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5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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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고백

Confession

기도 세계를 위하여

1.

전 세계 80억 명의 영혼들, 특별히 6,500여 미전도 종족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이 전리 전파되게 하시고 방황하고 죽어가는 영혼들을 위해 교회가 열방 곳곳에 세워지게 하소서

2.

경제적으로 어려운 해외 교회들이 회복되며 현지인 사역자들이 세워지게 하시고 하늘 길이 막혀 현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는 선교사들이 속히 선교 현장으로 돌아가 교회와 사역지를 지키게 하소서

3.

자연 재해와 내전, 박해로 인해 고통 받고 있는 영혼들을 불쌍히 여기서 자비와 평안을 베풀어 주시고 각 나라가 연합하여 상생하는 역사가 일어나게 하소서

아시아까지 함께 가는 자는 베뢰아 사람 부로의 아들 소바더와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와 세군도와 더베 사람 가이오와 및 디모데와 아시아 사람 두기고와 드로비모라 그들은 먼저 가서 드로아에서 우리를 기다리더라 우리는 무교절 후에 빌립보에서 배로 떠나 닷새 만에 드로아에 있는 그들에게 가서 이레를 머무니라 그 주간의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그들에게 강론할새 말을 밤중까지 계속하매

행20:4-7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아시아까지 함께 가는 자는 베뢰아 사람 부로의 아들 소바더와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와 세군도와 더베 사람 가이오와 및 디모데와 아시아 사람 두기고와 드로비모라"

행20:4

본문에는 아시아까지 함께 가는 사람 7명이 등장합니다. 바울은 선교 여행 때마다 늘 일행들과 함께 동행을 했습니다. 선교 여행 처음에 바나바와 함께 다녔고, 그 다음에는 실라와 함께였습니다. 그 다음에 디모데, 또 그 다음에는 누가와 같이 다녔습니다. 그런데 오늘의 본문에 보니 바울이 여러 사람이 함께 갑니다. 그들과 잠시 헤어졌다 만났다 합니다만 그는 선교 여행을 혼자 다니지 않았습니다. 꼭 수행원이 있었습니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우선, 바울은 그렇게 독선적인 사람이 아닙니다. 또 선교는 자기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도 생각지 않습니다. 그는 다른 사람의 협력을 구했습니다.

나 혼자서 할 수 있다, 누가 필요하냐, 그런 것이 아니라 자기가 할 일이 있고 다른 사람이 도와야 할 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 자신이 할 일이 있고 바나바가 할 일이 있고, 디모데가 할 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협력할 줄도 알고, 협력을 구할 줄도 아는 사람입니다. 남을 도울 줄도 알고, 도움을 받을 줄도 아는 사람입니다.

때때로 어떤 사람을 보면 독불장군입니다. 혼자서만 합니다. 자기만 하고 아무도 필요 없다고 합니다. 그것은 잘못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선교 여행을 혼자 하지 않고 여러 사람의 협력을 구하면서 합동하여 선을 이루는 데에 그의 인간됨과 전도 전략이 있었다는 것을 함께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들은 먼저 가서 드로아에서 우리를 기다리더라"

행20:5

그들은 먼저 가서 드로아에서 우리를 기다리더라. 즉 반대하는 사람들의 표적은 이 사람들이 아니라 바울이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먼저 드로아에 가게 되었습니다. 6절을 보십시오.

"우리는 무교절 후에 빌립보에서 배로 떠나 닷새 만에 드로아에 있는 그들에게 가서 이레를 머무니라"

행20:6

우리는 무교절 후에 빌립보에서 배로 떠나 - 왜 하필이면 무교절 후에 빌립보에서 배로 떠나야 했나요?

