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9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0

신앙고백

Confession

기도 세계 선교를 위하여

1.

펜데믹으로 인해 위축된 선교지의 현장을 속히 회복하여 주시고 폭발적인 복음 증거 사역이 일어나게 하소서

2.

선교사님들에게 성령의 충만함과 영적 분별력을 허락해 주셔서 탁월한 선교 전략으로 접근하게 하시며 모든 질병과 풍토병으로부터 보호하여 주소서

3.

치열한 영적 전쟁 가운데 있는 선교 현장을 예수님의 보혈로 덮으셔서 모든 선교사님들이 사명 붙들고 사역하게 하소서

형제들아 아브라함의 후손과 너희 중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아 이 구원의 말씀을 우리에게 보내셨거늘 예루살렘에 사는 자들과 그들 관리들이 예수와 및 안식일마다 외우는 바 선지자들의 말을 알지 못하므로 예수를 정죄하여 선지자들의 말을 응하게 하였도다 죽일 죄를 하나도 찾지 못하였으나 빌라도에게 죽여 달라 하였으니 성경에 그를 가리켜 기록한 말씀을 다 응하게 한 것이라 후에 나무에서 내려다가 무덤에 두었으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신지라 갈릴리로부터 예루살렘에 함께 올라간 사람들에게 여러 날 보이셨으니 그들이 이제 백성 앞에서 그의 증인이라

행13:26-31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형제들아 아브라함의 후손과 너희 중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아 이 구원의 말씀을 우리에게 보내셨거늘 예루살렘에 사는 자들과 그들 관리들이 예수와 및 안식일마다 외우는 바 선지자들의 말을 알지 못하므로 예수를 정죄하여 선지자들의 말을 응하게 하였도다"

행13:26-27

이 구원의 말씀은 로고스입니다.

"'호 로고스 사륵스 에게네토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라고 말씀합니다."

요1:14절에서

육체를 입고 세상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 예수님이고, 육체를 입기 전의 예수님, 선재하신 예수님이 로고스입니다. 이것을 본문에서는 '말씀'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이 로고스,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그 본체되시는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어 이 땅에 오셨습니다. 바울은 이를 두고 "이 구원의 말씀을 우리에게 보내셨거늘" 이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문제는 그 다음의 이야기입니다.

"예루살렘에 사는 자들과 저희 관원들이 예수와 및 안식일마다 외우는 바 선지자들의 말을 알지 못하므로 예수를 정죄하여 선지자들의 말을 응하게 하였도다"

행13:27

예수님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는데 유대사람들은 그것을 알지 못하고 예수를 정죄하여 십자가에 못 박았다, 받아들이지 못하고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아버렸다. 성경이 예언한 대로 이렇게 귀하신 분이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오셨는데, 저들은 십자가에 못박아버렸습니다.

누가? 예루살렘에 사는 자들과 저희 관원들이

왜 십자가에 못 박았나요? 예수와 및 안식일마다 외우는 바 선지자들의 말을 알지 못하였으므로

예나 오늘이나 무식이 죄입니다. 모든 죄가 다 그렇습니다. 모든 실수가 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에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눅23:34)"--무식하니 좀 봐주세요, 그런 얘기 아닙니까? 몰라서 그런 짓 하는 것이지 알고야 그렇게 하겠습니까? 그 후로 예루살렘은 완전히 망해버렸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예루살렘 성전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생각해보세요. 그럴 줄 알았더라면 죄를 지었겠습니까? 몰라서 그렇습니다. 호세아 4장 6절에 보면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라고 말씀합니다. 정말입니다. 지식이 없어 망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에 꽤 재미있는 것이 있습니다. 다시 한번 본문 27절을 읽어봅시다. "예루살렘에 사는 자들과 저희 관원들이 예수와 및 안식일마다 외우는 바 선지자들의 말을 알지 못하므로……" 난센스가 아닙니까?

