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4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기도 우리 교회를 위하여
우리 교회가 하나님의 은혜가 흘러넘치는 생명 공동체가 되어 지역 사회의 연약한 영혼들을 섬기게 하소서
우리 교회가 성령 충만, 말씀 충만, 기도 충만하게 하시고 모든 예배마다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회복과 부흥이 있게 하소서
모든 성도들이 성령으로 하나되게 하시고 예수님을 닮아 자기를 부인하고 마음을 다하여 헌신하는 착하고 충성된 자들이 되게 하소서
이 후에 내가 돌아와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지으며 또 그 허물어진 것을 다시 지어 일으키리니 이는 그 남은 사람들과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모든 이방인들로 주를 찾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즉 예로부터 이것을 알게 하시는 주의 말씀이라 함과 같으니라 그러므로 내 의견에는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을 괴롭게 하지 말고 다만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라고 편지하는 것이 옳으니
행15:16-20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이후에 내가 돌아와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지으며 또 그 허물어진 것을 다시 지어 일으키리니 이는 그 남은 사람들과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모든 이방인들로 주를 찾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즉 예로부터 이것을 알게 하시는 주의 말씀이라 함과 같으니라"
행15:16-18야고보 사도가 베드로와 바울의 말을 다 듣고 아모스 9장 11, 12절을 인용해서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아모스 선지자에게 이 말씀을 주신 배경이 있습니다. 다윗 왕국은 솔로몬의 아들 때에 와서 남 유다와 북 이스라엘로 나뉘어졌습니다. 그들은 우상을 숭배하고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들을 받아들이지 않고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이로 인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북 이스라엘은 앗수르에 정복 당했고 혼혈민족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남 유다는 바벨론에 의해 멸망하고 백성들은 포로로 끌려가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다윗의 왕국은 단지 ‘다윗의 장막’이라고 불려질 만큼 퇴락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모스 선지자를 통해 예언하시기를 흩어진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시 모아서 퇴락해 무너진 다윗의 장막을 부흥하던 때와 같이 회복시켜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세우시고 그 퇴락한 것을 다시 지어 일으키시겠습니까? 왜 다윗의 위를 영영히 폐하지 않겠다고 하십니까? 하나님의 목적은 간단합니다. 다윗의 자손에서 메시아를 나오게 하시고, 그 메시아를 통하여 예루살렘의 선택된 유대인들뿐 아니라, 열방의 모든 이방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아모스 선지자는 이 사실을 오래 전에 이런 예언으로 남겨 놓았습니다. 아모스서에는 “에돔의 남은 자들과 내 이름을 일컫는 만국으로 기업을 얻게 하신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도행전과 몇 가지 다른 부분이 있는데, 그것은 아모스 시대와 당시의 시대적 정황이 약간 다름으로 인한 표현상의 차이일 뿐입니다.
어쨌든 하나님이 이방인들을 찾으신다는 메시지는 이미 예언된 것입니다. 아모스서의 메시지가 지금 사도 베드로가 말하고 있는 메시지, 그리고 바울과 바나바의 경험과 일치한다는 것이 야고보의 결론입니다. 이는 예언이 응답되었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실 때 예언 없이 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 분이 태어나는 때와 장소 등, 그 모든 과정이 구약에 예언된 대로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예언대로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신구약에 나타난 모든 예언은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그대로 다 이루어질 것입니다.
야고보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구약을 열심히 공부했던 베드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방인의 회심은 인간이 계획하고 만든 사건이 아니었다. 인간이 예측할 수 있는 사건도 아니었다. 하나님께서 초자연적으로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여 행하신, 그 분의 주권적인 구원의 섭리였다” 그들은 이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아모스서는 이것은 “하나님의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본문 말씀에도 이것은 ‘주의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근거해서 야고보는 이제 교회를 대표해 두 가지 일을 결정합니다.
"그러므로 내 의견에는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을 괴롭게 하지 말고 다만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라하라고 편지하는 것이 옳으니"
행15:19-2019절의 결정은 무엇입니까?
