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0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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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고백

Confession

기도 국군 장병들을 위하여

1.

국군 장병들에게 건강한 육체와 마음을 주셔서 부여된 임무를 완수할 수 있게 인도하시고 모든 사고의 위험으로부터 장병들을 평안하게 지켜 주소서.

2.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의 장병들이 영적 광야인 군대에서 자신의 믿음을 지키며 선한 영향력을 끼치게 하시고 이들을 통해 군 복음화가 이루어지게 하소서.

3.

군 선교를 위해 힘쓰는 사역자들과 성도들이 영혼 사랑의 열정으로 헌신할 수 있도록 강건함을 허락하시고 군인교회를 통해 예수님을 믿지 않는 영혼들이 구원받는 열매가 풍성하게 하소서.

야손이 그들을 맞아 들였도다 이 사람들이 다 가이사의 명을 거역하여 말하되 다른 임금 곧 예수라 하는 이가 있다 하더이다 하니 무리와 읍장들이 이 말을 듣고 소동하여 야손과 그 나머지 사람들에게 보석금을 받고 놓아 주니라 밤에 형제들이 곧 바울과 실라를 베뢰아로 보내니 그들이 이르러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니라

행17:7-10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야손이 그들을 맞아 들였도다 이 사람들이 다 가이사의 명을 거역하여 말하되 다른 임금 곧 예수라 하는 이가 있다 하더이다 하니 무리와 읍장들이 이 말을 듣고 소동하여 야손과 그 나머지 사람들에게 보석금을 받고 놓아 주니라"

행17:7-9

복음이 선포되면 언제나 두 가지 반응이 나타납니다. 하나는 이 메시지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이 메시지에 대해서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고 그것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에서도 그러했습니다.

"보니 "그 중의 어떤 사람 곧 경건한 헬라인의 큰 무리와 적지 않은 귀부인도 권함을 받고 바울과 실라를 따르나"라고 말씀합니다."

행17:4을

사도바울이 선포한 주의 말씀에 대하여 긍정적인 반응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선민이라고 자처하면서도 복음을 믿지 아니한 유대인들은 경건한 이방인들이 예수님을 믿자 이를 시기하여 바울을 박해하기 시작했습니다. 유대인들은 ‘불량한 사람들’, 즉 불량배들을 선동하여 사도 바울 일행을 대적하도록 했습니다. 불량배들은 떼를 지어 데살로니가 성을 소동하게 하였고, 사도 바울과 실라가 머무르고 있던 야손의 집에 침입하여 바울과 실라를 잡아 끌어내려고까지 했습니다. 그들의 의도는 바울과 그 일행을 읍장들 앞에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본문은 바울과 실라가 데살로니가에서 머물렀던 집의 주인인 ‘야손’이라는 인물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는 나그네에 불과했던 바울과 실라를 자신의 집에 머물게 하고 돌보았던 인물로 오직 사도행전에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야손은 바울과 실라를 자신의 집에 모시고 대접했던 일로 인하여 고충을 겪어야 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박해를 받고 큰 손해를 보았습니다.

하지만 야손이 충성스럽게 자신의 역할을 감당함으로 바울과 실라는 데살로니가에서 복음을 전할 수 있었고, 교회도 세울 수 있었습니다. 야손의 용기와 헌신으로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주께 돌아오게 되었고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우리도 야손과 같이 지금의 자리에서 맡겨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합니다. 우리가 맡은 일이 보잘 것 없어 보여도 이 일에 최선을 다할 때, 이를 통해 하나님 나라가 세워지며 장차 큰 영광으로 우리에게 돌아올 것입니다.

유대인들에게 매수된 불량배들이 야손의 집에 침입했으나 바울은 붙잡히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바울 일행이 미리알고 피했던 것 같습니다. 바울과 실라를 찾지 못한 유대인들은 대신 야손과 몇몇 형제들을 읍장들 앞으로 끌고 갔습니다. 여기에서 형제는 일반적인 혈연관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신앙을 가진 믿음의 형제를 말합니다. 그들은 야손의 집에 함께 있다가 붙잡혀 갔습니다. 유대인들은 그들을 협박하여 바울의 거처를 알아내려 했을 것입니다.

결국 사람들이 바울과 그 일행들을 찾아내지 못하자 야손을 비롯한 그리스도인들을 ‘천하를 어지럽게 하던 사람들’을 집안에 들였다는 죄목으로 고발했습니다.

복음의 반대자들은 6절에서도 이렇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이 사람들은 천하를 어지럽게 하던 사람들이다” 자기들이 오히려 어지럽게 하면서, 바울 일행에게 누명을 씌운 것입니다. 그리고 7절에서는 이들을 가이사와 연관시킵니다.

"이 사람들이 다 가이사의 명을 거역하여 말하되 다른 임금 곧 예수라 하는 이가 있다 하더이다"

행17:7

도대체 지금 복음을 전하는 것과 가이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그러나 반대자들은 그 곳 읍장들에게 ‘이 사람들이 가이사의 명을 거역하여 말하되 다른 임금 곧 예수라 하는 이가 있다 하더이다’라고 말함으로써 복음 전하는 일이 가이사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처럼 인식되게 만들었습니다. 즉 예수님에 관한 문제를 정치적인 이슈로 끌어들이는 것입니다.

