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30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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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고백

Confession

기도 다니엘 기도회를 위하여

매 예배 시간마다 기름부음이 넘쳐서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며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여 병을 고침 받고, 문제를 해결받고, 하나님이 주시는 꿈과 비젼을 갖게 하여 주시고, 성령 충만을 받아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을 증거하는 간증의 주인공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무리가 바울이 한 일을 보고 루가오니아 방언으로 소리 질러 이르되 신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우리 가운데 내려오셨다 하여 바나바는 제우스라 하고 바울은 그 중에 말하는 자이므로 헤르메스라 하더라 시외 제우스 신당의 제사장이 소와 화환들을 가지고 대문 앞에 와서 무리와 함께 제사하고자 하니 두 사도 바나바와 바울이 듣고 옷을 찢고 무리 가운데 뛰어 들어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여러분이여 어찌하여 이러한 일을 하느냐 우리도 여러분과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런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으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함이라

행14:11-15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오늘의 본문은 지난 시간에 이어지는 이야기입니다. 루스드라에서 사도 바울은 설교를 하는데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사람이 듣고 있었습니다. 바울이 주목하여 보니 구원 받을 만한 믿음이 그에게 있는 것을 보고 큰 소리로 이르되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 하니 그 사람이 일어나 걸었습니다.

루스드라 사람들은 이 사람이 태어나면서 부터 앉은뱅이라는 것을 다 알고 있습니다. 하루 이틀 본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바로 이 사람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모두가 깜짝 놀라게 됩니다. 이것이야말로 큰 기적입니다. 상상할 수도 없고, 들어보지도 못한 기적입니다. 바울의 설교 시간에 참으로 희한한 장면을 보게 된 것입니다. 즉각적으로 이 사건 대한 군중들의 반응이 나타납니다.

"무리가 바울이 한 일을 보고 루가오니아 방언으로 소리 질러 이르되 신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우리 가운데 내려오셨다 하여"

행14:11

무리가 바울이 한 일을 보고 루가오니아 방언으로 소리 질렀습니다. 그들은 평소에 헬라어를 쓰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크게 놀라는 순간 어렸을 때 쓰던 방언으로 말했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얼마나 충격을 받았는지 보여 주는 표현입니다.

무리들이 소리 지른 내용이 무엇입니까? 신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우리 가우데 내려 오셨다

그들은 이전에 나면서부터 앉은뱅이가 사람이 즉시 일으킨 것을 본 적이 없었습니다. 들은 적도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신이 한 것으로 생각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사람의 형상을 입고 자기 땅에 오셨으나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선포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신성모독을 한다고 대적했습니다. 예수님이 말로만 자신을 나타내신 것이 아니라, 물을 포도주로 만드시고, 나인성 과부의 죽은 아들을 살리시고, 5병2어도 5천명을 배불리 먹이고 12바구니를 남기시고, 파도와 바람을 말씀으로 잠잠케 하시는 등 표적을 보여 주셨음에도 믿지 않았습니다.

이방인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사도 바울이 복음을 증거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말씀을 믿지 않고 자기들의 생각을 믿은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복음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입니다. 사도 바울은 가는 곳마다, 성경에서 약속하신 메시아는 예수님이라고 증거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증거했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으라는 예수는 믿지 않고 사람을 본 것입니다.

"바나바는 제우스라 하고 바울은 그 중에 말하는 자이므로 헤르메스라 하더라"

행14:12

그들은 신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우리 가운데 내려 오셨다고 말했는데, 그들이 생각했던 신은 어떤 신입니까? 그들이 섬기는 제우스 신과 헤르메스 신이었던 것입니다. 헤르메스는 제우스 신의 대변인입니다.

사도 바울이 설교를 하고 바나바는 가만히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사도 바울을 제우스 신의 대변인인 헤르메스라고 한 것입니다.

그 사람들이 성 밖으로 뛰어 나갔습니다. 그리고 제우스 신전에서 제사장을 데리고 왔습니다. 제사장들은 소 한 마리를 끌고 왔습니다. 더불어 화환들을 가지고 왔습니다. 제사를 드리려고 바울과 바나바 앞에 온 것입니다. 13절입니다.

"시외 제우스 신당의 제사장이 소와 화환들을 가지고 대문 앞에 와서 무리와 함께 제사하고자 하니"

행14:13

이 때 바울과 바나바는 어떻게 했습니까?

"두 사도 바나바와 바울이 듣고 옷을 찢고 무리 가운데 뛰어 들어가서 소리 질러"

행14:14

두 사도는 옷을 찢었습니다. 보통 4-5 인치 정도 찢는다고 하는데, 옷을 찢는 행동은 신성 모독에 대한 강렬한 혐오감을 느낄 때 하는 행동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했을 때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옷을 찢으며 ‘신성을 모독하도다’라고 외치며, 예수님에 대해 공격한 일이 있습니다.