첫째,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고 성령 받은 이방인들에게 유대인의 전통을 강요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선택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켰던 율법의 규례나 할례를 강요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야고보의 말은 사사로운 의견이 아니라 강력한 결정을 뜻하는 선포였습니다.
야고보는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께 돌아오는 자들을 괴롭히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그들을 너무 괴롭히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을 읽지 못하면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을 괴롭히기 쉽습니다. 또한 예수 처음 믿는 사람들을 괴롭히기도 쉽습니다. 정작 예수님에 대해서는 가르쳐 주지 않고 이상한 규례나 전통만을 강요함으로써 잘못된 신앙을 심어주는 실수를 하기 쉽다는 것입니다.
베드로 식으로 표현하면 그것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일입니다. 또한 그의 말대로 “네 조상과 너도 능히 매지 못했던 멍에를 이방인의 목에 매려고 하는 것과 똑같은 것”입니다.
바리새파 그리스도인들의 반론에 대한 야고보의 결론은 아주 통쾌합니다.
여러분, 은혜 받는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내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깨어지는 것입니다. 내가 박살나는 것이 은혜 받는 것입니다. 내 생각, 내 주장이 틀렸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 생각, 내 주장보다 더 크시구나. 더 위대하시구나’ 이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의 위기는 무엇입니까? 복음이 아닌 것을 가지고 너무나 심각하게 사람을 속박하고 교회를 속박하는 것입니다. 은혜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율법을 가르칩니다.
요즘은 좀 다릅니다만, 과거 교회에서 선포되는 대부분의 설교는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설교였습니다. 이것은 해도 되고 저것은 하면 안되고, 주일에는 밥을 사 먹으면 안되고, 무엇 무엇을 해도 안되고, 이렇게 많은 규율을 정해 놓고 그것을 잘 지키면 예수 잘 믿는 것으로 착각했습니다. 바리새인마냥 율법의 규례를 많이 지키는 것을 예수 잘 믿는 것으로 착각했습니다. 어쩌다 가정 예배 한 번 안 드리면 천벌을 받을 것 같은 스트레스를 주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그랬습니다. 예수님 안에 있는 자유를 가르쳐 주고, 구원의 기쁨과 감격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여러분, 이런 가르침이 심하면 어떤 결과가 올까요? 간단합니다. 무신론자가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율법을 계속 강요하면 하나님을 믿지 않게 됩니다. 어렸을 때부터 그런 분위기에서 신앙생활을 하면 나중에는 하나님을 안 믿습니다. 부모가 목사인 신앙 좋다는 집안에서 자랐지만, 단지 기독교를 부인하지만 않을 뿐 하나님을 안 믿고 교회 안 나오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왜 그렇습니까? 너무 질렸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들에게 진정한 복음을 들려주었더라면 그렇게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윤리만 가르쳤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입니다. 이런 문제가 초대 교회에도 있었던 것을 봅니다.
야고보가 두 번째 내린 결론은 무엇입니까? 그렇다면 구원받는 것으로 다 끝나느냐는 것입니다. 아닙니다. 구원의 필수 조건은 아니지만 구원받은 자에게는 구원 받은 자의 생활, 구원받은 자로 살아가는 방법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20절입니다.
"다만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라하라고 편지하는 것이 옳으니"
행15:20이것을 술, 담배라는 말로 쉽게 설명해 보겠습니다. 술, 담배를 끊어야만 구원을 받습니까? 아닙니다. 술과 담배를 해도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술, 담배를 끊어야만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난 아직도 담배 피는데, 나는 아직도 도박을 하는데’라고 말합니다. 그래도 구원 받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구원은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얻는 것이지 윤리적으로 도덕적으로 선한 일을 해서 얻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좋아하지 마십시오. 그렇다고 해서 구원과 술과 담배가 전혀 상관이 없습니까? 아닙니다. 술과 담배를 끊었기 때문에 구원받는 것은 아니지만,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으면 술과 담배를 끊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기 전에 우상을 숭배하고 세상적으로 살던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이 행동을 바꿨기 때문에 구원받은 것이 아니라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습니다. 그렇게 구원을 받고 보니 구원받은 자의 생활이 있다는 것입니다.
