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2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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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고백

Confession

기도 국군 장병들을 위하여

1.

국군 장병들에게 건강한 육체와 마음을 주셔서 부여된 임무를 완수할 수 있게 인도하시고 모든 사고의 위험으로부터 장병들을 평안하게 지켜 주소서.

2.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의 장병들이 영적 광야인 군대에서 자신의 믿음을 지키며 선한 영향력을 끼치게 하시고 이들을 통해 군 복음화가 이루어지게 하소서.

3.

군 선교를 위해 힘쓰는 사역자들과 성도들이 영혼 사랑의 열정으로 헌신할 수 있도록 강건함을 허락하시고 군인교회를 통해 예수님을 믿지 않는 영혼들이 구원받는 열매가 풍성하게 하소서.

며칠 후에 바울이 바나바더러 말하되 우리가 주의 말씀을 전한 각 성으로 다시 가서 형제들이 어떠한가 방문하자 하고 바나바는 마가라 하는 요한도 데리고 가고자 하나 바울은 밤빌리아에서 자기들을 떠나 함께 일하러 가지 아니한 자를 데리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 하여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니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 타고 구브로로 가고

행15:36-39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며칠 후에 바울이 바나바더러 말하되 우리가 주의 말씀을 전한 각 성으로 다시 가서 형제들이 어떠한가 방문하자 하고"

행15:36

이 땅에서 가장 큰 고통 가운데 하나가 해산하는 고통이라고 합니다. 어떤 자매 분은 출산할 때마다 남편을 두들겨 팬다고 합니다. 너 때문이야!

왜 남편을 때리는지 잘 이해가 안됩니다. 사실은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은 이후에 그렇게 된 것인데요.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창3:16

아무튼 이상한 것은, 그렇게 해산의 고통이 큼에도 불구하고, 다시 아기를 가지게 되면 또 기뻐한다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모성입니다. 아이를 갖는 기쁨, 출산의 기쁨이 해산의 고통을 이기기 때문이 아닐까요?

사도 바울은 1차 선교 여행에서 무척 많은 고생을 했습니다.

비시디아 안디옥에서는 유대인들이 성내 유력자들은 선동하여 바울과 바나바를 핍박케하여 쫓아내었습니다. 이고니온에서는 두 사도를 능욕하며 돌로 치려고 했습니다. 루스드라에서는 유대인들이 돌로 바울을 쳐서 죽은 줄로 알고 성 밖에 끌어 내쳤습니다.

첫 선교지인 구브로에서 당한 고생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는 않지만 얼마나 힘들었으면 동행했던 마가가 예루살렘으로 돌아갔겠습니까? 왜 선교지에서 이런 어려움이 따르는 것일까요? 선교는 치열한 영적 전쟁이기 때문입니다. 생사를 거는 싸움이기 때문입니다.

마닐라 제2차 로잔 대회 때의 이야기입니다.

1989년 마닐라에서 개최된 제2차 로잔 대회는 세계 모든 나라에서 온 지도자 4,500명이 파견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지상 최대 명령인 선교 전략들을 계획하기 위하여 모였습니다. 그 당시 이 대회를 위하여 중보 기도자들이 하루 24시간씩 기도하며 후원하고 있었습니다. 그 대회가 시작되기 전날 저녁, 12 나라에서 온 50명의 중보 기도자들은 개인적인 인사를 나눈 후 기도실에서 모였습니다.

그 시간은 자기 소개 시간이었는데, 그 중 필리핀의 중보 기도자 주안너 프란시스코에게 갑자기 생명을 위협할 정도의 천식이 덮쳤습니다. 너무나도 심각하고 위급하였기 때문에 그 집회는 연기 되어야 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혼란 속에서 강력한 기도 용사 메리 랜스 시스크와 신디 제이콥스에게, 이것은 이 대회를 저지시키려고 하는 필리핀 주술 종교의 저주였음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러한 저주들을 처리하는 것은 메리 랜스 시스크나 신디 제이콥스에게는 새로운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즉각 손을 잡고, 예수님께서 주신 권세를 사용하여 재빨리 주안너와 로잔 대회 위에 덮친 주술신의 저주를 무너뜨렸습니다.

그 장소에 있었던 의사는 주안너에게 즉각 입원해야 한다고 하였지만, 기도 후 그녀에게 내렸던 저주는 사라졌고 바로 완전한 건강을 되찾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 자리에 있었던 의사에 따르면, 주안너 프란시스코는 그날 저녁에 죽을 수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세계 복음화는 생사를 거는 싸움입니다. 이 싸움터에는 언제나 치열한 전투가 있기 마련입니다.

