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2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기도 담임목사를 위하여
말씀의 은사를 충만하게 부어주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할 때마다 죽은 영혼이 살아나고 병든 자들이 치유되는 역사가 있게 하소서.
영적인 민감함을 주사 하나님의 뜻대로 결정을 내리게 하시고 목자의 가슴과 아비의 눈물로 모든 성도를 깊이 사랑하고 세심하게 돌보는 겸손의 리더십을 갖게 하소서.
목사님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문제가 해결되어 온전히 사역에 집중할 수 있도록 환경과 여건을 허락하여 주시고 가정에 평안을 주소서.
그 중에 믿는 사람이 많고 또 헬라의 귀부인과 남자가 적지 아니하나 데살로니가에 있는 유대인들은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을 베뢰아에서도 전하는 줄을 알고 거기도 가서 무리를 움직여 소동하게 하거늘 형제들이 곧 바울을 내보내어 바다까지 가게 하되 실라와 디모데는 아직 거기 머물더라
행17:12-14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그 중에 믿는 사람이 많고 또 헬라의 귀부인과 남자가 적지 아니하나"
행17:12이제 사도 바울 일행은 베뢰아에 왔습니다. 그런데 베뢰아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웠다고 했습니다. 그러한 그들에게는 두 가지 특징이 있었는데, 하나는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아들였다는 것입니다. 즉 말씀에 대한 태도가 신실했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받아들인 말씀이 그러한가하여 날마다 성경을 열심히 읽었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는 무엇이었습니까?
그 중에 믿는 사람이 많고 또 헬라의 귀부인과 남자가 적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데살로니가에서 소란을 피우고 그것을 정치적인 문제로까지 끌고 갔던 사람들이 베뢰아까지 쫓아왔습니다.
"데살로니가에 있는 유대인들은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을 베뢰아에서도 전하는 줄을 알고 거기도 가서 무리를 움직여 소동하게 하거늘"
행17:13복음에는 언제나 이렇게 두 가지 반응이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 한 말을 기억하라 사람들이 나를 박해하였은즉 너희도 박해할 것이요 내 말을 지켰은즉 너희 말도 지킬 것이라"
요15:19-20복음이 선포되면 언제나 두 가지 반응이 나타납니다. 하나는 복음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복음에 대해서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고 그것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여기서 이런 질문을 하나 해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굳이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이방 사람들에게 가서 복음을 전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까? 여기도 할 일이 많은데”
또 좀 배운 사람들, 특히 자유주의 신학을 공부한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기도 합니다. “선교는 일종의 종교 침략이요, 문화 침략이 아닌가요? 역사를 보면, 그것을 빙자해서 정치적으로 약소국가를 식민지화했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또 어떤 인류학자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모든 민족이 그들 고유의 방식대로 살고 그 나라의 전통을 따르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니다. 그런데 왜 그리스인들이 자꾸 가서 그들의 전통을 버리라고 하는가?”
그러나 복음을 전하는 것은 그런 차원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의 경우도 그렇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타민족에게까지 가서 전하는 이유는 그들 고유의 전통이나 사회 문화나 정치 문제를 건드리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이유는 행4:12의 말씀처럼 천하인간에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고는 구원을 얻을 다른 이름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이 진리이기 때문에 가는 것입니다. 만일 예수를 믿지 않아도 선을 행해서 혹은 다른 종교를 통해서도 구원을 얻을 수 있다면, 왜 이렇게 생명을 걸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선교하러 가겠습니까?
