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2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기도 담임목사를 위하여
말씀의 은사를 충만하게 부어주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할 때마다 죽은 영혼이 살아나고 병든 자들이 치유되는 역사가 있게 하소서.
영적인 민감함을 주사 하나님의 뜻대로 결정을 내리게 하시고 목자의 가슴과 아비의 눈물로 모든 성도를 깊이 사랑하고 세심하게 돌보는 겸손의 리더십을 갖게 하소서.
목사님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문제가 해결되어 온전히 사역에 집중할 수 있도록 환경과 여건을 허락하여 주시고 가정에 평안을 주소서.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놀라운 능력을 행하게 하시니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
행19:11-12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사도 바울은 제3차 선교 여행을 시작하면서 두 가지 점을 강조합니다.
첫째는 성령 세례에 관한 것입니다.
에베소에 도착하자마자 성도들에게 “너희들이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라고 질문합니다. 이것은 성령 세례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주는 말입니다. 전도 전략의 최우선 과제는 능력 받는 일입니다. 성령 세례를 통하여 능력을 받지 않고서는 아무리 좋은 전략과 능력 있는 사람이 다 모인다 할지라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따라서 성령의 능력을 받는 일만큼 중요한 일이 없습니다.
둘째, 사도 바울의 전략이 새롭게 바뀝니다.
그 동안에는 회당에서 가르치고 이곳 저곳을 다니며 선교를 했습니다. 이것이 1차, 2차 선교 여행이었습니다. 복음을 전파하고 전도하면서 반대도 받았습니다. 돌에 맞기도 했습니다. 죽을 뻔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사람들이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선교 방법으로는 한계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3차 선교 여행에 와서는 사도 바울이 방법을 바꿉니다. 새로운 전략을 시도합니다. 그것이 바로 두란노 서원 사역입니다. 제자들을 따로 세워서 이 일을 시작합니다. 모함을 하며 방해하는 무리들이 일어났을 때 사도 바울은 그들을 떠납니다. 그리고 제자들을 따로 세웁니다. 두란노 서원이라는 곳에서 2년 동안 날마다 말씀을 강론하며 공동체 훈련을 합니다. 이 두란노 서원 사역에는 두 가지 요점이 있습니다.
첫째는 제자들을 따로 세운다는 것입니다. 자기들을 방해하는 세력으로부터 떠나서 제자들을 따로 세워 구별된 삶을 사는 것이 바로 두란노 서원 사역입니다.
또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2년 동안 날마다 말씀 훈련과 더불어 공동체 훈련을 시도한 것입니다. 이것은 아주 독특한 형태입니다. 2년 동안 날마다 헌신한 것은 일종의 시간 투자입니다.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은 어떤 한 가지 일을 이루기 위하여 모든 것을 포기 했습니다. 포기가 없이는 헌신이 없습니다.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면 아무 변화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 우리들이 살고 있는 방법대로 살 때, 무슨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방법을 바꾸지 않는 한 어떤 새로운 일이 일어나기를 기대하지 마십시오.
저의 친구 전병래 박사에게서 들은 최근의 이야기입니다.
어제 회사에 출근하여 팀장 및 중견 사원들이 참석하는 주간 회의를 직접 주재했습니다. 근간에 고객사로부터 납품 지연과 품질 문제에 대한 시정 조치 요구가 연속해서 생겨났기 때문입니다. 선수들이 잘 뛰고 있을 때는 작전 타임이 필요 없습니다. 그러나 생각처럼 안 풀릴 때는 작전 타임을 요청해야 합니다. 창문이나 방문도 그렇습니다. 잘 열리고 닫힐 때야 무슨 문제가 되겠습니까. 그러나 어디선가 삐그덕거릴 때는 반드시 손을 보아야 합니다.