이 사람들은 안식일마다 성경을 외웁니다. 성경책은 회당에만 있습니다. 당시에는 지금의 우리처럼 자유롭게 성경을 가지고 다니면서 읽는 것이 아니었거든요. 그래서 잘 외는데 뜻을 몰랐습니다. 결국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모름지기 우리는 성경을 많이 읽고, 외기도 해야겠지만 뜻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을 통해서 내게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예수를 만나야 됩니다. 그래서 오늘의 본문은 말씀합니다. '당신들은 성경을 모르고 예수도 모릅니다. 성경을 외면서도 뜻은 모릅니다. 그래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또한 인간의 잔학성, 죄악성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죽일 죄를 하나도 찾지 못하였으나 빌라도에게 죽여 달라 하였으니"

행13:28

사람이 이렇게 악할 수 있습니까? 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습니까? 본문에 사도 바울이 증거 합니다. 빌라도는 죄가 없음을 알았다, 예수를 놓아주려고 했다, 그러나 저들이 죽여 달라고 했다 합니다. 대체 무슨 이유에서입니까?

예수님은 죄인이 아닌 의인이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왜 하나님의 아들을 죽입니까? 메시야를 죽입니까? 정 메시야라는 것을 모르겠으면 '당분간 좀 두고 봅시다'라고 하기라도 했으면 좋았을 것을 기어이 당장 죽여 달라고 소리를 지릅니까? 사람들이 어찌 그리 잔인합니까? 인간의 잔학성이 그대로 십자가 사건에 표출된 것입니다.

가야바나 바리새인들은 남보다 특별히 잘 믿는다는 사람들입니다. 서기관들은 성경 전문가들입니다. 이 사람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인간의 어리석음, 인간의 죄악성이 그대로 여기서 표출됩니다. 그리고 나서 사도 바울은 위대한 신학을 전개합니다.

"성경에 저를 가리켜 기록한 말씀을 다 응하게 한 것이라 후에 나무에서 내려다가 무덤에 두었으나"

행13:29

이 사건 속에서 하나님은 저를 가리켜 기록한 말씀을 다 응하게 하는 것이라 합니다. 이런 일이 있으리라고 예언한 성경말씀을 응하게 하신 것이라 합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체포되시는 순간에 베드로가 검을 꺼내어 휘두릅니다. 이때에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네 검을 도로 집에 꽂으라 검을 가지는 자는 다 검으로 망하느니라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 영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 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리요 하시더라"

마26:52-54

결국은 잔학한 행위, 이 무서운 사건 속에서 하나님의 계시와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이 성취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보다 높은 곳에 있습니다. 만백성을 구원하시고자 하시는 큰 역사가 여기에 나타났다, 초월적인 역사가 여기에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씀을 다 응하게 한 것이라"라고 전하고 있습니다.

십자가와 부활, 그 사실을 역사 중심에 두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저를 가리켜 기록한 말씀을 다 응하게 한 것이라 후에 나무에서 내려다가 무덤에 두었으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저를 살리신지라 갈릴리로부터 예루살렘에 함께 올라간 사람들에게 여러 날 보이셨으니 저희가 이제 백성 앞에 그의 증인이라"

행13:29-31

십자가 죽음과 부활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 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롬4:25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롬10:9-10

예수님의 부활은 우연히 된 것이 아니고 다윗의 입을 통하여 예언하신 것이라는 것입니다.

다윗은 죽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썩지 아니할 자를 예언합니다. '다윗은 죽어 썩어 무덤에 있지만 예수는 부활하셨다. 이것은 다윗이 미리 예언한 것이다'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영감을 받아서 예언한 것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죽음과 부활을 말씀합니다. 죽음과 부활이 바울 신학에서 대단히 중요합니다. 율법으로 죽고 은혜로 살고, 죄로 죽고 죄 사함 받는 역사로 삽니다. 죄로 죽고 은혜로 사는 역사가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 사건 속에서 확정되는 것입니다. 부활이 없다면 사죄도 없습니다. 부활이 없다면 구원도 없습니다. 이것은 설명하는 것이 사도 바울의 말씀하는 바 골자입니다.

2023년 10월 20일 오전 6:41

Archive

지난 말씀 보기

지나간 날의 말씀을 다시 묵상하며 은혜를 나누세요. 날짜를 선택하면 해당 날짜의 설교로 이동합니다.

전체 목록 보기

2026년 2월

달력 이동전체 목록목사님 소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