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30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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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고백

Confession

기도 한국 교회를 위하여

1.

한국교회에 성령의 새 바람을 보내셔서 교회마다 회개의 역사가 일어나게 하시고 회복을 넘어 부흥을 경험하게 하소서.

2.

분열된 한국교회의 교만과 죄악을 용서하시고 오직 복음 안에 하나 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공동체로 거듭나게 하소서.

3.

한국교회를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게 하사 어두운 세상에 영적 대안을 제시하는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게 하소서.

우리가 드로아에서 배로 떠나 사모드라게로 직행하여 이튿날 네아볼리로 가고

행16:11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지금 사도 바울 일행은 제2차 선교 여행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님은 이 선교 여행 중에 아주 독특하게 개입하셨습니다. 그 첫 번째 사건이 바울과 바나바가 싸우고 헤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친하던 두 사람이 헤어져서 서로 다른 길을 갑니다.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구브로로 갔습니다. 바울은 자신도 1차 선교 여행 때 갔었던 구브로 섬에 다시 가고 싶었지만 바나바가 그곳을 택했기 때문에 할 수 없이 다른 길을 택합니다. 그것은 안디옥 위에 있는 수리아 쪽으로 해서 반대 방향으로 돌아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실라를 데리고 갔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선교했던 지역을 하나씩 점검했습니다. 선교도 계속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계속해서 놀랍고도 새로운 방법으로 그들을 인도하셨습니다. 그것은 바울이 전혀 예측하지 못한 인도였습니다. 그는 소아시아로 가서 선교하기를 원했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막으셨습니다. 그는 무시아에서 비두니아로 가려고 했습니다. 그 곳은 내륙 쪽입니다. 그러나 성령님은 그것을 막으신 것입니다.

그는 할 수 없이 항구 도시인 드로아를 택하게 됩니다. 그는 드로아 쪽으로 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드로아 다음은 바다이기 때문입니다. 바다로 뛰어 들어 갈 수는 없지 않습니까? 계속 전진하면서 선교해야 하는데 드로아에서는 그 가능성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바울은 그곳으로 갈 마음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자꾸만 드로아로 몰고 가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닫힌 문과 열린 문을 보았습니다.

어떤 문은 우리가 아무리 두드려도 자꾸 닫힙니다. 기도를 하지 않아서도 아니고 금식을 하지 않아서도 아닙니다. 내가 무슨 실수를 하고 죄를 지어서도 아닙니다. 그냥 안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있고 간절히 소원해도 안되는 일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일들을 가끔 경험합니다. 특히 예수님을 믿고 헌신했을 때 이런 일을 경험합니다. 내가 가고자 하는 데도 하나님이 못 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는 하나님이 그 쪽으로 가는 문을 닫으신 것입니다.

왜 문이 닫혔을까요? 내가 무슨 실수를 해서 그럴까요? 내게 믿음이 없어서 그럴까요? 그런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데 문이 닫혔다는 것은 다른 한 쪽이 열려 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문을 닫지는 않으십니다. 한쪽 문이 닫혔다면 하나님은 내가 알지 못하는 다른 한 문을 열어 놓고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셔서 홍해로 데려오셨을 때, 인간의 눈으로 보면 절대 불가능한 상황 속에 그들을 집어넣으신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계획 속에는 홍해를 가르는 계획이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안에서 절망은 결코 절망이 아닙니다. 믿음의 눈으로 보면 그것은 기적을 일으키는 계기입니다. 우리의 생애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결혼, 직장, 헌신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때는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행16:6-7을 통해 그것을 배웠습니다.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그들이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

행16:6-7

성령이 아시아에서 더 이상 복음을 전하지 못하게 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7절을 보면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때로는 우리의 믿음을 테스트하기 위하여 문이 닫히는 고난이 오기도 합니다. 그럴 때는 그것을 뚫고 나가야 합니다. 인내하고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가야 합니다. 두드리는 자에게 문이 열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방향을 바꾸실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이런 시험과는 다른 문제입니다.

하나님이 왜 소아시아 선교의 문을 막으셨을까요? 소아시아는 선교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잘못 해석하면 ‘거기에는 하나님의 뜻이 없었기 때문이다’ 혹은 ‘그 곳은 하나님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불필요해서, 중요하지 않아서 그렇게 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에게는 그곳도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 곳도 전도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바울의 발걸음을 막으신 가장 큰 이유는 하나님의 계획이 아시아에만 국한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아시아를 넘어서 유럽으로 복음이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에게 유럽의 문을 열어 주시고, 그의 마음을 넓히시고 생각을 깊게 만드신 것입니다.

대부분의 인간은 누구를 막론하고 자기 중심적입니다. 자기 일, 자기 헌신만 중요하게 여깁니다. 자기가 사는 곳, 자기가 헌신한 곳만 중요하게 여깁니다. 우리를 예로 들면 우리 구역, 우리 선교회, 우리 교회, 우리나라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생각을 깨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 틀을 벗어나기를 원합니다. 우리 교회가 중요하지 않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그것을 벗어나라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을 벗어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하나님은 바울에게 이것을 가르치시기 위해 소아시아로 가는 문을 막으셨습니다.

