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9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기도 경제와 문화를 위하여
경제성장과 분배가 잘 이루어지게 하시고 어려운 경제 상황 속에서도 분투하고 있는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을 붙들어 주시고 축복하소서.
기독교 기업들이 청지기 정신으로 하나님의 나라와 이웃을 섬기고 정직하고 투명한 경영을 통해 선한 영향력을 끼치며 하나님 나라 확장에 앞장서게 하소서.
이 땅의 미디어와 언론이 진리와 정의의 편에 서게 하시고 건강하고 균형 잡힌 가치관을 가지고 방송을 제작하는 문화 창출이 일어나게 하소서.
그 중의 어떤 사람 곧 경건한 헬라인의 큰 무리와 적지 않은 귀부인도 권함을 받고 바울과 실라를 따르나 그러나 유대인들은 시기하여 저자의 어떤 불량한 사람들을 데리고 떼를 지어 성을 소동하게 하여 야손의 집에 침입하여 그들을 백성에게 끌어내려고 찾았으나 발견하지 못하매 야손과 몇 형제들을 끌고 읍장들 앞에 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천하를 어지럽게 하던 이 사람들이 여기도 이르매
행17:4-6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그 중의 어떤 사람 곧 경건한 헬라인의 큰 무리와 적지 않은 귀부인도 권함을 받고 바울과 실라를 따르나"
행17:4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에 가서 3주라는 짧은 시간 동안 전해 준 메시지의 내용은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는, 구약 성경을 읽고 뜻을 풀어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야 할 것을 증명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증명했습니다.
둘째는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이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이 예수가 그리스도다’ 이 말은 무슨 말입니까? 이것은 굉장한 메시지입니다. 그리스도는 히브리어로 메시아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선포한 이 말은 ‘우리 민족이 수 천년 동안 기다리고 갈망해 왔던 바로 그 메시아가 바로 이 예수님이다’라는 뜻입니다.
예수가 그리스도다 라는 말은 모든 신약 성경이 담고 있는 메시지의 핵심을 이루는 말입니다.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요, 우리의 구원자요, 구약에서 약속한 메시아다. 그분이 지금 여기 있다”라고 증거하는 것이 신약 성경입니다 기독교에서 이보다 더 중요한 메시지는 없고, 이보다 더 큰 메시지도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짧은 시간에, 제한된 공간에서 이 메시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핵심이 되는 이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메시지가 선포되면 언제나 두 가지 반응이 나타납니다. 하나는 이 메시지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이 메시지에 대해서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고 그것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에서도 그러했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니 "그 중의 어떤 사람 곧 경건한 헬라인의 큰 무리와 적지 않은 귀부인도 권함을 받고 바울과 실라를 따르나"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복음에 대하여 또 하나의 깨달음을 얻습니다. 그것은 복음은 많은 지식이나 합리적인 설명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바울의 메시지를 듣고 많은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긍정적인 반응을 갖게 된 것은 성령님의 역사 때문이지 바울이 설명을 잘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심는 이와 물주는 이는 한가지이나 각각 자기가 일한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고전3:6-8흔히 우리는 복음을 전할 때 우리의 설명이 부족해서 사람들이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아닌가 하고 걱정합니다. 때로는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설명을 충분히 했다고 해서 다 믿습니까? 아닙니다. 물론 우리가 굉장히 지혜롭고 논리적으로 말하고, 깊은 진리를 잘 요약해서 쉽게 전달해야 할 필요는 있습니다만, 그것 때문에 사람들이 예수를 믿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 사람이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은 사람의 지혜로운 말이 아니라 성령님의 능력입니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고전2:1-5우리는 사도 바울이 간수에게 전도했을 때를 기억할 것입니다. 그때도 앞뒤가 없었습니다. 간수가 “선생들이여,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라고 물었을 때 바울이 구약에서부터 설명했다든지 차근차근 성경을 풀어주었다든지 하는 말이 없습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는 말이 전부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전도할 때에도 얼마나 말을 잘하고 많은 말을 해야 하느냐를 걱정하는 대신 성령님의 능력을 믿어야 합니다. 성령님의 능력을 믿고, 다른 헛소리는 하지 말고, 쓸데없는 주변 이야기는 하지 말고, 그냥 단도직입적으로 “예수 믿으시오”이렇게 말하시기 바랍니다.
다음은 부정적인 반응, 즉 예수님을 거부하는 반응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시기하여 저자의 어떤 불량한 사람들을 데리고 떼를 지어 성을 소동하게 하여 야손의 집에 침입하여 그들을 백성에게 끌어내려고 찾았으나 발견하지 못하매 야손과 몇 형제들을 끌고 읍장들 앞에 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천하를 어지럽게 하던 이 사람들이 여기도 이르매"
행17:5-6그러나 유대인들은 시기하여 ― 유대인들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게 된 원인이 어디에 있다고요? 시기하여
내용은 이렇습니다. 바울이 회당에 들어가서 하나님 말씀을 전했습니다. 회당에는 유대사람들, 헬라사람들도 개종을 해서 많이 들어와 있는데 이 사람들이 사도 바울의 말씀을 따라서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예수를 믿게 됨으로 인해서 위신과 위상이 무너진 무리가 있습니다. 바로 유대교에 속한 유대종교 지도자들입니다. 바로 이 지도자들의 인기가 떨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을 시기 질투하게 되는 것입니다.
생명력 없는 유대주의자들, 율법주의자들은 그저 성경을 읽고 예배하는 형식적인 것만 가지고 있었는데, 바울이 와서 생명력 있는 복음을 전하게 될 때, 모두가 바울의 말을 듣게 됩니다. 그리고 이 사람들은 항상 메시야가 온다, 메시야를 기다린다고만 했는데 바울은 '메시야가 왔습니다, 그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하고 말씀합니다.
