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5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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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고백

Confession

기도 행복한 가정을 위하여

1.

가정마다 예배와 기도가 멈추지 않으며 아름다운 신앙이 은혜 안에 대물림되는 믿음의 명문 가정이 되게 하소서.

2.

가정의 모든 관계가 화평케 하시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평안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서로를 사랑하고 섬기는 아름다운 가정이 되게 하소서.

3.

자녀들은 주 안에서 부모에게 순종하고 부모는 자녀들을 주의 교훈과 훈계로 바르게 양육하는 성경적인 부모와 자녀의 관계가 되게 하소서.

와서 권하여 데리고 나가 그 성에서 떠나기를 청하니 두 사람이 옥에서 나와 루디아의 집에 들어가서 형제들을 만나 보고 위로하고 가니라 그들이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로 다녀가 데살로니가에 이르니 거기 유대인의 회당이 있는지라

행16:39-17:1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와서 권하여 데리고 나가 그 성에서 떠나기를 청하니 두 사람이 옥에서 나와 루디아의 집에 들어가서 형제들을 만나 보고 위로하고 가니라"

행16:39-40

이제 바울은 감옥에서 나와서 루디아 집에 들러 형제들과 교제하고 그들을 위로하고 빌립보를 떠납니다. 그런데 만일 그들에게 영적인 눈이 있었다면 바울에게 그 성에서 떠나기를 청할 것이 아니라 빌립보에 더 오래 머물도록 붙잡아야 했을 것입니다. 만약 바울이 빌립보에 일 년만 더 있었더라도 오늘날의 빌립보가 아니었을지도 모릅니다.

이처럼 우리들 가운데에도 굴러 들어온 복을 자기 발로 걷어차는 사람이 있습니다. 무엇이 복이고 무엇이 선인지도 모르고 시시한 것들만 붙잡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아무 것도 아닌 것에 목숨을 겁니다. 오히려 자기 인생을 파괴시킬 것들을 붙들고 놓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정작 인생에 복이 되는 것들은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돼지가 진주의 가치를 알아보지 못하고 발로 밟듯이 진정한 복을 차 버리는 것입니다. 얼마나 어리석습니까?

그러므로 무엇이 진정한 복이고 선인지 잘 분별하도록 하십시오. 그리고 그것을 붙잡으십시오. 어디에 시간을 쓰는 것이 우리 인생에 도움이 되겠습니까?

무슨 공부를 하는 것이 우리에게 도움이 되겠습니까? 어떤 오락을 선택하는 것이, 누구를 만나는 것이, 어떻게 돈은 쓰는 것이 우리의 인생에 진정 도움이 되겠습니까? 잘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는 하나님 나라에 가면 아무짝에도 쓸모 없을 일에 너무나 많은 시간과 돈과 젊음과 정력을 낭비하고 있지는 않은지요? 정말 부끄럽고 쓰레기 같은 인생을 살다가 하나님 앞에 가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이제 정리를 해 보겠습니다. 바울이 빌립보에서 만나 전도한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습니까? 오늘날 시각으로 볼 때, 이 사람들은 그렇게 대단한 사람들은 아니었습니다. 그저 보통 사람들이었습니다. 교도소 소장이 아니라 간수였고, 신분이 높은 귀부인이 아니라 보통 아낙네, 즉 자주 장사를 하는 루디아였습니다. 바울이 만난 사람은 그저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유럽 교회의 시금석이 되었고, 유럽을 뒤집어 놓았습니다. 바로 그것이 복음입니다.

하나님은 가난한 자에게 가셔서 그들을 변화키시고 위대한 사람으로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은 동일하게 우리에게도 그렇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에게는 우리가 가진 신분이나, 부나 지식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복음이 있으냐가 중요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들어온 그 복음이 우리 식구들을 예수 믿게 한 정도밖에 안된다 하더라도 그것은 엄청나게 중요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을 시작으로 역동하는 복음이 우리의 이웃과 민족과 세계까지 변화시킬 것이기 때문입니다. 복음 안에는 그런 능력이 있습니다.

여러분, 서양사 2,000년을 생각해 보십시오. 기독교사가 빠지면 남는 게 뭐입니까? 서구 건축물 가운데 교회당 건물을 빼면 남는 게 무엇입니까? 바하, 헨델, 모차르트, 베토벤 같은 유명한 서양 음악가들 가운데 그리스도인들을 빼면 남는 음악가가 누구입니까? 미켈란젤로를 비롯하여 많은 서양 미술가의 그림에서 예수님을 빼면 남는 작품이 무엇입니까? 많은 서양 고전 중에 예수님이나 성경에 관한 것을 빼고 나면 문학이 존재할까요? 사회나 과학 분야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처럼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의 역사를 움직여 오셨습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이 진리가 2,000년 유럽 역사를 만들어 온 것입니다.

이는 빌립보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것도 한 여인과 이름 모를 간수에게서 시작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그와 같은 일을 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혹시 여러분 가운데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은 분이 계십니까? 그렇다면 지금 영접 하십시오. 그러면 당신이 구원받을 뿐 아니라 당신의 가정까지 구원받을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섬기는 가정은 위대한 가정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섬기는 국가는 위대한 국가가 될 것입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라는 말씀 속에는 바로 이러한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그들이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로 다녀가 데살로니가에 이르니 거기 유대인의 회당이 있는지라"

행17:1

사도 바울 일행은 유럽 선교의 첫 번째 도시였던 빌립보를 떠나서 다음 장소로 이동했습니다. "저희가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로 다녀가 데살로니가에 이르니(1절)"―이렇게 간단하게 한 줄로 설명을 합니다마는, 그 길은 그렇게 간단한 길이 아닙니다. 무려 150킬로가 넘습니다. 교통이 불편했던 그 옛날에 하루에 100리를 걸었다고 생각한다면, 낮에는 걷고 밤에는 자고, 이렇게 나흘을 가야 갈 수 있는 거리입니다. 선교 열정이 없고서는 결코 갈 수 있는 길이 아닙니다. 어쨌든 이렇게 먼 길을 여행해서 데살로니가에 도착하게 됩니다.

