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7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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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고백

Confession

기도 국군 장병들을 위해

1.

60만 국군 장병들에게 건강한 육체와 마음을 주셔서 부여된 임무를 완수할 수 있게 인도하시고 모든 안전사고의 위험에서 장병들을 평안하게 지켜주소서

2.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의 장병들을 통해 군부대 안의 모든 악한 것들이 사라지게 하시고 군 복무 기간이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인생 최고의 복된 시간이 되게 하소서

3.

군 선교를 위해 힘쓰는 사역자들과 성도들이 영혼 사랑의 열정으로 헌신할 수 있도록 강건함을 허락하시고 군인 교회를 통해 예수님을 믿지 않는 영혼들이 구원받는 열매가 풍성하게하소서

이방인과 유대인과 그 관리들이 두 사도를 모욕하며 돌로 치려고 달려드니 그들이 알고 도망하여 루가오니아의 두 성 루스드라와 더베와 그 근방으로 가서 거기서 복음을 전하니라 루스드라에 발을 쓰지 못하는 한 사람이 앉아 있는데 나면서 걷지 못하게 되어 걸어 본 적이 없는 자라 바울이 말하는 것을 듣거늘 바울이 주목하여 구원 받을 만한 믿음이 그에게 있는 것을 보고 큰 소리로 이르되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 하니 그 사람이 일어나 걷는지라

행14:5-10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이방인과 유대인과 그 관리들이 두 사도를 모욕하여 돌로 치려고 달려드니 그들이 알고 도망하여 루가오니아의 두 성 루스드라와 더베와 그 근방으로 가서 거기서 복음을 전하니라"

행14:5-7

이방인과 유대인과 관원들이 두 사도를 능욕하며 돌로 치려고 달려들었습니다. 사도들은 그것을 알고 루스드라와 더베와 그 인근으로 도피를 합니다.

그런데 5-7절 사이에 중요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그들은 거기서 무엇을 했습니까? 복음을 전합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어쩌면 예수 믿다가 감옥에 갈지도 모르겠습니다. 여기서는 복음을 전한다고 감옥에 갈 일은 없지만, 혹시 그런 일이 있을지라도 거기서도 복음을 전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혹시 여러분들이 어떻게 하다가 병원에 갈수도 있습니다. 입원하면 전도하시기 바랍니다. 혹시 여러분이 다른 곳으로 이사갈 수도 있습니다. 그곳에 평신도 선교사로 파송되었다고 생각하셔서 전도하시기 바랍니다.

왜 하나님이 나를 이곳에 보내셨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

행8:4

흩어진 것이 억울해서 복수하려고만 하면 안됩니다. 모든 기회는 하나님의 기회입니다. 모든 사건은 하나님의 사건입니다. 모든 사건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순종하여 귀하게 쓰임 받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루스드라에 발을 쓰지 못하는 한 사람이 앉아 있는데 나면서 걷지 못하게 되어 걸어 본 적이 없는 자라 바울이 말한 것을 듣거늘"

행14:8

두 사도는 이고니온에서 돌에 맞을 뻔합니다. 그래서 그 이웃 지역인 루스드라로 피해 가지만, 그들은 그곳에서도 복음을 전합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이 참된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사마리아 교회가 어떻게 탄생되었습니까?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

행8:4-5

이방 선교의 전초기지로 귀하게 쓰임 받은 안디옥 교회가 어떻게 탄생되었습니까?

"그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으로 말미암아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유대인에게만 말씀을 전하는데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 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행11:19-21

어떤 상황에서든지 좋으면 좋은 대로 나쁘면 나쁜 대로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자, 그리스도에 대한 뜨거운 심장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 바로 진실한 그리스도인들입니다.

8절에서 보면 그들이 루스드라에서 한 번도 걸어 보지 못한 앉은뱅이를 만나게 되는데, 이는 베드로가 3장에서 앉은뱅이를 만났던 사건을 연상하게 되는 광경입니다.

