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3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기도 외국인 노동자 유학생과 다문화 가정을 위하여
이 땅에 거주하는 외국인 노동자, 유학생들이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하시며 이들이 말씀과 기도로 훈련받아 열방의 선교사로 나가게 하소서
다문화 가정을 축복하사 불신, 이혼, 폭력 등의 아픔을 겪지 않게 하시고 다문화 가정의 자녀들이 행복과 평안을 누리며 성장하게 하소서
언어와 문화, 생활 습관의 차이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로하사 출신이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과 고통을 당하지 않도록 보호하여 주소서
유대에 있는 사도들과 형제들이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들었더니 베드로가 예루살렘에 올라갔을 때에 할례자들이 비난하여 이르되 네가 무할례자의 집에 들어가 함께 먹었다 하니
행11:2-3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오늘의 본문을 보니 예루살렘교회 안에서 이방사람 예수 믿었다는 것 때문에 문제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베드로가 무할례자의 집에 들어가 함께 먹었다는 것을 문제 삼았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한 이유가 어디에 있었을까요?
사람들은 대체로 본능 위주로나 지성 위주로 삽니다. 어떤 사람은 문화적 전통 속에서 살아갑니다. 별생각 없이 그저 살던 대로가 제일 옳은 줄 알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말씀과 성령에 의해서 살아야 합니다. 말씀과 성령 안에서 자기 생활을 고쳐 나가야 합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말씀을 듣기는 많이 하고 배우나 결국은 자신의 생각이나 고집이 살아 있는 사람은 아닙니까?
풍습과 문화가 걸림돌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오늘의 본문의 이슈입니다. 좀 더 나아가 생각해보면 이것은 집단 이기주의입니다. 문화적인 우월감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내 문화가 더 좋다, 너의 문화는 나쁘다 -그런 얘기입니다.
이 같은 이기주의가 문제입니다. 그 결과로 코이노니아----fellowship 성도의 교제에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유대사람이라고 하는 공동체에 있었던 사람들이 예수를 믿어서 공동체의 개념이 넓어집니다. 변화를 이룹니다. 그래서 기독교라고 하는, 혹은 기독교인이라고 하는 소위 크리스찬 신앙 공동체가 생깁니다. 신앙 공동체의 일원이 됩니다.
그러면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유대사람이라고 하는 공동체 안에 기독교라고 하는 공동체가 있느냐, 기독교라고 하는 큰 공동체 안에 유대사람이라고 하는 작은 공동체가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유대사람이라는 공동체는 있을 수 있습니다. 남자가 있고 여자가 따로 있지 않습니까? 분명히 이런 공동체는 따로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큰 공동체 속에서는 이것이 다 흡수되고 소화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마디로 말하면 기독교인은 다 하나입니다. 한 세례를 받았고 에베소서에 있는 말씀대로 주도 하나요, 말씀도 하나요, 성령도 하나요, 예수는 머리요 우리는 지체다, 온전히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문제는 이것입니다. 유대사람이냐 이방사람 이냐 하는 것은 한 몸 안에 오른손 왼손이 있는 것처럼 각각 한낱 지체일 뿐입니다. 손이 있고 발이 있는 것처럼 유대사람도 예수 믿는 사람, 헬라사람도 예수 믿는 사람, 로마사람도 예수 믿는 사람이라면 그리스도 안에 한 몸인 것입니다. 언어도 다르고 풍속도 달라요.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하나입니다.
언어도 다르고 풍속도 다르고 얼굴도 다르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꼭 같은 수평관계에서 우리는 하나라고 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예수 믿는 유대인, 예수 믿는 이방인의 차이는 어디까지나 문화적 차이로만 남아야 합니다. 결코 수직관계로 남아서도 안되고 종적 관계가 되어서도 안됩니다. 의미의 관계가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언제까지나 형태의 관계, form의 관계로만 남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문화적인 갭(gap)이 문화적인 격이라는 것이 기독교인의 공동체 속에서 방해가 되어서는 결코 안됩니다. 성도의 교제는 똑같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성도의 교제를 넓혀갈 때에 만에 하나라도 있는 사람이다 없는 사람이다, 유식한 사람이다 무식한 사람이다 하고 생각하는 일이 있으면 안됩니다. 높은 사람 낮은 사람 구별해서 생각해도 안됩니다.
여러분, 특별 대우받을 생각 마세요. 특별 대우를 불편하게 생각할 수 있어야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런데 꼭 특별대우만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요. 다 죄인인데 그래서야 되겠어요? 그리스도 안에 온전히 하나라고 하는 것만 크게 여기고 그 나머지는 극소화해야 됩니다. 분명히 차이는 있습니다. 남녀 차이가 있고, 빈부 차이가 있고, 문화 차이가 있고, 언어에 차이가 있습니다.