지금 바울과 바나바는 사람들이 자기들에게 제사를 드리려는 순간, 자기들의 옷을 찢으며 소리를 질렀습니다.

"이르되 여러분이여 어찌하여 이러한 일을 하느냐 우리도 여러분과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런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으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함이라"

행14:15

바울은 지금 루스드라 사람들이 자기를 경배하면서 신으로 섬기겠다고 하는 것을 보고 극구 사양하고 있습니다. 진실한 겸손입니다.

사람은 두 가지 경우에 자기 페이스를 잃어버리기 쉽습니다.

그 하나는, 억울하게 누명을 썼을 때, 못된 소리를 들었을 때에 분하고 괴로워서 제정신을 잃고 페이스를 놓치기 쉽습니다.

그 둘은, 칭찬을 들을 때입니다. 괜히 우쭐해서 페이스를 놓치기 쉽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그런 경우에도 자기 페이스를 잃지 않았습니다. 자기에게 오는 찬사를 극구 사양합니다.

베드로도 보세요. 성전 미문에 앉았던 앉은뱅이를 일으켰을 때, 사람들이 자기를 존경하여 모여들 때에 뭐라고 합니까?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행 3:12)" 합니다.

우리가 한 것이 아니고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 사람을 완전히 낫게 했다고 했습니다.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가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

행3:16

자기 페이스를 잃지 않은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가 고넬료의 집에 갔을 떼에 고넬료와 그의 일가가 자기를 보고 엎드려 절할 때에 그들을 일으키면서 "나도 사람이오" 합니다.

오늘의 본문에도 같은 얘기가 나옵니다. "우리도 너희와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나나 당신들이나 다 같은 사람이다, 허물도 있고 죄도 있는 똑같은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조금도 다를 바가 없습니다. 오늘 이렇게 앉은뱅이를 일으킨 것으로 주님께서 하신 일이다, 나는 다만 심부름을 한 것이다, 결코 내가 한 것이 아니다, 우리가 결코 별다른 삶이 아니다, 당신들도 믿으면 할 수 있는 일이다, 나를 통해 역사 하신 하나님께서 당신들도 통해서 역사 하실 것이다, 절대로 우리 일행을 특별한 사람으로 보지 말라.

세상에서 가장 설득력이 있는 것이 진실입니다. 가장 위대한 설득력이 바로 겸손입니다. 자기 자신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오늘 사도 바울은 진실을 말했습니다. 그럼으로써 저희들의 마음을 돌려놓을 수 있는 것을 봅니다.

사도들은 우리는 신이 아니다 라고 말합니다.

이 선언은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인간이 신이 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크고 작은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인간 죄성의 깊은 곳에는 신이 되려는 욕망이 있는 것입니다.

히틀러나 김일성이나 모든 독재자들은 다 신이 되려고 했습니다. 김일성의 가장 큰 실수는 자기가 신이 되려고 한 데 있습니다. 그는 신이 되고 싶은 그 욕망을 정치적으로 완성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신이 아니었습니다. 결국 그는 급사하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남을 지배하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신이 되려는 욕망입니다. 통치하고 싶은 마음, 모든 사람을 자기의 종으로 노예로 삼고 싶은 욕망입니다.

회사에서도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자기가 다 지배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돈을 가지고 사람을 지배하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권력을 가지고 사람을 지배하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힘을 가지고 사람을 지배하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신이 되려는 욕망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여러분, 왜 사람들이 다른 사람을 비판할까요? 자기가 하나님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만이 심판하실 수가 있는데, 자기가 심판하려는 것입니다. 자기가 재판관이 되려고 하는 것입니다. 인간에게 신이 되려는 욕망이 있어서 그런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배우려는 사람이 없어도 언제나 가르치려고 합니다. 그것도 다 신이 되고픈 욕망인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가지가 다 판단합니다.

우리는 사람의 섬김을 받으려 하지만 예수님은 사람을 섬기러 오셨습니다. 사람을 지배하러 오시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람들을 노예로 만드려고 합니다. 나라가 나라를 노예를 만드려고 합니다. 이게 다 인신사상입니다. 신이 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종교적으로 보면 나하고는 굉장히 먼 것 같지만, 실제로는 내 생활 속에 있습니다. 내 사고 방식 속에 있는 것이지요. 남의 말을 듣지 않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신이 아니다’ 우리도 그 선언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인간임을 고백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피조물임을 고백해야 합니다. 우리는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때에 인생의 참된 행복이 있습니다. 거기에 인생의 참된 현주소가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신이 아니다. 너희와 똑같은 성정을 가진 인간이다. 사람을 섬기지 말라”

2023년 10월 31일 오전 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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