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4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기도 환경과 생명을 위하여
온 인류가 피조 세계를 향한 하나님의 명령을 기억하여 인간의 욕심이 아닌 하나님의 질서대로 환경을 다스리게 하소서
모든 생명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낙태와 아동 학대 등 생명 경시 풍조가 사라지게 하시고 우리에게 주신 생명을 존중하고 사랑하게 하소서
환경과 생명을 위해 일하는 관계자들에게 지혜를 허락하셔서 효율적인 정책이 세워지게 하시고 교회와 사회가 함께 힘을 모아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가게 하소서
그 밤 그 시각에 간수가 그들을 데려다가 그 맞은 자리를 씻어 주고 자기와 그 온 가족이 다 세례를 받은 후 그들을 데리고 자기 집에 올라가서 음식을 차려 주고 그와 온 집안이 하나님을 믿으므로 크게 기뻐하니라 날이 새매 상관들이 부하를 보내어 이 사람들을 놓으라 하니 간수가 그 말대로 바울에게 말하되 상관들이 사람을 보내어 너희를 놓으라 하였으니 이제는 나가서 평안히 가라 하거늘 바울이 이르되 로마 사람인 우리를 죄도 정하지 아니하고 공중 앞에서 때리고 옥에 가두었다가 이제는 가만히 내보내고자 하느냐 아니라 그들이 친히 와서 우리를 데리고 나가야 하리라 한대 부하들이 이 말을 상관들에게 보고하니 그들이 로마 사람이라 하는 말을 듣고 두려워하여
행16:33-38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그 밤 그 시각에 간수가 그들을 데려다가 그 맞은 자리를 씻어주고 자기와 온 가족이 다 세례를 받은 후"
행16:33그 밤 : 바울과 실라가 귀신 들려 점치는 여종에게서 귀신을 쫓아낸 일로 인하여 여종의 주인들에게 미움을 받아 매를 맞고 감옥에 갇혔던 그 밤
그 밤에 그들이 어떻게 했습니까? 너무 억울한 일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고 기도하고 찬송을 했던 것입니다.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한 인간으로서 감당할 수 없는 상처를 받았을 때, 혹은 육체적인 질병에 사로잡혔을 때 슬퍼하거나 원망하거나 좌절하지 마십시오. 여러분, 물리적인 고난이나 육체적인 질병 등과 같은 역경에 부딪혔을 때 이것을 이기는 방법은 계속 기도하는 것, 계속 찬양하는 것입니다. 그 분에게 기도하고 찬송하고 영광을 돌리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이것보다 더 좋은 무기는 없습니다.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찬송했을 때 하나님이 역사하셔서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흔들리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들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간수가 자다가 깨어 옥문들이 열린 것을 보고 죄수들이 도망한 줄 생각하고 칼을 빼어 자결하려 했는데, 바울이 크게 소리 질러 이르기를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 간수가 등불을 달라고 하여 뛰어 들어가 무서워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리고 그들을 데리고 나가 이르되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하거늘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주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했습니다. 그 결과 간수와 온 가족이 구원을 얻게 된 것입니다.
한 사람에게 들어간 구원은 또 다른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그것은 상하 관계를 형제의 관계로 바꾼 것입니다. 이것이 구원입니다. 바울은 죄수요, 간수는 그 죄수를 지키는 자입니다. 그런 상하 관계를 형제 관계로 바꾸어 주는 게 구원입니다. 33-34을 보십시오.
"그 밤 그 시각에 간수가 그들을 데려다가 그 맞은 자리를 씻어주고 자기와 온 가족이 다 세례를 받은 후 그들을 데리고 자기 집에 올라가서 음식을 차려 주고 그와 온 집안이 하나님을 믿으므로 크게 기뻐하니라"
행16:33-34이것을 한 편의영화라 생각하고 마음에 상상을 해 보십시오, 공자, 맹자가 그렇게 할 수 있겠습니까? 세상의 어떤 철학과 사상이 그렇게 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복음 만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간수는 죄수의 매 맞은 자리를 씻어 주었습니다. 그때 그 간수의 얼굴 표정과 눈이 어떠했을까요? 죄수였던 바울은 간수에게 세례를 베풉니다. 아마 두 사람의 눈에는 감격의 눈물이 흘렸을 것입니다. 이 두 사람은 만난 지 몇 시간도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들은 서로 사랑하는 한 형제가 되게 해 주셨습니다.
주님은 이와 같은 관계를 우리에게도 허락하셨습니다. 사실 예수님이 아니면 우리가 서로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주님 안에서 만나 서로 아끼고 존경하고 그리워하는 관계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집안의 형제하고는 또 다른 형제 관계이고 영적인 관계입니다.
바울과 간수는 또 무엇을 했습니까? 함께 음식을 먹었습니다. 어찌 죄수와 간수 사이에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복음이 그렇게 한 것입니다.
여기에 남과 북의 만남의 원리가 있습니다. 흑백의 만남의 원리가 있습니다. 가난한 자와 부자가 만날 수 있는 원리가 있습니다. 배운 자와 못 배운 자가 만날 수 있는 원리가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하나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교회에는 별의별 사람들이 다 있습니다. 배운 자, 못 배운 자, 가난한 자, 부자가 다 모여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으로 인해 그들이 하나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천국이요, 하나님 나라입니다.
