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7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기도 한국 교회를 위하여
한국교회에 성령의 새 바람을 보내셔서 교회마다 회개의 역사가 일어나게 하시고 회복을 넘어 부흥을 경험하게 하소서.
분열된 한국교회의 교만과 죄악을 용서하시고 오직 복음 안에 하나 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공동체로 거듭나게 하소서.
한국교회를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게 하사 어두운 세상에 영적 대안을 제시하는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게 하소서.
이 일이 있은 후에 바울이 마게도냐와 아가야를 거쳐 예루살렘에 가기로 작정하여 이르되 내가 거기 갔다가 후에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하고
행19:21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이 일이 있은 후에 바울이 마게도냐와 아가야를 거쳐 예루살렘에 가기로 작정하여 이르되 내가 거기 갔다가 후에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하고"
행19:21사도 바울의 로마도 보아야겠다는 말 속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두 가지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1로마를 봐야겠다는 것은 성령님의 생각이라는 것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나의 증인이 되리라 고 했습니다."
행1:8에서성령 받은 사람에게는 분명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비젼입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행2:17만약 여러분이 성령을 체험하고 성령의 능력을 경험했다고 하면서도 아직 복음을 듣지 못한 이 세계의 땅 끝을 향한 비전이 없다면 그것은 가짜일 수도 있습니다. 정말로 여러분이 성령 충만을 받으셨다면 성령의 생각을 하게 될 것입니다. 땅 끝까지 주님의 증인되리라고 하는 바로 그런 생각입니다. 예루살렘과 안디옥을 중심으로 움직인 이 복음은 사마리아와 소아시아와 유럽 일대를 휩쓸게 됩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의 마음 속에 불타는 하나의 비전을 가지게 되는데 그것은 로마까지 가고 싶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서 우리는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일을 할 때 그 일의 성취감을 위해서 일을 하기보다는 관심의 초점을 주님께 맞추어서 일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 일에 관심을 갖습니다. 그 자리에 관심을 갖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는 관심이 없습니다. 교회 자체가 관심의 대상이 되면 안됩니다. 교회를 통해서 교회가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교회는 주님의 명령 때문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 명령을 이루기 위하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그 명령에는 관심이 없고, 그 일에만 관심을 갖곤 합니다. 많은 선교사들이 선교 단체에 관심을 갖습니다. 그러나 선교 단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선교가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나 종종 이런 실수를 합니다. 조직에 얽매이고, 제도에 얽매입니다. 그 일에 빠져 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일에 인생을 겁니다. 그 조직이나 제도나 일에 여러분들의 인생을 걸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걸면 걸수록 여러분은 불행해지고 나중에는 상처를 받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제도나 방법이나 사람이나 어떤 일에 관심을 갖지 않고 주님에 대해서만, 그 분의 명령에만 관심을 갖게 된다면 우리는 자유하게 될 것입니다.
2‘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즉 바울이 로마까지 가겠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것을 로마라고 하는 장소는 중요하지 않다는 뜻입니다. 바울이 로마도 보아야겠다고 말했을 때 우리는 로마라는 도시 자체를 중요하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의 진짜 마음은 그게 아닙니다. 로마라고 하는 그런 장소나 로마라고 하는 그런 세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로마라는 곳까지도 가겠다는 뜻입니다. 그 말은 로마에서의 사역이 끝나면 로마보다 더 한 곳이라도 갈 수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것은 굉장히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보면 사도 바울의 관심을 로마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롬15:22-24을"그러므로 또한 내가 너희에게 가려 하던 것이 여러 번 막혔더니 이제는 이 지방에 일할 곳이 없고 또 여러 해 전부터 언제든지 서바나로 갈 때에 너희에게 가기를 바라고 있었으니 이는 지나가는 길에 너희를 보고 먼저 너희와 사귐으로 얼마간 기쁨을 가진 후에 너희가 그리로 보내주기를 바람이라"
롬15:22-24바울이 로마를 봐야 하리라고 말한 것은 세계의 수도인 로마를 복음으로 점령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가 그 곳으로 가는 이유는 그들과 잠깐 교제하고 난 다음에 더 중요한 곳으로 가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 곳은 바로 서바나였습니다. 당시 로마를 세계의 중심이라고 말한다면, 서바나는 세계의 끝이라고 할 수 있는 곳입니다. 그러니까 그는 서바나가 좋은 곳인지 나쁜 곳인지 알 수는 없지만 그 곳이 어떤 곳이라도 소위 세상의 끝일지라도 복음을 위해서는 가겠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에게는 어디로 가느냐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언제든지 모든 것을 포기하고 훌쩍 떠날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사람이 복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미련이 없는 사람입니다. 사람에 대해서도, 장소에 대해서도, 집에 대해서도, 자기의 위치에 대해서도 미련이 없는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은 사무실에서 의자만 조금 움직여도 난리를 칩니다. 하던 일을 못하게 해도 난리를 칩니다. 다른 일을 하라고 하면 난리를 칩니다. 왜 그렇습니까? 장소와 일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일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장소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예수님이 중요합니다. 하라고 하면 하고, 가라고 하면 가고, 가지 말라고 하면 안 가면 됩니다. 이런 사람이 그리스도의 사람입니다.