하나님은 사도 바울에게 말씀하시기를 “이방인들의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즉, 전도란 믿지 않는 사람들을 지배하고 있는 사단의 권세를 무너뜨림으로써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단이 결코 전투없이, 그의 권세 하에 있는 어떤 사람도 포기하지 않을 것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이와같이 영적 싸움이 너무나 치열하기 때문에, 마가 요한이 힘이 들어서 선교를 중도 포기했다고 보여 집니다.

이렇게 힘든 싸움을 통해 세워진 교회들이 지금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 사도 바울은 돌아보고 싶었습니다. 그러므로 제2차 선교 여행을 양육여행이라 해야 맞습니다. 그들이 1차 선교 여행 때는 선교하러 갔지만 2차 선교여행에는 선교가 아니라 사실은 양육하러 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후에 하나님께서 양육하러 가던 그들의 진로를 그들이 생각지도 못할 방향으로 바꾸셔서 유럽 선교 여행이 되게 하셨습니다. 즉 소아시아를 전도했던 그들을 마게도냐 쪽으로 가게 하셔서 유럽을 선교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이것이 2차 선교 여행입니다.

우리는 36절에서 “형제들이 어떠한가”라는 말을 발견하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가 복음의 씨를 뿌려 선교했던 사람들, 자기가 눈물을 흘리며 기도해 주고 귀신을 쫓아내주고 사랑을 베풀어 주었던 사람들의 소식이 몹시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찾아가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선교사의 마음입니다. 이것이 구역장의 마음이요, 이것이 교사의 마음인 것입니다. 이 마음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선교지에 가서 현지 사람들을 만나고 집을 짓고 신학교를 만들고 병원을 만드는 것이 선교사가 아니라 바로 이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이 선교사입니다. 설교하는 사람이 목사가 아니라 성도들을 향하여 이 마음을 가진 사람이 목사인 것입니다.

바울은 지금 형제들이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하는 것이 가장 궁금했습니다. ‘내가 복음을 전한 형제들은 그 후에 어떻게 되었을까? 잘 믿고 있을까? 혹시 시험에 들지는 않았을까? 시련과 고난을 겪으면서 마음에 상처를 받고 신앙을 버린 것은 아닐까?’

이것은 자식을, 특히 병든 자식을 둔 부모의 마음과도 같습니다. 그리고 이런 애틋한 마음이 바로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그래서 그는 바나바에게 형제들을 방문하기 위해 다시 떠나자고 제안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37-39입니다.

"바나바는 마가라 하는 요한도 데리고 가고자 하나 바울은 밤빌리아에서 자기들을 떠나 함께 일하러 가지 아니한 자를 데리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 하여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니 바나바는 미가를 데리고 배 타고 구브로로 가고"

행15:37-39

마가라 하는 요한 한 사람 때문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마가는 1차 선교여행 때에 수종자로 함께 출발한 사람입니다. 그는 바나바의 생질입니다. 마가는 선교 여행을 간다니까 너무 신나서 따라나섰습니다. 그런데 가 보니까 고생스럽기만 했습니다. 잠자리가 불편하고 먹을 것도 형편 없었습니다. 또 어떤 때는 귀신이 나가고 사람들이 핍박을 하는데 겁이 났습니다. 불편했습니다. 가기 전까지는 좋아서 따라갔지만 막상 가 보니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밤빌리아에서 도중하차하고 맙니다. 이런 사연이 1차 선교 여행 때 있었습니다.

아마도 사도 바울은 그때 무척 화가 났던 모양입니다. 그 때문에 마음 속에 맺힌 게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마가 같은 사람은 옛날에도 있고 지금도 있습니다. 부름받아 나선 이 몸 어디든지 가오리다 했는데, 가 보니 화장실도 없고, 먹을 것도 없고, 불편하고 힘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도중하차해 버립니다.

이런 사람을 바나바는 또 데리고 가겠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화가 났습니다. “안된다. 못 데려간다.” 두 사람은 이 문제로 싸웠습니다. 싸움이 좀 지나쳤는지 그들은 결국 헤어졌습니다. 도대체 바나바와 바울 사이에 헤어질 정도의 일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마가가 그렇게 중요하단 말입니까? 아주 큰일을 앞두고 둘은 이렇게 헤어졌습니다.

그런데 바로 여기에 만남과 헤어짐의 원리가 있습니다. 39절에서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니”

아무리 위대한 사도라 할지라도 인간적인 실수와 약점이 있는 것을 우리가 보게 됩니다. 그리고 성경은 이런 인간적인 실수와 약점을 감추지 않고 그대로 다 드러내 놓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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