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5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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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고백

Confession

기도 다니엘 기도회를 위하여

매 예배 시간마다 기름부음이 넘쳐서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며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여 병을 고침 받고, 문제를 해결받고, 하나님이 주시는 꿈과 비젼을 갖게 하여 주시고, 성령 충만을 받아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을 증거하는 간증의 주인공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에 이고니온에서 두 사도가 함께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 말하니 유대와 헬라의 허다한 무리가 믿더라

행14:1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사도 바울의 1차 선교 여행의 출발지는 수리아의 안디옥이었습니다. 수리아 안디옥 교회에서 5명의 지도자들이 주를 섬겨 금식하다가 성령님의 음성을 듣고 바울과 바나바를 선교사로 파송하게 됩니다.

그들의 첫 번째 선교 여행은 구브로 섬에서 전도를 하고 다시 육지로 돌아와서 비시디아 안디옥과 이고니온과 루스드라와 더베까지 가는 여정이었습니다. 일행은 이 여행 중에 돌아 맞아서 기절한 일도 있었고, 죽을 뻔한 일도 있었으며, 사람들에게 핍박을 받아 쫓겨나는 일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복음을 들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어 기적과 표적과 이적들이 나타나는 일도 있었습니다.

1차 전도 여행의 반환점은 더베입니다. 더베까지 갔다가 다시 루스드라로, 루스드라에서 다시 이고니온으로, 이고니온에서 다시 비시디아 안디옥을 거쳐서 그들이 출발했던 수리아 안디옥까지 돌아오는 여정을 보게 됩니다. 이들은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강퍅한 유대인들을 만나서 핍박을 받고 쫓겨나 그 곳에서 이고니온으로 가게 되었는데, 이 이고니온에서 있었던 일들을 본문 말씀을 통해 보겠습니다.

"이에 이고니온에서 두 사도가 함께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 말하니 유대와 헬라의 허다한 무리가 믿더라"

행14:1

여기서 우리는 아주 중요한 두 가지 사실을 배우게 됩니다.

1바울과 바나바는 어디를 가든지 반복해서 꼭 전하고 싶어하는 메시지를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이에 이고니온에서 두 사도가 함께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 말하니 유대와 헬라의 허다한 무리가 믿더라"

행14:1

14:1 At Iconium Paul and Barnabas went as usual into the Jewish synagogue. There they spoke so effectively that a great number of Jews and Gentiles believed.

한국말에는 그런 표현이 없지만 영어로는 so 즉 그와같이 말하되 라는 말이 있습니다.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말하던 그것을 똑같이 반복해서 말했다는 뜻입니다. 그들의 메시지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메시지는 하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메시지를 어디를 가든지 어떤 상황에서든지 전했고, 그 예수님에 관한 내용을 전에 하던 그 방법으로 전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메시지를 전할 때 핍박도 받았고, 고통도 있었고, 오해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그들에게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분명한 목적이 있는 사람은 환경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목적이 없는 사람은 환경이 중요합니다. 환경에 따라 인생이 흔들립니다. 좋은 환경이 되면 그의 인생이 행복하게 바뀝니다. 환경이 나쁘면 자기의 인생이 불행해진다고 여깁니다. 그러나 인생의 목표가 분명한 사람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좋은 환경 때문에 그렇게 좋아하지도 않고, 나쁜 환경 때문에 그렇게 비참해 하지도 않는 것입니다. 성공 때문에 웃고, 실패 때문에 좌절하지도 않습니다. 그의 인생에은 한 목표가 있기 때문입니다.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은 환경에 좌우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그 한 사람을 사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을 사랑하고 있기 때문에 그 사람 때문에 치러야할 대가와 희생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에게는 죽음이 자기에게 찾아온다 할지라도, 자기의 명예를, 자기의 건강을, 자기의 인생을 박탈한다 할지라도 죽기까지 전해야 할 하나의 메시지가 있었습니다. 그 메시지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메시지를 위하여 인생 전체를 바꾸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고전2:2에서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고전2:2

몰라서가 아닙니다. 없어서가 아닙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않기로 작정한 것입니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갈6:14

