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8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기도 우리 교회를 위하여
우리 교회가 하나님의 은혜가 흘러넘치는 생명 공동체가 되어 지역 사회의 연약한 영혼들을 섬기게 하소서
우리 교회의 모든 성도가 기도와 예배의 영성을 회복하여 하나님께 영광 올려 드리는 복된 공동체가 되게 하소서
모든 성도들이 성령으로 하나되게 하시고 예수님을 닮아 자기를 부인하고 마음을 다하여 헌신하는 착하고 충성된 자들이 되게 하소서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행11:25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백기현 교수님은 2살이 됐을 때 뜻하지 않은 사고로 곱사등이가 되어 열등감 속에서 열심히 공부하여 의대를 가려고 했는데, 음악 선생님의 권유로 서울 음대에 진학하여 27살에 음대 교수가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성악가로 곱사등을 보여주기 싫어서 뮤지컬 이순신을 하여 희트를 치고 국가에서 훈장도 받게 되었는데, 외국에 뮤지컬 이순신을 공연하려다가 수십억의 적자를 보게 되었습니다. 당시는 국가를 원망하여, 자신을 비관하여 자살하려고 했는데, 죽기 전에 우연히 참석한 부흥회에서 곱사등을 치료 받고 자신을 괴롭히던 간염도 치료받고 보니까 우연은 하나도 없고,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였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의대에 가지 않고 음대에 가서 성악가가 된 것이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하나님의 섭리였고, 뮤지컬을 하다가 수십 억의 적자를 보게 된 것도, 예수님을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죽은 이순신을 찬양하다가 당한 아픔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만약 이때 하나님이 자신을 적자로 치지 않으셨다면 인기에 취해 세계를 향해 달려가다가 간염이 있는 자신이 죽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가운데 들은 음성은 하나님이 백 교수님의 그 많은 빚도 다 해결해 주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언제가 되겠느냐고 여쭈었더니, 네 믿음을 보겠다고 하시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직까지 빚 뿐인 인생이지만 전혀 걱정 근심이 되지 않고 오직 예수를 위해 사는 행복한 인생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에게 우연은 있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난 뒤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일들이며, 결국 마지막에 가서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됩니다.
스데반의 순교로 예루살렘 교회에 큰 박해가 다가왔고, 성도들은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이것을 우연이라 생각하지 않고 기도하는 가운데, 이 일을 우리가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해야 하는데, 여기가 좋사오니 하고 예루살렘에만 머물러 있었기 때문에 이런 환난이 다가왔다는 것을 깨닫게 되어, 가는 곳마다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으로 말미암아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유대인에게만 말씀을 전하는데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 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예루살렘 교회가 이 사람들의 소문을 듣고 바나바를 안디옥까지 보내니 그가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모든 사람에게 굳건한 믿음으로 주와 함께 머물러 있으라 권하니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여지더라"
행11:19-24교회가 급성장하면서 바나바는 자신의 역부족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였습니까?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행11:25바나바는 정말 위대한 인격자와 지도자였습니다. 일반적으로 교회가 성장하면 지도자들이 자신의 한계점을 인정하는 겸손을 가지기보다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는 경향으로 기울기 쉽습니다. 그래서 자기만 그 교회의 유일한 지도자처럼 군림하려고 합니다. 바나바는 전혀 다른 스타일의 지도자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부족한 점을 솔직히 시인하였습니다.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감추지 않았습니다. 교회를 위해서라면 어떤 대가를 지불해서라도 좋은 인재를 찾으려고 했습니다.
이때 생각이 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사울이었습니다. 바나바는 사울이라는 사람을 알아보는 눈이 있었습니다. 여러분에게도 그런 눈이 있기를 바랍니다.
사울은 본래 예수 믿는 사람을 박해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바나바는 사울이 다메섹으로 가던 길에 빛 가운데 나타나신 예수님을 만나고 변화 받아 새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행9장을 보면 당시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들이 아무도 바울이 변화되었다는 사실을 믿어주지 않았을 때, 바나바는 사울을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변호해 주었습니다. 그 후 사울이 예루살렘에서 복음을 전할 때 과격한 유대인들이 그를 죽이려고 하자, 예루살렘에 있던 형제들이 사울을 피신시켜 그의 고향인 다소에 가 있게 했습니다.
바나바는 그 즉시 사울을 찾아 다소로 갑니다. 사울이 자기 고향 다소로 돌아간 지 이미 수년이 흘렸고, 그 후 소식을 듣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사울은 그 곳에서 가문으로부터 쫓겨났고, 유대인으로부터 혹독한 핍박을 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른 찾는다는 것은 대단한 수고와 고생을 각오하지 않으면 안되는 일이었습니다.
본문에서 찾으러 라는 단어는 어디 있는지 잘 모르는 자를 여기 저기 수소문하면서 헤매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나바는 이런 어려움을 각오하고 그를 찾으러 갔던 것입니다. 바나바는 이렇게 고향에서 묻혀 지내던 사울을 찾아 안디옥에 데려와 같이 사역했습니다. 바나바는 참 귀한 분이셨습니다. 다른 사람을 세워주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위에는 다른 사람을 세워주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라는 속담처럼, 남이 잘되는 것을 그냥 두고 지켜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바나바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는 사울의 장점을 보았습니다.
장점을 못 보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모름지기 믿음의 사람, 은혜의 사람은 남의 장점을 봅니다. 사람은 누구 할 것 없이 장단점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약점도 있고 강점도 있습니다. 그런데 덕 있는 사람은 그 중에서 장점을 봅니다.
