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0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기도 농어촌 교회와 개척 교회를 위하여
한 영혼을 바라보며 목양에 힘쓰는 농어촌 교회 목회자들을 축복하여 주시고 지역사회를 복음화하는 데 귀하게 사용되는 능력의 종 되게 하소서.
교회의 연약한 상황들로 인해 좌절하거나 낙심치 않게 하시고 도시 교회들이 한 지체 의식으로 농어촌 교회와 개척 교회를 돕는 데 열심을 내게 하소서.
농어촌 교회와 개척 교회의 수고가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고 많은 결실을 맺게 하시며 속한 지역에서 존경받는 공동체 되게 하소서.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멀리할지니라 이에 스스로 삼가면 잘되리라 평안함을 원하노라 하였더라 그들이 작별하고 안디옥에 내려가 무리를 모은 후에 편지를 전하니 읽고 그 위로한 말을 기뻐하더라
행15:29-31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멀리할지니라 이에 스스로 삼가면 잘되리라 평안함을 원하노라 하였더라"
행15:29본문에 대단히 중요한 말씀이 있습니다. "아애 스스로 삼가면 잘되리라 평안함을 원하노라."
"스스로 삼가면" 자율적으로 하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아름다움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유대사람들은 십계명을 바로 지키자고 무려 613가지의 부칙을 만들었는데 저들이 말하기를 천사가 가르쳐준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 전설을 가진 부칙 613가지를 저들은 다 지켜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래놓고 저들은 스스로 지켰다고 교만하고, 못 지켰다고 멸시하고 했습니다. 많이 잘못된 일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율법을 보세요.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전에 당시의 종교지도자들하고 자꾸 충돌하셨는데 내용인즉 주로 율법에 대한 해석 때문이었습니다. 다 같은 율법을 가지고 있는데 해석이 다릅니다. 유대사람들은 율법을 지키되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자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소유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공로를 세우겠다는 데 목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히려 하나님 앞에 보다는 사람 앞에 자랑하려는 데에 큰 목적이 있습니다. '나는 이것을 지켰다'--이것을 자기 의로, 자기 자랑으로 삼으려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런 것 다 무시합니다. 예수님의 율법관은 언제나 본질로 돌아갑니다. 본래 이 계명을 왜 만들었느냐--하십니다. 그리고 계명은 전부가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사랑 안에서 해석해야 된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 이것이 율법의 전부다. 이렇게 해석하십니다.
율법 지켜서 천당 가지는 것이 아니다, 자발적으로 지켜야 한다, 억지로 지키고, 벌벌 떨면서 지키고, 저주받을까봐 지키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율법관이 그러했습니다.
이를테면 안식일을 놓고 볼 때에도 유대사람들은 안식일을 지켜 가지고 복 받으려 하고, 지켰다고 자랑하고 못 지켰다고 비난하고 했습니다. 그것도 못 지킬까봐 벌벌 떨고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느냐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느냐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왜 안식일을 주었느냐?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편히 쉬고 시들어진 영혼이 소생함을 받고, 새로운 용기를 얻어서 즐거운 마음으로 일하게 하시려고 우리에게 복 주시기 위하여, 우리의 행복을 위하여 안식일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은 사랑으로 지키고, 감사로 지키고, 자발적으로 지킬 것이라는 것입니다.
미국의 재벌 교인 와너 메이커는 '백화점 왕' 입니다. 이 사람은 대통령의 간청으로 체신부 장관까지 지낸 적도 있습니다. 아주 바쁜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주일날이면 교회에 나가서 교회학교 반사도 하고, 교회학교 교장도 지냈습니다. 그가 한 말에 유명한 것이 있습니다. "내가 주일날 교회에 나가서 봉사하는 것은 본업이고 일주일 동안 일하는 것은 부업이다." 그의 노년에 많은 사람이 "당신은 어떻게 해서 성공한 것 같습니까? 성공한 비결을 말해주세요"하고 요청했습니다. 그는 웃으면서 간단하게 대답했습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바쁘게 사는 것이오." 모름지기 게을러도 안되고 즐겁지 않아도 안됩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법을 지킴에 있어서는 언제나 '즐거운 마음으로'가 먼저입니다. 그리고 부지런히 일할 것입니다.
"그들이 작별하고 안디옥에 내려가 무리를 모은 후에 편지를 전하니 읽고 그 위로한 말을 기뻐하더라"
행15:30-31바나바와 바울 그리고 유다와 실라는 예루살렘 공회에서 결정된 내용이 담긴 편지를 가지고 안디옥에 내려가 무리를 모은 후에 편지를 전했습니다. 그들은 예루살렘 공회에서 보내어 준 편지를 읽고 그 위로한 말을 듣고 기뻐했습니다.
안디옥 교회의 형제들은 바울과 바나바가 예루살렘 공회의 결정을 가지고 오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루살렘에서 온 어떤 형제들이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는 말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 사람들의 말을 들었을 때 자신들의 구원에 대해 걱정이 되고 마음이 불편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루살렘 교회에서 정식으로 파송된 형제들이 전해 준 편지는 잘못된 가르침으로 인해 생긴 걱정과 시름을 한꺼번에 사라지게 해 주고 기쁨을 주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다는 것을 믿지만 누군가 와서 “당신, 진짜 구원 받았습니까? 언제 어디서 어떻게 구원 받았습니까? 구원 받은 증거를 대 보십시오”라고 도전해 오면 “내가 구원 받은 것이 확실한가? 혹시 구원 받지 못한 것은 아닌가?”하고 불안한 마음이 들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 구원받은 증거가 무엇입니까? 여러분의 행위에 있습니까? 느낌에 있습니까? 우리가 어떻게 구원을 받았습니까?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롬10:9-10핵심이 무엇입니까?
1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2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의 죽음과 부활을 네 마음에 믿으면)
예수님이 베드로의 신앙 고백 직후에 자신이 그리스도라는 것과,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할 것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것이 왜 중요합니까? 그 두 가지 사실을 믿어야만 구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2기 사역을 앞두고 무리를 떠나서 제자들과 함께 하시며 예수님이 누구시며 어떤 일을 하셔야 하는 것을 가르쳐 주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2기 사역의 핵심은 십자가 죽음과 부활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하신 일이 많이 있습니다.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고, 병든 자를 고치고, 죽은 자를 살리고, 귀신을 쫓아내시는 등, 많은 일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더 중요한 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돌아가셔야만 했던 것입니다.
다른 모든 것은 선지자를 통해서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어떤 사람의 십자가 죽음을 통해서는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오직 여자의 후손이신 예수님, 죄 없으신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만이 우리를 죄에서 구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게 되면 하나님은 증거를 주십니다. 그 증거가 무엇입니까?
"우리를 너희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굳건하게 하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그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우리 마음에 성령을 주셨느니라"
고후1:21-22우리 구원의 확실한 보증은 성령님이십니다. 성령님이 우리 안에 계신 증거는 무엇입니까? 성령 세례를 받아 방언을 말하면 더할 나위가 없습니다.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은 것이 확실합니다. 그 외에도 성령이 내주하시는 증거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고전12:3"너희가 아들인 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갈4:6그러므로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은 이상 절대로 구원을 의심하면 안됩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구원은 내 마음이 답답하고 괴롭고 시험에 든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은 우리의 감정이나 행위에 의해서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근거해서 우리에게 주어집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주로 고백하고, 하나님을 아버지로 고백했으면 이 구원은 그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변함없는 하나님의 말씀과 복음의 진리를 붙잡고 담대히 나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구원의 확신입니다.
2023년 11월 21일 오전 6:4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