사도 바울의 성경적 논증에 설득되면서 그곳에 모인 사람들이 예수를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될 때에 유대 지도자들은 지도력을 상실하게 됩니다. 이럴 때에는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예수를 믿으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못하고 시기 질투해서 바울과 실라를 핍박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에릭슨이라고 하는 심리학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시기의 근본 원인은 열등의식이다.' 일리가 있는 얘기입니다.
왜 시기하느냐―자신은 그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더 잘 할 수 있으면 무엇 때문에 질투하겠습니까? 자기보다 못한 사람을 향해 시기 질투하는 것 보았습니까? 결국은 열등의식이 문제입니다.
오스카 와일드의 글에 ‘시기의 악마성’이라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도 너무나 잘 아는 얘기입니다. 성자가 되기 위해서 아리비아사막을 지나가는 한 수도사가 있습니다. 그런데 마귀의 졸개들이 이 사람에게 시험을 걸었습니다. 예쁜 여자로 나타나 유혹을 합니다. 그런데 수도사는 거들떠보지 않습니다. 금덩이를 보여줘도 요지부동입니다. 협박을 해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갖가지 방법으로 다 시험을 했는데 영 통하지 않습니다. 수도사는 여전히 당당하게 갈 길을 가고 있는 것입니다. 실패한 마귀 졸개들이 좌절하고 있을 때, 마귀 대장이 이 꼴을 보고는 "저리 비켜라, 내가 하는 것을 좀 봐라"하고 나섭니다. 그는 수도사의 귀에 딱 한마디를 속삭입니다. 그랬더니 그 수도사의 얼굴빛이 금방 변하는 것이었습니다. 마귀가 시험에 성공했습니다.
궁금한 졸개들이 따라가서 묻습니다. "도대체 대장님은 무어라고 얘기했습니까?" "뭘 뭐라고 해? 간단하지. 네 동생이 알렉산드리아에서 대주교가 되었다고만 말했지 뭐." 그 한마디에 수도사의 얼굴빛이 달라진 것입니다. 동생과 형 사이에도 이렇습니다. 여러분,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이 열등의식, 시기, 질투…… 이것을 버려야만 신앙생활도 바로 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 사람들이 예수를 빌라도 앞에 끌고 왔을 때, 빌라도는 그 사람들이 예수를 시기하여 그렇게 하는 줄을 알아보았습니다. "저가 그들의 시기로 예수를 넘겨준 줄 앎이러라"합니다. 가야바와 그 당시 지도자들이 왜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아야 했느냐, 그것은 물질 때문이 아닙니다. 권력 때문도 아닙니다. 시기 질투 때문입니다. 여러분, 시기 질투라는 것이 죄가 아닌, 그저 생각으로 지나가는 것인 줄 알고 회개도 안하고 그냥 지나가려고 하는데, 사실은 참으로 무서운 죄입니다. 이것이 악의 뿌리가 된다는 것을 잊지 마세요. 특별히 예수 믿는 사람들이 끝끝내 죄인 줄도 모르고 덜컥덜컥 걸려 넘어가는 게 바로 이 시기 질투입니다. 아주 쉽게 넘어갑니다. 그래서 신앙이 무너지고 마는 것도 볼 수 있습니다.
본문에서도 유대인들이 시기 질투로 인해서 엄청나게 큰 실수를 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만 그러는 게 아닙니다. 한번 시기와 질투의 노예가 되면 누구든 다 이렇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미움, 다툼, 시기, 질투는 우리를 넘어뜨리려는 마귀의 영적 무기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이런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의 배후에는 영적인 문제가 깔려 있다는 사실입니다. 즉 복음을 듣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지식이나 합리성의 차원에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그렇게 하는 것처럼, 복음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예수님을 거부하는 사람들 역시 지식이나 합리성이 문제가 되어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문제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복음이 전해지는 것을 그냥 두지 못하는 사단이 개입하여 사람들을 미혹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예수님이나 바울을 유혹하고 빌립보에 복음이 전해지자 소동을 일으켰던 것처럼, 사단은 그리스도의 복음이 들어가는 곳에 꼭 소동을 일으킵니다.
처음에는 교묘히 유혹하고, 그것이 먹히지 않으면 공격적으로 돌변하여 소동을 일으키고 사람을 선동하고 정치적 이슈를 만듭니다. 마귀는 복음이 전해지는 곳이면 어디서든지 이런 방법을 사용하여 예수님을 대적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믿지 못하게 합니다.
본문에 나오는 복음의 반대자들도 이성과 합리를 뛰어넘어 아주 감정적이고 폭력적인 행동을 합니다. 많은 사람을 선동하고 소란을 피우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다시한번 사단의 악한 전략을 보게 됩니다. 사단은 빌립보에서처럼 사람들을 선동하고 여론을 일으키고 성을 소동케 한 것입니다. 거듭 말하지만, 이런 방법은 하나님의 방법이 아닙니다. 사람을 선동하여 정치적 이슈를 만들고 여론을 조작하는 것은 마귀의 방법입니다.
지금 한국에는 이런 방법을 쓰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 큰 문제입니다. 모세는 바로와 싸울 때 절대로 증오하거나 민중의 힘을 이용하거나 여론을 조성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오직 하나님의 권위를 가지고 일대일로 바로와 영적인 싸움을 했습니다. 권력, 돈, 무력 등을 비롯한 인간적인 방법은 마귀가 이용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가운데는 이런 방법을 사용하는 사람이 없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3년 12월 20일 오전 6:5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