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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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고백

Confession

기도 동성애를 두고 기도합니다.

1.

동성애를 옹호하며 하나님이 세우신 창조 질서를 거스르는 문화적 기류가 끊어지게 하시고 이를 긍정하고 지지하는 거짓과 궤변들이 무너지게 하소서

2.

미디어를 통해 미화되는 동성애의 실체가 드러나게 하시고 다음 세대들이 동성애에 빠지지 않도록 가정과 교회가 더욱 깨어 기도하게 하소서

3.

한국교회가 성령 안에서 하나 되어 동성애와 포괄적 차별 금지법을 막아내게 하시고 동성애가 합법화되지 않는 거룩한 나라가 되게 하소서

유대인들이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와서 무리를 충동하니 그들이 돌로 바울을 쳐서 죽은 줄로 알고 시외로 끌어 내치니라

행14:19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유대인들이 안디옥과 이고니온에 와서 무리를 충동하니 그들이 돌로 바울을 쳐서 죽은 줄로 알고 시외로 끌어 내치니라"

행14:19

본문을 보면, 사도 바울은 돌에 맞아서 거의 죽을 지경에 이르기까지 고난을 받습니다. 이렇듯 복음에는 영광도 있지만, 고난도 있습니다.

분명히 복음은 그 자체로 영광스러운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복음보다 더 영광스러운 것은 없습니다. 따라서 복음을 전하는 것은 가장 영광스러운 일이고, 하나님은 복음을 전하는 자에게 영광을 주십니다.

그러나 복음에는 영광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에 따르는 고난도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누구보다도 이 사실을 친히 몸으로 겪었던 사람입니다. 우리는 본문 19절을 통해서도 사도 바울이 겪은 고난을 볼 수 있습니다만, 성경 전체를 살펴볼 때, 그에게는 세 가지 정도의 고난이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그는 육체적 고난을 겪었습니다.

"그가 겪었던 육체적 고통이 어떤 것이었나를 설명합니다."

고후11:23-27은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고후11:23-27

복음을 전하다가 그는 인간으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여러 가지 육체적 고난을 겪었습니다. 매를 맞고 잠을 못 자고, 추위에 떨고 헐벗고 쫓겨 다니는 등 아주 힘든 고난이었습니다.

그뿐 아닙니다. 고후12:7을 보십시오. 사도 바울이 또 다른 육체적 고난을 겪은 것을 보게 됩니다. 그것은 육체의 가시로 인한 고난이었습니다.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고후12:7

얼마나 은혜를 크게 받았던지 하나님은 그에 상응하는 가시도 주신 것입니다. 사실, 은혜를 많이 받은 사람들은 쉽게 교만해질 수 있습니다. 능력이 많으면 교만하기가 쉽습니다. 사도 바울은 받은 계시가 지극히 컸습니다. 즉 교만해지기 쉬운 자리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가 교만해지지 않도록 그 육체에 가시를 하나 박아 놓으셨습니다. 바울은 그것 때문에 늘 괴로웠습니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또한 겸손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울이 당했던 육체적 고난입니다.

바울은 이런 육체적 고난만 겪은 것이 아닙니다. 두 번째로, 그에게는 이보다 더 큰 정신적 고난이 있었습니다. 고후11:28에서 사도 바울은 자기가 육체적으로 받았던 고난을 다 열거하고 난 후에 이렇게 말합니다.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아직도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고후11:28

앞에 열거한 육체적 고난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자기에게는 더 심각한 정신적 고통이 있는데, 그것은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어떻게 보면 교회는 참 편안하지가 않습니다. 교회에는 여러 가지 많은 문제가 있습니다. 바울은 그런 교회를 생각하면 가슴이 눌린다는 것입니다. 너무 고통스럽다는 것입니다. 그는 고후1:8-9에서 그 고통을 표현하기를, 자신이 받은 정신적 고통이 너무 컸기 때문에 살 소망이 끊어지고 마음에 사형 선고를 받은 것 같았다고 했습니다.

