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9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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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고백

Confession

기도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1.

우리 대한민국을 불쌍히 여기사 강력한 성령의 바람이 불어오게 하시고 진정으로 애통하며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나게 하소서.

2.

주변 국가들로부터 우리 대한민국을 지켜주시고 복음 안에서 평화적인 통일이 이루어지게 하소서.

3.

창조의 질서를 부정하는 비성경적 법률이 제정되지 않게 하시고 대통령을 비롯한 위정자들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이 되게 하소서.

4.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주의 명령에 순종하여 저출산의 문제가 해결되게 하시고 세상으로 보냄을 받은 우리의 희생과 섬김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게 하소서.

5.

예수님의 보혈로 이 땅을 덮어 주셔서 우상 숭배의 죄악들이 끊어지게 하시고 교만과 자살과 음란의 분열의 영이 묶임을 받고 떠나가게 하소서

간수가 등불을 달라고 하며 뛰어 들어가 무서워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리고 그들을 데리고 나가 이르되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하거늘

행16:29-30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본문에 보면 기적이 있습니다. 이 기적 역시 세 가지로 나타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기적이라고 하면 우리는 우선 감옥 문이 열리는 기적만을 생각하기 쉬우나, 정리를 해보면 감옥 문이 열리기 전에 먼저 사도 바울의 마음 문이 열린 것을 봅니다. 바울의 마음 문이 하늘을 향하여 활짝 열립니다. 찬송을 부릅니다. 이것이 첫 번째 기적입니다. 그 다음이 가시적인 기적 ― 차꼬가 풀리면서 감옥 문이 열립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기적이 있습니다. 간수의 마음 문이 열리는 기적입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구원을 얻겠느냐고 사도 바울에게 묻습니다. 그리하여 주의 말씀을 듣게 되고 세례를 받게 됩니다. 마침내 예수를 영접하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일련의 기적은 모두가 순간적으로 일시에 일어납니다.

먼저 감옥 문이 열리는 기적을 한번 봅시다. 빌립보 감옥에 나타난 큰 기적입니다. 생각지도 않은 때에 홀연히 지진이 났습니다. 옥터가 흔들리고 철통같이 닫혔던 문들이 다 열립니다. 그리고 매였던 것이 다 풀립니다. 차꼬에 채워져 있었는데 그 차꼬가 저절로 다 풀리고 맙니다. 이 네 가지 사건이 다 눈에 보이는 큰 기적입니다. 확실히 큰 역사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눈에 보이는 기적, 감옥 문이 열린다든가 지진이 난다던가 벼락이 떨어진다던가 하는 것들은 기적이라고 생각하는데 조용하게, 눈에 안보이게 이루어지는 사건에 대해서는 그 기적의 성격을 간과할 때가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문제입니다. 벼락이 떨어지는 것은 기적인 줄 알면서 한 사람이, 천하보다 귀한 한 영혼이 예수를 믿는 것, 완악하던 마음이 녹아지면서 예수를 믿게 되는 것, 이렇게 한 사람이 중생하는 엄청난 기적에는 놀라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런 얘기를 합니다. "제가 교회에 나와서 큰 기적을 경험했습니다." 무슨 기적인가 했더니 담배를 끊은 것이라고 합니다. 담배 끊기가 굉장히 어렵다고들 합니다. 담배를 끊으려고 금연 학교를 세 번이나 갔다 왔는데도 못 끊었다는 것입니다. 하루에 세 갑씩 피우면서 지냈는데, 어느 날엔가 힘 안들이고 깨끗하게 끊어지더랍니다. 담배 생각이 안나더랍니다. 담배 맛이 싹없어진 것입니다. 이건 기적입니다. 반드시 천지가 진동해야만 기적인 것이 아닙니다.

조용한 깨달음도 기적입니다. 그 깨달음과 함께 내 생활에 변화가 오고, 내 성품에 변화가 오고, 내 인격에 변화가 오는 것, 엄청난 기적입니다. 아직도 이 이적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나 위주의 주관적 의식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라고 하는 이성의 척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파묻혀 있는 인간 의지의 척도, 그 단계를 넘어서면 그것이 다 기적입니다. 나로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절대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가능합니다. 그것이 바로 기적입니다.

감옥 문이 열리는 기적, 지진이 나는 기적, 이런 가시적 물리적인 기적 이전에 오늘 이 감옥에도 조용한 기적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깊은 감옥에서 찬송소리가 들려오는 것입니다. 음침하고 음산한, 불빛 한 점 없는 깜깜한 감옥에서 찬송이 울려나옵니다.

사도 바울이 매를 많이 맞고 감옥에 갇혀 죽을 지경이 되었는데도 지금 찬송을 부릅니다. 몸은 갇혀 있지만 그 마음은 무한히 자유합니다. 몸은 비록 깜깜한 데에 갇혀 있지마는 그 생각과 뜻과 영혼은 하늘을 훨훨 나는 것입니다. 참으로 억울하고 부당한 매를 맞았습니다. 정죄도 재판도 없이 맞았습니다.

기절할 때까지 맞았습니다. 매를 맞고 죽지 않은 것도 기적이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맞았는데도 미워하는 마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때리는 사람을 미워하지 않았습니다. 그게 중요한 것입니다. 이것이 가장 큰 기적입니다. 매를 맞으면서도 미워하지 않는 것―이것이야말로 기적인 것입니다.