"바울이 말하는 것을 듣거늘 바울이 주목하여 구원 받을 만한 믿음이 그에게 있는 것을 보고 큰 소리로 이르되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 하니 그 사람이 일어나 걷는지라"

행14:9-10

본문에서는 바울과 바나바의 루스드라 선교에서 있었던 하나의 사건을 간결하게 기술하고 있습니다. 본문에서 강조하고 있는 것은, 여기에 나오는 사람이 앉은뱅이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첫째로, 이 사람은 발을 쓰지 못한다 합니다.

둘째로, 나면서부터 앉은뱅이가 되었다 합니다.

셋째로, 그런고로 나면서부터 한번도 걸어보지 못한 사람이다 합니다.

여기에 하나 더 추가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나으리라고 기대하지도 않았다는 것입니다.

자, 이 사람은 나면서부터 앉은뱅이가 되었고 한번도 걸어본 적이 없습니다. 일찍이 이런 사람이 걷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지금 바울이 말씀하는 이 자리에 나왔지마는, 결코 자기가 걷게 되리라고 하는 기대감도 없는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오늘의 본문의 특징은 말씀의 능력입니다. 능력은 항상 말씀과 함께 역사합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창1:3

"하나님이 이르시되 천하의 물이 한 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창1:9

"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어 땅이 풀과 각기 종류대로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창1:11-12

"그 아이의 손을 잡고 이르시되 달리다굼 하시니 소녀가 곧 일어나서 걸으니 나이가 열두 살이라 사람들이 곧 크게 놀라고 놀라거늘"

막5:41-42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요11:43-44

보십시오. 성경은 앉은뱅이인 그가 이제 바울의 말씀을 듣더라 말씀합니다. "바울의 말하는 것을 (귀를 기울여, 마음을 다하여) 듣거늘"

사도 바울이 앉은뱅이인 자신을 향해서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10절)" 할 때에 그 말씀만 들었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 말씀 이전에 사도 바울이 설교하는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집중해서, 열심히, 그리고 계속적으로 지속적으로 들었다는 것입니다.

듣는 것이 중요합니다.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

사55:3

기독교는 듣는 종교입니다.

"내가 너희 조상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날에 번제나 희생에 대하여 말하지 아니하며 명령하지 아니하고 오직 내가 이것을 그들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내 목소리를 들으라 그리하면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겠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

렘7:22-23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요5:25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롬10:17

믿음은 어떻게 생깁니까? 내가 노력한다고 믿음이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애쓴다고 해서 믿음이 생기는 것도 아닙니다. 운다고 해서 생기는 것도 아닙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으로 오는 것입니다.

아무리 ‘믿습니다’라고 외치며 기도하고 별 노력을 해도 믿음은 생기지 않습니다. 믿음은 어떻게 생기는 것입니까? 믿음의 씨가 뿌려져야만 믿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아무리 똑똑하고 훌륭한 여자라도 혼자서는 아기를 낳을 수가 없습니다. 남자로부터 생명의 씨앗이 여자의 몸에 들어올 때 임신을 하게 됩니다. 혼자서는 절대로 임신을 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스스로 자기 생각으로, 자기 지식으로, 자기 방법으로 믿음이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10년, 20년을 기다린다고 해서 믿음이 생기지 않습니다. 말씀이 그 속에 씨로 뿌려질 때 믿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말씀이 없으면 절대로 믿음이 생기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을 갖기 위해서는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되 사람의 말로 듣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듣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쉬지 않고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하느니라"

살전2:13

데살로니가 교회가 무서운 핍박과 환난을 이기고 승리한 비결이 무엇입니까?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믿음이 어디서 생겼나요?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오늘의 본문을 자세히 보면, 사도 바울이 먼저 복음을 전합니다. 그리고 앉은뱅이가 바울이 전하는 말씀을 듣습니다. 그 때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이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키고, 사람의 생각을 고쳐놓고, 사람의 의지와 감정을 사로잡고, 마침내는 그의 몸까지 변화를 일으키는 것입니다.