거지로 살 때는 거지 문화가 있습니다. 깡통을 들고 돌아다니는 것입니다. 그러나 왕이 되었을 때는 왕의 생활이 있습니다. 도둑으로 살 때는 도둑의 문화가 있습니다. 사기꾼의 문화가 있습니다. 깡패의 문화가 있습니다. 악한 사람의 문화가 있습니다. 세상의 문화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를 믿고 보니 더 이상 그것을 지속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답게 천국 백성답게 살아가는 그런 사람으로 변하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야고보의 메시지는 두 가지로 요약됩니다.
첫째, 행함으로 구원받은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것입니다.
둘째, 예수 믿고 구원을 받으면 구원받은 자로서의 생활을 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유대인과 이방인의 문화가 다른데, 유대인에게는 유대인의 문화가 있고, 이방인에게는 이방인의 문화가 있는데, 그리스도인인 유대인과 이방인이 공통적으로 지켜야 할 그리스도인의 문화는 무엇입니까? 이런 의문이 생깁니다. 야고보는 이에 대해 세 가지를 제시합니다.
1우상 숭배에 사용되었던 제물이나 음식이나 물건을 멀리하라는 것입니다.
사실, 예수를 믿기 전에는 사람들마다 다 우상을 섬깁니다. 그것이 자기 자신이든 다른 종교든 간에 모두들 자신들의 우상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우상 문화 속에 살았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 문화, 과거에 하나님 없이 우상을 섬기고 살면서 익혀 왔던 그 문화를 이제는 멀리 하라는 것입니다. 계속 그 문화 속에 있으면 다시 우상 숭배로 돌아가거나 영적 유혹을 받기가 쉽기 때문입니다.
지금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옛날에 섬기던 우상 문화를 버리지 못한 분들이 종종 있습니다. 교회에서 집사님이고 봉사도 많이 하는 데, 자녀를 결혼시킬 때면 꼭 점을 보는 분이 있습니다.
2음행에서 빠져 나오라는 것입니다.
우상 숭배에 필수적으로 붙어 다니는 것이 음행입니다. 우상이 있는 곳에는 음행이 있게 마련입니다. 구약 시대의 많은 우상 숭배자들은 제사 방법의 하나로서 성적인 쾌락을 추구했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하면서도 양심의 갈등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그들의 제사의 한 방법이었습니다.
여러분, 음행은 마귀가 쓰는 가장 강력한 무기라는 사실을 알기 바랍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이를 경고하는 것입니다. 음행을 하게 되면 하나님을 멀리하게 됩니다.
3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몸에서 피를 뽑지 않은 고기를 먹지 말라고 했습니다. 짐승의 생명이 피에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짐승들의 병원균이 대개 피 속에 있기 때문에 피를 다 뽑아 버리는 것이 위생적으로 깨끗합니다. 따라서 종교적인 의식 뿐 아니라 위생적으로도 피를 먹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야고보의 결론은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 행함으로 구원 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 받는다.
둘째, 예수 믿고 구원 받으면 구원 받은 자로서 합당한 생활을 해야 한다.
이는 역시 우리에게도 동일한 교훈이 됩니다. 우리의 구원은 믿음으로 말미암았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천국가는 그날까지 믿음에서 떨어지면 안됩니다. 그러나 우리의 믿음은 마음에서 끝나지 않고 삶의 변화를 일으켜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은 삶의 모습에서 증명되어야 합니다. 구원받은 자로서 합당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값없이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우리의 행위나 노력으로 얻는 것이 아닙니다. 선한 일을 해서 하나님께 인정을 받고 구원을 받은 것 또한 아닙니다. 그렇지만 그 구원이 결코 값싼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주님은 자신의 목숨을 우리 구원에 대한 대가로 지불하셔야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값진 구원을 얻었는가를 아는 사람은 주님을 사랑할 수 밖에 없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삶의 변화가 찾아오고 세상에 물들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세상 사람과 구별된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제자답게 주님을 닮아 가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의 편지요, 향기로 세상을 아름답게 물들이는 여러분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고 주님의 사랑이 널리 전파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2023년 11월 15일 오전 6:5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