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7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기도 행복한 가정을 위하여
가정마다 예배와 기도가 멈추지 않으며 아름다운 신앙이 은혜 안에 대물림되는 믿음의 명문 가정이 되게 하소서.
가정의 모든 관계가 화평케 하시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평안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서로를 사랑하고 섬기는 아름다운 가정이 되게 하소서.
자녀들은 주 안에서 부모에게 순종하고 부모는 자녀들을 주의 교훈과 훈계로 바르게 양육하는 성경적인 부모와 자녀의 관계가 되게 하소서.
사람을 택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는 자인 우리가 사랑하는 바나바와 바울과 함께 너희에게 보내기를 만장일치로 결정하였노라 그리하여 유다와 실라를 보내니 그들도 이 일을 말로 전하리라
행15:25-27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사람을 택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며 우리가 사랑하는 바나바와 바울과 함께 너희에게 보내기를 만장일치로 결정하였노라"
행15:25안디옥 교회의 문제는 정식으로 교회의 파송을 받지도 않은 이들이 잘못된 가르침을 전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따라서 예루살렘 교회는 유다와 실라, 바울과 바나바가 교회의 인정을 받은 대표자라는 것을 밝혀둘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특별히 바울과 바나바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는 자라고 강조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생명을 아끼지 않는 충성된 사람이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이다, 전적으로 신뢰하는 사람이다 라고 강조하고 있으니 이 또한 우리가 생각해야 할 문제입니다.
편지를 보내면서 '이 편지를 가지고 가는 이 사람은 참으로 훌륭한 사람입니다'하고 추천했다면 그 사람은 믿을만한 사람입니다. 이 사람을 믿어야 합니다, 이 사람의 말을 잘 들으시오--이런 내용이 됩니다. 대단히 중요한 일입니다.
또한 만장일치로 결정하였노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예루살렘교회가 많은 변론을 했는데, 그 분분했던 변론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없습니다. 만장일치로 결정하였노라 --그것뿐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회의를 해서 오래 떠들었습니다. 떠들 수 있습니다. 회의란 그래야 되는 것입니다. 분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단 결론이 났다 하면 딴소리 할 것 없습니다. 딴소리가 있으면 안됩니다. "이렇게 결정됐습니다"라는 말만 해야 합니다.
많이 싸웠다느니 누가 이렇게 말하고 누구는 저렇게 말했다느니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배당 건축할 때에도 당회에서, 제직회에서 다 결정했습니다. 그렇게 결정이 난 이상 딴소리는 없어야 되는데 나중에 보니 말이 많습니다.
"사람을 택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며 우리가 사랑하는 바나바와 바울과 함께 너희에게 보내기를 만장일치로 결정하였노라"
행15:25누가 반대했다느니 누가 어떻게 했다느니…… 쓸데없는 소리는 왜 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민주주의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이라 하겠습니다.
누가 무슨 주장을 했건 그런 것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결정되었으면 끝난 것입니다. 만장일치로 결정했으면 더욱 그렇습니다. 이젠 아무 말이 없어야 합니다.
오늘의 본문에도 보면 나타나 있습니다. 상당히 여러 시간동안 많은 변론을 했습니다.
"사도와 장로들이 이 일을 의논하러 모여 많은 변론이 있은 후에"
행15:6-7그러나 일단 결정이 난 마당에서는 분명히 일치가결 하였노라 하고 끝입니다.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어떤 경우에든지 그렇습니다. 의견이 분분할 수 있습니다. 열띤 토론이 있을 수 있습니다. 갑론을박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결과가 나타난 다음에는 아무 말도 하지 마세요. 누구는 극심하게 반대했고, 누구는 지지했고…… 이런 소리 절대로 해서는 안됩니다. 기억에 남아도 안됩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유다와 실라, 바울과 바나바를 파송하는 일에 만장일치를 이루었습니다. 한 사람도 이에 대해 반대하지 않았습니다. 주의 일을 할 때 한 마음이 되는 것만큼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성령 안에서 하나 되어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아멘’으로 화답하고 함께 힘쓸 때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과 은혜가 나타납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문제를 해결할 때 보여주었던 하나 되는 모습은 모든 교회가 본받아야 할 모습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의 모습입니다. 이러한 교회는 누구 한 사람의 힘으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가 성령으로 하나 되고 말씀 앞에 바로 서서 주님께 온전히 헌신하는 삶을 살아갈 때 이루어집니다.
