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3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기도 환경과 생명을 위하여
온 인류가 피조 세계를 향한 하나님의 명령을 기억하여 인간의 욕심이 아닌 하나님의 질서대로 환경을 다스리게 하소서
모든 생명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낙태와 아동 학대 등 생명 경시 풍조가 사라지게 하시고 우리에게 주신 생명을 존중하고 사랑하게 하소서
환경과 생명을 위해 일하는 관계자들에게 지혜를 허락하셔서 효율적인 정책이 세워지게 하시고 교회와 사회가 함께 힘을 모아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가게 하소서
그들이 나갈새 사람들이 청하되 다음 안식일에도 이 말씀을 하라 하더라 회당의 모임이 끝난 후에 유대인과 유대교에 입교한 경건한 사람들이 많이 바울과 바나바를 따르니 두 사도가 더불어 말하고 항상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으라 권하니라 그 다음 안식일에는 온 시민이 거의 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여 모이니 유대인들이 그 무리를 보고 시기가 가득하여 바울이 말한 것을 반박하고 비방하거늘
행13:42-45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우리는 비시디아 안디옥의 유대인 회당에서 한 사도 바울의 메시지를 지난 시간에 배웠습니다. 예수는 바로 구약에서 약속된 메시아시라는 것입니다. 그 분은 우연하게 태어나신 분이 아니라,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분으로 다윗의 자손으로 태어나신 약속의 메시아였다는 것이 사도 바울이 행한 첫 번째 설교의 요지였습니다. 그리고 그 메시아인 예수가 태어났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안식일마다 외우는 말씀을 알지 못하여 십자가에 못 박았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사흘 만에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다시 살리신 이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구원을 얻게 된다는 것이 이 설교의 메시지였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가 알 것은 이 사람을 힘입어 죄 사함을 너희에게 전하는 이것이며 또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
행13:38-39이것이 지난 시간에 공부한 사도 바울의 설교의 요지입니다. 오늘 우리는 사도 바울이 설교를 하고 난 후 나타나는 반응과 결과에 대해 공부하게 됩니다.
본문은 사도 바울과 바나바가 선교사로서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경험한 바를 말씀하고 있습니다마는 그것은 반드시 그 두 사람만의 경험에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복음이 전파되는 심령마다 어느 현장에서든 똑같게 이루어지는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어디에서나 이 같은 일은 알게 모르게 반복 재현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땅히 이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람은 어떤 의미로 살아가야 하는지를 밝히 알고 늘 상고해야 할 줄로 압니다.
"그들이 나갈새 사람들이 청하되 다음 안식일에도 이 말씀을 하라 하더라"
행13:42사도 바울이 전해 준 이 단순한 복음은 내용면으로 보면 구약 역사에 정통한 그들이 볼 때 모르는 것이 하나도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그 설교를 들을 때 마음이 뜨거워졌던 것입니다. 그냥 지식적으로 산발적으로 알았던 구약 역사가 훤하게 꿰뚫어지는 것입니다. 히브리 역사를 통하여 나타난 하나님의 뜻을 밝히 알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그들을 조상들을 통하여 약속하신 메시아이신 것이 밝히 깨달아졌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이스라엘 역사에 나타난 하나님의 계획이었구나’ 하는 깨닫게 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설교를 아주 잘했습니다. 보세요. "그들이 나갈 새 사람들이 청하되 다음 안식일에도 이 말씀을 하라 하더라"
그뿐입니까? 저들이 바울과 바나바를 따랐다고 합니다.
"회당의 모임이 끝난 후에 유대인과 유대교에 입교한 경건한 사람들이 많이 바울과 바나바를 따르니 두 사도가 더불어 말하고 항상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으라 권하니라"
행13:43설교가 끝난 후에도 사람들은 바울과 바나바의 주위를 떠날 줄을 몰랐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좋았다는 것입니다. 감동을 받았다는 얘기입니다. 무언가 더 듣고 싶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복음은 더 듣고 싶은 것입니다. 복음의 메시지를 듣고 거기서 만족하며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꾸 더 듣고 싶은 것입니다.
1 주 예수 크신 사랑 늘 말해 주시오
평생에 듣던 말씀 또 들려주시오
저 뵈지 않는 천국 주 예수 계신 곳
나 밝히 알아듣게 또 들려주시오
그렇게 먼 길을 배를 타고 말을 타고 와서, 전혀 알지 못하는 생면부지의 땅에서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했는데, 바로 이 복음이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이렇게 복음을 깨닫게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복음은 지식이나 철학이 아닙니다. 이데올르기도 아닙니다. 여러분의 영혼을 살리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새롭게 다시 만들어 주는 그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그 다음 안식일에는 온 시민이 거의 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여 모이니"
행13:44그 다음 안식일에는. 벌써 한 주가 지났습니다. ‘온 시민이 거의 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여 모이니’
지난 안식일에 왔던 사람들이 돌아가서 열심히 소문냈으니 그렇게 모인 것입니다. 오늘날처럼 방송을 하는 것도 아니고 신문이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돌아다니면서 소문을 냈겠습니까? 온 시민이 거의 다 모였다고 합니다. 온 시민이 거의 다 모일만큼 지난 안식일에 들은 사람들이 나아가 열심히 전했다는 말씀이 아닙니까? 확실히 영감 있고 능력 있는 설교였습니다.
