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30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0

신앙고백

Confession

기도 북한을 위하여

1.

북한의 주민들이 주체사상으로부터 벗어나게 하시고 김정은 3대 우상 체제가 무너지게 하시며 북한 전역에 있는 김일성 우상들이 무너지게 하소서.

2.

공산정권이 들어서기 전 세워져 있었던 3천여 교회들이 다시 회복되게 하시고 김일성 동상이 세워진 그 자리에 장대현교회가 다시 일어서게 하여 주소서.

3.

북한의 지하교회 성도들과 정치범 수용소에서 고통 받고 있는 성도들의 믿음을 붙들어 주시고 그들이 속히 자유롭게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는 그날이 임하게 하시며 평화적 통일이 앞당겨지게 하소서.

4.

목숨을 걸고 탈북하는 이들의 몸과 마음을 지켜 주시고 탈북민들이 무사히 정착하여 북한 선교의 마중물로 쓰임 받게 하소서

그 때쯤 되어 이 도로 말미암아 적지 않은 소동이 있었으니 즉 데메드리오라 하는 어떤 은장색이 은으로 아데미의 신상 모형을 만들어 직공들에게 적지 않은 벌이를 하게 하더니 그가 그 직공들과 그러한 영업하는 자들을 모아 이르되 여러분도 알거니와 우리의 풍족한 생활이 이 생업에 있는데 이 바울이 에베소뿐 아니라 거의 전 아시아를 통하여 수많은 사람을 권유하여 말하되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들은 신이 아니라 하니 이는 그대들도 보고 들은 것이라 우리의 이 영업이 천하여질 위험이 있을 뿐 아니라 큰 여신 아데미의 신전도 무시 당하게 되고 온 아시아와 천하가 위하는 그의 위엄도 떨어질까 하노라 하더라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분노가 가득하여 외쳐 이르되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 하니 온 시내가 요란하여 바울과 같이 다니는 마게도냐 사람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붙들어 일제히 연극장으로 달려 들어가는지라 바울이 백성 가운데로 들어가고자 하나 제자들이 말리고 또 아시아 관리 중에 바울의 친구된 어떤 이들이 그에게 통지하여 연극장에 들어가지 말라 권하더라 사람들이 외쳐 어떤 이는 이런 말을, 어떤 이는 저런 말을 하니 모인 무리가 분란하여 태반이나 어찌하여 모였는지 알지 못하더라

행19:23-32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그 때쯤 되어 이 도로 말미암아 적지 않은 소동이 있었으니"

행19:23

당시 에베소는 아데미 여신을 섬기는 우상의 도시였습니다. 에베소에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아데미 신전이 있었는데, 높이가 17m나 되는 100개의 기둥이 받치고 있었던 그 신전은 너비가 48m 이상, 길이가 103m 이상으로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에 꼽힐 정도로 거대한 규모를 자랑했습니다.

해마다 수많은 순례자와 여행자들이 이 신전을 방문하려고 원근 각처에서 에베소로 몰려들었고, 그래서 이곳에는 아데미 신상이나 신전의 모형을 제작하여 파는 사업이 번창하였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전한 복음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만을 믿는 사람이 점점 늘어나게 되자 이 사업에 종사하던 사람들이 위협을 느끼고 큰 소동을 일으켰습니다.

"즉 데메드리오라 하는 어떤 은장색이 아데미의 신상 모형을 만들어 직공들에게 적지 않은 벌이를 하게 하더니"

행19:24

은장색이란 은으로 우상이나 우상을 넣는 함 따위를 만드는 사람을 말합니다. 데메드리오는 이 은장색 일에 종사하는 사람을 대표하는 조합장으로 은장색 조합원들에게 큰 영향력을 행사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 ‘저건 우상이다. 저런 물건은 사면 안 된다’라고 말하는 것을 듣자 ‘이러다가 우리 사업이 망할지도 모르겠다’라는 위기감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같은 일에 종사하는 에베소 사람들을 모아놓고 선동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그 직공들과 그러한 영업하는 자들을 모아 이르되 여러분도 알거니와 우리의 풍족한 생활이 이 생업에 있는데 이 바울이 에베소뿐 아니라 거의 전 아시아를 통하여 수많은 사람을 권유하여 말하되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들은 신이 아니라 하니 이는 그대들도 보고 들은 것이라 우리의 이 영업이 천하여질 위험이 있을 뿐 아니라 큰 여신 아데미의 신전도 무시 당하게 되고 온 아시아와 천하가 위하는 그의 위엄도 떨어질까 하노라 하더라"

행19:25-27

데메드리오는 거의 전 아시아를 통하여 수많은 사람을 권유하여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은 신이 아니라.’고 외쳤던 바울의 말을 소개하면서 이러한 가르침을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는 우리의 풍족한 생활이 이 생업에 있는데 바울의 말로 인하여 우리의 이 영업이 천하여질 위험이 있을 뿐 아니라 큰 여신 아데미의 신전도 무시 당하게 되고 온 아시아와 천하가 위하는 그의 위엄도 떨어질까 하노라 하며 사람들을 선동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는 곳에는 반드시 시험과 환난, 박해가 따라 옵니다. 그러나 이 같은 어려움은 교만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며 하나님을 의지하라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시련입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힘에 겹도록 심한 고생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

고후1:8-9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축복을 선물로 주실 때에는 고난이라는 보자기에 싸서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문제와 어려움, 슬픔이 다가올 때 낙심하지 말고 이 고난을 통하여 나에게 주실 은혜와 축복을 생각하면서 자신을 돌아보고 말씀으로 무장해서 믿음으로 일어나야 합니다. 눈 앞에 보이는 어려움이 아니라 우리 뒤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분이 가득하여 외쳐 이르되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 하니 온 시내가 요란하여 바울과 같이 다니는 마게도냐 사람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붙들어 일제히 연극장으로 달려 들어가는지라"

행19:28-29

데메드리오의 선동으로 사람들은 분노에 떨게 되었고, 순식간에 온 성이 요란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라고 외치며 사람들을 선동했습니다. 그리고 바울을 따라 다니는 사람 중 둘을 붙잡아 가지고 두란노 서원에서 약 1,000m쯤 떨어져 있는 공연장으로 갔습니다. 사람들도 몰려갔습니다.

