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6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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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고백

Confession

기도 정치와 사회를 위하여

1.

대통령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시고 정치 지도자들이 권모술수를 행하지 않게 하소서.

2.

이 땅의 위정자들이 그릇된 이념이나 선동이 아닌 공의와 정의로 나라를 다스리게 하소서.

3.

주변 강대국과의 경제, 안보 갈등이 조속히 해결되게 하시고 한반도의 평화적 정세가 이뤄지게 하소서.

아볼로가 고린도에 있을 때에 바울이 윗지방으로 다녀 에베소에 와서 어떤 제자들을 만나 이르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이르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하였노라

행9:1-2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사도 바울의 3차 선교 여행이 안디옥에서부터 다시 시작됩니다. 안디옥이라고 하는 곳은 참 특이한 곳입니다. 1차 선교 여행도 안디옥에서 시작되었고, 2차 선교 여행도 그곳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3차 선교 여행도 그 도시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사람들을 영적으로 재생시키는 곳입니다. 피곤하고 지쳐서 돌아온 선교사들을 다시 위로하고 용기를 주어 재무장시키는 곳입니다. 우리에게는 이런 안디옥이 필요합니다. 우리 교회가 이런 안디옥 교회와 같은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많은 선교사들이 우리 교회에 와서 위로를 받고 용기를 얻고 재충전해서 다시 힘을 얻어 떠나는 곳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럴만한 장소가 또 하나 있습니다. 바로 여러분의 가정이 그런 곳이 되기를 바랍니다. 세상에서 나가서 열심히 예수 이름으로 살다가 가정으로 돌아오면 위로를 받고 힘을 얻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안디옥이 여러 곳에 많이 필요합니다.

사도 바울이 3차 선교 여행을 생각하며 얼마나 피곤해 했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여행을 하면 처음에나 즐겁지, 오래 하다 보면 다 힘들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주님의 부르심이 너무나 강렬하여, 또 자기가 전도했던 사람들이 너무나 보고 싶어서 얼마 쉬지도 않고 또 출발했습니다. 세 번째 선교 여행 때는 소아시아 지역인 갈라디아와 브르기아를 거쳐 갑니다. 행18:22-23을 보겠습니다.

"가이사랴에 상륙하여 올라가 교회의 안부를 물은 후에 안디옥으로 내려가서 얼마 있다가 떠나 갈라디아와 브루기아 땅을 차례로 다니며 모든 제자를 굳건하게 하니라"

행18:22-23

그리고 행19:1을 보면 바울은 에베소로 들어갑니다.

"아볼로가 고린도에 있을 때에 바울이 윗지방으로 다녀 에베소에 와서 어떤 제자들을 만나 이르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이르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하였노라"

행19:1-2

아볼로가 고린도에 있을 때에 바울이 윗 지방을 다녀 에베소에 와서 어떤 제자들을 만나게 됩니다. 여기서 '제자'라는 말은 기독교인을 지칭합니다. 공관복음서에서 '제자'라 함은 열두 제자를 지칭하는 것이요, 사도행전에서 '제자'라 하는 것은 기독교인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단어는 같지만 그 개념은 다릅니다.

바울은 그들에게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고 묻습니다. 이 질문은 오늘 우리에게도 굉장히 중요합니다. 성령 받았다고 하는 사실이 왜 그리도 중요합니까? 그 대답은 아주 간단합니다. 성령 세례와 성령 충만을 받지 못하고 능력을 얻지 못하면 기독교는 하나의 이론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시간에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라는 말을 조금 더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먼저 생각하고 싶은 말은 ‘성령을 받았느냐’라는 말입니다. ‘성령을 받았느냐’하는 말 앞에는 ‘너희가 믿을 때에’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 성령의 능력과 성령의 세례와 성령의 충만함은 아무나 받을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에게만 성령이 임합니다. 하지만 이 말은 또 다르게 볼 수 있습니다. 예수는 믿지만 성령의 체험이 없을 수도 있다는 말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라는 말은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합니다. 언어적으로 보면 ‘너희가 예수를 믿은 바로 그 때 성령을 체험했느냐’라는 말이 되고, ‘너희가 예수를 믿고 나서 성령을 체험했느냐’라는 말로도 해석이 가능합니다.

이 두 가지 해석은 실제로 공존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를 믿은 후에 성령을 체험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을 예수를 믿을 때에 동시에 성령을 체험하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성령 세례가 먼저 오고 그 다음에 물세례를 받기도 합니다. 행10장에서 본 고넬료와 같은 경우가 그런 경우입니다.