바울에게 왜 자랑할 것이 없겠습니까? 그는 지성인 중에 지성인이었습니다. 학문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유대인 중에 유대인이요, 율법의 의로 흠이 없는 사람이었고, 로마의 시민권자입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누구보다도 자랑한 것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얼마나 똑똑했으면 신약의 많은 부분을 썼겠습니까? 그러나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결코 자랑할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예수 외에는 할 말이 없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너무나 할 말이 많습니다. 그리고 할 일들이 많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알고 보면 다 별것 아닙니다. 시시한 것을 너무도 중요하게 생각하며 우리의 인생을 낭비하고 있습니다. 물론 돈 버는 것은 중요합니다. 공부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선한 일을 행하는 것 역시 중요합니다. 조국도 중요하고, 민족도 중요하고 다 중요합니다. 중요하지 않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과 예수 그리스도를 바꿀 수 없다는 말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예수를 중요한 것들 중 하나라고 봅니다. 마치 이스람교에서 예수를 예언자 중 한 사람이라고 보는 것처럼, 기독교를 모든 종교 중 하나라고 보는 것처럼, 사람들은 예수님의 가치를 모든 좋은 것 중 하나로 전락시켜 버리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을 인간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예수님을 성자 중 한 사람으로 만들어 버리고 만 것입니다.

어떤 신분을 가졌느냐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금 무엇을 생각하느냐 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그런 신분에 있으면 그런 사람이라고 착각을 합니다. 그런 직업이 있으면, 그런 위치에 있으면, 자기가 그런 사람인줄 압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당신이 무엇을 위해 죽을 수 있는냐가 더 중요합니다. 내가 비록 생각하던 것과는 다른 직업에 종사한다 할지라도, 다른 처지에 있다 할지라도, 다른 상황에 있다 할지라도, 나를 사로잡고 있는 분이 예수 그리스도요, 그 분을 위해서 내가 죽을 수 있고, 그 분을 위해서 내가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그런 생각과 결심이 서 있다면, 그 사람은 진짜인 것입니다.

목사나 선교사라는 신분을 가지고도 예수님을 중요하지 않게 생각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내가 목사요’ 하면서 설교를 할 수 있습니다. 선교사로서 선교지에 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선교지에 가 있는 선교사가 예수님은 생각지 않고 자기의 안녕이나, 자기의 입장이나, 자기의 성공이니 자기의 미래를 더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어떤 목사님들은 복음을 전하는 것보다 박사 학위 받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기도 합니다. 자기의 성장이나 자기의 발전을 더 중요시 한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이 예수를 안 믿는 것도 아니고, 전하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어떤 장소에 가든지 어떤 상황을 만나든지 바나바와 바울의 가슴 속에 끓어오르는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예수였습니다. 예수님을 전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마음이 그들에게 있었습니다. 여러분에게 그런 것들이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목사냐 선교사냐, 평신도냐, 이것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누구를 위해 사느냐가 중요합니다. 여러분이 있는 그 위치에서 예수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것과 그 분을 전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으며, 그 분 때문에 내 생명을 아낌없이 바칠 수 있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1절에서 발견하게 되는 두 번째 사실은 복음이라고 하는 것은 언제 어디서 누가 전했다 할지라도 그 복음에는 능력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롬1:16에서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롬1:16

그렇습니다. 헬라인이냐 유대인이냐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야만인이냐 지성인이냐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가난한 자인가 부자인가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2천년 전이냐 지금이냐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복음은 시간을 초월합니다. 복음은 시대를 초월합니다. 복음은 인종을 초월합니다. 복음은 상황을 초월합니다. 모든 상황에서 복음은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나는 이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복음이 선포되는 곳에는 죽은 사람이 살아납니다. 구원의 능력들이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복음이 있는 곳에는 귀신이 떠나갑니다. 죽은 자가 살아납니다. 이런 기적들이 지금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것이 복음입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이 복음 때문에 핍박을 받고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쫓겨나고 지금 이고니온으로 왔지만, 똑같은 방법과 똑같은 내용으로 회당에서 유대인들과 헬라인들에게 전도를 했습니다. 이때 무슨 일이 있어났습니까?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던 것처럼, 이고니온에서도 사도 바울의 설교를 통해 복음을 듣고 사람들이 믿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2023년 10월 26일 오전 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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