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1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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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고백

Confession

기도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1.

예수님의 보혈로 이 땅을 덮어 주셔서 우상 숭배의 죄악들이 끊어지게 하시고 교만과 자살과 음란의 분열의 영이 묶임을 받고 떠나가게 하소서

2.

창조의 질서를 부정하는 비성경적 법률이 제정되지 않게 하시고 복음으로 남북한의 평화적인 통일이 이루어지게 하소서

3.

인간의 탐욕으로 깨어진 창조의 아름다움을 회복시키사 저출산과 기후 문제가 해결되게 하시며 생육하고 번성하는 역사가 일어나게 하소서

그런데 지금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우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 줄을 믿노라 하니라 온 무리가 가만히 있어 바나바와 바울이 하나님께서 자기들로 말미암아 이방인 중에서 행하신 표적과 기사에 관하여 말하는 것을 듣더니

행15:10-12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그런데 지금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

행15:10

베드로는 바리새파 출신 그리스도인들이 요구하는 율법을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에 율법을 다 지킬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율법을 다 지켜서 구원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실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땅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간절히 기도하시기를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 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했는데, 하나님이 응하시지 않은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율법을 지켜 구원을 얻을 수 있는 인간이 단 한 명도 없기 때문입니다.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초등교사 아래 있지 아니하도다"

갈3:24-25

이제는 우리가 율법 아래에서 살지 않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은혜의 시대입니다. 믿음으로 구원 받고,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습니다. 은혜의 시대에 살면서 율법 아래 살던 때처럼 율법의 멍에를 지우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을 ‘제자들’이라고 불렀습니다. 율법주의적인 그리스도인들이 선민의식이나 특권의식에 사로잡혀 이방인들을 차별하는 것을 경계한 것입니다. 주님의 제자가 되는데 사람이 기준을 정하거나 조건을 달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다 같은 주님의 제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우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 줄을 믿노라 하니라"

행15:11

베드로는 이제 결론을 내렸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유대인들이고 ‘그들’은 이방인입니다. 베드로는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을 받는다고 선포했습니다. 이것은 변함없는 진리입니다. 천국으로 인도하는 확실한 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은혜와 믿음은 내려놓고 무언가 행위를 붙잡고 신앙생활을 하려는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내가 이렇게 열심히 봉사했으니까 하나님이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시겠지. 내가 남들보다 더 구제하고 헌금했으니까 나를 더 인정해 주시겠지’라고 하면서 행위로 신앙의 대리 만족을 느끼려고 합니다.

그러나 태도는 신앙의 본질에서 멀어진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바리새파 유대인들의 신앙과도 같은 모습니다. 은혜와 믿음으로 신앙생활을 하지 않고 단지 행위로만 인정받고 만족하려고 하면 점점 더 행위에 빠지게 됩니다. 더 심하면 자신의 행위를 의로운 기준으로 여겨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비난하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의 행위가 칭찬받고 인정받지 못하면 상처 받고 교회를 떠나 심지어 이단에 빠지기도 합니다. 은혜에서 멀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믿음에서 떨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직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은혜 안에 살면 우리 삶의 어떤 문제도 어려움도 다 합력하여 선을 이룹니다. 안디옥 교회에 예기치 않은 갈등이 생겼지만 하나님은 그 일을 통해 복음의 진리가 다시 한번 확인되고 든든히 세워지도록 역사해 주셨습니다.

또한 여러분의 신앙생활이 믿음으로 시작해서 행위로 끝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삽니다. 행위로는 우리가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다만 행위는 믿음으로 구원 받은 사람이 구원 받은 감격과 감사로 인해 드러내야 할 열매입니다. 오직 믿음으로 주님만을 바라보며 성령 충만함으로 많은 열매를 맺을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더 큰 역사를 일으켜 주심을 기억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도 베드로의 결론이 있은 다음에 바나바와 바울이 일어나서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통하여 하신 일들을 간증했습니다.

"온 무리가 가만히 있어 바나바와 바울이 하나님께서 자기들로 말미암아 이방인 중에서 행하신 표적과 기사에 관하여 말하는 것을 듣더니"

행15:12

사도 바울은 받은 계시로 인하여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는 다는 것을 확실히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의 지도자들 앞에서 자신이 받은 계시로 그들을 가르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겸손하게 하나님께 자기들로 말미암아 이방인 중에서 행하신 표적과 기사에 관하여 말했을 뿐입니다.

바나바와 바울이 1차 선교 여행과 안디옥 교회 목회를 통해서 경험한 것은 이방인들이 할례를 받지 않아도, 율법의 전통과 의를 행하지 않아도 성령 세례를 받더라는 것입니다.

성령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하나님이 그들을 구원하셨다는 증거입니다.