꿈이라는 것, 비전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주신 것을 내가 갖는 것입니다. 자기가 만든 꿈은 그리스도인의 꿈이 아닙니다. 그것은 자기 환상일 뿐입니다. 그것은 자기 미련입니다. 일이라는 것은 될 수도 있고, 안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면 훌쩍 떠내 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사도 바울이 한 것입니다.
2년 동안 에베소에서 두란노 서원을 통해서 복음 사역에 심혈을 기울였던 사도 바울이지만, 그는 간단하게 떠날 수 있었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요? 주님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나님이 주신 꿈은 이 땅에서만 가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가 죽은 후에도 가져갈 수 있는 꿈인 것입니다. 여기서 잠깐 행23:11을 보겠습니다.
"그 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 하시니라"
행23:11이와같이 바울은 갈등되는 꿈을 꾸었습니다. 또 고민에 빠지게 됩니다. 여기 ‘그날 밤에’라는 말이 나오는데 저는 그날 밤이라는 말이 좋습니다. 사도 바울에게는 그 날 밤에 참 많았습니다. 즉 그날 밤이란 주님이 나타나신 밤입니다. 성령님이 나타나신 밤입니다. 그날 밤에 바울의 곁에 주님께서 서 계셨다고 합니다. 바울 곁에 서서 주님은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고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사도 바울에게는 로마를 보아야겠다는 강렬한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생각은 바울 자신의 생각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생각이었습니다.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 즉, 로마로 가는 것은 하나님의 아이디어였습니다.
우리의 현실을 보면 늘 비참합니다. 그러나 미래를 보면 늘 영광스럽습니다. 현재의 고난은 장차 올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미래가 없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현재의 고난 밖에는 보이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이루어질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세계를 보지 못하니까 이 현실에서 진리를 위해 받는 고난에 회의를 느끼는 것입니다. 불평을 하는 것입니다.
악한 사람들은 잘 살고 성공하는데, 왜 진리를 지키려는 사람들은 이렇게 고난을 겪고 어려움을 겪어야 되는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영광스러운 미래를 보는 사람에게는 현실의 고난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용기가 생기고 기쁨이 있고, 그 눈이 반짝거리는 것입니다. 밖은 차가운 현실이지만 마음 속에는 불이 있습니다. 이것이 꿈이 있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미래가 있는 사람입니다. 환상과 비전이 있는 사람입니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걱정하지 말아라. 너는 로마를 보게 될 것이다.’ 사도 바울에게 분명한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로마를 보기까지는 죽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열흘 동안 유라굴로 광풍이 있었어도 그는 죽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그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반드시 로마로 가도록 하겠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무슨 꿈을 가지고 있습니까? 앞으로 몇 년을 더 살 수 있다고 기대합니까? 이 땅에서 숨 쉬고 있는 동안 여러분이 가져야 할 꿈은 무엇입니까?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 합니까? 먹고, 입고, 자는 것은 기본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너무나 이 문제에 목매달고 살고 있습니다. 월급이 올라가면 할렐루야, 짐 한 칸 장만하면 잠을 못 잡니다. 이런 것이 여러분의 꿈입니까? 여러분의 꿈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의 인생을, 젊음을, 청춘을, 또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모든 지혜와 지식과 경험을 다 쏟아서 이루고 싶은 꿈이 도대체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현실의 고난을 위해 사는 사람입니까? 미래의 꿈을 위해 사는 사람입니까?
어떤 의미에서는 미래도 없이 꿈도 없이 그날 그날 살아가는 사람이 가장 비참한 것 같습니다. 주님을 위해 꿈을 꾸십시오. 주님의 주신 꿈을 가지십시오. 그 꿈을 위해서 굶어도 보고, 욕도 먹어 보고, 매도 맞아 보고, 오해도 받고, 손해도 볼 수 있는 영광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인간이 하나님의 자녀로서 사는 보람입니다.
세상에서 제일 안 된 사람은 한 번도 손해 안 보고 사는 사람, 언제나 자신의 이익을 챙기며 사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손해를 봐야 기회가 옵니다. 손해를 보지 않으면 절대 은혜라는 것이 없습니다. 어느 공동체도 누군가 손해를 봐야 다른 사람이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손해를 안 보면 누군가 은혜를 받을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기 때문에 우리가 구원을 얻은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