사탄의 세력들은 언제나 이처럼 정치적인 방법을 씁니다. 모든 것을 정치화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죽일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시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당신은 가이사의 충신이 아닙니다.”라는 말로 빌라도를 공격하여 해서 결국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허락하게 했습니다.

지금 바울을 공격하는 사람들도 이와 똑같이 예수님을 로마 황제와 대항하는 인물로 바꾸어서 거짓 주장을 하며 바울 일행을 고발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고발은 데살로니가의 읍장들을 당황하게 만들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글라우디오 황제 때에 유대인으로서 예수님을 믿게 된 기독교인들과 여전히 유대교에 남아 있는 유대인들 사이의 갈등으로 인해 로마가 시끄러워지자 황제가 모든 유대인에게 추방 명령을 내렸던 일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로마에서와 같은 소요가 데살로니가에서 일어나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데살로니가의 읍장들은 유대인들의 고소에 대하여 사실 확인 절차도 없이 야손과 형제들을 처벌하여 보석금을 물도록 하였습니다. 그들이 이렇게 한 것은 바울과 실라가 함께 하지 못하도록 압박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또한 만약 바울과 실라가 데살로니가를 떠나지 않는다면 더 엄한 처벌을 내리려는 속셈이었습니다.

오늘날 예수님을 믿고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박해와 환난은 다가옵니다. 어려움과 조롱을 당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절대로 동요하거나 시험에 들면 안됩니다. 우리는 어떠한 박해나 환난, 문제가 다가오더라도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더 큰 은혜와 축복이 우리에게 임합니다.

바울이 데살로니가에서 복음을 전한 기간은 유대인들의 방해로 인하여 3주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전도의 결과는 매우 괄목할 만한 것이었습니다. 데살로니가 전서에 의하면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믿음은 마게도냐 인근 지역 교회의 본이 되었고, 그들에 대한 소문이 각처에 퍼졌습니다.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 그러므로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있는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느니라 주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마게도냐와 아가야에만 들릴 뿐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는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졌으므로 우리는 아무 말도 할 것이 없노라"

살전1:6-8

도대체 어떻게 했기에 이러한 결과가 나올 수 있었을까요? 데살로니가 교회 교인들이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성령님의 도우심 가운데 말씀의 은혜를 체험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바울과 실라는 목숨을 걸고 주의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복음을 전하다가 매를 맞고 감옥에 들어가기도 하고, 자신들을 해치려는 불량배들로 인하여 믿음의 형제들과 이별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호흡이 다하는 그날까지 복음 전하는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우리도 사도 바울의 발자취를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만방에 증거하면서 살아가는 복음의 증인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열린 문을 복을 내려주실 것입니다.

"밤에 형제들이 곧 바울과 실라를 베뢰아로 보내니 그들이 이르러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니라"

행17:10

보석금을 지불하고 석방된 야손과 형제들은 밤에 몰래 바울과 실라를 베뢰아로 보내었습니다. 성령님께서 마게도냐 지역 사정에 어두운 바울의 처지를 아시고 그 지역 사람들을 통하여 바울을 새로운 선교 지역으로 향하도록 도우셨던 것입니다.

바울 일행은 잠도 못 자고 유대인의 박해를 피해 밤길을 걸어서 데살로니가를 떠나 베뢰아로 향하였습니다. 베뢰아는 데살로니가에서 남서쪽으로 약 96Km 떨어져 있는 도시였습니다. 베뢰아에 도착한 바울과 실라는 그곳에서도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회당에 들어갔습니다. 회당에서 복음을 증거하면 또 다시 유대인들의 박해를 받아 어떤 위험에 처하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었으나, 그들은 복음 전도자로서의 사명을 다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데 있어 환난과 박해를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전도자의 정신을 배우게 됩니다. 전도자는 어떤 상황에서도 복음 전파의 사명을 다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복음 전파의 사명을 주셨습니다.

"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막16:15-16

초대 교회 성도들은 예수님을 믿기가 참으로 어려웠습니다. 네로 황제를 비롯한 당시 로마의 황제들은 자신을 신으로 숭배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만을 믿고 섬기는 그리스도인들은 황제 숭배를 철저하게 거부하였고, 그로 인하여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로마 원형 경기장에서 사자 밥이 되어 죽거나 화형을 당하였습니다. 가장 고통스런 사형 방법은 바로 십자가형이었습니다. 십자가에 달려 며칠 동안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고 고통 가운데 시달리다가 죽은 것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이같은 환난과 핍박을 피해 ‘카타콤’이라는 지하 무덤에서 생활을 했습니다. 카타콤은 원래 로마 황족의 무덤이었습니다. 총 길이는 약 900Km이며 깊이가 5층이 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대체로 폭 1m 미만, 높이 2m 정도의 통로를 뚫고 계단을 만들어 놓았는데, 그 구조가 미로처럼 되어 있어서 한 번 길을 잃으면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은 그 안에서 태어나서 그 안에서 죽기까지 평생 주의 말씀을 따라 살았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생명을 걸고 주님께서 맡겨주신 전도의 사명을 다하였습니다.

그들은 믿음으로 지하 무덤 생활을 하다가 313년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하면서 비로소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었습니다. 기독교가 공인 되었을 대 로마의 기독교 인구는 8%였습니다. 수많은 기독교인이 추방되거나 처형 당하는 어려운 속에서도 계속 성장하여 8%에 이르게 되었고, 그 8%가 결국 로마 제국을 뒤엎어 버린 것입니다.

2023년 12월 21일 오전 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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