오죽했으면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마음에 사형 선고를 받은 것 같은 느낌을 갖게 되었겠습니까? 우리 대부분은 이런 지경까지 간 적이 거의 없기 때문에 바울의 심정을 똑같이 느낄 수는 없습니다만 짐작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정신적 고통보다 더 큰 고난이 바울에게 있었습니다. 그것은 영적인 고난이었습니다. 하나는 자기 자신에 대한 영적인 고난이고, 또 하나는 자기 백성 이스라엘로 인한 고난이었습니다.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고전9:27

그렇습니다. 내가 복음을 전했지만, 내가 다른 사람을 구원했지만, 정작 나 자신은 버림받을 수 있다는 위기감, 이런 실존적 자기 이해가 그렇게 있었던 것입니다. 굉장한 얘기입니다. 복음을 전하고도 정작 자신은 구원하지 못하고 버림받을 수도 있다는 사실, 이것이 많은 목회자와 전도자가 갖는 내면의 고민입니다. 다른 사람은 구원하고 자기는 오히려 그 구원에서 제외되는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롬9:1을 보면 바울은 더 놀라운 영적 고민을 하는데, 그것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나에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와 더불어 증거하노니"

롬9:1

사도 바울은 참 솔직한 사람입니다. 그는 자기에게 고민이 있다는 것을 솔직히 고백합니다. 어떤 종류의 고난이 있느냐, 어떤 고민을 하느냐의 차이지 저를 비롯한 여러분 모두에게는 고민과 고난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도 그것을 솔직히 인정합니다. 그러면 그의 고민은 무엇입니까?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내 민족을 생각하면 눈물이 나고 가슴이 찢어진다. 나는 왜 이방인의 사도로 부름을 받았는가? 왜 내 민족은 구원받지 못하는가? 왜 유대인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은 메시아를 거부하는가?

이런 생각을 하면 바울 자신의 가슴이 찢어진다고 했습니다. 자기 민족의 구원을 바라는 마음이 얼마나 컸던지,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라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이제까지 우리는 바울이 겪었던 세 가지 고난을 보았습니다. 그는 실제로 돌에 맞아 죽을 만큼 육체적인 고난도 겪었고, 그에 못지 않는 정신적 고난도 겪었으며, 이것들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영적인 고난도 겪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 모든 고난을 이길 수 있었습니다. 어떻게 이 고난을 이길 수 있었을까요?

그가 고난을 이길 수 있었던 비결은 세 가지입니다. 그 하나는 사도 바울이 소유하고 있는 복음의 능력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의 능력 때문에 이긴 것이 아닙니다. 그가 위대해서 모든 고난을 이겨낸 것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그가 가지고 있는 복음 때문에 자신이 당한 모든 고난을 이길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 사도 바울이 전하고자 했던 복음, 그로 하여금 고난을 겪게 했던 복음, 그러나 모든 것을 견디게 했던 그 복음은 어떤 것입니까? 롬1:16에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선언합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롬1:16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있다는 말입니다.

"지금 내가 너희를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께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너희를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케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

행20:32

또 하나, 바울이 모든 고난을 이길 수 있었던 것은 복음의 영광 때문입니다. 롬8:18을 보십시오.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느니라"

롬8:18

분명히 복음 때문에 고난을 겪지만, 그 고난은 복음으로 말미암아 오는 영광과 비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 복음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있다는 것입니다.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마5:11-12

바울은 그것을 알았기 때문에 현재의 고난을 이길 수 있었습니다. 초대 교회 사도들 또한 이것을 알았기 때문에 고난을 받을 때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행5:41

그리고 또 다른 비결도 있습니다.

"내가 이 복음을 위하여 선포자와 사도와 교사로 세우심을 입었노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내가 믿는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내가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그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

딤후1:11-12

저는 여러분에게도 이 복음의 능력이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또한 복음의 영광스러운 모습이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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