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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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고백

Confession

기도 북한을 위한 기도

1.

북한의 주민들이 주체사상으로부터 벗어나게 하시고 김정은 3대 우상 체제가 무너지게 하시며 북한 전역에 있는 김일성 우상들이 무너지게 하소서.

2.

공산정권이 들어서기 전 세워져 있었던 3천여 교회들이 다시 회복되게 하시고 김일성 동상이 세워진 그 자리에 장대현교회가 다시 일어서게 하여 주소서.

3.

북한의 지하교회 성도들과 정치범 수용소에서 고통 받고 있는 성도들의 믿음을 붙들어 주시고 그들이 속히 자유롭게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는 그날이 임하게 하시며 평화적 통일이 앞당겨지게 하소서.

4.

목숨을 걸고 탈북하는 이들의 몸과 마음을 지켜 주시고 탈북민들이 무사히 정착하여 북한 선교의 마중물로 쓰임 받게 하소서

이와 같이 하나님의 소생이 되었은즉 하나님을 금이나 은이나 돌에다 사람의 기술과 고안으로 새긴 것들과 같이 여길 것이 아니니라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간과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에게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하니라

행17:29-31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소생이 되었은즉 하나님을 금이나 은이나 돌에다 사람의 기술과 고안으로 새긴 것들과 같이 여길 것이 아니라"

행17:29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온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을 금이나 은이나 돌에다 사람의 기술과 고안으로 세긴 우상과 같이 여겨서는 안됩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말입니다. 사람은 신을 달래고 자기 손 안에 가지고 싶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부적 같은 것을 가지고 재수를 좋게 운수를 좋게 만든다고 하는 것, 마스코트니 뭐니 해서 액운을 피한다고 하는 것들이 다 그런 예입니다.

인간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모릅니다. 금이나 은이나 돌에다가 인간의 기술이나 예술적 기능을 가지고 창조적인 디자인을 넣어서 뭔가를 새깁니다. 그리고는 그것을 들고 다니면서 그것이 자기를 보호해준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신이라고 말하지는 않지만, 마치 신인 양 여기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가리켜 우상이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하나님을 이렇게 섬겨서는 안된다고 말합니다. 돌에다 새겨서도 안되고, 금에다 새겨서도 안되고, 은에다 새겨서도 안된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예술 작품이라고 말하지만,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귀신이 역사하고, 우상 숭배가 들어올 수도 있으며, 물질이 우리를 지배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를 조심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섬기기보다 정교하고 세련된 장신구나 가지고 다니면서 그것으로 만족해하는 사람은 미신에 속고 있는 것입니다.

많은 아덴 사람들이 미신에 속아 살고 있었습니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을 알지 못하는 영혼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들도 생사화복을 주장하시고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하나님을 친히 체험하여 무의미한 삶을 살지 않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간과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에게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행17:30

알지 못하던 시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 곧 이방 족속이 구원의 도리를 알지 못하던 시대를 말하고, 간과한다는 말은 책망하지 않고 내버려 둔다는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 전에는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에게 선지자를 보내지 않으셨기 때문에 사람들이 하나님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심판을 유보하신 채 오래 참으셨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복음이 이방인에게까지 전파된 은혜의 시대요, 복음이 편만한 시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각처에 자신의 종들을 보내어 회개할 것을 촉구하고 계십니다. 모든 사람은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책망과 심판을 면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에 대해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믿고 회개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 회개하고 주님을 영접해야 합니다. 회개할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미국 스탠포드 대학에 다니는 한 학생이 아르바이트 자리를 찾아 다녔습니다. 며칠을 이른 새벽부터 찾아다녔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거의 포기 상태에 이르렀을 때 한 회사의 아르바이트생 모집 공고를 발견했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회사의 채용 담당자를 찾아가서 정말 열심히 일을 하겠노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채용 담당자는 타이프를 칠 줄 안다면 지금부터 당장 일을 시작하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청년은 4일간의 여유를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4일 후에 청년이 출근했을 때, 채용 담당자는 그동안 무엇을 했느냐고 물었습니다. 청년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두 가지 일을 했습니다. 한 가지는 타자기를 빌린 일이고, 또 한 가지는 밤을 새우며 타자 연습을 한 것입니다.”

이 일화는 바로 미국의 31대 대통령 후버의 이야기입니다. 기회는 항상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생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왔을 때 놓쳐서는 안됩니다. 또한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도 놓쳐도 안됩니다. 그것이 일생의 마지막 기회가 될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하니라"

행17:31

정하신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의 심판자로 삼으셨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천하를 공의로 심판하실 날을 작정하셨을 뿐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말미암아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셨다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만한 증거를 주셨습니다.

