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3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기도 청년 세대들을 위하여
이 땅의 청년들이 대세가 아닌 진리를 따르고 야망이 아닌 하나님이 주시는 건강한 비전을 품고 전진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 구원의 기쁨과 감격을 가지고 살아가게 하시고 어떤 상황 속에서도 그리스도를 선택할 수 있는 믿음의 세대, 기도로 기적을 일으키는 부흥의 세대가 되게 하소서.
성적 타락 및 각종 중독으로부터 청년들을 지켜 주셔서 거룩하고 순결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도록 친히 인도하여 주소서.
무리가 일제히 일어나 고발하니 상관들이 옷을 찢어 벗기고 매로 치라 하여
행16:22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사단은 우리를 어떻게 공격합니까? 전도하는 바울을 어떻게 공격했습니까?
첫 번째, 사단은 처음부터 공격적이고 무섭게 바울을 공격하지 않았습니다.
두 번째, 사단은 첫 번째 방법이 실패하면 본색을 드러내고 우리를 물리적으로 공격하고 압박합니다. 즉 우리가 손해 보게 하고 병들게 하고 우리가 가진 것을 파괴하는 것입니다.
사단이 이처럼 자신을 드러내고 공격해 올 때 사용하는 몇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제일 먼저 사람을 동원해서 여론을 만듭니다.
"무리가 일제히 일어나 고발하니 상관들이 옷을 찢어 벗기고 매로 치라 하여"
행16:22그들은 무리를 선동해서 고발했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종류의 방법을 쓰는 사람들을 거부하십시오. 여론 정치를 한다고 하면서 사람들을 선동하고, 아주 이상한 말을 해서 순간적으로 사람들을 혼란케 하고 혼을 쏙 빼는 사람들은 다 위험한 사람입니다. 이는 마귀가 쓰는 아주 기본적인 방법입니다.
두 번째 방법은, 이렇게 여론을 확보하고 민심을 잡고 나면 법을 뛰어 넘어서 폭력을 행사하는 것입니다. 즉 법을 안 지킵니다. 그 힘을 법으로 쓰고 그것으로 밀어 붙이는 것입니다. 폭력을 사용하고 질서를 파괴합니다. 자신들이 주장하는 명분 때문에 그렇게 합니다.
세 번째 방법은, 권력이나 금력이나 여론의 힘을 빌려서 사람을 죽이거나 감옥에 넣어 버리는 것입니다.
사단은 이 모든 방법을 사용해서 바울을 공격했습니다. 즉 귀신들린 여자의 주인들로 하여금 사람들을 선동하게 해서 바울을 잡았고, 재판도 받기 전에 그를 때려서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사단은 그런 일을 바울에게만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베드로에게도 그렇게 했습니다. 예수님에게도 똑같이 했습니다. 예수님이 광야에서 금식하실 때 마귀는 예수님을 세 번 유혹했습니다. “이 돌을 떡으로 만들라. 높은 데서 뛰어내려 봐라. 나한테 절만 하면 세상을 다 너에게 주겠다” 이렇게 사람의 마음을 녹이는 아주 교활한 유혹을 했습니다. 이것이 먹혀들지 않자 후에 사단은 제자를 이용했습니다. 그 한 예가 베드로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십자가 죽음을 예언하셨을 때 예수님을 붙들고 간청하였습니다. “안됩니다. 주님” 그러자 주님은 그를 향해 단호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이렇게 교묘하게 예수님의 길을 방해하던 사단은 그것으로도 안되자 사람들은 선동했습니다. 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과 무리들을 전부 선동해서 예수님을 죽이라고 여론을 만든 것입니다. 그리하여 빌라도의 재판도 먹히지 않게 하였습니다. 정의도, 법도 먹히지 않았습니다. 결국 불법 재판을 해서 예수님에게 십자가형을 내리게 하고 그 분을 죽이게 했습니다.