영원히 구제받을 수 없는 죄인이 구원을 받고, 한 번도 걸어본 적이 없는 사람이 일어나는, 바로 그러한 능력이 말씀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오늘의 본문은, 바울이 이 사람을 주목해 보았다 합니다.

그곳에는 많은 사람이 있었을 것입니다. 이 사람만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 많은 사람들 중에서 이 사람을 더 집중적으로 보았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보다 더 열심히 사도 바울의 설교를 들으니까 그렇습니다.

강단에 서서 보면, 저 뒤에 앉은 사람까지 다 보입니다. 죄송한 말씀이지만, 열심히 듣는 사람도 보이나 안 듣는 사람도 보입니다.

어쨌든 오늘의 본문에 나타난 대로, 사도 바울이 지금 설교를 하는데 많은 사람 중에서 유독 이 사람이 눈에 띄었습니다. 열심히 듣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것을 보는 순간, 마음에 믿음이 생겼습니다. 이것은 특수한 믿음입니다. 그리하여 이 사람을 향하여 "큰 소리로 이르되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10절)"고 외친 것입니다.

이 장면을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구원 받을만한 믿음이 그에게 있는 것을 보고 (9절)"

믿음은 불가능을 가능하게 합니다. 안되는 것을 되게 합니다. 없는 것을 있게 합니다. 죽은 자를 살립니다. 이것이 믿음의 능력이며, 역사입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은 있지만, 그의 삶에는 전혀 능력이 나타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은 믿음의 전부를 보지 못한 것입니다.

이 앉은뱅이는 바울의 설교를 들었습니다. 그때 그 말씀이 그 사람 속에서 불이 되고, 능력이 되고, 믿음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사도 바울이 볼 수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활화산같이 변한 것입니다. 이미 죽어 버린 사화산이 다시 살아난 활화산처럼, 그 속에서 뭔가 모를 힘이 솟아나고 있는 것을 지금 사도 바울이 목격을 한 것입니다.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살았고 운동력이 있다고 했습니다."

히4:12을

말씀은 죽은 것이 아닙니다. 말씀은 지식이 아닙니다. 말씀은 정보도 아닙니다. 말씀은 하나님의 능력, 그 자체입니다. 그 말씀 안에 하나님의 생명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되면 그 생명이 내 속으로 들어오게 됩니다. 그 생명은 어둠을 없앱니다. 슬픔을 없앱니다. 염려와 근심을 그 생명이 와서 다 없애 버립니다. 그것이 말씀입니다

말씀은 살았고, 생동력이 있습니다. 에너지가 있습니다. 움직이는 것입니다.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의 영과 혼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갠다고 했습니다. 관절과 골수는 육체를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영을 변화시킵니다. 우리의 혼도 변화시킵니다. 우리의 육체까지도 변화시킵니다.

이 하나님의 말씀이 오늘 본문에서는 사도 바울을 통하여 나면서부터 앉은뱅이가 된 사람의 육체를 새롭게 만드는 기적을 일으켰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말씀과 능력을 이원론적으로 생각합니다. 말씀이 따로 있고, 능력이 따로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성령이 임하면 무엇을 받습니까? 능력을 받게 됩니다. 성령이 임했는데도 능력이 없다는 말을 거짓말입니다. 성령이 임하면, 말씀이 임하면, 능력을 받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은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이렇게 보면 성령이고, 저렇게 보면 능력인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말씀이고, 저렇게 보면 능력인 것입니다.

지금 그처럼 살아있고 능력을 행할 수 있는 믿음이 설교를 듣고 있는 앉은뱅이의 속에서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은 목격한 것입니다.

구원 받을 만한 믿음이 보인 것입니다. 그 믿음이 어떻게 생겼습니까? 사도 바울의 설교를 들음으로 생긴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에게도 동일한 일이 일어나길 바랍니다. 이런 변화가 일어나길 바랍니다.

2023년 10월 28일 오전 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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