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8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기도 동성애를 두고 기도합니다.
동성애를 옹호하며 하나님이 세우신 창조 질서를 거스르는 문화적 기류가 끊어지게 하시고 이를 긍정하고 지지하는 거짓과 궤변들이 무너지게 하소서.
미디어를 통해 미화되는 동성애의 실체가 드러나게 하시고 다음 세대들이 동성애에 빠지지 않도록 가정과 교회가 더욱 깨어 가르치며 기도하게 하소서.
한국교회가 성령 안에 하나 되어 동성애와 포괄적 차별 금지법을 막아내게 하시고 동성애가 합법화되지 않는 거룩한 나라가 되게 하소서.
여러 성으로 다녀 갈 때에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이 작정한 규례를 그들에게 주어 지키게 하니 이에 여러 교회가 믿음이 더 굳건해지고 수가 날마다 늘어가니라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그들이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
행16:4-7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여러 성으로 다녀 갈 때에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이 작정한 규례를 그들에게 주어 지키게 하니"
행16:4바나바와 헤어진 바울은 실라를 택하여 제1차 선교를 했던 마지막 지점부터 시작하여 양육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1절에 기록된 것처럼 더베와 루스드라까지 왔습니다. 그는 거기서 디모데라는 청년을 만나게 됩니다. 이렇게 세 사람이 한 팀이 되어 여러 성을 다녀 갈 때에 그들에게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이 작정한 규례를 그들에게 주어 지키게 했습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이 작정한 규례가 무엇입니까?
첫째는 이방인들에게 구원의 필수 조건이 아닌 율법의 멍에를 지우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그 분의 보혈로만 완전하고도 영원한 구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예수 믿고 구원받은 것에 그치지 않고 구원 받은 자로서 합당한 삶을 살도록 그들을 가르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도록 하라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바울 일행이 여러 성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전달한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이 작정한 규례는 성도들이 지켜야 할 최소한의 규칙들이었습니다. 구원의 조건은 아니었지만 그 사람이 참 성도인지의 여부를 판가름하는 다림줄과 같았습니다. 또한 교회 전체가 그러한 규칙들을 따를 때 타락한 세상 속에서 바르게 성장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성도다운 삶을 살고 바른 신앙 성장을 돕기 위해서는 규례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다운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우리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자신들보다 나은 사람들이기를 기대합니다. 그들은 우리에게 도덕적으로나 윤리적으로 더 높은 수준의 삶을 요구합니다. 우리가 같은 잘못을 해도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보다 더 비판을 받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우리가 세상 사람들과 분명히 구별되는 삶을 살기 원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세상을 적극적으로 변화시키기를 원하십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마5:13-14우리는 세상의 소금입니다. 세상이 죄로 인해 썩어져 가는 것을 막아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또한 소금은 음식에 맛을 내는 역할을 하는 것처럼 우리는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창조주 하나님을 위해 사는 인생의 맛을 일깨워 주어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빛입니다. 산 위의 동네가 숨겨지지 않는 것처럼 우리가 어디서 무엇을 하고 누구를 만나든지 예수님을 따르는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이 분명하게 드러나야 합니다. 그리고 어두운 세상에 기쁨과 소망, 은혜의 빛을 비추어야 합니다.
우리 한국의 크리스찬들이 세상 사람들과 다르게 사는 것 가운데 가장 먼저 드러나는 부분이 술과 담배를 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구원의 조건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가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임을 보여 주는 징표입니다. 물론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았다고 해서 옛날 습관이 하루 아침에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성령 충만을 받고 하나님의 은혜를 맛보다 보면 세상적인 즐거움에 더 이상 마음이 가지 않게 됩니다.
제가 아는 어떤 분은 안수 집사님이 되어서도 담배를 끊지 못했습니다. 수없이 도전을 했지만 쉽게 끊어지지 않았습니다. 다시는 담배를 피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담배를 버렸는데 잠을 자려니까 담배 생각이 나서 꽁초가 없나하고 찾는 일이 수없이 반복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몸살이 심하게 났습니다. 그 이후부터 담배 냄새도 맡기 싫어졌다고 합니다.
"이에 여러 교회가 믿음이 더 굳건해지고 수가 날마다 늘어가니라"
행16:5바울과 실라가 여러 성을 다녀갈 때에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이 작정한 규례를 그들에게 주어 지키게 했더니 여러 교회가 믿음이 더 굳어지고 수가 날마다 늘어갔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사도행전 교회의 한 특징을 보게 됩니다. “여러 교회가 믿음이 더 굳건해지고 수가 날마다 늘어가니라” 이것이 바로 사도행전 교회의 특징입니다. 사도행전의 교회는 멈출 줄 몰랐습니다.
이것이 곧 교회사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정체할 줄 모르고 계속해서 성장해 왔습니다. 그들은 무덤을 파지 않았습니다. 계속 하나님의 생명을 생산하였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교회의 모습입니다.
