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5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기도 청년 세대들을 위하여
이 땅의 청년들이 대세가 아닌 진리를 따르고 야망이 아닌 하나님이 주시는 건강한 비전을 품고 전진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 구원의 기쁨과 감격을 가지고 살아가게 하시고 어떤 상황 속에서도 그리스도를 선택할 수 있는 믿음의 세대, 기도로 기적을 일으키는 부흥의 세대가 되게 하소서.
성적 타락 및 각종 중독으로부터 청년들을 지켜 주셔서 거룩하고 순결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도록 친히 인도하여 주소서.
이에 사도와 장로와 온 교회가 그 중에서 사람들을 택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함께 안디옥으로 보내기를 결정하니 곧 형제 중에 인도자인 바사바라 하는 유다와 실라더라
행15:22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이에 사도와 장로와 온 교회가 그 중에서 사람들을 택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함께 안디옥으로 보내기를 결정하니 곧 형제 중에 인도자인 바사바라 하는 유다와 실라더라"
행15:22오늘의 본문에는 예루살렘 공의회에서 얻은 결과를 이방사람들에게 전하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도행전 15장은 참으로 의미가 깊은 장입니다. 맨 처음 예루살렘 공의회가 모였습니다.
사도와 장로들이 이 일을 의논하러 모여 많은 변론이 있은 후에 베드로가 일어나서 자기의 의견을 개진했습니다. 그 다음에 바나바와 바울이 일어나서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통하여 하신 일을 간증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시간에 본대로 예루살렘 교회의 제 1대 감독인 야고보가 아주 덕스럽게, 어느 한쪽에 치우침이 없이 그리고 가장 요긴한 결론을 내려 줍니다.
고맙게도 야고보의 영적 권세와 권위에 모두가 순종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의 사도와 장로, 그리고 온 성도들은 야고보의 결정을 듣고 그대로 따르기로 했습니다. 이방인들도 모세의 율법대로 할례를 받아야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했던 바리새파 출신 그리스도인들도 더 이상 이견을 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 교회는 교회의 결정 사항을 안디옥 교회에 전달하기 위해 사람들을 파송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그래서 안디옥 교회에서 대표로 온 바울과 바나바와 함께 바사바라 하는 유다와 실라 두 사람을 더 뽑았습니다.
이러한 예루살렘 교회의 모습은 우리에게 좋은 교훈을 줍니다.
1예루살렘 교회는 안디옥 교회에서 발생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서 지도자의 결정에 순종했습니다.
헬라파 과부들이 구제에 빠져 문제가 되었을 때에도 사도들의 결정에 따라 7 일꾼들을 세우고, 사도들은 기도와 말씀에 전념했습니다. 이처럼 예루살렘 교회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지도자를 중심으로 하나 되는 아름다운 전통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2감정적으로 문제를 해결하지 않았습니다.
교회에서 주님의 일을 하다 보면 의견이 맞지 않아서 갈등이 생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주님을 섬기는 열심은 같지만 때때로 뜻이 맞지 않아 서로 언성을 높이고 험한 말로 상처를 주고 받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해결해야 할 문제보다 서로가 주고받은 말이 더 큰 갈등의 불씨가 되고 그로 인해 감정의 골이 더욱 깊어집니다.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잠16:32사회생활을 할 때도 물론이지만 주님의 일을 할 때는 더욱 마음을 잘 다스려야 합니다. 감정이 상해서 흥분한 상태일수록 목소리를 높이지 말고 지혜롭게 말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예루살렘 교회에서 이 문제를 갖고 논의할 때 큰 소릴 내고 다투지 않았습니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잘 듣고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께서 세워 주신 지도자의 교훈에 따라 평화롭게 해결했습니다.
"이 성전을 건축할 때에 돌을 그 뜨는 곳에서 다듬고 가져다가 건축하였으므로 건축하는 동안에 성전 속에서는 방망이나 도끼나 모든 철 연장 소리가 들리지 아니하였으며 라고 말씀합니다."
왕상6:7은솔로몬은 예루살렘에서 성전을 건축할 때 성전 안에서는 어떠한 시끄러운 소리도 나지 않게 했습니다. 하나님께 드려질 성전의 분위기마저 거룩하길 원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자녀들이 모인 교회에서는 오직 하나님을 찬양하는 소리와 간구하는 기도 소리만이 울려 퍼져야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생각해야 됩니다. 일치를 해야 하는 경우, 자기 의견을 다 주장하면서는 하나가 되지 못합니다. 어떤 것이든지 서로 양보를 해야 합니다. 적어도 한 발짝씩은 물러설 때에야 비로소 하나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무슨 일에도 100%란 있을 수 없습니다.
