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6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기도 다음 세대를 위하여
우리의 다음 세대들이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하시고 새벽이슬과 같은 주의 용사들로 세워지게 하시며 젊은이들이 땀 흘려 수고한 만큼 정당한 대가를 받는 정의로운 나라가 되게 하소서.
음란하고 혼탁한 문화, 각종 중독으로부터 저들의 생각과 육신을 지켜 주시고 예수 그리스도만이 인생의 해답이심을 깨닫게 하소서.
기독교 가치로 세워진 미션스쿨의 신앙교육을 방해하려는 모든 악한 세력의 행보가 무너지게 하소서.
그가 바울과 우리를 따라와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 이같이 여러 날을 하는지라 바울이 심히 괴로워하여 돌이켜 그 귀신에게 이르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 하니 귀신이 즉시 나오니라
행16:17-18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그가 바울과 우리를 따라와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
행16:17점치는 귀신들린 여종이 사도바울 일행을 따라와 소리 질러 이르기를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귀신이 귀신같이 알아본 것입니다. 이 사람들을 가리켜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이라고 말합니다. 또한 하나님을 이렇게 말합니다. "지극히 높은 하나님" 정확하지 않습니까? '지극히 높은 자의 종, 바울' 이것도 정확합니다. 또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 이것도 정확합니다. 몇 마디 말에 불과하지만 그 내용이 사도 바울을 소개하는 데는 아주 정확한 것입니다.
지극히 높은 자의 종이요,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고 했으니까, 어떻게 보면 높이 존경하고 높이 칭찬하는 말이 되지 않겠습니까?
어쨌든 귀신들린 여자가 가장 정확하게 증거를 했고, 사도 바울을 칭찬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소개를 했습니다. 참으로 희한한 얘기입니다. 바울에 대한 완벽한 선전입니다. 바울의 신분을 완벽하게 소개하는 내용입니다. 그러나 이 말을 듣고 바울은 괴로웠습니다. 이 점이 중요한 것입니다.
"이같이 여러 날을 하는지라 바울이 심히 괴로워하여 돌이켜 그 귀신에게 이르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 하니 귀신이 즉시 나오니라"
행16:18바울이 심히 괴로워하여 - 그런데 왜 심히 괴로워하는 것입니까? 사실은 칭찬하고 있지 않습니까? 정확하게 칭찬하고 있고, 정확하게 높이고 있고, 정확하게 소개를 하는데 바울이 왜 심히 괴로워하는 것입니까?
우리는 여기서 생각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을 보면, 누구의 말이든 좌우간 칭찬이라면 좋아합니다. 심지어는 거짓말 칭찬도 좋아합니다. 칭찬만 들으면 덮어놓고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註)까지 답니다. "거짓말인 줄 알지만 듣기에는 괜찮습니다."
언제든지 무조건 칭찬은 좋아합니다. 어떤 의도로 하는지, 누가 하는지도 상관없습니다. 거짓말이라도 칭찬이라면 좋아합니다. 반대로, 자기를 조금 책망하는 말이라든가, 자기의 잘못을 조금 지적하는 말, 충고하는 말은 무조건 싫어합니다. 나를 위해서 하는 건지 어떤지는 신경 쓰지 않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귀한 말씀인지도 모르고 무조건 충고를 싫어하는 사람, 이 사람은 수준 이하의 인물입니다.
"의인이 나를 칠지라도 은혜로 여기며 책망할지라도 머리의 기름같이 여겨서 내 머리가 이를 거절치 아니할지라 저희의 재난 중에라도 내가 항상 기도하리로다"
시141:5칭찬이라고 다 좋은 게 아닙니다.
"이에 바리새인들이 가서 어떻게 하면 예수를 말의 올무에 걸리게 할까 상의하고 자기 제자들을 헤롯 당원들과 함께 예수께 보내어 말하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참되시고 진리로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시며 아무 꺼리는 일이 없으시니 이는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심이니이다"
마22:15-16마귀가 칭찬하는 것은 세워주고자 함이 아닙니다. 넘어뜨리려고 칭찬하는 것입니다. 올무에 걸려고 함입니다. 다행스럽게도 사도 바울은 이 같은 칭찬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만약 그가 이런 칭찬을 듣고 좋아라 했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틀림없이 몇 마디의 칭찬 뒤에 그를 걸고 넘어가서 싹 뒤집어놓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괴로워했습니다.