두 발 자전거가 쓰러지지 않으려면 계속 굴러야 합니다. 정지하면 넘어집니다. 자전거가 앞으로 계속 전진해야 하는 것처럼 그리스도인들과 하나님의 교회도 계속 전진해야 쓰러지지 않습니다. 그냥 서 있을 수 없는 존재들입니다.
복음을 가진 사람들, 성령의 능력을 가진 사람들은 뒤돌아보지 않고 계속해서 푯대를 향하여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도 그런 전진이 있기를 바랍니다.
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다는 말은 수치스러운 말입니다. 십년 전이나 후나 교인 수가 똑같다면, 늘 그 사람이 그 사람이고, 오는 사람도 없고 가는 사람도 없다면, 그 교회는 무덤을 파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계속 흘러가야 합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계속해서 생산하고 움직여야 합니다. 이것이 살아 숨 쉬는 교회요, 이것이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교회입니다. 환난과 핍박 속에서도 날로 성장하며 날마다 수가 불어나는 것이 바람직한 교회의 모습니다.
이 원리는 한 개인에게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우리 각 사람은 주님을 다시 만날 때까지 계속해서 성장해야 합니다. 그래야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열심히 복음을 전하는 한 팀, 즉 바울과 실라와 디모데에게 문제가 생겼습니다.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그들이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
행16:6-7사람이 막았다면 괜찮을 것입니다. 오히려 더 신났을지도 모릅니다. 사람들이 전도하지 못하도록 돌을 던졌다면 죽음을 무릅쓰고서 라도 밀고 나갔을 텐데, 문제는 성령께서 막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간 심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성령이 아시아에게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우리는 여기서 닫힌 문을 봅니다. 그러나 2천년이 지난 지금, 그렇게 닫혔던 문, 소아시아와 중앙아시아의 문이 열리고 있습니다. 한국 교회의 많은 선교사님들이 그곳에 가 계십니다. 이제는 닫혀 있던 문들이 서서히 열리는 것을 봅니다. 열린 문이 있고 닫힌 문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 뜻을 다 알지 못합니다. 그것은 선교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에 속해 있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 바울이 아시아로 가는 것을 막으셨습니다. 바울은 전도 여행을 하면서 많은 열매를 맺고서 너무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계속 전도하려고 하는데, 성령님이 그것을 막으신 것입니다.
빌립이 사마리아 땅에서 전도할 때도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기적이 일어나고 능력이 나타나며, 한창 전도가 잘되고 있는데 성령께서 광야로 가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광야는 사람이 없는 곳입니다. 사람이 많은 곳에서 전도해도 부족한데 사람들이 없는 곳으로 가라고 하시니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럼에도 빌립은 기적이 일어나고 있는 사마리아 땅을 뒤로 하고 성령께 순종하여 광야로 갔습니다. 거기서 에디오피아 내시를 만나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예비하신 것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생각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사람의 생각과 다릅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것과 사람이 보기에 좋은 것은 다릅니다. 그래서 소위 합리적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일을 절대로 이해하지 못합니다.
성령께서는 친히 당신의 일을 사람의 생각과 다른 방법으로 이루어 가십니다. 이것이 사도행전의 내용입니다. 이것은 개인의 역사에서나 민족의 역사에서나 교회의 역사에서나 다 찾아볼 수 있습니다.
지금 성령께서 아시아 선교의 길을 막고 계십니다. 그래서 바울 일행은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을 건너가서 무시아 앞에 이르렀습니다. 그는 무시아에서 드로아로 갈 것이냐 비두니아로 갈 것이냐를 놓고 갈등하고 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바울이 비두니아 쪽으로 가는 것을 계속 막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뭔가 열심히 하고 있는데 자꾸 막히면 거기에 하나님이 개입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물론 마귀가 방해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둘을 신중하게 잘 분별해야 합니다. 만약 마귀가 막고 있는 것이라면 뚫고 나가야 합니다. 교회를 못 나가게 하는데 ‘이것이 하나님의 뜻인가 보다’하면서 안 나가면 안됩니다. 그럴 경우에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더러운 귀신을 물리치고 그 어려움을 넘어가야 합니다.
그리고 만약 하나님이 막으시는 것이라면 주의 깊게 살펴서 다른 길을 찾으십시오. 하나님이 어떤 일을 막으실 때는 반드시 다른 길을 열어 놓으시기 때문입니다. 그 길을 찾으십시오. 여러분에게 영안이 있어 이를 분별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결정한 것을 따라서 가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생각한 것을 주장하면서 하나님도 그 길로 가셔야 된다는 논리를 펴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막으시면 순종하여 다른 길로 가십시오. 이것이 우리가 본문 6-7에서 배우는 교훈입니다.
2023년 11월 29일 오전 6:3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