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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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고백

Confession

기도 방송 연예 종사자들을 위하여

1.

연예인들이 세상의 인기와 명예보다 더 고결한 가치가 있음을 알게 하시고 그들을 통해 우리 사회에 건강한 대중문화가 실현되게 하소서.

2.

크리스천 연예인들이 주님이 주신 달란트로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며 왜곡된 세상을 그리스도의 문화로 회복하는 사명을 감당하게 하소서.

3.

방송·연예계의 우상숭배와 미신의 관습이 끊어지게 하시고 음란하고 퇴폐적인 죄의 문화들이 방송계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하소서.

우리가 드로아에서 배로 떠나 사모드라게로 직행하여 이튿날 네압볼리로 가고 거기서 빌립보에 이르니 이는 마게도냐 지방의 첫 성이요 또 로마의 식민지라 이 성에서 수일을 유하다가

행16:11-12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우리가 드로아에서 배로 떠나 사모드라게로 직행하여 이튿날 네아볼리로 가고"

행16:11

바울은 드로아로 갔습니다. 가고 싶지 않은 곳이었지만 가게 되었습니다. 그날 밤에 그는 환상을 보았습니다. 환상 속에서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나타나서 바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바울은 이것이 무슨 뜻인지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새 일을 계획하고 계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 안에서 새 일을 계획하고 계십니다. 과거에 한 일을 반복해서 하라고 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역사에 언제나 새 일을 하고 계십니다.

바울은 선교하고 싶었는데 하나님은 그를 바다에 세워 놓으셨습니다. 어디로 가라는 말씀입니까? 바울은 막막했습니다. 그런 그에게 하나님은 바다 저편 사람이 그를 부르고 있는 환상을 보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곳으로 바울을 부르신 것입니다. 그 곳은 한번도 가 보지 않은 곳입니다. 모르는 곳입니다. 그러나 이제 환상으로 말미암아, 더 이상 갈 수 없었던 것만 같았던 육지의 끝 바다는 더 이상 절망이 아니라, 소망으로 변하기 시작합니다.

그 곳은 끝이 아니었습니다. 새로운 시작이었습니다. ‘나의 실패는, 나의 좌절은 이제 새로운 출발을 의미한다. 그렇다 내가 여기서 이렇게 열등감을 가지고 나를 자학하고 괴로워하면서 갈 길을 몰라 방황할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지금 나를 부르고 계신다’

아마도 이것이 에게 해를 바라보고 있는 바울의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바울의 마음을 키우고 계셨습니다.

바울은 환상을 본 순간, 자신 앞에 놓인 바다를 건너기로 결심했습니다.

이렇게 했을 때 하나님이 어떤 일을 예비해 놓으셨나요?

"등장하는 ‘우리’라는 표현은 누가 복음과 사도행전의 기록자인 누가가 여기서부터 바울의 선교 여행에 동참하였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제부터는 실라, 디모데와 더불어 의사 누가도 바울의 선교 여행에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행16:10부터

11절 나오는 ‘사모드라게’는 드로아에서 네압볼리까지 가는 중간 지점에 있는 에게 해에 위치한 섬이며, ‘네압볼리’는 빌립보에서 16Km정도 떨어져 있는 빌립보의 외항이었습니다.

본문에는 드로아에서 배를 타고 떠나 사모드라게로 직행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직행’이라는 뜻은 순풍에 돛을 단 듯, 걸림이나 방해가 없이 간 것을 의미합니다. 직진 코스로 쭉 간 것입니다. 바울 일행은 사모드라게라는 섬을 거쳐서 이튿날 네압볼리 항구에 도착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거리는 175마일에서 180마일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네압볼리에서 다시 빌립보로 갔는데, 빌립보는 8마일 정도의 아주 가까운 거리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도행전을 계속 읽다 보면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는 무교절 후에 빌립보에서 배로 떠나 닷새 만에 드로아에 있는 그들에게 가서 이레를 머무니라"

행20:6

빌립보에서 드로아까지 다시 돌아올 때는 며칠이 걸렸습니까? 5일이 걸렸습니다. 그런데 16장에서는 며칠 걸렸습니까? 이틀 걸렸습니다. 5일 걸려 갈 수도 있는 길을 이틀 만에 간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자연의 힘까지 동원해서 열린 문으로 바울을 급수송 하신 것입니다. 아마도 하나님은 바울이 배를 타고 빌립보로 가는 동안 줄곧 드로아에서 빌립보 방향으로 바람이 불게 하셨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그렇게 빨리 갈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요?

하나님은 때로 이렇게 일을 진행하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친히 ‘이쪽으로 가라’고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거기에 내 뜻이 있고 내 비전이 있다’고 하시면서 그 일을 하게 하실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실 때, 여러분은 그것이 가능하냐 불가능하냐를 묻지 마십시오. 그것은 토론할 것이 못됩니다. 하나님이 하고자 하시면 못하시는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의 꿈을 가지고 있다면 그리고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가질 수만 있다면 모든 일은 쉽게 될 것입니다.

"거기서 빌립보에 이르니 이는 마게도냐 지방의 첫 성이요 또 로마의 식민지라 이 성에서 수일을 유하다가"

행16:12

바울은 네압볼리를 거쳐서 빌립보로 갔습니다. 부르는 사람도 없고 마중 나올 사람도 없는 빌립보로 갔습니다. 오직 성령의 부르심을 받고 갔습니다. 12절을 보면 바울 일행이 빌립보에서 수일을 유했다고 하는데, 이 말은 그들을 도울 그 곳의 안내자가 없었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환영하는 사람이 없어도 하나님이 가라시니까 그냥 가는 것, 이것이 선교입니다. 일 때문에 간 것이 아닙니다. 누가 부르고 초청해서 간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가라고 하셨기 때문에 간 것입니다.