다른 사람들은 다 그 사람 못 믿겠다 하고 의심하지만 바나바는 변화한 사울을 알아보았습니다. 여러분은 다른 사람이 변화하고 중생한 것을 인정할 줄 압니까? 우리는 때때로 예수 믿고 새사람이 된 것을 보면서도 과거에 그 사람이 전과자였는데, 과거에 이런 실수를 범한 사람인데 하고, 변화한 오늘의 그리스도인을 인정하지 아니하려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자기는 회개하고 새사람이 된 것을 인정받기를 원하면서도 다른 사람의 회개는 인정하지 않습니다. 자기는 변화한 모습을 알아달라고 하면서 다른 사람의 변화한 존재는 인정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심지어는 남의 족보까지 들먹이면서 이러쿵저러쿵 합니다. 그러나 바나바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래서 위대한 것입니다. 바울이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던 사람이라는 것을 그는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능력을 더 크게 알고 있습니다. 예수로 말미암아 변화하고 중생한 바울임을 그는 믿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능력을 믿고 변화한 바울을 믿습니다. 그런고로 그는 자기의 명예를 걸고 사도 바울을 천거했던 것입니다.
또한 바나바는 허물을 용서할 줄 압니다. 지난 날에 큰 허물이 있었으나 이것을 용서하고 돌아보지 않을 수 있는 덕을 지닌 사람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바나바의 전 생애를 보면 그는 그렇듯 중요한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점점 높아지는 데 반하여 그 자신은 존재가 희미해집니다. 바나바는 질투가 없는 사람입니다. 바울에 대하여 추호라도 내가 추천한 사람이다. 내가 천거한 사람이다, 내가 돌아본 사람이다, 내가 키운 사람이다, 하고 자기를 내세우는 법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큰 사역 앞에서 인간적인 질투며 좁은 마음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뜻을 앞세우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을 찾아 세울 줄 아는 사람입니다. 한마디로 착한 사람인 것입니다.
드디어 사울을 찾아 둘이 자기와 같이 일하자고 권면합니다. 결국 나중에 보면 바나바는 사울을 섬기는 자가 됩니다.
참 대단한 인격을 가진 사람입니다. 인격 중에 가장 큰 인격은 남을 섬기는 인격입니다. 일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남을 섬기는 인격까지 갖춘 사람은 참 훌륭한 사람입니다. 더구나 자기보다 훌륭한 사람을 섬기기는 좋습니다. 그러나 자기보다 신분도 낮고 어린 사람을 섬기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바나바는 선임입니다. 사울은 뒤늦게 온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바나바가 사울을 섬겼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인격입니다
우리도 바나바처럼 남을 세워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처음 예수를 믿고 신안 생활한지 얼마 안 된 사람이 열심을 내면, 그 사람의 등을 두드려주면서 잘한다고 칭찬해 주어야 합니다. 계속해서 격려하면서 그를 세워주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 모두가 잘되는 것입니다. 바나바라 사울을 세워 주었을 때 바나바와 사울 모두가 잘 되었던 것처럼 우리 또한 다른 사람을 세우서 서로 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스티브라는 사람은 시신경 장애로 인한 난독증 때문에 글을 제대로 읽을 수가 없었습니다. 글을 한 자 한 자 읽지 못하고 글의 형태를 사진을 찍듯이 받아들였기 때문에 글을 이해하는 데 큰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의 생활 기록부에는 ‘저능아,’ ‘학습 부진아’라는 말이 항상 따라 다녔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그는 하디라는 아주 훌륭한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그가 항상 ‘나는 저능아야, 학습 부진아야’ 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하디 선생님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스티브, 너는 저능아가 아니야. 너는 보통 아이들과 조금 다를 뿐이야.’
그는 이 말에 용기를 얻었습니다. ‘그래, 조금 차이가 있을 뿐이야. 나는 저능아가 아니야. 나도 노력하면 다른 아이들처럼 잘할 수 있어.’라고 생각하면서 열심히 노력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선생님이 말기 암으로 뉴욕에 있는 한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무려 70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문병을 왔습니다. 병원에서도 깜짝 놀랄 정도였습니다. 그 중에는 미국 상원의원이 세 명, 주 의회의원이 12명이나 되었고, 기업체 대표들도 굉장히 많았습니다. 놀랍게도 그곳에 온 700명 가운데 75%는 하디 선생님을 만나기 전까지 ‘저능아’라는 별명이 따라다녔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디 선생님의 말씀 한 마디에 인생이 바뀌게 된 사람들이었습니다. ‘너는 틀렸어. 너는 아예 가망이 없으니까 포기하는 게 어때?’라고 말하면 아무런 변화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너는 저능아가 아니야. 너는 보통 아이들과 조금 다를 뿐이야. 너는 잘할 수 있어.’하고 격려하고 세워줄 때, 그의 인생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항상 다른 사람을 세워 주어야 합니다. 남이 잘되는 것이 두려워 다른 사람을 끌어 내리지 말고 그를 높여 주어야 합니다. 선생님은 학생들을 장점을 보고, 단점을 보지 말아야 합니다. 자꾸 세워 주고 격려해 주어야 합니다. 구역에서도 자꾸 일꾼을 세워야 합니다. 구역에서 가까운 사람끼리만 이야기하다보면 새로 나온 분들이 외톨이가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먼저 믿은 사람들이 새신자들을 주님의 사랑으로 세워줄 때, 그들도 은혜 받고 주님을 잘 섬기게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