사도 바울은 괴로웠습니다. 자기를 따르며 복음 사역을 같이 하던 두 사람이 잡혀 갔고, 자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어려움을 겪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그 곳으로 뛰어가서 변론하고 싶었습니다. 그렇지만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제자들이 그를 막았습니다.

"바울이 백성 가운데로 들어가고자 하나 제자들이 말리고 또 아시아 관리 중에 바울의 친구된 어떤 이들이 그에게 통지하여 연극장에 들어가지 말라 권하더라"

행19:30-31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낭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꿈을 가진 사람에게는 고난이 따른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선택하겠습니까? 안락한 생활을 선택하겠습니까? 모든 것이 안정되고 편안하고 부족함이 없는 삶을 원합니까? 아니면 고난이 있고 배고픔이 있고 속상한 것이 있더라도 예수님 때문에 위대한 꿈을 가지는 삶을 원합니까? 위대한 꿈을 갖고 편안하게 사는 일은 없습니다. 위대한 꿈, 성령의 꿈, 하나님의 꿈을 가진 사람은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첫째 자기를 어떻게 해야 합니까? 부인해야 합니다. 자신을 부인하지 않으면 절대로 주님을 따라갈 수가 없습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야 합니다.

비전을 가진 사람, 꿈을 가진 사람은 우언가를 잃게 됩니다. 건강을 잃던지, 세상적인 성공을 잃게 됩니다. 즉 대가를 치르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대가를 억울하게 치는 것은 아닙니다. 너무나 기쁘고 영광스럽게 스스로 택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외쳐 어떤 이는 이런 말을, 어떤 이는 저런 말을 하니 모인 무리가 분란하여 태반이나 어찌하여 모였는지 알지 못하더라"

행19:32

대중의 특징이 이것입니다. 사람들이 모이면 흥분하게 되고, 곧 세상을 뒤집어엎을 것 같고, 자신들이 영웅인 것처럼 착각을 합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니까 이 말 저 말 하는데 모인 무리가 분란하여 태반이나, 왜 모였는지도 모르고 모였다고 합니다.

이 글의 기자인 누가는 굉장히 센스 있는 사람인 것 같습니다. 대중의 허점을 예리하게 잡은 것입니다.

시끄럽게 소리는 지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왜 모였는지도 몰랐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은 소수의 부름받은 사람입니다.

대중을 움직이는 사람을 자세히 보면 이기적인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대중을 이용하는 것 뿐이지 정말 대중을 위하는 것은 아닙니다. 일을 끝내 보고 나면 그것이 속임수였다는 것이 다 드러납니다.

99% 헌신된 백 사람보다 100% 헌신된 한 사람이 세상을 변화시킨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기만 당해서도 안 되고, 다른 사람을 기만해서도 안됩니다.

미국의 사회 심리학자 솔로몬 애쉬의 동조 실험은 군중심리에 휩쓸리기 쉬운 인간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실험 내용은 이렇습니다. 7명의 참가자에게 각각 카드 2장을 주었습니다. 카드 한 장에는 직선 1개가 그려져 있고, 다른 카드 한 장에는 길이가 다른 직선 3개가 그려져 있습니다. 실험 참가자는 처음 나누어 준 카드에 그려진 선과 같은 길이의 선을 나머지 카드에서 찾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너무 간단해서 어린아이라도 쉽게 맞출 수 있는 문제였습니다.

그런데 실험실에서 기이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나란히 앉은 여섯 명의 연기자 모두가 미리 지시받은 대로 오답을 말하자, 아무 지시도 받지 않고 앉아 있던 7번째 사람 역시 그 오답을 그대로 따라했습니다. 앞의 6 명의 공통된 의견이 7번째 사람에게 감히 거스르지 못할 집단의 압력으로 작용하였고, 결국 7번째 사람은 자기가 분명 정답이라고 생각한 것을 말하지 못하였습니다. 이는 잘못된 것을 알면서도 다수의 의사에 반대의견을 내놓기 힘든 인간의 심리를 잘 보여줍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옳지 않다고 확신하면서도 이의를 제기하면 자신의 평판이 나빠질 수 도 있다는 심리 때문에 공개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밝히기를 꺼려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다수가 주장한다고 해서 내용도 알아보지 않고 무작정 휩쓸리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하여 영적인 분별력을 가지고 옳고 그른 것을 판단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다수가 행하는 일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불의하다면 동조해서는 안됩니다. ‘나 한 사람 쯤이야’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 나 한 사람만이라도 하나님 앞에서 바른 길을 걸어가겠습니다.’라고 결단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 일생을 살아가는 동안 말씀대로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세상에 휩쓸려 잘못된 길을 따라가지 않게 하시고 비록 좁은 길일지라도 주님 안에서 바른 길을 걷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을 위하여 하나님께 쓰임 받게 될 것입니다.

Archive

지난 말씀 보기

지나간 날의 말씀을 다시 묵상하며 은혜를 나누세요. 날짜를 선택하면 해당 날짜의 설교로 이동합니다.

전체 목록 보기

2026년 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