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1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기도 세계 선교를 위하여
선교사님들을 통하여 그 땅에 예배가 살아나게 하시고 복음의 씨앗이 심어진 곳마다 하나님의 때에 아름답게 열매 맺게 하소서.
선교사님들에게 성령의 충만함과 영적 분별력을 허락해 주셔서 탁월한 선교 전략으로 접근하게 하시며 모든 질병과 풍토병으로부터 보호하여 주소서.
치열한 영적 전쟁 가운데 있는 선교 현장을 예수님의 보혈로 덮으셔서 2만 8천여 명의 선교사님들이 사명 붙들고 사역하게 하소서.
간수가 등불을 달라고 하며 뛰어 들어가 무서워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리고 그들을 데리고 나가 이르되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하거늘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주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더라 그 밤 그 시각에 간수가 그들을 데려다가 그 맞은 자리를 씻어 주고 자기와 그 온 가족이 다 세례를 받은 후 그들을 데리고 자기 집에 올라가서 음식을 차려 주고 그와 온 집안이 하나님을 믿으므로 크게 기뻐하니라
행16:29-34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간수가 등불을 달라고 하며 뛰어 들어가 무서워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리고 그들을 데리고 나가 이르되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하거늘"
행16:29-30바울과 실라는 옥문이 열릴 때에 도망가지 않았습니다. 이 이적을 자신의 정욕을 채우는 수단으로 사용하지 아니하려 한 것입니다. 세속적인 욕망을 충족하자고 도망가지 않았습니다. 도망가지 않고 간수가 자결하려고 하는 순간에 담대하게 "네 몸을 상하게 하지 말라"합니다. 참 권세 있습니다. 얼마나 당당합니까? 영적 자유인을 여기서 엿볼 수 있습니다.
문 열리자마자 얼씨구나 하고 도망가지 않았습니다. 다 풀린 상태로 그냥 앉아 있습니다. 한 사람도 도망가지 않았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합니다.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얼마나 굉장합니까?
헬라나 로마 당시에는 죄수를 책임진 사람은 죄수한 사람만 도망가도 그걸 목숨으로 바꿉니다. 간수가 대신 죽어야 합니다. 그래서 자결하려고 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잠깐 멈추고 생각을 해봅시다. 이 간수의 굳게 닫혔던 마음 문이 왜 열렸으며, 쇠사슬은 왜 풀렸는가 ― 좀 더 생각해보아야 되는 것 아닙니까?
이건 사람의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어째서 감옥 문이 열렸는지 그것 하나를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는 여유가 없었어요. 문이 열렸으니 죄수들이 도망갔을 거고, 죄수들이 도망갔으니 나는 이제 죽었다 ― 간수는 이렇게만 생각했어요. 다른 면으로는 전혀 생각할 수가 없었어요. 그만큼 자기 의무에 노예가 된 사람이었습니다. 죄수를 놓쳤다는 책임과 그 결과만을 헤아리고, 책임 추궁하는 상관의 무서운 심판만 생각했던 겁니다. 그래서 차라리 자결하려고 했습니다.
설사 그 일이 이적이라고 한들 이 이적을 가지고 가서 상관에게 발명한다고 해서 설명이 되겠습니까? 상상을 해보세요. 앉아 있는데 지진이 나더니 감옥 문이 열렸습니다, 죄수가 다 도망갔습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면 상관이 믿겠습니까? 이 미친놈아, 하고 목을 벨 것입니다. 믿을 사람이 아무도 없는거예요. 바로 그 점이 더 어려운 점입니다. 전혀 이것이 통할 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결하려고 했습니다. 못 본 자에게 본 자가 설명하고, 경험하지 못한 자에게 경험을 설명하는 것처럼 어려운 일도 없습니다. 결국은 이 사람은 이유야 어쨌든 결과는 이렇게 되었으니 자결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말씀합니다. "네 몸을 상하게 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 ― 얼마나 귀한 시간입니까? 그랬더니 "간수가 등불을 달라고 하며 뛰어 들어가 무서워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부복하고"―참 귀한 시간이지요.
인간적인 두려움과 간수로서의 책임감 때문에 자살하려고 했던 간수는 사도 바울이 부르는 소리 때문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충격은 급기야 그가 가지고 있던 인간적인 두려움, 즉 지진이 일어나 옥터가 흔들리고 감옥 문에 열려서 죄수가 도망갔다는 현실적인 사건을 뛰어넘어서, 그로 하여금 새로운 세계로 진입하게 되었습니다.
간수는 이제 지진이 일어난 것, 옥문이 열린 것, 죄수가 도망가는 것에 대한 관심을 넘어서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런 사건들을 통해 하나님에 대해서 눈을 뜨게 된 것입니다. 그는 바울의 목소리를 듣고 등불을 들고 뛰어 들어가서 “죄수가 도망가지 않았구나”하고 안심한 것이 아니라, 바울과 실라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리고 엉뚱한 말을 합니다. “선생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을 수가 있겠습니까?” 이것은 간수 자신도 전혀 예상치 못했던 물음이었습니다. 드디어 그가 하나님에 대해서 눈을 뜨게 되는 순간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세상에서 살면서 겪는 많은 사건들은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교통 사고를 당했을 때, 그 교통 사고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병이 들었거나 사업의 어려움을 겪었을 때, 그 사건이 하나님을 더 깊이 생각하고 신앙의 수준을 한 단계 뛰어넘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만약 우리가 사고를 당했거나 육신의 병에 들어서 하나님에 대해 눈을 뜨게 되었다면 오히려 그것은 복입니다. 사업의 어려움을 겪으면서 그 일을 통해 하나님을 더 많이 보게 되었다면 그것도 복입니다. 지진이 난 사건도 간수에게는 복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구원에 대해서 눈을 뜨는 계기기 되었기 때문입니다.