빌립도 그랬습니다. 그가 사마리아에서 전도하자 기적이 일어나고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하나님이 빌립에게 하던 일을 그만 두고 광야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전도를 하려면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전도할 사람도 없는 곳으로 가라시는 것이었습니다. 답답한 노릇입니다. 그러나 빌립은 순종했습니다. 순종하고 갔더니 사람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이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만나게 하신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한 사람을 만나는 것이 중요합니다.

100년 전에 선교사들이 한국에 왔습니다. 그들이 한국에 와서 많은 사람들을 만난 것이 아닙니다. 몇 사람을 만나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렇게 했더니 100년이 지난 지금 믿는 자들의 수가 천만명이 넘게된 것입니다. 그 당시에는 그들이 와서 별로 한 일이 없는 것처럼 생각되기도 했겠지만, 그때 뿌려 놓은 복음의 씨 때문에 100년이 지난 지금 한국에 아름다운 꽃이 핀 것입니다. 만약 그들이 그때 씨를 뿌리지 않았다면 오늘날 한국에 어떻게 꽃이 필 수 있었겠습니까?

이것이 성령님의 역사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제한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만날 수 있는 사람도 제한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에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복음이냐 아니냐가 중요하고, 성령의 역사냐 아니냐가 중요합니다. 우리가 한 사람에게라도 복음의 역사와 성령의 역사를 전달해 주기만 한다면 기적을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평생 동안 몇 사람만 전도해도 괜찮습니다. 왜냐하면 100년 후에는 그 사람이 천만 명으로 변할 것이 분명하게 때문입니다.

바울은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빌립보에 갔습니다. 아브라함도 고향을 두고 아무 연고 없는 곳을 향해 떠났습니다. ‘너는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하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지시하실 땅이 어딘지도 모르는 채 그냥 간 것입니다.

모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불기둥과 구름 기둥의 인도를 받으며 갔습니다. 그러나 길을 알고 간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저 불기둥과 구름 기둥이 움직이면 이스라엘 백성을 데리고 움직였을 뿐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원리입니다. 우리가 가고 싶어도 구름 기둥이 움직이지 않으면 못 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기 싫어도 불기둥이 움직이면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자기가 원하는 곳으로 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머물라 하시면 십 년도 죽치고 않아 있어야 하고, 떠나라 하시면 아무리 좋은 곳도 떠나야 합니다. 그런 사람만이 하나님의 기적과 사역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 마음대로 움직이지는 않습니까? 우리의 생각을 받아들이시도록 하나님을 설득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 안 들어 주시면 저 금식할 거예요. 저는 이것을 꼭 해야해요.’이렇게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렇게 말하는 대신 하나님이 가라는 곳으로 가겠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까?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하겠다고 생각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얼마나 하나님을 조종하려고 하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에게 자기 일에 축복해 달라고 떼를 씁니다. 자기가 계획해 놓은 일을 승인해 달라고 요구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을 빌립보까지 가는 여정을 통해서 이것을 배웠습니다. 바울 자신은 아시아에서 선교하고 싶었습니다. 아시아에는 해야 할 일도 많고, 기적도 일어나고, 사람들도 많이 모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막으셨습니다. 그래서 그는 즉시 배를 탔습니다. 정확히 어디로 갈지도 모른채 배를 탔습니다. 그것이 선교입니다. 그것이 2차 선교 여행의 특징이었습니다.

본문은 빌립보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마게도냐 지방의 첫 성이요”

왜 이렇게 묘사했을까요? 빌립보의 크기는 어느 정도이고, 인구는 얼마다 이렇게 묘사할 수도 있었을 텐데, 왜 ‘마게도냐 지방의 첫 성이요’라고 기록해 놓았을까요? 이것은 그곳이 유럽이 시작되는 곳, 유럽의 관문이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함입니다.

이는 빌립보 선교가 유럽 선교의 시작이라는 뜻도 포함합니다. 바울의 선교로 빌립보에 교회가 탄생하는데, 그 교회는 유럽의 첫 번째 교회가 됩니다. 마게도냐 지방의 첫 성인 빌립보 땅을 밟았다는 것은 유럽의 땅을 밟기 시작했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 얼마나 놀랍고 멋진 일입니까?

그 다음에는 빌립보를 설명하는데 ‘로마의 식민지라’라고 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이것을 빌립보와 로마의 연관성을 통해 바울의 사역에 로마가 포함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제 빌립보에 발을 들여 놓음으로써 바울의 마음은 로마까지 가게 됩니다. 당시 유럽의 중심이었던 로마, 바울은 그 로마를 꿈꾸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의 마음은 벌써 빌립보를 지나 로마를 선교하기 시작합니다. 그의 심장은 로마를 향한 선교의 열정으로 불타게 되는 것입니다.

작은 성읍 다소에서 살던 바울이 안디옥을 보더니 소아시아를 보고, 소아시아를 보더니 유럽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마침내는 로마까지 보았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가 아닙니까? 촌구석에서 태어난 우리도 복음을 알고 난 후 세계를 보는 눈이 달라졌습니다. 생각이 달라지고, 인생관, 역사관, 가치관이 달라졌습니다. 우리는 사도행전에서 이런 일들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2023년 12월 2일 오전 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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