출신이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그들은 주일날 쉬지 못하였을 것임이 틀림없습니다. 하루 종일 일하다 저녁에 겨우 틈을 내서 예배에 나왔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새벽까지 말씀을 듣기 위해 자리를 뜨지 않는 그들을 보면서 우리는 느끼는 바가 많습니다.
당시 성도들은 환난 중에 신앙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신앙은 뜨거웠고 헌신적이었습니다. 평안한 생활에 젖어 있는 우리는 그 대신 식어 있고 이기적입니다. 교회가 다시 한번 밤새도록 말씀 전하고 말씀 듣는 영적 부흥을 회복했으면 좋겠습니다.
"바울이 내려가서 그 위에 엎드려 그 몸을 안고 말하되 떠들지 말라 생명이 그에게 있다 하고"
행20:10예수 믿는 사람은 문제가 생길 때에 떠들지 말아야 합니다. 입을 열면 부정적인 말을 할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는 외치지 말며 너희 음성을 들리게 하지 말며 너희 입에서 아무 말도 내지 말라 그리하다가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여 외치라 하는 날에 외칠지니라 하고"
수6:10"사가랴가 천사에게 이르되 내가 이것을 어떻게 알리요 내가 늙고 아내도 나이가 많으니이다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하나님 앞에 서 있는 가브리엘이라 이 좋은 소식을 전하여 네게 말하라고 보내심을 받았노라 보라 이 일이 되는 날까지 네가 말 못하는 자가 되어 능히 말을 못하리니 이는 네가 내 말을 믿지 아니함이거니와 때가 이르면 내 말이 이루어지리라 하더라"
눅1:18-20문제가 심각할수록 말을 아끼고 더욱 간절히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다.
유두고가 떨어져서 죽었을 때 바울은 사람들에게 떠들지 말라고 한 후 내려갔습니다. 그리고 그 위에 엎드려 그 몸을 안았습니다. 특이한 방법입니다. 이런 방법은 구약에도 있었습니다. 엘리야가 사렙다 과부의 아들이 죽었을 때와, 엘리사가 수넴 여인의 아들이 죽었을 때 눈과 코와 입을 맞대고 시체를 껴안았습니다. 그리고 기도해서 살려낸 일이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도 그런 방법을 쓴 것입니다. 안수 기도를 한 것이 아니라 죽은 사람을 껴안은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조용히 하라고 한 후 한참 있다가 생명이 있다고 말합니다.
이것을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떨어져 기절했는데 죽은 것처럼 보였다가 살아난 것일 수도 있고, 또 정말 죽었는데 생명이 돌아온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분명히 죽었다고 말합니다.
"유두고라 하는 청년이 창에 걸터 앉아 있다가 깊이 졸더니 바울이 강론하기를 더 오래 하매 졸음을 이기지 못하여 삼 층에서 떨어지거늘 일으켜보니 죽었는지라"
행20:9의사인 누가가 들여다보고 죽었다 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내려가서 그 위에 엎드려 그 몸을 안을 때에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난 것입니다. 사람들은 유두고가 살아나자 다시 떡을 떼며 날이 새기까지 철야를 하면서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11절에서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올라가 떡을 떼어 먹고 오랫동안 곧 날이 새기까지 이야기하고 떠나니라"
행20:11여러분, 너무 좋아서 밤새도록 주님의 은혜를 노래해 본 일이 있습니까? 새벽 동이 틀 때까지 성경 읽고, 교제하며 뜨거운 사랑을 나눠 보신 적이 있습니까? 12절을 보겠습니다.
"사람들이 살아난 청년을 데리고 가서 적지 않게 위로를 받았더라"
행20:12사람들은 유두고가 살아나자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유두고를 보니까 하나님이 살아 계시기 때문입니다. 유두고는 가는 곳마다 자신의 삶을 간증하였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가는 곳마다 하나님을 보여 주는, 예수님을 간증을 하며 사십니까? 혹은 여러분을 보면서 세상 사람들이 ‘당신, 예수 믿는 사람 맞아?’라고 말하지는 않습니까? 저는 여러분도 유두고와 같이 예수의 흔적이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누구든지 여러분을 보면서 예수님을 느끼는, 예수님을 만나는 축복이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