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8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기도 외국인 노동자 유학생과 다문화 가정을 위하여
이 땅에 거주하는 외국인 노동자, 유학생들이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하시며 이들이 말씀과 기도로 훈련받아 열방의 선교사로 나아가게 하소서.
다문화 가정을 축복하사 불신, 이혼, 폭력 등의 아픔을 겪지 않게 하시고 다문화 가정의 자녀들이 행복과 평안을 누리며 성장하게 하소서.
언어와 문화, 생활 습관의 차이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로하사 출신이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과 고통을 당하지 않도록 보호하여 주소서.
바울 및 바나바와 그들 사이에 적지 아니한 다툼과 변론이 일어난지라 형제들이 이 문제에 대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및 그 중의 몇 사람을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에게 보내기로 작정하니라 그들이 교회의 전송을 받고 베니게와 사마리아로 다니며 이방인들이 주께 돌아온 일을 말하여 형제들을 다 크게 기쁘게 하더라
행15:2-3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바울 및 바나바와 그들 사이에 적지 아니한 다툼과 변론이 일어난지라 형제들이 이 문제에 대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및 그 중의 몇 사람을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에게 보내기로 작정하니라"
행15:2그들은 누구입니까?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받지 못하리라 하니"
행15:1바울과 바나바는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를 믿기만 해서는 안되고 율법도 지켜야 구원을 받는다. 할례를 행해야 구원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 사이에 적지 아니한 다툼과 변론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누구의 말이 옳은 것입니까? 예수를 믿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율법을 지키고 할례를 행해야 구원을 얻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곧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함이라 (아니 난지 8일 만에 할례를 받고, 안식일을 생명같이 지키는 그들이 구원 받지 못했다는 말씀입니까? 그렇습니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히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하나님의 의를 (오직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받는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받으려는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그 결과 구원을 받지 못했느니라)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롬10:1-4"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
갈2:21"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엡2:8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인하여 믿음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믿음 외에 무엇을 더하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으로 인한 구원의 완전함을 모독하는 행위입니다.
그래서 안디옥 교회의 형제들은 이 문제에 대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및 그 중의 몇 사람을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도들에게 보내기로 작정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당시 최고의 영적 권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제일 처음 생긴 교회였을 뿐 아니라 예수님을 모셨던 사도들을 위시하여 예수의 친동생인 야고보 같은 장로들이 지도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진리에 대해 시시비비가 생겼을 때에는 영적 지도자의 지도를 받는 것이 중요했던 것입니다. 지금도 이단을 예방하고 진리를 잘못 가르치는 위험을 막기 위해 교회 지도자들로 구성된 감독 기관이 필요합니다. 목사가 제 마음대로 가르쳐도 되는 풍토는 위험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교단의 울타리가 필요하고, 노회나 총회 같은 제도를 무시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물론 이런 제도 자체가 잘못될 수 있는 소지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러나 나쁜 점보다 좋은 점이 더 많을 때는 유익한 편을 선택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가끔 이단에 빠진 사람들이 와서 자기들의 교리를 가지고 여러분을 논쟁에 끌어 들이려고 수작하는 것을 본 일이 없습니까? 그때 어떻게 그 위기를 넘겼습니까?
"이단에 속한 사람을 한두 번 훈계한 후에 멀리 하라"
딛3:10그리고 사도 바울처럼 영적 권위를 인정하여 교회 지도자에게 보고해야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진리에 관한한 한 발자국도 양보할 줄 모르는 사람입니다. 목숨을 걸 정도입니다. 또 인간적으로 말하면 아주 고집스러운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교 문제가 있을 때에 자신의 견해가 옳은 것인데도 그대로 관철하지 않고 예루살렘에 올라와 어른, 선배들, 그리고 온 교인과 함께 의논을 해 가지고 어떤 결론을 얻은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에 사도 바울이 얼마나 큰 온유함과 겸손과, 그리고 협조적인 성격을 가졌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내가 볼 때에 아무리 옳은 일이라 해도 일단은 의논을 거칠 필요가 있습니다. 동의를 얻을 필요가 있습니다.
남이야 뭐라고 하건 상관없다 하고 내 의견만 밀어붙이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닙니다. 물론 결론은 마음에 있습니다. 양보 못할 확실한 결론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것을 들고 나와 의논을 하고 사람들을 설득합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지도자들이 진리를 바로 알고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는 것입니다. 특별한 사람을 빼놓고는 나와 같은 이해를 하고 있을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그는 예루살렘 공회에 나아가 그 문제를 내놓게 되는 것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고 나서야 다시 2차 선교여행을 떠나게 됩니다.
"그들이 교회의 전송을 받고 베니게와 사마리아로 다니며 이방인들이 주께 돌아온 일을 말하여 형제들을 다 크게 기쁘게 하더라"
행15:3지금 이 사람들은 논쟁에 휘말려 예루살렘으로 가고 있는 중입니다. 그런데 그 와중에도 베니게와 사마리아로 다녀가며 이방인들이 주께 돌아온 일을 간증했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형제들을 다 크게 기뻐하였습니다.
우리에게도 하나님을 떠나 방황하던 수많은 영혼들이 주님께 돌아오는 소식이 기쁨이 되어야 합니다. 또한 잃어버린 영혼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가장 큰 기쁨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온 천하게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하시는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요? 물론 십자가에서 완성하신 구원을 전하여 많은 사람을 구원하게 하려는 것에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에게 기쁨과 즐거움을 주시기 위함인 것입니다.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 이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니라"
요4:36"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요일1:3-4이러한 기쁨이 우리에게 넘쳐나야 합니다. 오늘날 사람들의 건강을 가장 위협하는 것이 바로 스트레스입니다. 스트레스가 바로 만병의 근원입니다. 스트레스가 암을 만들고, 위장병도 만들고, 두통도 만들어 냅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복음이 있기 때문에 어떠한 스트레스도 이겨낼 수 있습니다. 복음을 전파하는 기쁨, 내가 전한 복음을 듣고 수많은 사람들이 구원 받는 것을 보는 기쁨이 있다면 몸도 마음도 건강해 집니다.
복음을 위해 사는 사람치고 얼굴에 웃음이 끊이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황수관 박사님은 사람이 크게 한번 웃으면 30분 조깅을 한 것과 같은 효과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복음의 기쁨 안에서 살면 병들 새가 없습니다. 또한 기쁨은 성령의 열매입니다. 복음을 위해 헌신하고 성령이 충만한 사람은 그 마음에 기쁨의 샘이 넘쳐 납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 하나님께서는 복음을 위해 사는 우리의 모습을 가장 기뻐하십니다. 미국을 이끄는 대표적인 교회 중에 하나인 새들백 교회를 담임하는 릭 워런 목사님은 세계적으로 2,000만권 이상이 팔린 ‘목적이 이끄는 삶’에서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것이 우리의 삶의 목적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삶, 주님과 복음으로 인해 기뻐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2023년 11월 9일 오전 6:4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