우리가 선교한다는 것은 정복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역사상 십자군의 최대 실수가 바로 여기에 있었습니다. 우리는 다른 민족을 정복하러 가거나 종교를 정복하러 가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전하기 위해 가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리스도인들은 정복하러 가는 사람이 아니라 순교하러 가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질문도 합니다. “자기 나라도 전도하기 바쁜데, 왜 꼭 타민족에게까지 가서 고생해야 합니까? 돈도 많이 들이고 죽음도 무릅쓰고 꼭 그 먼 곳까지 가야 합니까?” “우리나라도 몇 십만 원 밖에 안되는 월급을 가지고 사는 사람도 많고, 병든 목사님도 많고, 몇 명 안되는 성도들을 모시고 어렵게 목회하는 분들도 많은데, 차라리 그 사람들이나 도와주지 왜 다른 나라까지 가는 것입니까?” 들어보면 설득력 있는 얘기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에게 하신 말씀을 들어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주께서 가라사대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행9:15사도 바울이 자기 민족을 구원하기 위하여 얼마나 애를 썼는지 롬9장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롬9:3그렇지만 하나님은 다른 계획을 가지고 계셨던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그의 민족을 구원하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바울에게는 이방인들은 위해서 택하셨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것을 알았기 때문에 이방인을 향해 걸어갔던 것입니다. 돌에 맞고, 죽을 뻔하고, 수없이 매를 맞으며 굶주리고, 동족의 위험, 이방인의 위험을 당하면서도 바울이 이처럼 생명을 걸고 타 문화권, 타 민족에게 가서 복음을 전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유대인을 위해서는 베드로를 택하셨고, 예루살렘 교회를 택하셨습니다. 그렇게 예루살렘을 다 전도하고, 이스라엘 백성을 다 전도하고 난 다음에 이방인에게 보내신 것이 아니라, 그와 동시에 바울을 택하셔서 그를 이방인의 사도로 세우셨습니다. 또한 이를 위해 안디옥 교회를 세우셨던 것입니다.
국내 전도를 마치고 해외 선교를 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국내 전도가 시작됨과 동시에 해외 선교도 같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만약 국내 전도를 다 마치고 해외 선교를 가야 했다면 우리나라는 아직도 복음을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국내 전도와 해외 선교를 동시에 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사랑의 또 다른 표현입니다.
모든 것을 희생하고 외국에서 사는 삶이 뭐 그리 좋겠습니까? 아무리 돈이 많아도 외국 생활은 외국 생활입니다. 더구나 선교사로서 자기 고향과 친척들을 떠나 해외에서 선교하며 산다는 것은 결코 좋을 수 만은 없는 일입니다. 때로는 외로움과 배고픔을 견뎌야 하고, 나그네처럼 살아야 하고, 풍토병에 시달려야 하는데 이것을 누가 좋아서 할 것이며 누가 하고 싶어서 하겠습니까? 그러나 왜 그렇게 해야 합니까? 바로 그것이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오늘날의 교회들 중에도 예루살렘 교회와 같은 부름을 받은 교회가 있고, 안디옥 교회와 같은 부름을 받은 교회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형제들이 곧 바울을 내보내어 바다까지 가게 하되 실라와 디모데는 아직 거기 머물더라"
행17:14바울은 데살로니가의 유대인들이 보낸 무리의 소동으로 인하여 베뢰아 성도들의 안내와 호위를 받으며 아덴으로 피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세요. 그들은 왜 빌립보 감옥에서와 같은 기적을 기대하지 않고 피했습니까? 왜 매를 맞고 감옥에 들어갔다가 감옥 문이 열리는 기적을 또 한번 바라지 않고 굳이 조용히 피해야 했더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그들이 이방인이 아닌 유대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지금 바로 깨닫지 못해서 그러는 것인 뿐이지 소위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방사람들이 볼 때에는 유대인끼리 싸운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끼리 싸운다 라고 볼 것이 아닙니까? 이렇게 함으로 하나님께 욕 돌릴 수는 없습니다. 바울의 피신하는 심경을 속속들이 헤아려보기는 어려우나 거기에는 마땅히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으리라고 짐작합니다. 아무튼 그는 유대사람들의 핍박 앞에서 유대사람들과 싸우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이방사람들한테 추한 꼴을 보이지 않고자 하여 엄연히 잘못하는 것인 줄 알지마는 그들을 피해서 다른 마을로 갑니다.
그러나 실리와 디모데는 베뢰아에 계속 머물러 있었습니다. 이는 베뢰아 성도들의 믿음을 굳게 하고, 교회가 뿌리를 내리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베뢰아 성도들이 바울을 전송한 것은 그들이 바울을 귀하고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이렇게 전도자를 소중히 여기고 도움을 주는 사람들은 그에 대한 상을 받게 됩니다.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마10:40-422023년 12월 23일 오전 6:3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