"그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우리 마음에 성령을 주셨느니라"

고후1:22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엡1:13

"내가 너희에게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혹은 듣고 믿음으로냐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할례를 행하고 안식일을 지키는 행위로) 마치겠느냐 너희가 이같이 많은 괴로움을 헛되이 받았느냐 과연 헛되냐 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이 율법의 행위에서냐 듣고 믿음에서냐"

갈3:2-5

이것은 굉장히 놀라운 일입니다. 특별히 유대인들에게는 믿어지지 않는 일들이었습니다. 모세의 율법과 전통을 지키지 않고, 할례를 행하지 않았는데 성령 세례를 받았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자리에 모인 온 무리는 바나바와 바울의 간증을 듣고 잠잠해졌습니다. 이방인들이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구원함을 얻은 일들에 대한 바나바와 바울의 간증은 앞선 베드로의 말, 이방인도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말에 확실한 보증이 되었습니다.

바나바와 바울을 통해 태어나 한 번도 걸어보지 못한 사람이 걷게 되는 등 많은 표적과 기사가 일어난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하나님의 역사였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일들은 이방인들이 할례를 받았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 아니었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았습니다. 모세의 율법을 지키고 행해서 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얻어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한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바나바와 바울의 간증은 율법주의적인 그리스도인들의 잘못된 믿음을 깨뜨렸습니다. 그 동안 바리새파 사람들은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열심히 섬기고 유대인의 전통을 잘 지켜왔습니다. 그러나 그런 점들이 도리어 사람의 생각과 경험 위에 계신 하나님을 받아들이는데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히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롬10:2-3

우리가 가진 문제 중 하나는 자기가 믿는 방법이 최고이고, 전부라고 생각하기가 쉽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나와 다른 사람을 정죄하고 판단하는 것입니다. 우리와 다른 교회를 비방하고 판단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나와 다른 것이 반드시 틀린 것은 아닙니다. 단지 나와 다르다는 사실 하나만 가지고 판단하고 정죄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나와 다른 것과 틀린 것은 분별해야 하는 것입니다.

많은 교회에서 세례를 베풀 때 약식 세례를 줍니다. 그러나 우리는 침례를 베풉니다. 왜 우리 교회는 침례를 베풉니까? 예수님이 침례를 받으셨다고 믿기 때문에 침례를 줍니다.

"이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로부터 요단 강에 이르러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려 하시니 요한이 말려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서 세레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시니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요단 강에서 침례를 받고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마3:13-16

그렇다고 해서 다른 교회의 세례를 비방해도 되겠습니까? 안됩니다. 왜냐하면 세례의 형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정신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 바 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골2:12

우리 교회에서는 예수를 마음으로 믿기만 하면 세례를 베풉니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성경을 읽어 보면 초대 교회부터 그렇게 했기 때문입니다.

"빌립이 입을 열어 이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니 길 가다가 물 있는 곳에 이르러 그 내시가 말하되 보라 물이 있으니 내가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국고를 맡은 이방인 내시) 세례를 받음에 무슨 거리낌이 있느냐 이에 명하여 수레를 멈추고 빌립과 내시가 둘 다 물에 내려가 빌립이 세례를 베풀고 (믿자 바로 세례를 주었습니다)"

행8:35

"이에 베드로가 이르되 이 사람들이 (로마의 백부장인 고넬료의 가족과 친구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능히 물로 세례 베풂을 금하리요 하고 명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 하니"

행10:47-48

"(빌립보 감옥에서) 밤 그 시에 간수가 저희를 데려다가 그 맞은 자리를 씻기고 (바로) 자기와 그 권속이 다 세례를 받은 후"

행16:33

그렇다고 해서 세례 받는 절차가 까다로운 다른 교회를 비방해도 됩니까?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단지 자기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예수님까지 정죄했던 것입니다.

"한편 손 마른 사람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예수를 송사하려 하여 물어 가로되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 중에 어느 사람이 양 한 마리가 있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으면 붙잡아 내지 않겠느냐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그러므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 하시고"

마12:10-12

사람의 얕은 지식과 지혜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판가름 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을 제한할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오직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깨달아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스티브 케이스는 ‘현대인을 위한 하나님의 임재 연습(God is here)’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서로 돌아보고 누군가 넘어졌을 때 일으켜 주며, 자신을 나중에 챙기고 하나님을 신뢰하며, 마땅히 가져야 할 것보다 더 갖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사는 당신은 그분이 돌보시지 않겠는가? 넘어진 사람을 도와준 당신을 하나님이 도우시지 않겠는가? 믿음으로 살라. 그러면 성공할 것이다. 하나님은 그 분의 자녀를 돌보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랑과 믿음 안에서 서로를 세워주고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입으며 사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신앙의 모습입니다. 누군가에게 문제가 있다고 해서 지적하기 시작하면 지적하는 그 모습도 은혜롭지 못하고, 지적 당하는 사람도 상처를 받아 은혜 속에서 살지 못합니다.

다른 사람의 모습을 자꾸 지적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내가 율법주의적인 신앙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재판장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신데 사람이 재판장이 되어서 다른 사람을 비판하고 지적하면 자신의 신앙도 점점 메마르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더욱이 율법주의적인 그리스도인들처럼 신앙의 본질인 믿음과 사랑이 아닌 행위를 중요시하면 교회 안에 화평이 깨지고 갈등이 생기게 됩니다. 교회의 부흥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됩니다.

2023년 11월 12일 오후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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