사도 바울의 선교 여행에는 몇 가지 특징이 나타납니다.

첫째는 한 도시에서 다른 도시로 갈 때에는 대체로 핍박이 일어나 더 이상 그 도시에 머물 수 없게 되었을 때 떠난다는 것입니다. 1차 선교 여행 때에도 마찬가지였지만, 빌립보, 데살로니가 그리고 베뢰아에서의 경우를 보아도, 바울은 언제나 핍박이 일어나서 더는 있을 수 없었기 때문에 그 도시들을 떠납니다. 우리는 바울이 빌립보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매를 맞고 깊은 감옥에 갇혔다가 풀려나서 그 곳을 떠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다음 사역지인 데살로니가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시기하여 저자의 어떤 불량한 사람들을 데리고 떼를 지어 성을 소동하게 하여 야손의 집에 침입하여 그들을 백성에게 끌어내려고 찾았으나"

행17:5

데살로니가에 복음을 전할 때에도 성령의 역사가 일어났는데, 이때에도 사람들이 일어나서 바울 일행을 핍박하였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그들은 데살로니가에 더 있지 못하고 그 옆 동네인 베뢰아로 가게 됩니다. 그 곳에서도 복음을 전했는데 또 무슨 일이 생깁니까?

"데살로니가에 있는 유대인들은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을 베뢰아에서도 전하는 줄을 알고 거기도 가서 무리를 움직여 소동하게 하거늘"

행17:13

데살로니가에서 바울을 핍박했던 사람들이 베뢰아까지 따라왔습니다. 그리고는 베뢰아에서도 선교하지 못하도록 바울을 핍박하고 공격합니다. 그래서 바울 일행은 할 수 없이 베뢰아를 떠나 아덴으로 움직입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복음을 전하지 못하게 막으려는 사단의 입장에서는 바울이 가는 곳마다 발을 붙이지 못하게 하면 그의 선교 활동은 반드시 실패할 것으로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이었습니까? 핍박은 복음을 더 빨리, 더 능력있게, 더 많이 전하게 하시는 주님의 수단이었다는 것을 몰랐던 것입니다.

이렇듯 그들은 핍박을 그 도시를 떠나라는 하나님의 신호로 여기고 복음을 전하는 데까지 전하고 핍박을 받으면 떠났습니다. 즉 자신들이 계획해서 이만큼 선교하고 그 다음 사역지로 떠난 것이 아니라 한 곳에서 열심히 전도하다가 핍박을 당하고 그 핍박이 더욱 심해져 더 이상 있을 수 없게 되면 그 다음 도시로 옮겨간 것입니다.

바울의 선교 여행의 두 번째 특징은 그가 어느 도시를 가든지 유대인의 회당을 거점으로 사용했다는 것입니다.

빌립보의 경우에는 회당이 없었기 때문에 기도처를 찾았습니다. 기도처를 찾다가 만난 사람이 루디아였습니다.

본문 1절을 보면 “저희가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로 다녀가 데살로니가에 이르니‘라고 되어 있는데, 아마도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를 그냥 지나친 것은 그들이 복음을 전할 거점인 회당이 없었기 때문인 듯 합니다. 그러나 데살로니가에는 회당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 곳에서 말씀을 강론하며 복음을 증거 했습니다. 베뢰아에서도 똑같은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10절을 보겠습니다.

"밤에 형제들이 곧 바울과 실라를 베뢰아로 보내니 그들이 이르러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니라"

행17:10

바울 일행은 베뢰아에 가자마자 유대인이 회당을 찾았습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바울은 유대인의 회당을 거점으로 하여, 즉 오늘날로 말하면 유대인의 회당을 베이스로 하여 복음을 전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회당을 중심으로 움직였습니다. 무작정 아무도 모르는 이방인의 세계로 뛰어 들어가거나 길거리에서 전도한 것이 아니라, 그가 잘 아는 그리고 익숙한 거점을 통해서 유대인들을 먼저 전도하고 이방인에게도 선교하는 방법을 사용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사도 바울의 1차, 2차, 3차 선교 여행에서 모든 찾아볼 수 있는 선교 원리입니다.

유대인은 바울의 동족입니다. 물론 예수 그리스도를 이해하는 입장은 서로 다르지만 같은 동족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회당은 사도 바울이 어렸을 때부터 익숙한 장소입니다. 이전에 바나바와 바울이 선교 여행을 했을 때 바나바의 고향인 구브로라는 섬에 갔었는데, 그때도 그들은 자신들이 어느 정도 아는 곳, 익숙한 곳에서 먼저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렇듯 사도 바울은 익숙한 곳을 통하여 익숙하지 않는 곳으로 들어가는 방법을 사용하여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것이 바울의 선교여행에서 발견되는 특징입니다.

바울의 선교 여행에서 볼 수 있는 세 번째 특징은, 바울이 어느 곳을 가든지 하나님이 준비해 두신 사람들을 만났다는 것입니다.

즉, 무작정 모든 사람에게 전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만나게 하신 몇몇 소수의 사람들을 먼저 전도한 것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해서 하나님이 만나게 해주신 사람들에게 제일 먼저 말씀을 강론했습니다.

2023년 12월 16일 오전 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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