이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독일의 세계적인 시간 관리 전문가 로타 자이베르트 박사의 책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한 사람이 숲속을 거닐다 땀을 비 오듯 흘리며 나무를 자르고 있는 나무꾼을 만났습니다. 그는 뭔가에 쫓기는 듯 허둥대며 톱질하고 있었습니다.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자니 톱질은 열심히 하는데 좀처럼 나무가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의아해서 자세히 관찰해 보니 아닌 게 아니라 톱날이 무뎌져 있는 게 보였습니다. 그래서 나무꾼에게 “먼저 톱날을 가는 게 좋겠습니다.” 그러자 나무꾼은 귀찮은 듯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죄송하지만 바빠서 그럴 시간이 없습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하고 나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의 모습이 이 이야기처럼 10분 정도만 시간을 내어 톱날을 갈면 1시간 만에 나무를 벨 수 있으련만 무딘 톱날을 가지고 열심히 4시간 동안 나무를 자르다 해가 저무는 나무꾼의 모습이 아닌지 돌아봅시다. 품질이고 생산성이고 원가절감이고 목표에서 벗어나면 개선하려는 의지와 별도의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지금 여러분에게는 톱날을 가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1980년 후반기에 우리나라 대기업 중에 일본의 전문가들로부터 자문 받지 않은 대기업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당시에 저는 한 대기업에서 생산기획업무를 담당하고 있으면서 일본의 부가가치연구소장 세끼네(関根) 박사의 자문을 받으며 시간에 대한 인식을 달리하게 되었습니다. 첫날 그는 어느 한국 대기업을 자문하면서 겪은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그 기업을 방문하여 대표이사와 인사를 나누고 현장을 둘러보자고 해서 함께 현장을 가는 과정에서 여러 직원이 오가며 인사를 했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목례하며 함께 가던 대표이사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저희에게 인사하며 지나는 저 직원들은 무엇을 하느라 저리 바삐 움직이는 것일까요?” 그 대표이사는 대답했습니다. “예. 우리 직원은 늘 저렇게 부지런히 열심히 일합니다.” 그래서 제가 대답했습니다. “열심히는 하는 것 같은데 잘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저렇게 움직이는 시간에 무슨 부가가치가 있나요. 전부 로스(loss)입니다. 의미 없는 움직임을 줄이면 시간을 늘려 사용할 수 있습니다.” 저는 그 이후 세끼네 박사께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현재 먹고 있는 음식을 바꾸지 않는 한 내 건강은 과거와 똑같을 것입니다. 건강 상태를 바꾸려고 하면 음식을 바꾸고, 생활 습관을 바꾸어야 합니다. 옛날 음식을 그냥 먹고 있으면서, 그 환경 속에 계속 머물러 있으면서 건강해 지기를 바라는 것을 잘못입니다.
여러분이 지금가지 살아온 방법은 바꾸지 않는 한 여러분의 고민과 갈등은 계속될 것입니다. 절대로 벗어나지 못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살고 있는 방법에서 탈피하고 싶다면, 그래서 좀더 다른 삶을 살고 싶다면 생활을 바꿔야 합니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다면 앞으로 10년 후도 별 차이가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 변화를 원한다면 포기해야 합니다. 뭔가를 결정해야 합니다. 변화를 위해서는 댓가를 치러야 합니다. 바울과 제자들은 2년이라는 세월을 투자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 그들은 헌신을 했습니다. 결심을 했습니다. 그래서 변화가 온 것입니다.
두란노 서원 사역은 어떤 열매를 맺었습니까? 10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두 해 동안 이같이 하니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
행19:1010절에 나타난 것처럼, 두란노 서원에서 그들이 삶을 헌신하고 구별하고 그 다음에 따로 훈련을 받고 난 후의 결과는
첫째, 모든 사람이 복음의 소식을 듣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돌아다니면서 전도해야 복음이 전파될 것 같은데, 한 곳에서 2년 동안 집중해서 말씀 앞에 서서 헌신하며 공동체 생활을 하고 나니까 아시아에 사는 헬라인이나 유대인이 다 예수님에 관한 소식을 듣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선교란 말씀 사역의 결과입니다. 선교 일을 하면 선교가 없어집니다. 일을 하면 일이 없어져 버립니다. 그리나 기도하면 일이 생깁니다. 말씀 앞에 서면 선교의 열매들이 엄청나게 쏟아진다고 하는 원리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에도 이런 역사들이 일어나기를 사모합니다.
둘째, 두란노 서원 사역을 하고 나니 무슨 일이 생겼습니까? 11-12절을 보겠습니다.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놀라운 능력을 행하게 하시니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
행19:11-12그들이 2년 동안 함께 살면서 집중해서 하루 종일 훈련을 받고 하나님 앞에 구별된 삶을 살았더니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능력이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물론 능력이 갑자기 생길 수도 있지만, 우리가 말씀 안에 붙들려 있기만 하면 하나님께 붙어 있기만 하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일이 11-12절에 나타납니다. 이 능력이 얼마나 놀랍든지 성경에는 놀라운 능력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능력이 얼마나 놀라운지 사도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갔습니다.
여기에서는 놀라운 능력으로서 두 가지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첫째는 귀신이 나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영적 능력입니다.
둘째는 병이 낫는 것입니다. 이것은 육적인 능력입니다.
이런 영적인 능력과 육적인 능력이 동시에 나타난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가만 쳐다보기만 해도 그냥 그에게서 능력이 나옵니다. 그런 사람하고는 얘기만 해도 그 능력에 접촉되는 느낌을 갖습니다. 그와 같이 있기만 해도 내 마음이 깨끗해지는 것 같습니다. 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이것이 놀라운 영적 능력입니다.
2024년 1월 23일 오전 6:4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