이런 패턴은 지금이나 그때나 같습니다. 여론을 만들고, 사람을 선동하고, 충격적인 요법을 쓰는 것은 하나님의 방법이 아닙니다. 그 배후에는 언제나 어둠의 세력이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사단은 그것이 자기가 승리하는 길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을 스스로 자신의 무덤을 파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사단이 아무리 핍박하고 감옥에 집어넣어도 경건한 그리스도인은 죽지 않습니다. 이상하게도 그럴수록 그리스도인들을 살아납니다. 더 힘이 나고, 더 팔팔해집니다. 진리라는 것은 고난과 역격 속에서 더 힘을 발휘하는 법이기 때문입니다. 어려워지면 힘이 생깁니다. 감옥에 가두어도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는 일어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마귀는 처음부터 우리를 공격하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미끼를 던집니다. 우리의 육체적 정욕과 먹고 마시고 입는 문제에 관련된 미끼를 던집니다. 명예욕을 자극하고 자기 말만 들으면, 자기만 섬기면 성공하게 해 주겠다거나 부자가 되게 해 주겠다는 등의 미끼를 계속 던집니다. 여러분은 이런 미끼에 속지 않기를 바랍니다.
말 자체를 놓고 ‘이것이 성경적인가, 하나님이 주신 것인가’를 고민하기 전에 먼저 그것을 누가 말했는지, 그 근원이 어디인지를 살펴보십시오. 마귀는 우리로 하여금 그것을 생각하지 못하게 합니다. 돈을 주면 됐지, 그것이 어디서 어떻게 왔는지 더 이상 묻지 말라는 식입니다. 이것이 마귀의 방법입니다. 마귀는 자기 근거를 드러내려 하지 않습니다.
바울과 실라가 사단에게 물리적인 공격을 받았을 때, 즉 감옥에 들어갔을 때 그것에 대처한 방법은 무엇이겠습니까? 기도와 찬양이었습니다. 그들은 원망과 불평을 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께 기도와 찬양을 드렸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는 돈이나 군사력의 힘이나 정치적 권력이 아니라 기도와 감사와 찬양입니다. 우리가 어떠한 고난 속에서라도 기도하고 감사하고 하나님께 찬양하면 지진이 일어나고 옥터가 흔들리고 옥문이 열리고 차꼬가 풀리는 것과 같은 놀라운 기적이 일어납니다.
바울과 실라가 옥중에서도 계속 기도했다고 했습니다. 이 부분을 영어 번역본 몇 가지를 참조하여 보면 재미있습니다. “그들이 기도하고 찬양했다”라는 번역이 있고, 진행형을 붙여 “계속 기도하고 계속 찬양했다”라고 번역한 것도 있습니다. 즉 한 번 기도하고 한 번 찬양하고 끝낸 것이 아니라, 밤새도록 기도하고 찬양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물리적인 고난이나 육체적인 질병 등과 같은 역경에 부딪혔을 때 이것을 이기는 방법은 계속 기도하는 것, 계속 찬양하는 것입니다.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한 인간으로서 감당할 수 없는 상처를 받았을 때, 혹은 육체적인 질병에 사로잡혔을 때 슬퍼하거나 원망하거나 좌절하지 마십시오. 걱정해서 해결될 일이라면 걱정하기 바랍니다. 그러나 염려한다고 해서 머리털 하나 희게 할 수 없고, 키 한 자도 자라게 할 수 없습니다. 문제는 그대로 있습니다. 원망하고 불평하면 오히려 우리 자신을 죽이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을 비참하게 만들고 괴롭히고 자학하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럴 때는 그냥 현실을 인정하십시오. 배고프면 배고픈 현실, 가난하면 가난한 현실, 병 들었으면 병 든 현실을 그대로 인정하고 곧 바로 그 자리에서 감사하고 찬양하십시오. 감사와 찬양을 시작하면 이런 것들이 물러갑니다.
고난을 겪을 때 여러분에게 고난을 준 사람을 상대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에게 피해를 주고 억울하게 만든 그 사람과 상대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그런 환경을 허락하신 하나님과 대면하십시오.
사람을 상대하면 미움이 생깁니다. 그리고 누군가를 미워하면 자기 얼굴이 먼저 추해집니다. 미움이 내 안에 있으면 그것이 나오기 전에 먼저 나부터 파괴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기가 먼저 죽습니다.
반대로, 누군가를 사랑하면 그 사랑이 상대방에게 가기 전에 나를 먼저 복되게 합니다. 축복 기도, 중보 기도를 하면 그 기도의 축복이, 그 중보가 다른 사람에게 가기 전에 나를 먼저 축복하고 중보합니다. 용서하면 그 용서가 먼저 내 영혼을 치유합니다. 그래서 이것이 내적 치유가 됩니다. 내적 치유라는 것은 별것 아닙니다. 사랑하고 용서하면 내가 먼저 치유되는 것, 이것이 내적 치유입니다.