다시 한번 생각해봅시다. 시원치 않은 사람, 변변치 않은 사람의 인격은 누구의 칭찬이든 다 좋아하고, 자기에게 좀 언짢은 말은 무엇이든지 다 싫어합니다. 정말로 나를 사랑해서 나를 위하여 충고하는 말인데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특별히 나를 지극히 위하는 분의 말이라면 귀담아들어야 되는 것이 아닙니까? 오히려 고맙게 여겨야 하지 않습니까? 사도 바울은 지금 귀신들린 여자의 칭찬이 반갑지 않았습니다. 귀신이 여기서 듣기 좋은 말을 한 것 같으나, 중요한 문제는 이 귀신들린 여자가 예수님을 믿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을 믿는 것도 아니고, 바울을 믿는 것도 아니라는 점입니다. 다만, 이런 사실을 알고 있을 뿐입니다. 이것이 중요한 문제입니다.
야고보서 2장 19절에 보면, 하나님이 누구이신가 에 대해서는 귀신도 안다고 했습니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합니다. 알고 떠는 것입니다. 그러나 알 뿐이요, 떨 뿐이요, 두려워할 뿐입니다. 회개도 안하고, 믿지도 않고, 따르지도 않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알고 교리를 압니다. 그러나 아는 것 가지고는 되지 않습니다.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알고 있는 바 그 진리에 내 생명을 의탁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알기는 알면서 따르지 않는다면 이것은 거짓말이요, 진리에 재한 모독입니다. 바울은 이것을 알기 때문에 기뻐하지 않습니다. 심히 괴로워합니다.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선거철이 되면 신앙이 없는 정치인들이 표 좀 얻으려고 교인들이 있는데 가서는 교인인 척하며 하나님이 어떻고, 교회가 어떻고 합니다. 이것은 교회에 대해여 엄청난 모독입니다. 더구나 믿지도 않는 사람들이 선거 때가 되면 교회에 들락날락합니다. 그리고 불상 앞에서 절을 합니다. 이것은 크게 잘못된 것입니다.
여러분, 믿음 없이 부르는 하나님의 이름은 하나님께 욕 돌리는 것입니다. 이것은 계명에 나와 있습니다. 제 3계명에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하십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헛되게 부르지 말라, 함부로 부르지 말라 하심입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 신앙 간증과 함께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불러야 합니다. 믿음도 없이 고백도 없이 아무렇게나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당찮은 일입니다.
좀 더 나아가서, 예수님께서 시험 당하신 사건을 한번 비교해보시기 바랍니다. 마태복음 4장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40일 금식하신 다음에 시험을 당하시는 그 때에, 마귀가 와서 무슨 말을 합니까? 첫째로, 아주 동정이 많습니다. '얼마나 배고프냐? 돌로 떡을 만들어 먹어라'-예수님을 위함인 것 같지 않습니까? 그러나 이것은 위하는 것이 아닙니다. 돌로 떡을 만드는 능력이 있지 않느냐, 너는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냐, 그렇다면 왜 굶고 앉아 있느냐, 돌로 떡을 만들어 먹으라 - 언뜻 생각하면 위안이 될 것도 같으나 이것은 시험입니다.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니 그 말을 들어서는 안됩니다.
또한 높은 성전 꼭대기에 세워놓고 뛰어내리라 합니다. 뛰어내리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보고 놀라겠느냐, 그러면 네가 당장 유명해질 텐데 왜 이렇듯 쓸데없는 고생을 하려고 하느냐 - 이 역시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길을 가시려 하시는데 가로막고 편한 길을 가르쳐주는 양입니다.
특별히 마귀는 예수님께 천하만국과 영광을 보이면서 '내게 절하라, 그러면 이것을 네게 주겠다.'합니다. 이 세 가지 시험을 자세히 보면, 전부가 오히려 예수님을 편하게 하고, 예수님을 성공하게 하고, 예수님의 능력과 권세를 칭찬하는 것 같아 보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마귀의 속삭임입니다. 시험입니다. 그런고로 어디까지나 예수님께서는 '사단아, 물러가라'하고 단호하게 시험을 이기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이 지금 당한 형편도 그런 맥락에서 보아야 할 것입니다. 칭찬하는 귀신들린 여인의 말을 듣고 괴로워했습니다. 분노했습니다. 그리고 귀신을 내쫓았습니다.