"거기(고린도)서 석 달 동안 있다가 배 타고 수리아로 가고자 할 그 때에 유대인들이 자기를 해하려고 공모하므로 마게도냐를 거쳐 돌아가기로 작정하니"

행20:3

이에 대해서 많은 학자들이 얘기를 합니다. 이 때가 유월절이 가까웠기에 사방에 흩어져 있던 많은 유대인들이 배를 타고 지금 예루살렘에 유월절 순례의 길을 가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배를 타게 되면 그 배에는 많은 유대인들이 있었을 것이고 그들 가운데에는 바울을 죽이려고 음모를 꾸미는 사람들이 함께 탔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다른 사람들을 먼저 배로 보내고, 자신은 마게도냐를 거쳐 돌아가는 아주 멀고 힘든 길을 또 다시 가게 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무교절을 그 곳에서 지내고 싶지 않았지만 어쩔 수가 없어 지내게 되고, 이제 무교절이 지나서 유대인들의 위협이 사라졌으므로 빌립보에서부터는 배를 타고 닷새 만에 드로아로 가게 된 것입니다. 지난번에 하나님이 드로아에서 빌립보로 보낼 때는 이틀이 걸렸는데, 이번에는 닷새나 걸렸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일주일 동안 드로아에 머물게 됩니다.

"그 주간의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그들에게 강론할새 말을 밤중까지 계속하매"

행20:7

바울을 만난 드로아의 초대 교회 성도들은 바울과 함께 예배드리기를 원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초대 교회의 예배 형태를 알 수 있습니다. 본문에 보면 ‘그 주간의 첫날’이라는 말을 썼습니다. 그들이 모인 날은 그 주간의 첫날, 즉 지금 우리가 지키는 주일이었습니다.

유대사람들은 본래 안식일을 지켰습니다. 주간의 첫날이면 안식일 다음날입니다. 자, 여기서 우리가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안식일을 지키던 사람들의 풍속이 벌써 주일 지키는 날로 바뀌고 있습니다.

왜 주일을 지켰느냐, 왜 안식일 보다 주일을 택했느냐? 유대사람들로서는 안식일이 생명같이 중요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식일을 떠나서 주일을 지켰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부활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날이 안식 후 첫날, 즉 주일이기 때문입니다. 고로 이 날이 더 중요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안식 후 첫날인 주일날은 꼭 모여야 했습니다.

그밖에도 여러 의미가 있습니다만, 어느 사이에 유대사람들의 풍속이 이렇게 바뀝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부활을 역사적으로 증명하는 증거의 하나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사건이 아니고는 이 엄청난 사건이 있을 수 없었습니다.

본문을 보니, 자연스럽게 주간의 첫날에 모였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행사가 결국은 안식일을 주일날로 바꾸어 지키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때부터 주일을 지키고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그로 인하여 박해도 많이 받았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성경에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을 이유로 누구든지 너희를 비판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골2:16-17

"너희가 날(안식일)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니 내가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두려워하노라"

갈4:10-11

"어떤 사람은 이 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 어떤 사람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나니 각각 자기 마음으로 확정할지니라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고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으니 이는 하나님께 감사함이요 먹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지 아니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느니라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롬14:5-8

초대 교회의 특이한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떡을 떼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떡을 뗀다는 것은 성찬과 예찬, 두 가지 모두를 의미합니다. 그들은 모일 때마다 떡을 뗐습니다. 왜?

"또 떡을 가져 감사기도 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눅22:19

교회는 모일 때마다 떡을 떼야 합니다. 성찬과 예찬을 나누면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생각하며, 성도의 교제를 나누며, 그리스도의 증인으로서 세상에 나갈 힘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그들은 무엇을 했습니까? 말씀을 들었습니다. 여기 보면 밤중까지 말씀을 들었다고 했는데, 그들은 밤늦게 까지 모여서 성경 공부도 하고 설교도 들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물론 교회도, 교파도 없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그들이 모이 곳은 어떤 가정집이었을 것입니다. 그것을 가리켜 가정 교회라고 합니다.

이것이 초대 교회의 원형입니다. 떡을 뗌이 있고, 성만찬이 있고, 말씀이 있고, 뜨거운 사랑이 있고, 교제가 있는 곳이 바로 교회인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교회가 제도화되고, 건물이 생기고, 교파가 생기면서 건물과 사람은 많아졌지만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사랑과 교제와 성찬과 보혈과 말씀은 점점 메말라 가는 것을 봅니다.

2024년 2월 6일 오전 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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