한 부인이 계셨습니다. 이 분에게는 어머니가 3분이 계십니다. 이 분을 낳은 어머니를 이 분이 어릴 때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새 어머니를 만났는데, 새 어머니는 이 자매를 무척 괴롭혔습니다. 그 어머니가 아이 둘을 낳은 후 바람이 나서 나가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또 장가를 들어 세 번째 어머니를 만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분은 남편은 현대중공업에서 높은 자리에 계십니다. 그런데 신앙이 좋은 이 분에게 나쁜 버릇이 있었습니다. 아들을 너무 사랑하지만, 때때로 아들에게 이유없이 무섭게 화를 낸다는 것입니다. 자신도 고치고 싶지만 안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집회에서 자신의 이런 행동이 어릴 때 받은 상처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상처를 준 새 어머니를 용서했습니다. 이후 이분이 치유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이후로 가장 기뻐한 사람이 누구이겠습니까? 아들
여러분, 먼저 용서하고 기도하십시오. 어떤 경우에도 사람에게 매달리지 마시고 하나님께만 매달리십시오. 그 분에게 기도하고 찬송하고 영광을 돌리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이것보다 더 좋은 무기는 없습니다.
자, 이제 바울과 실라에게 놀라운 일이 한 가지 더 생깁니다. 그것은 한 영혼이 구원받은 것입니다. 이렇듯 모든 그리스도인이 만나는 사건 배후에는, 그것이 억울한 사건이든 아니든, 감당할 수 있는 사건이든 아니든 간에 하나님의 구원의 섭리가 있는 것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만나는 사건, 특히 우리를 어렵게 하는 사건 속에 하나님의 구원의 섭리가 없다면 그것처럼 무의미한 게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안심하십시오. 우리가 겪고 있는 고난은 누군가를 구원시키는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여러분이 죽게 되었어도 그 죽음을 통하여 다른 사람이 구원을 얻게 되는 것이며, 여러분이 희생을 당해도 그렇게 됨으로써 누군가 한 사람이 구원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 구원받기 위해서 예수님의 십자가에 피 흘려 돌아가시는 대가를 치른 것입니다. 때로는 ‘한 사람의 구원을 위해서라면 이것은 너무 큰 대가이다’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영혼을 구하는 일에 있어서 너무나 큰 대가는 결코 없습니다. 천하보다도 더 귀한 것이 한 영혼이라고 한다면, 세상적으로 볼 때는 보잘 것 없고, 돈도 없고, 바보 같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 영혼의 구원은 천하만큼 귀한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그리고 더 멀리 보면 이 한 사람이 구원받은 것은 단지 그 한 사람만의 구원이 아닙니다. 한 사람이 구원받으면 그 주변 사람들까지 구원을 받게 됩니다. 왜냐하면 구원은 정적인 개념 혹은 물건적 개념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즉 구원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물건과 같은 것이 아닙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능력으로서 아주 역동적인 것입니다. 즉 음직이고 역사하고 영향력을 주고 새로운 것을 생성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구원이 우리에게 오면 우리는 가만히 있지 못합니다. 이 구원은 우리를 변화시키고 우리에게 모든 복을 가져올 뿐만 아니라 우리 옆에 있는 사람까지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이것이 구원입니다. 예수님의 구원은 절대로 가만히 있지를 못합니다. 그것은 빛을 발하고 능력을 행사하고 역사를 일으키며 주위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믿고 전도 안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 사람은 예수님을 지식으로 아는 것에 불과합니다. 예수님에게 관한 교리를 아는 것에 불과한 것이지, 살아 계신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 예수님이 그 안에 계시는데 어찌 찬송하지 않을 수 있으며, 어찌 구원을 노래하지 않을 수가 있으며, 어찌 그리스도를 선포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진짜 구원은 역동적인 것입니다. 움직이고 역사하며 우리로 노래하게 하는 것입니다. 때로 그것은 우리가 손해보게 만들고 희생이라는 대가를 치르게 하기도 하지만, 그것을 감당할 능력까지도 줍니다.
기억하십시오. 한 사람에게 전해지는 구원은 결코 그 한 사람에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시기 전에 열두 제자에게 최후의 명령을 하셨습니다. 그랬더니 그 12명이 120명이 되었고, 120명이 3,000명이 되었으며, 3,000명은 5,000명, 5,000명은 셀 수 없는 무리가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그 놀라운 사건은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도 온 것입니다.
2023년 12월 14일 오전 7: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