모이되 저들은 바울의 말을 듣고자 하여, 바울이 어떤 사람인가 보고자 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여 모인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깊이 생각해야 됩니다. 바울의 말씀을 저들은 벌써 사람의 말로 듣지 않고 하나님 말씀으로 듣고 있습니다. 우리는 설교를 어떻게 들어야 합니까?
"우리가 하나님께 쉬지 않고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하느니라"
살전2:13무릇 교회 나오는 사람은 마땅히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나와야 합니다. 그런 예배가 아름다운 예배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온 시민이 거의 다 모여서 하나님 말씀을 듣는 소중한 사건이 있는데, 여기에 또 핍박이 따릅니다.
"유대인들이 그 무리를 보고 시기가 가득하여 바울이 말한 것을 반박하고 비방하거늘"
행13:45이상한 일이지요? 핍박이 있습니다. 언제나 복음을 전하는 데는 핍박이 있습니다. 복음의 역사에는 반드시 심판적 요소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듣고 회개하고 믿어 구원을 받고, 하나님을 찬송하는가 하면 한쪽에서는 듣고 완악해져서 변박하고 비방하고, 마지막에는 돌을 던지려고 합니다.
이상한 일이지요? 똑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말씀을 들었는데 누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누구는 더 완악해집니다. 누구는 회개하고 구원을 받고 누구는 시기 질투하고 마침내 완악한 사람이 됩니다.
어느 시대에나 그렇습니다. 똑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말씀을 들어도 이것을 전적으로 받아 구원에 이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지금도 여기 앉아 있으면서 마음이 틀어져 가지고 고생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불쌍한 사람이지요. 그러니 내가 전도를 하든 설교를 하든 사람들이 그것을 일백 퍼센트 다 받아들이리라고는 기대할 것이 아닙니다.
성경의 맥락이 이 사실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설교를 하셔도 그러했고, 베드로가 설교해도 그러했으며 바울이 설교해도 그러했습니다. 수용하는 자가 있는가 하면 반대하는 자가 있었습니다.
왜 핍박하고 반대합니까? 이유인즉 치사하기 짝이 없습니다.
"유대인들이 그 무리를 보고 시기가 가득하여 바울이 말한 것을 반박하고 비방하거늘"
행13:45시기 질투 때문입니다. 시기 질투라는 것이 참 무서운 것입니다.
비시디아 안디옥은 주전 6세기에 로마의 식민지가 됩니다. 로마의 식민지가 된 이후에 헬라사람, 로마사람, 유대사람들이 주로 모여서 사는 도시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정치는 로마의 것이었습니다. 정치는 로마요, 학문과 철학은 헬라라고 하지 않습니까? 로마가 세계를 점령했지만 문화는 헬라 문화를 전파했습니다. 로마 정치와 헬라 철학이 조금도 어렵지 않게 조화를 이루어가면서 당시의 온 세계를 지배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유대 종교입니다. 종교적 차원에서는 유대사람들이 단연 우세합니다. 헬라사람이든 로마사람이든 그들은 우상을 많이 섬겼습니다. 우상을 섬긴 나머지 도덕적으로 타락했습니다. 특히 성생활이 엉망이었습니다. 하도 타락해서 문란했기 때문에, 전적으로 문란한 성생활에서 절대적으로 희생자가 되는 것은 여자입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서 생각이 있고 공부도 했고 지체가 있는 여인들이 그런 생활에 환멸을 느꼈고, 그래서 유대교로 개종하게 됩니다. 깨끗해 보이는 도덕생활이 마음에 들어서 유대교로 개종한 사람이 많았습니다.
본문에도 50절에 잠깐 비치는 것이 있습니다. "이에 유대인들이 경건한 귀부인들과"라고 말씀합니다. 귀부인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헬라사람 귀부인들이 개종해서 히브리 종교 즉 유대교를 믿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 사람들을 선동해서 바울을 핍박하게 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유대교인들은 종교에 관한 한 단연 자기네가 최고라고 생각했습니다. 종교에서는 자기네가 주도권을 쥐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바울이라는 사람이 나타나서 예수를 전파하고 있으니 자기네 쪽으로 왔던 사람들이 다 그쪽으로 가버리는 것입니다. 여기서 시기 질투가 나오게 된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