사도 바울이 오늘의 이 상황을 당하면서 괴로워했던 깊은 뜻을 알아야 합니다. 신앙적으로 볼 때에 우리가 괴로워해야 할 것이 많으나 괴로워야 할 시간에 괴로운 줄 모르고 있다면 벌써 꾐에 넘어간 것입니다.
어쨌든 이런 일이 있고, 그렇게 여러 날이 지나갔습니다. 사도 바울은 더는 견딜 수가 없어서 마침내 이 여자를 향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18절)"하고 말씀합니다. 그러자 귀신이 즉시 나왔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귀신을 쫓는 데 필요한 두 가지를 배우게 됩니다. 하나는 영적 능력입니다. 예수님이 변화산에서 내려 와서 제자들에게 와서 보니 큰 무리가 그들을 둘러싸고 서기관들이 그들과 더불어 변론하고 있었습니다. 온 우리가 곧 예수를 보고 매우 놀라며 달려와 문안하거늘 예수께서 물으시되 너희가 무엇을 그들과 변론하느냐 하시니 무리 중의 하나가 대답하기를 ‘선생님 말 못하게 귀신들린 내 아들을 선생님께 대려 왔나이다. 귀신이 어디서든지 그를 잡으면 거꾸러져 거품을 흘리며 이를 갈며 그리고 파리해지는지라 내가 선생님의 제자들에게 내쫓아 달라 하였으나 그들이 능히 고치지 못하더이다.’ 이에 예수님께서 더러운 귀신을 꾸짖어 이르시되 ‘말 못하고 못 듣는 귀신아 내가 네게 이르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하시매 귀신이 소리 지르며 아이를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나갔습니다. 이에 제자들이 묻기를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하니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으니라‘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습니다. 우리도 그런 경우가 많습니다.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더러운 귀신아 물러가라”해도 안되고 아무리 소리 질러도 안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영적인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기도의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귀신은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우리의 영적인 상황을 잘 압니다. 기도하지 않고 더럽게 산 것도 다 알고, 어젯밤에 뭘 했는지도 압니다. 그런데 오늘 ‘할렐루야’ 한다고 귀신이 나가겠습니까? 오히려 우리를 깔볼 것입니다.
그러나 귀신은 정말 기도하는 사람, 거룩하게 사는 사람 앞에서는 벌벌 떱니다. 빛의 삶을 사는 사람 앞에서는 벌벌 떠는 것입니다. 분문의 점치는 귀신이 그랬습니다. 그는 바울을 보자마자 겁에 질렸습니다. 바울에게 영적인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에게도 이러한 영적 능력과 거룩함이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에는 이런 실제적인 삶의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의 삶을 제대로 살지 못하면 귀신들린 자를 볼 때 우리가 먼저 넘어갑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도를 많이 하고 거룩하게 살면 별의별 귀신이 다와도 문제 없습니다. 귀신들린 사람을 만나도 그가 아이 같아 보이고 아무 염려가 안되며 상대하기 쉽게 느껴집니다. 아무리 센 귀신도 예수님 앞에서도 꼼짝을 못하기 때문입니다.
귀신을 쫓는데 필요한 또 한 가지는 “예수의 이름”입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막16:17-18바울에게는 능력이 있었습니다. 영적인 권위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바울이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 때는 며칠이 지나도 귀신이 나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바울이 나가라고 명령하자 비로소 나갔습니다. 이처럼 능력이 있어도 그것을 사용하지 않으면 귀신은 그냥 눌러앉아 있습니다. 그리고 귀신을 쫓을 대 “귀신아 나가줘”하며 구걸하면 안됩니다.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귀신이 떠나갈지어다” 이렇게 영적인 권위를 가지고 명령을 내려야 합니다.
우리는 사도행전 16장을 통하여 세 가지를 살펴보았습니다.
1하나님이 바울의 생각을 넓히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바울의 지경을 소아시아에 머물게 하지 않으시고 유럽까지 넓히시며, 아울러 그 마음에 세계를 품게 하시는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2헌신된 한 여인를 통하여 교회가 세워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3더러운 귀신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떠나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 같은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과 복이 여러분에게도 함께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3년 12월 7일 오전 6:4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