현재 우리에게는 많은 문제가 있습니다. 가정, 직장, 사회에서 겪는 많은 문제들이 우리를 힘들게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그 문제들 안에 있기보다는 그 문제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길 원하십니다. 그래서 그것들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간수는 놀라운 사건이 벌어진 상황에 직면하여 바울과 실라에게 질문했습니다. “선생님들,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겠습니까?” 사실, 이 질문의 답은 인간이 가진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가 됩니다. 그에 대한 답이 본문 31절에 나와 있습니다.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행16:31이제 옥중에서의 지진 사건은 전혀 다른 차원의 사건으로 전환되어서 구원의 문제를 다루게 되었습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이것이 간수의 심각에 질문에 대한 바울의 답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답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교육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습니까? “주 예수를 믿으면” 됩니다. 우리의 정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습니까? 그에 대한 답도 “주 예수를 믿으라”입니다. 통일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습니까? 그것도 마찬가지로 “주 예수를 믿으라”가 정답입니다. “주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주 예수를 바라보라. 주 예수를 의지하라. 주 예수를 영접하고 그를 신뢰하라” 이것이 우리가 가진 모든 문제의 해결책입니다. 주 예수가 우리의 유일한 해답인 것입니다.
더 나아가, 바울은 주 예수를 믿으면 그 자신뿐 아니라 그의 가족까지도 구원을 얻게 된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구원의 두 차원을 봅니다. 즉 내가 구원받은 것은 나 하나만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나의 가족도 구원을 받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더 확대하면, 이 말은 내가 구원 받으면 우리 사회, 우리 민족이 구원받는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내가 구원받으면 전 세계가 복을 받을 수 있게 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하신 말씀이 그 뜻입니다.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창12:3)
여러분 모두에게 이러한 영적 자부심이 있기를 바랍니다. “나 때문에, 우리 민족이 복을 받을 것이다. 나 때문에 세계가 변할 것이다”
이런 자부심이 여러분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이것은 우리 자신이 우상이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용하신다는 뜻입니다. “자자손손 수천 대에 이르기까지 내가 이 복을 너에게 주겠노라” 하나님은 이렇게 우리를 축복하십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메시지입니까?
이제 32절 말씀을 통해 구원과 말씀의 관계를 보겠습니다.
"주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더라"
행16:32바울은 구원받은 사람에게 즉시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말씀은 구원의 기초가 되기 때문입니다. 말씀이 없는 구원은 미신이 되기 쉽습니다. 며칠 지나면 없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간수와 그 가족들에게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여러분, 구원 받으셨습니까? 그렇다면 말씀을 읽으십시오. 성경을 묵상하고 공부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의 구원이 얼마나 든든한 것인가를 알게 될 때 우리의 믿음은 흔들리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과 실라는 그 즉시 말씀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 밤 그 시각에 간수가 그들을 데려다가 그 맞은 자리를 씻어주고 자기와 온 가족이 다 세례를 받은 후 그들을 데리고 자기 집에 올라가서 음식을 차려 주고 그와 온 집안이 하나님을 믿으므로 크게 기뻐하니라"
행16:33-34다시 말하지만 구원받은 이후 첫 번째로 해야 하는 일은 성경을 공부하는 일입니다. 구원받은 것으로 끝나면 큰일 납니다. 말씀을 통해 계속 성장해야 합니다. 그래야 어떤 공격이 와도 우리의 구원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말씀을 듣고 난 간수는 그 다음에 무엇을 했습니까?
첫 번째, 바울을 데려다가 그의 맞은 자리를 씻어 주었습니다. 이것은 회개라고 볼 수 있습니다. 내가 상처 준 사람을 치유해 주고 회복시키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너무 아름다운 모습을 봅니다. 이제는 바울과 간수가 죄수와 간수의 관계가 아닌 한 형제, 한 가족, 그리고 친구 관계가 되었습니다.
두 번째, 그는 온 가족과 함께 세례를 받았습니다.
온 가정이 구원을 받게된 것입니다.
세 번째, 그는 바울 일행을 데려다가 음식을 대접했습니다.
음식을 나눈다는 것은 잔치하는 것이고, 잔치하는 것은 축제이며, 교제와 축복을 나누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어떻게 했습니까? “크게 기뻐하니라” 그렇습니다. 그들은 크게 기뻐했습니다. 마치 고넬료의 집과 같아요. 영적으로 큰잔치를 합니다. 온 집이 크게 기뻐하니라―이 기쁨은 금을 얻는 기쁨이 아닙니다. 출세하는 기쁨도 아닙니다. 권세를 얻는 기쁨도 아닙니다. 세속적인 기쁨이 아닙니다.
"내가 주는 기쁨은 세상이 주는 것과 다르다"하신 예수님 말씀대로 세상이 주는 것과 다른, 정말로 훌륭한, 정말로 놀라운, 절대적인 기쁨을 맛보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교제의 기쁨이요, 회개의 기쁨이요, 축복을 나누는 기쁨입니다. 구원에 대한 감격이었습니다.
이제 그들은 죄수와 간수의 관계가 아니라 형제요, 친구요, 가족이라는 기쁨이었습니다. 이런 모습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이고, 교회의 참 모습입니다.
초대 교회에 있었던, 서로 사랑하고 교제하고 떡을 떼고 축복을 나누는 모습이, 여기 간수의 집안이 구원되는 모습 속에도 보입니다. 여러분에게 이런 축복이 넘치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