어떤 공장에 난쟁이 하나가 들어와서 큰 일은 못해도 작은 일을 하고 심부름을 부지런히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점심을 먹게 되었습니다.

이때 어떤 우락부락하게 생긴 못된 청년이 있어서 점심 먹는 난쟁이를 찾아와 발길로 차면서 매도합니다. "난쟁이 주제에 뭘 할 수 있다고 여기 와서 얼쩡거리고 있어? 집에 가서 놀거나 길거리에 나가 얻어먹기나 할 것이지……" 그러는데도 난쟁이는 싱글벙글 웃으면서 천연스럽게 식사만 하는 것입니다. 청년은 계속해서 발길로 차요. 옆에서 보는 사람들이 민망하게 생각하면서도 청년에게 봉변이라도 당할까봐 끼어들지를 못합니다. 난쟁이가 이윽고 웃음 띤 그 얼굴로 입을 엽니다. "너희 힘센 놈들이 못하는 것 내가 하는 게 있다." 또 발길로 차는 청년을 보고 난쟁이는 말합니다. "나는 사람을 미워하지 않는다. 날 때리는 너도 나는 미워하지 않는다. 이것은 나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그 순간 모두가 숙연해지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은 발길로 채어보았습니까? 그런데도 미워하지 않아 보았습니까? 미워하지 않는 데에 위대함이 있습니다. 억울한 매를 맞고 죽을 지경이 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아무도 미워하지 않습니다. 앙심을 품지 않아요. 저주하지 않아요. 위대하지 않습니까? 이것이 먼저입니다. 이것이 있고야 기적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내 마음 속에 먼저 기적이 있어야 합니다.

엄청난 일을 당해도 당황하지 않고, 깜짝 놀랄 일을 당해도 동요하지 않는 것, 내 마음이 항상 고요하고 늘 찬송을 부르는 마음 ― 이것이 기적입니다. 그리고 그 엄청난, 절망적인 고난을 겪으면서도 사도 바울은 후회가 없습니다.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내 어쩌다 이 꼴이 됐노, 하고 한탄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하고 그는 온전한 자유인으로 나타납니다. 그 자유가 위대한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원망하는 법이 없었습니다. 오로지 기도하고 찬송을 부릅니다.

그리고 역경 중에서, 찬송으로 감사로 참 기쁨으로 모든 슬픔과 모든 아픔을 다 극복했습니다. 주위는 어둡지만 그의 마음은 밝았습니다. 몸은 상처로 아프지만 그의 마음은 기뻤습니다. 모든 탄식과 증오와 고통을 다 극복하는 희한한 기적을 그 심령에서 먼저 체험하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이것은 사도 바울 자신의 마음이라고 보기 어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입니다. 그런 기쁨, 그런 감사, 그런 능력, 그런 영적 권세를 은사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입니다. 미움 받으면서 미워해야 할 시간에 사랑하는 것이 내 마음이겠습니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겠습니까? 이렇게 매를 맞고도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릴 수 있다는 것이 가능한 일입니까? 하나님의 큰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마음이었습니다. 이렇게 됨으로 마침내 감옥 문이 열리게 된 것입니다.

단테의 「신곡」에 보면 지옥이 나오는데 거기 마귀가 많습니다. 지옥에 끌려간 마귀들이 불 속에서 고생하는데 마귀의 새끼 하나가 눈물을 흘리는 것입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예수를 믿을 걸"하면서 눈물을 흘립니다. 그러니까 마귀의 괴수 사단이 뭐라고 호령하는 고 하니 "이놈아, 울지 말고 이를 갈아라. 네가 눈물을 흘리면 하나님이 기뻐한다." 이게 지옥입니다. 지옥이 어디인지 아십니까? 이를 가는 곳이 지옥입니다. 원한을 품고 부드득 이를 갈아요. 미워하는 마음, 증오의 감옥에 갇힐 때에 거기가 무서운 지옥입니다. 한번 감옥에 빠지기 시작하면 걷잡기 힘들어요.

어떤 부인―남편이 꽤 잘나서 어지간히 바람도 피웠던 모양입니다.

그래 이 부인은 독수공방 할 때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그 남편이 병원에 입원을 했습니다. 간암으로 죽게 되었습니다. 그 병원에 들렀다가 그 내외가 서로 붙들고 우는 장면을 보게 되었습니다. 부인에게 넌지시 물어보았습니다. "그래, 남편에 대한 생각이 어떻소? 이 남편이 한창 바람피우고 돌아다닐 때, 며칠씩 집에 안 들어와 독수공방하는 때에 당신은 부인으로서 무슨 생각을 했었습니까?" 그랬더니 부인은 솔직하게 말합디다.

"차 사고라도 나서 죽어라 했지요." 이렇게 살 바에야 차라리 과부 되는 게 낫지, 했대요. 정말 이를 갈았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랬던 것이 한스럽다고 해요. 죽으라고 했더니 정말 죽는 거예요. 이 시간이 되고 보니 이제 급해진 거예요. 그 때의 일이 생각나는 거예요. "지금은 어떻소?"하고 다시 물었더니 "한 달에 한 번만 들어와도 좋으니 죽지만 았았으면 좋겠어요" 합니다.

여러분, 정말이지 마음에 티가 없이 깨끗한 마음으로 사랑한다는 것, 미움 없이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모릅니다. 위대한 일입니다. 사도 바울의 마음속에 먼저 그 같은 큰 기적이 있었기에 이제는 옥문이 열리는 기적을 가시적으로 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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