"베드로가 이 말을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으로 말미암아 놀라니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 이에 베드로가 이르되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능히 물로 세례 베풂을 금하리요 하고 명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 하니라"

행10:44-48

예수님의 제자들의 경우를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먹고 마시고 살았습니다. 3년 동안, 설교를 직접 들었습니다. 기적을 목격한 자들입니다. 그리고 사람들 앞에서만 예수를 본 게 아니고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자기들만의 생활 속에서도 예수를 경험한 자들입니다. 그것뿐이 아닙니다. 그들은 십자가를 목격한 증인들입니다. 부활도 경험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과 식사도 함께 했습니다. 그리고 그 분의 얘기도 들었습니다. 부활 후 40일 동안 함께 하시던 예수님이 구름을 타고 승천하는 모습도 목격했습니다.

여러분, 이런 제자들에게 복음이 없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를 안 믿는다. 예수를 모른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제자들처럼 예수를 잘 아는 사람들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 그들에게 예수님이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행1:4-5

"보면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고 하셨습니다.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하셨습니다."

마28:19에

그런데 지금 나가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너희가 먼저 경험하고 체험할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받기 전 까지는 떠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말씀을 잘 들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예수를 안 믿는다는 것이 아닙니다. 부활을 안 믿는다는 것도 아니고 십자가를 안 믿는다는 것도 아닙니다. 십자가의 믿음도 부활 신앙도 다 믿습니다. 재림도 믿을 것입니다. 그러나 과연 여러분들이 성령 세례를 받았느냐는 것이 문제입니다. 여러분의 이성과 지성과 노력과 의지로 교회에 나오고 선을 행하고 예수를 믿고 전도를 하고 있는가, 아니면 성령 충만을 받아 성령님의 능력을 힘 입어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아주 결정적인 차이가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님을 그들을 당장 세상에 내보내지 않으셨습니다. 먼저 그들로 하여금 기도하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봉사를 하고, 선교를 하고 전도를 하는 것도 그 다음 얘기입니다. 먼저 성령 세례를 받고, 성령 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권능을 받아야 합니다. 그 다음에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야 기도를 하건 찬양을 하건, 전도를 하건 선행을 하건 예수를 힘있게 능력있게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은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들은 한 다락방에 모였습니다. 전심으로 기도했습니다. 열흘이 지난 후에 홀연히 급하고 강한 바람같은 소리가 들리고,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이 각 사람의 머리에 임하더니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특이한 일입니다. 물론 우리가 성령 없이 예수를 믿을 수 있겠습니까?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고전12:3

성령 없이 우리가 어찌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겠습니까?

"너희가 아들인 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 (성령)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갈4:6

예수님을 만나고 영접하고 마음의 문을 열고 하는 이 모든 것이 성령님의 역사입니다. 그러나 오순절의 경험은 이것과는 다른 것입니다. 어떤 특별한 경험입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에게 이런 특별한 경험과 축복이 있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예수 믿는 것 자체가 성령의 역사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제자들을 다 알겠지요. 예수님을 따라다녔고, 십자가도 봤고, 부활도 봤고, 승천도 봤는데 제자들이 성령의 역사를 몰랐겠습니까? 그런데도 예수님은 그들을 세상에 내보내지 않으셨습니다. 성령 세례를 경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도 그런 경험을 간절히 사모하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예수님을 영접했다는 뜻이 무엇인지 먼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를 영접해서 구원을 받았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며, 그가 하나님인데 육체로 세상에 오셔서 우리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믿고 그를 영접하는 것입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1:12

그러면 이 구원받았다는 뜻은 무엇입니까?

첫째 신분의 변화입니다.

마귀 자녀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신분이 변한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 사람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바뀐 것입니다. 우리가 천국 시민권을 소유한 것입니다. 천국에는 누가 갑니까? 천국 시민권이 있는 사람이 갑니다. 천국에 소속된 사람이 갑니다. 구원을 통해서 이 소속의 변화, 신분의 변화를 받은 사람이 가는 것입니다.

구원 받았다는 것은 또 무엇을 의미합니까? 위치의 변화입니다. 종의 위치에서 아들의 위치로 바뀌는 것입니다. 종의 위치에서 그 분의 친구의 위치로 나를 바꿔주시는 것입니다.

또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았다고 하는 것은 본질적 변화를 의미합니다. 우리는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는데, 이제는 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의롭다 함을 받은 것입니다. 이것이 구원입니다.

또 한 가지가 있습니다. 법적 지위가 달라집니다. 우리는 상속자가 되었습니다. 그 아들과 함께 유업을 받을 자가 된 것입니다. 우리는 양자의 영을 받아서 양자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구원입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구원을 받았다고 해서 다 능력을 얻은 것입니까? 그건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구원 받았다고 해서 능력을 받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기쁘다, 구원받았다. 내가 전도 받았다’는 말을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내게 기적이 일어나고 능력이 일어났느냐 하면 그것은 아닙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2024년 1월 17일 오전 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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