가만히 보면 전체가 아니면 전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다 이루든지 아니면 다 버리든지--이는 잘못된 생각입니다. 어느 경우에건 얼마간의 양보를 하면서 하나가 되는 그런 길을 모색해야 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아무리 옳게 생각되는 의견이라 하더라도 100%로 자기 의견이 관철되리라고 생각한다면 바른 생각이 아닙니다. 그래가지고는 가정이고 사회고 나라고 간에 절대로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런 사람들끼리 모이면 회의는 하나마나입니다. 싸우다 맙니다.
언제나 이렇게 상당한 부분에서 양보하면서 일해야 합니다. 근본적인 것일 때에는 양보할 수가 없지만, 근본적인 문제가 아닌, 주변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양보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문화적인 문제라면 얼마든지 양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신앙적인 문제에는 한 치도 양보를 할 수 없겠지마는 문화적인 문제, 생활 풍습에 대한 문제 같은 것이라면, 형식적인 문제라면 얼마든지 양보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을 알고 보면 엄격히 말해서 신앙적 문제에 대해서는 하나되게 마련입니다. 이단이 아닌 이상 하나가 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 못되는 대목은 언제나 문화적인 것, 풍습에 관한 것임을 잘 알아야 합니다. 스스로는 신앙 문제라고 말하는데 알고 보면 그런 게 아닙니다. 속에는 자기 고집, 자기 편견, 자기 우월감 같은 것들이 깊이 뿌리박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진실한 신앙이면, 하나님 앞에 정직하다면, 얼마든지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이치를 우리는 예루살렘 공의회에서 배우게 됩니다.
3안디옥 교회에 파송하기로 한 유다와 실라는 예루살렘 교회의 인도자였습니다.
여기서 인도자는 교회의 지도자급 인사를 의미합니다. 이렇게 예루살렘 교회에 지도자급 인사를 파송했다는 것은 예루살렘 교회에서 안디옥 교회의 문제가 잘 마무리 되도록 얼마나 힘썼는가를 말해줍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처음부터 끝까지 신실하게 안디옥 교회의 문제를 다루었습니다. 이처럼 일관되고 성실하게 주의 일을 감당하는 예루살렘 교회의 모습은 우리 각자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꼭 배워야 할 점입니다. 왜냐하면 주의 일을 하면서 시작은 요란하지만 끝은 흐지부지 되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처음 은혜 받았을 때는 뜨겁지만 시간이 지나면 열정도 헌신도 식어져 버린 채 미지근한 신앙이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미국 루이지애나 대학교의 임상외과와 정형외과 교수를 역임한 폴 브랜드 교수는 베스트 셀러 작가인 필립 얀시와 함께 “육체 속에 감추어진 영성”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폴 브랜드는 이 책에서 자신의 어머니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어머니 그레니 브랜드는 정말 우아하고 사랑스러운 분이셨습니다. 그러나 인도에서 겪은 장티프스, 이질, 말라리아와 같은 질병들은 어머니의 신체를 마르게 했습니다. 어머니는 75세가 되던 해, 남 인도에 위치한 어느 산에서 사역하던 중에 넘어져 그만 엉덩이 뼈가 부서지는 사고를 당했습니다. 다음 날 인부들에 의해 발견될 때까지 어머니는 땅바닥에 누운 채 고통으로 온 밤을 지새워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어머니는 복음을 전하고 병자를 치료하며 사람들의 썩은 이를 뽑아주기 위해 계속 말을 타고 다니면서 낯선 외딴 마을에서 잠을 잤습니다.
이미 어머니는 척추골과 늑골의 골절, 척추 신경 압착, 뇌진탕, 대퇴골 파열, 손의 심각한 감염을 한 차례 이상 경험한 터였습니다. 나는 억지로라도 은퇴를 종용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넓은 산간 마음에서 복음을 전할 사람은 나 말고 아무도 없잖니? 하나님이 필요로 하시는 곳에 사용되지 못한다면 나의 늙은 몸뚱이가 무슨 의미를 가질 수 있겠니? 결국 어머니는 14년을 더 말을 타고 다니셨습니다. 93세의 고령이 되고 나서야 할 수 없이 말 위에 올라앉는 것을 포기했습니다. 그러자 인도 주민들은 어머니를 이동 침대에 눕힌 채 이 마을, 저 마을로 옮겨 다니며 사역을 하시게 했습니다. 어머니는 2년 동안이나 더 선교 사역을 감당한 후 9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어머니는 생전에 육체적 형상은 시들어 갔지만 바다를 비추는 등대처럼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형상을 영원히 비춰 주었습니다.
폴 브랜드의 어머니와 같이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사명을 감당하는 모습이야말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모습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