우리가 언젠가는 천국에 갈 것입니다. 여기 교회도 천국이지만 우리 주님이 계신 곳, 그 곳에서 주님이 우리에게 베풀어 주실 상과 그 잔치를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천군천사들과 그룹들과 하늘 보좌에 계시는 우리 하나님과 영광스러운 모든 성도들과 함께 우리가 거기서 잔치할 것을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참으로 감격스럽지 않습니까?
이제 35-36을 통해 세상 권력자들에 대한 것을 잠깐 살펴보겠습니다.
"날이 새매 상관들이 부하를 보내어 이 사람들을 놓으라 하니 간수가 그 말대로 바울에게 말하되 상관들이 사람을 보내어 너희를 놓으라 하였으니 이제는 나가서 평안히 가라 하거늘"
행16:35-36바울과 실라를 매 맞게 하고 감옥에 넣게 했던 관리들이 간밤에 일어난 소식을 들었는지, 사람을 급히 보내어 바울 일행을 놓아 주라고 하였습니다. 옥에 가둔 지 하루 만에 그렇게 쉽게 석방한 것을 보면 분명히 겁먹은 것입니다.
이처럼 세상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겉으로는 강한 척 하지만 사실은 약한 사람들입니다. 폼만 재는 것입니다. 소리만 크지 사실은 별 것이 없습니다. 권력의 힘에 의지해서 힘을 다진 사람들은 언제나 권력에 제일 약한 법입니다. 그 권력이 사라지면 자기 존재의 의미가 없어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마찬가지로 돈의 힘을 의지하는 사람들은 돈이 사라지면 제일 약한 자가 됩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돈의 힘에 의지해서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이르되 로마 사람인 우리를 죄도 정하지 아니하고 공중 앞에서 때리고 옥에 가두었다가 이제는 가만히 내보내고자 하느냐 아니라 그들이 친히 와서 우리를 데리고 나가야 하리라 한 대 부하들이 이 말을 상관들에게 보고하니 그들이 로마 사람이라 하는 말을 듣고 두려워하여"
행16:37-38여기서 생각해야 할 것이 두 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바울이 왜 이에 이르러 큰소리를 치는가 ― 그 점입니다. "나는 로마 시민이다"라는 카드를 그를 때릴 때에 안 맞으려고 내놓은 것이 아니거든요. 사도 바울이 애초에 "나 로마 시민이요" 한마디만 했었더라면 안 맞았습니다.
「렉스 툴리아」라고 하는 옛 문서에 보면 로마 시민은 치안관에게나 다른 어떤 사람에 의해서도, 어떤 상황에서도 매를 맞거나 구속되거나 해서는 안 된다는 명령이 있습니다. 로마 시민은 어디에 가서 살든지 특권을 누리게 했습니다.
로마 안에도 로마 시민이 3분의 1, 자유인이 3분의1, 그리고 3분의 1이 노예입니다. 로마 시민은 대단한 권리가 있었습니다. 평양에 가면 평양 시민이 대단하다고 합니다. 대단한 권세가 있습니다. 평양 시민 한번 돼보는 것이 평생소원이라고들 합니다. 그것은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닙니다.
로마시민은 어디에 가나 구속되거나 매 맞거나 하지 않게끔 신분이 보장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바울이 매를 맞을 때에, 때리려고 할 때에 손을 들고 "삼가라. 나는 로마시민이다"했다면 매 안 맞을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에는 입을 다물었어요. 이리 치고 저리 치는 것 다 맞았습니다. 다 맞아놓고 이제 와서야 "로마시민을 이렇게 대우하는 거냐" 합니다.
이 본문을 읽을 때마다 생각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깡패 출신 김익두 목사님이 어느 날 교회에 부흥회를 인도하러 가는 길이었습니다.
높은 산을 올라가는데 하도 더워서 옷을 벗어 붙이고 바람을 쐬는 중이었습니다. 저만치 술 취한 청년 하나가 비틀거리면서 올라옵니다. 이 청년, 김 목사님 앞에까지 와서는 목사님보고 다짜고짜 "너 왜 나보다 먼저 올라왔느냐"하고 한방 먹이는 것이었습니다. 술 취한 청년이 때리는데 맞을 수밖에요. 김 목사님은 한참동안이나 잠자코 때리는 대로 맞았습니다. 청년은 상대가 대항을 하지 않으니까 재미가 없었던지 제풀에 식식거리면서 털썩 주저앉고 맙니다. 김익두 목사님은 청년의 두 손을 마주잡고 "형님, 다 때렸소?" 하면서 새삼 정색을 하고 말씀합니다. "내가 김익두야." 그제야 청년은 사색이 되어 살살 빕니다. '김익두'라면 천하에 소문난 왕년 '어깨'요 '주먹'이거든요. 목사님은 덧붙여 "내가 예수를 믿기 전에 이런 일을 당했으면 너는 여기에다 묘를 쓰고 마는 거다. 그런데 내가 예수 믿어서 너가 산 거야. 그리니까 잘 들으라구. 예수는 내가 믿고 복은 너가 받았다." "그럼 난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해? 따라와야지." 목사님은 청년을 부흥회에 데려갔고, 그 청년은 찍소리 못하고 따라갔다가 예수 믿게 되었고, 뒷날 장로까지 되었습니다.
보십시오. 다 맞아놓고야 마지막 카드를 내놓는 것이었습니다. 바울 보세요. 다 맞고 나서 이제는 가십시오 하니까 아니다, 나 로마시민이다, 합니다. 멋있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