인간의 어리석음 가운데 하나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영원히 안 죽을 것처럼 산다는 것입니다. 천년만년 살 것처럼 서로 아웅다웅하며 삽니다. 이처럼 자신이 영원히 살 것으로 착각하기 때문에 자기 것을 놓치지 않으려고 합니다.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을 인식하며 사는 사람은 그렇게 살지 않습니다.

우리는 언젠가 반드시 죽게 되어 있습니다. 나이와 상관없이, 학벌과 상관없이 다 죽습니다. 우리는 그리 오래 살 수 없습니다. 평균 수명이 늘어난 요즘도 많이 살아봐야 100살입니다. 그것이 인간의 운명이자 본질입니다. 이것을 거역할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는 죽지 않을 것처럼 살아갑니다. 자기는 재수가 좋아 다른 사람은 다 죽어도 자기는 죽지 않을 것 같고, 다른 사람은 다 망해도 자기는 망하지 않을 것 같이 착각하며 삽니다. 그래서 욕심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반드시 죽는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죽는 그 날이 우리의 종말임을 알아야 합니다. 젊다고 살날이 더 많은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아무도 모르는 일입니다. 분명히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언젠가는 죽습니다.

또 하나 기억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이 영원하지 않듯이 지구도 영원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지구에도 시작이 있는 것처럼, 종말이 있습니다. 역사는 영원하지 않습니다. 내 인생이 어느 날 종말을 고하듯이 역사도 어느 날 종말을 고할 것입니다. 그러면 역사의 종말이란 무엇입니까?

먼저 연극이나 오페라 같은 공연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공연이 시작되고 극이 발단, 전개, 절정을 거쳐 끝나면 대단원의 막이 내립니다. 그리고 엑스트라부터 시작해서 출연자와 연출자들이 차례차례 나와서 인사를 하고 나면 박수 소리 가운데 모든 조명이 꺼지고 사람들은 집으로 갑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인생을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바로 여기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혹시 여러분 가운데도 인생이나 역사를 이렇게 생각하는 분이 계시지 않습니까? 인생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죽으면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난다면 얼마나 편하겠습니까? 그러나 인생이란 이생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 후에는 심판이 있습니다. 죽으면 끝이 아닙니다. 우리가 살아온 것에 대한 계산이 남아 있습니다. 호리도 남김없이 갚을 것은 다 갚아야 합니다. 우리가 저지른 죄가 낱낱이 다 드러납니다. 숨길 수 있는 죄는 결코 없습니다. 이 땅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죄를 용서받지 않으면 우리의 죄 값을 그날에 반드시 계산하게 됩니다. 그래서 자살도 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자살하면 끝나는 줄 아십니까? 절대 아닙니다. 죽은 후 자살에 따르는 엄중한 심판이 있습니다. ‘네 생명은 네 것이 아닌데, 왜 맘대로 죽었느냐?’고 하나님이 물으실 것입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죽음은 대단원의 막이 아니고 심판입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히9:27-28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으로만 끝났다면 우리 죄는 용서받지 못합니다. 예수님이 우리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다가 사흘 만에 다시 부활하심으로 심판을 이기셨습니다. 그 때문에 우리도 모든 죄를 사함받고, 심판을 이기고 하나님의 자녀요, 천국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 부활에 대해서는 많은 증거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두 가지 결론을 갖게 됩니다. 하나는 우리의 구원이 확실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신 것이 사실이라면 우리의 구원은 보장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틀림없습니다. 왜? 그 분이 살아나셨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는 예수님은 하나님이심이 틀림없다는 것입니다. 부활은 예수님이 사람의 몸으로 오셨지만 하나님이시라는 증거가 됩니다.

바울이 아덴 사람들에게 이 진리의 말씀을 전하였을 때 그들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심판에 대한 개념이 없었습니다. 유일하신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여러 신들을 섬기고 만족시켜야만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부활에 대한 개념조차 그들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그들에게 주의 복음을 담대히 전했습니다. 그들의 사상과 철학에 개의치 않고 주의 진리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전했습니다. 우리는 때로 복음을 잘 전하기 위해 상대편의 입장에서 이해하기 쉽게 전달할 필요가 있습니다. 바울 또한 복음을 전할 때 듣는 자들에 따라 접근 방법을 달리했습니다. 하지만 복음의 진리가 변색되어서는 안됩니다. 근본적인 진리의 말씀을 타협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도 이렇게 우상으로 가득한 거대한 세상 앞에 맞서야 할 때가 있습니다. 어쩌면 바울처럼 홀로 맞서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성령께서 마땅히 할 말을 가르쳐 주실 것을 믿고 우리의 아레오바고 언덕에 우뚝서서 주님의 피 묻은 복음을 담대하게 전해야 합니다.

2024년 1월 3일 오전 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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