이런 차이는 극소화하고 그리스도 안의 영원한 기업을 위해서 함께 가는 성도라고 하는, 이것만을 큰 것으로 생각하면 거기서 성도의 교제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유대 사람들에게는 또 한가지, 기득권에 집착하는 저의가 있었습니다. 신앙적 시기심이 있었어요. 참 맹랑한 일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보고 예수 믿으라 예수 믿으라 하면서도 정작 불러다놓고는 나는 집사요 당신은 평신도요, 나는 오래 믿었고 당신은 처음 믿고…… 꼭 이렇게 되기를 원하는 겁니다. 못된 심사지요.
그래서 가끔 어떤 분이 좋은 일이나 선한 일 하는 것을 보면 예수 믿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주제에 나선다고 눈을 흘겨요. 이 무슨 심사입니까? 저도 안 하면서 남 선한 일 하는 것 왜 시기하는 겁니까? 이런 것이 문제란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일찍이 말씀하셨어요.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된 자가 먼저될 자가 많으리라고. 그럴 수 있다는 말씀이지요. 다 그렇다는 것이 아니고.
유대사람들 보십시오. 먼저 예수 믿어놓고 주위의 이방사람들이 예수 믿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겨요. 그들은 특별한 종교문화를 지니고 있습니다. 율법이다, 성전이다, 성전예배다, 제사다, 할례다 하는 풍속과 전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걸 포기하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이런 것을 함께 나누고 싶지 않아요. 이방인이 유대사람과 똑같이 되는 게 못마땅한 것입니다. 왜요? 적어도 종교적으로 높은 우월감을 저들은 가지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선민이다. 선택된 백성이다, 그리고 저 이방사람들, 저 못된 것들, 저것들은 개 같은 존재들이다 하고 정신적으로 여지없이 멸시합니다. 이렇게 하면서 종교적인 우월감을 가지고 살아왔는데 이제 예수 믿고 나서 이런 것 다 털어 버리고 개 같은 사람이라고 멸시하던 사람들과 함께라니, 이게 못마땅한 것입니다. 그래서 딱 버티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어도 할례 받은 사람과 안 받은 사람은 다르다. 먼저 믿은 사람과 뒤에 믿은 사람은 다르지 같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본문말씀을 자세히 보면 같이 되는 것, 더불어 하나가 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어요. 사람도 여러 가지요 불평도 여러 가지인데, 가만히 보면 어떤 사람은 일단 기본적으로는 남과 같지 못한 것을 괴로워합니다.
다른 사람은 이제 제집에서 사는데 나는 셋방에서 사는구나, 나도 내 집 좀 가져봤으면 좋겠다 싶습니다. 남이 가진 것 내가 가져보려고, 다른 사람과 같아지고 싶은데 그렇게 못하는 것을 괴로워합니다. 그러다가 같아지면 이제는 그로써 만족해야 되겠는데 이 또한 그렇지 않아요. 하룻밤도 안되어서 달라집니다. 이제는 좀 더 나아지고 싶은 것입니다. 이제는 남과 달라지기를 원해요. 이제는 남과 같은 게 못마땅해요. 같아지는 게 싫어요.
유별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지 않습니까? 특별한 것 좋아하는 것입니다. 한 여자가 옷을 사 입었어요. 아주 비싼 옷을 사 입어서 기분 좋았는데 그걸 입고 시장에 나갔더니 똑같은 것을 입은 사람이 있단 말입니다. 그 사람이 하필이면 또 못생겼어요. 그만 기분이 나빠 가지고 돌아와 옷을 벗어버리는 것입니다. 다시는 안 입는다 하고. 이렇게 고약한 심성을 가진 사람은 영원히 불행합니다. 행복할 길이 없어요. 언제나 유별나야 되니까요. 어떻게 항상 특별할 수 있습니까?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야 됩니다. 불행이라는 것이 이런 고약한 심사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모름지기 더불어 행복할 줄 알아야 합니다. 내가 예수 믿고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 예수 믿으면 "아, 좋습니다, 당신도 믿는군요"하고 기뻐하면 되는데 그러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부인은 교회에 나오는데 남편이 안나옵니다. 그 사람보고 교회 나오라고 했더니 "저요? 안나갈랍니다" 합니다. "왜요?" 했더니 "집사람이 천당 간다고 하니 난 지옥 갈랍니다." 못됐지요.
그런가하면 참 답답한 사람도 있어요. 이런 사람이 의외로 많아요. 여자가 먼저 믿어서 집사가 되었는데 지금 나가면 나는 평신도다----이것이 못마땅해서 교회 안 나오는 남편들도 있더군요.
이런 것이 달라져서 함께 더불어 기뻐할 줄 아는 심령이 되어야 교회라고 하는 공동체 속에서 행복할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절대로 특별하기를 바라지 마세요. 그러면 못씁니다. '특별'이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주님께서 용납치 않아요. 그렇게 특별 하려고 하다가는 언젠가 한번 되게 맞습니다. 다칩니다. 아무쪼록 쓸데없는 생각 마세요.
2023년 9월 24일 오후 12: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