"그리하여 유다와 실라를 보내니 그들도 이 일을 말로 전하리라"
행15:27이 일을 : 예루살렘 공회의 결정을
본문에는 예루살렘 공회에서 얻은 결과를 이방사람들에게 전하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도행전 15장은 참으로 의미가 깊은 장입니다. 맨 처음 예루살렘 공회로 모였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 때문입니까?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받지 못하리라 하니 바울 및 바나바와 그들 사이에 적지 아니한 다툼과 변론이 일어난지라 형제들이 이 문제에 대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및 그 중의 몇 사람을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에게 보내기로 작정하니라"
행15:1-2사도와 장로들이 이 일을 의논하러 모여 많은 변론이 있은 후에 베드로가 일어나서 자기의 의견을 개진했습니다. 그 다음에 바나바와 바울이 일어나서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통하여 하신 일을 간증했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 교회의 의장인 야고보가 결론을 내려 줍니다.
고맙게도 야고보의 영적 권세와 권위에 모두가 순종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의 사도와 장로, 그리고 온 성도들은 야고보의 결정을 듣고 그대로 따르기로 했습니다. 이방인들도 모세의 율법대로 할례를 받아야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했던 바리새파 출신 그리스도인들도 더 이상 이견을 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 교회는 교회의 결정 사항을 안디옥 교회에 전달하기 위해 사람들을 파송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그래서 안디옥 교회에서 대표로 온 바울과 바나바와 함께 바사바라 하는 유다와 실라 두 사람을 더 뽑았습니다.
사람만 보낸 게 아니라 편지도 써서 보냅니다. 왜냐하면 말이란 와전되기 쉽거든요. 말이란 몇 사람 건너가다 보면 와전이 되기 쉽습니다.
말과 글은 참 묘한 관계에 있어요. 아시는 대로 글이라는 것은 모든 것을 다 표현할 수 없어요. 사람들은 자기 생각의 10분의 1밖에는 글로 표현할 수 없다고 합니다. 소설가라든가 시인이라든가 하는 글의 전문가들도 50% 정도만 겨우 표현할 수 있다고 합니다.
어쨌든 사람은 스스로 생각하는 것을 10분의 1정도밖에는 글로 옮기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글로 옮길 때에는 어쩔 수 없이 그 내용과 사상이 축소되는 것입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역시 글에는 장점이 있어요. 일단 기록해놓으면 이것은 요지부동입니다. 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디 가나 똑같이 전해집니다. 2000년 전에도 오늘도 그대로 읽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말은 그렇지 못해요. 말은 설명은 길게 할 수 있습니다. 자유롭게 할 수 있습니다. 일시에 전달할 때에는 효과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에는 이 사람, 저 사람에게 건너가다가 빠지고 붙여지고 하는 사이에 영 딴소리로 둔갑을 하는가 하면 침소봉대 되기도 합니다. 엉뚱한 소리로 돼버리는 것입니다.
말로 전해지는 것과 글로 전해지는 것이 합칠 때에 가장 바른 증거가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말로만 가지고는 부족합니다. 글만 가지고도 부족합니다. 이것은 엄연한 이치입니다.
자, 이제 예루살렘교회에서 결정이 났어요. 결정된 것을 말로 전하라 하면 그만일 것 같지만 글로 써서 보냈어요. 그래야 확실하니까요. 글만 보낸 것도 아니고 바울과 바나바까지 보냈어요. 그 글 가지고 가서 말하라고 사람도 보낸 것입니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이치가 있어요. 사람을 보내고도 또 하나 걱정이 있어요. 아주 신중히 하고 있습니다. 가는 사람들이 당사자들입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사안과 직접 관계되는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그런고로 그들의 말씀에 편견이 개입될 수도 있고 듣는 사람들이 편견을 가지고 들을 수도 있는 일입니다. 그래서 제3자인 증인들을 보내는 것입니다. 오는 본문에 나오는 유다와 실라가 그들입니다. 예루살렘공회에서 파송되는 사람들입니다. 증인 두 사람입니다.
자기가 자기에 대해서 전하는 것은 아무래도 완전치 못한 법입니다. 그래서 유다와 실라를 함께 보내어 바울이 설명을 하고, 유다가 옆에서 증거를 하고 하는 것이지요. 가능한 한 예루살렘교회에서 의논 되었던 바 본뜻이 가감 없이 전해지기를 시도한 것입니다.
2023년 11월 18일 오전 6:4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