우리는 이미 행1:8을 살펴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행1:8

이것이 하나님의 역사의 섭리요, 경륜이요, 철학입니다. 그것 때문에 하나님은 예루살렘의 한 다락방에 모인 사람들에게 오순절 날에 성령을 주신 것입니다. 그때 사람들은 성령의 불을 체험했습니다. 온 집안에 급하고 강한 바람으로 가득 찼습니다. 성령의 불이 각 사람들의 머리 위에 임하였습니다. 불이 역사하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로켓에 불을 붙인 것 같았습니다. 발사 준비된 이 로켓은 굉장한 소리를 내면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오순절 사건입니다.

성령이 임하자 회개의 역사가 일어났고 방언을 말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기적이 일어나기도 했으며, 3,000명이 와서 세례를 받는 일도 있었습니다. 성령님은 순식간에 능력과 기적과 축복을 예루살렘 교회에 불어 넣으셨습니다. 그러나 이는 예루살렘 교회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전 세계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역사를 전진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시작이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예루살렘에만 주신 복인 줄 알았습니다. 물론 하나님은 예루살렘을 사랑하십니다. 그러나 예루살렘만 사랑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열방과 온 땅과 온 인류를 사랑하십니다. 그런데도 예루살렘 교회의 사람들은 자기 백성, 자기 민족, 자기 공동체만 사랑하시는 줄로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루살렘을 떠날 생각을 안 했습니다. 예루살렘에 수많은 이적과 능력이 나타나고 수많은 사람들이 모이기 때문에 그곳에 왕국을 세우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교회에 복을 주신 것은 우리만의 왕국을 세우라는 뜻입니까? 아닙니다. 그것은 세계를 향하라는 뜻입니다. 열방을 향해 가라는 뜻입니다.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서 우리 교회에게 복을 주신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라고 믿음을 주시고, 사랑을 주시고, 돈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 뜻을 깨닫지 못하고 우리만의 왕국을 세우려고 한다면 하나님은 굉장히 섭섭해 하실 것입니다.

예루살렘 교인들 안에 이런 모습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복음을 위해서 그들에게 핍박을 허락하시고 사방으로 흩어지게 하셨습니다. 그들은 핍박 때문에 할 수 없이 온 유대와 사마리아로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지금 하나님은 이와 똑같은 원리를 바울에게도 적용하십니다. 소아시아에는 아직도 할 일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울을 그곳에 머물러 있게 하지 않으시고 유럽으로 이동시키십니다. 이는 세계를 품으라는 것입니다. 지경을 넓히고, 기도 제목을 바꾸고, 생각의 틀을 깨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우리에게도 우리의 인생 궤도를 수정하라고 도전하십니다. 이는 우리의 계획이 나쁘거나 불필요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것보다 더 놀랍고 엄청난 계획을 갖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다시 오시기 전에, 이 시대가 끝나기 전에 이 세계를 향한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울의 소아시아 방문을 막으신 일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에게 닫힌 문은 우연의 문이 아닙니다. 그것은 분명히 필연이고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또한 닫힌 문은 다른 한 문이 열려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문이 닫혔을 때 결코 좌절할 필요가 없습니다. 반드시 어디엔가 하나님이 열어 놓으신 문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절망은 결코 영원한 절망이 아니며, 우리 인생의 패배도 결코 완전한 패배가 아닙니다. 그것은 또 하나의 새로운 신호탄입니다.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한 사람을 좌절합니다. 이것을 깨닫지 못한 사람은 매사에 부정적이고 조그만 실패에도 쉽게 포기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좌절감을 맛보고 자살하고픈 충동을 느낍니다. 똑똑한 사람들이 그런 경우가 더 많습니다. 인간 존재란 어떻게 보면 한없이 무가치하고 비참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자신을 생각하면 자살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되어 있습니다. 자기를 열심히 묵상하며, ‘너 자신을 알라’ 그러면 자살하고 싶어집니다. 자신을 보면 굉장히 멋있을 것 같지만, 사실은 비참해집니다. 절망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알면 알수록 소망이 생깁니다. 하나님을 알면 알수록 기쁘고 우리의 존재의 의미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너무 자신을 묵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깊이 묵상하십시오. 그러면 인생의 가치가 보석처럼 빛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좌절할 이유가 없습니다. 아직도 어려운 아프리카 사람의 입장에서 우리 자신을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는 쓰일 곳이 너무 많은 사람입니다. 수많은 약한 사람들이 우리의 따뜻한 손길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공부는 별로 못했어도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우리는 필요한 사람입니다. 살 가치가 있고 의미가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얼마든지 줄 것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렇습니다. 더 이상 좌절한 필요도, 열등감을 느낄 이유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필요와 우리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우리는 참으로 가치 있고 소중한 존재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쓰고자 하십니다.

저는 배운 것이 없는데요, 가진 것도 없는데요. 그러면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그래 배운 것이 없는 네가 좋다. 가진 것이 없는 네가 좋다. 그래서 겸손할 수 있지 않니? 배운 것이 많고 가진 것이 많아서 자만하고 교만한 사람보다는 가진 것이 없어서 겸손할 수 있는 네가 좋다”하실 것입니다.

2023년 12월 1일 오전 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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