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6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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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고백

Confession

기도 농어촌 교회와 개척 교회를 위하여

1.

한 영혼을 바라보며 목양에 힘쓰는 농어촌 교회 목회자들을 축복하여 주시고 지역사회를 복음화 하는 데 귀하게 쓰임 받는 능력의 종이 되게하소서

2.

교회의 연약함으로 인하여 좌절하거나 낙심치 않게 하시고 도시 교회들이 사랑의 마음으로 농어촌 교회와 개척 교회를 돕는 데 더 열심을 내게 하소서

3.

사역 환경의 위기 속에서도 복음에 대한 열정으로 주님께서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게 하시고 그들의 수고가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며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하소서

그러나 순종하지 아니하는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의 마음을 선동하여 형제들에게 악감을 품게 하거늘 두 사도가 오래 있어 주를 힘입어 담대히 말하니 주께서 그들의 손으로 표적과 기사를 행하게 하여 주사 자기 은혜의 말씀을 증언하시니 그 시내의 무리가 나뉘어 유대인을 따르는 자도 있고 두 사도를 따르는 자도 있는지라

행14:2-4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그러나 순종하지 아니하는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의 마음을 선동하여 형제들에게 악감을 품게 하거늘"

행14:2

여기에 재미있는 사실이 있습니다.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복음을 들었지만, 반대로 반응하며 핍박하고 거부하는 무리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반응을 보일 것 같은 사람들에게는 이런 설교를 하고, 저런 반응을 보일 것 같은 사람들에게는 저런 설교를 한 것이 아닙니다.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메시지를 전했지만 듣는 사람들은 두 가지로 반응했던 것입니다. 믿는 사람들이 있고,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고 거부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기뻐하고 찬양하는 사람이 있고, 비판하고 실망하는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어떻게 그렇게 다를 수가 있습니까? 메시지가 문제가 아니라, 사람이 문제였던 것입니다. 메시지가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듣는 사람이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복음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사람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2절을 다시 보십시오. 아주 재미있는 힌트가 나옵니다. ‘그러나 순종하지 아니하는 유대인들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복음을 듣기 전에 이미 그 마음에 불순종의 영으로 가득 찼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고, 하나님을 거부하는 사람의 심령 깊은 곳에는 이미 마귀의 영, 불순종의 영, 거역하는 영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미 마음이 비뚫어져 있습니다. 무슨 일에든 반항하는 것입니다. 무슨 일이든지 거역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좋은 얘기를 해도 일단 거부합니다. 어떤 사람은 말할 때 비비 꼬아서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을 대하기가 아주 힘듭니다. 항상 부정적인 것만 후벼 팝니다. 무슨 사건을 만나든지 그렇습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그 안에 불순종의 영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뭐든지 거부합니다. 자기가 나서지 않으면 다 기분이 나쁩니다. 자기 말이 통과되지 않으면 다 기분이 나쁜 것입니다. 언제나 자기중심으로 모든 것을 해야 하는 그런 영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아무리 좋은 말씀을 들어도 들리지 않습니다. 아무리 예수님이 말씀하셔도 듣지 못합니다. 아마 그 사람은 하나님이 오셔서 말씀을 해도 안 들을 것입니다. 그 마음이 이미 비뚫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꼭 기억하십시오. 죄의 깊은 곳에는 불순종의 영이 있습니다. 권위에 대항하고, 자신을 높이고, 주장하고, 해보지도 않고 오만하게 말을 하고, 끝까지 고집을 피우는 것입니다. 이게 문제입니다. 나쁜 짓을 했거나 간음을 했거나 도적질을 했거나, 거짓말을 한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우리 안에 있는 비뚫어진 영입니다. 불순종의 영입니다. 거부하는 영입니다. 받아들이지 않는 영입니다.

여러분에게는 그런 영이 없기를 바랍니다. 어떤 일이든지 항상 긍정, 항상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이런 불순종한 사람들, 반항하는 사람들을 보고 사도 바울과 바나바는 어떻게 대처했는가를 3절에서 볼 수 있습니다.

"두 사도가 오래 있어 주를 힘입어 담대히 말하니 주께서 그들의 손으로 표적과 기사를 행하게 하여 주사 자기 은혜의 말씀을 증언하시니"

행14:3

여기서 우리가 세 가지를 주목해서 보아야 합니다.

1두 사도가 어떻게 했습니까?

두 사도가 오래 있어

그렇게 반항하는 사람이 나타났을 때 피하거나 그냥 떠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보면 사랑은 오래 참는 것입니다. 불순종하는 자녀들, 거역하는 사람들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기다려 주셔야 합니다. 오랫동안 기다리면 그들이 변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포기합니다. 우리가 포기하면 그 사람은 나빠집니다. 절대 포기하지 마십시오. 기다려서 그 사람을 구원하십시오."

고전13:4을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약1:4에도

우리 신앙생활에 있어서 기다리는 것, 인내하는 것처럼 중요한 것이 없습니다. 사랑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기다릴 수 있습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기다리지 않습니다.

2두 사도가 오래 있어, 다음에 뭐라고 표현되어 있습니까?

주를 힘입어 담대히 말하니

내 힘이 아닙니다. 주를 힘입어 담대히 말했던 것입니다.

3주께서 그들의 손으로 표적과 기사를 행하게 하여주사 자기 은혜의 말씀을 증언하시니

복음이 선포되는 곳에는 2천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이 기적과 능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기적과 능력 중에는 눈에 보이는 것도 있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도 있습니다. 앉은뱅이가 일어납니다. 소경이 눈을 뜹니다. 귀머거리의 귀가 열립니다. 죽은 자가 살아납니다. 이런 것들은 다 눈에 보이는 기적들입니다. 하나님의 복음이 바로 선포될 때 이런 기적과 능력이 지금도 똑같이 나타납니다.

여러분, 앉은뱅이가 일어난 것도 기적이지만, 기적 중에 기적은 저와 여러분이 변화된 것입니다.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을 용서할 수 있게 되고,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사람이 한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노력과 방법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친히 역사하신 것입니다. 여러분의 생애에도 이런 기적이 있는 줄로 압니다.

"그 시내의 무리가 나뉘어 유대인을 따르는 자도 있고 두 사도를 따르는 자도 있는지라"

행14:4

본문을 보면 재미있는 말씀이 있습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 두 그룹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즉 바울을 핍박하는 유대인 편에 서든지 아니면 사도 바울 편에 있든지 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쪽 편인가 저쪽 편인가가 아니라, 복음을 전했는데도 패가 안 갈리는 것이 문제입니다. 복음을 전했는데도 반응이 없는 것입니다. 그건 가짜 복음입니다. 정말 복음은 사람을 변화 시킵니다. 빛이 오면 어둠이 사라지는 것처럼, 복음이 오면 사탄의 세력들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복음 안에는 회색 지대가 없습니다. 만약에 복음 안에 회색 지대가 있다면 그것은 가짜 복음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10:34에서

10:34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복음은 세상을 소요케 합니다. 이데올로기도 운동권도 세상을 소란하게 만들지만 복음도 세상을 소란하게 만듭니다. 소란의 질이 다른 것 뿐입니다. 기복교의 복된 복음은 사탄이 있는 곳에 터뜨려지는 폭탄과도 같은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복음은 불입니다. 성령의 불이 붙으면 그 불을 끄러 다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왜 예수를 그렇게 촌스럽게 믿느냐? 기도를 왜 그렇게 소리지르며 하느냐? 왜 그렇게 전도를 극성스럽게 하느냐? 가정도 지키고 사회도 지키고 다 점잖게 해야 되지 않겠느냐? 사회에 비판받지 않도록 그렇게 해야 되지 않겠느냐?’ 인간의 이성의 잣대로 생각의 잣대로 교양이라는 이름으로 이 모든 성령의 불들을 다 꺼 버립니다. 말씀의 불들을 다 꺼버립니다. 그래서 교회를 잠잠하게 만듭니다. 있는지 없는지 모르게 만들어 놓습니다. 소리도 크게 지르지 말라고 합니다. 찬송도 하지 말라고 합니다. 성경책도 촌스럽게 큰 것을 가지고 다니지 말고 조그마한 포켓 용으로 들고 다니라고 말합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예수 믿는다고 말하지 말라고 합니다.

사도행전의 사람들을 보십시오. 미친 사람들 같습니다. 수준이 낮아서 미친 것이 아닙니다.

어떤 분이 터키를 여행하던 중, 아침에 호텔에서 나와서 버스를 탔는데, 곰이 나타나서 깜짝 놀랐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이빨 빠진 곰이었습니다. 사람들의 돈벌이를 위해서 발톱까지 뺀 곰이었다는 것입니다. 5달러만 내면 그 곰 곁에서 사진을 찍을 수가 있습니다. 야생에서 포효하며 지내야 할 곰이 사람의 돈벌이가 되고만 것입니다.

많은 현대 그리스도인들이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빨 빠진 곰이 되어 적당히 세상과 타협하고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능력을 주셨습니다. 복음을 주셨습니다. 생명을 살리라고 이 능력을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돈에 눌려 있습니다. 명예에 눌려 있습니다. 학문에 눌려 있습니다. 제일 불쌍한 목사들은 박사 학위 받기 위해 세월을 보내는 목사들입니다. 참 재미있는 것은 사도 바울을 연구하여 박사 학위를 받는 사람이 몇 천 명쯤은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빨 빠진 사자나 곰처럼, 날개를 잃어버린 새처럼 세상에 주는 달콤한 유혹에 빠져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살아도 주를 위해서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교회가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우리 교회가 더 크거나 부흥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그렇게 살 수만 있다면 아무 것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크고 작은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많은 일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 교회 성도들이 얼마나 사도행전의 성도들처럼 그렇게 불을 가지고 살아가느냐 하는 것입니다. 정말 그렇게 평생 살아가 죽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세상을 변하게 될 것입니다.

2023년 10월 27일 오전 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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