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2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기도 북한을 위한 기도
북한의 주체 사상이 무너지게 하시고 남북이 하나님의 섭리와 은혜로 분단의 아픔에서 해방되어 복음적 평화 통일을 이루게 하소서
북한 전 지역에 신앙의 자유가 주어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이 선포되게 하시고 북한 전역의 3만 8천 여 개의 동상과 우상들이 철거되며 교회가 세워지게 하소서
고난 중에도 믿음을 지키는 14만 지하교회 성도들과 수용소에 있는 성도들의 생명을 책임져 주시고 영양부족과 굶주림으로 고통 받는 북한 백성들을 불쌍히 여겨주소서
목숨을 걸고 탈북하는 이들의 몸과 마음을 지켜 주시고 탈북민들이 무사히 정착하여 북한 선교의 마중물로 쓰임 받게 하소서
유대에 있는 사도들과 형제들이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들었더니 베드로가 예루살렘에 올라갔을 때에 할례자들이 비난하여 이르되 네가 무할례자의 집에 들어가 함께 먹었다 하니
행11:1-3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오늘의 본문 가운데에는 베드로의 변증이 있습니다. 사도행전 10장을 다시 읽는 것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사도행전 10장의 내용을 그대로 다시 설명하는 내용입니다. 기자 누가는 왜 두 번이나 같은 내용을 기록했을까요?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우리가 이 문제를 깊이 생각해야 됩니다. 지나가는 이야기처럼 간단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엄청난 사건입니다. 바로 여기서부터 문제가 됩니다.
고넬료의 가정을 구원한 베드로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오자 그에게는 어려운 문제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 시간 우리는 그가 처리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문제가 무엇이었는가를 공부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12사도 가운데 수석의 자리에 있었던 그가 자기를 오해하고 있는 형제들을 어떻게 이해시키는가를 주목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루살렘 교회가 한 마음으로 순종할 수 있었던 최고의 권위가 무엇이었는가를 배우는 일입니다.
고넬료가 예수를 믿었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 이방사람을 이미 예수 믿는 유대사람들이 형제로 영입하는 데 있어서 문제가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유대사람과 비 유대사람의 관계가 아니고 믿는 사람과 믿는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문제인 것입니다.
이 문제는 지금 예루살렘에서 일어나고 있는 문제입니다. 고넬료가 환상을 본 후 베드로를 청하고, 베드로 또한 환상을 본 후 고넬료의 집에 가서 복음을 전할 때에 그들 모두가 성령을 받고 세례까지 주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고넬료와 그 일가가 크리스찬이 된 것입니다. 기독교인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기독교인 된 고넬료를 먼저 믿어온 유대 기독교인들이 영접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의 본문에 나타난 내용입니다.
본문에 보면 난센스 같은 이야기가 나옵니다. 1절을 보십시오.
"유대에 있는 사도들과 형제들이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들었더니"
행11:1얼마나 좋은 이야기입니까? 이방사람도 예수 믿고 성령 세례를 받았다, 얼마나 감사할 일이냐? 할렐루야! 이렇게 생각했으며 좋겠는데, 저 사람들은 본래 이방사람들인데, 저 사람들의 생활 풍습이 우리와 다른데 하고 벽을 쌓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서울에 연동교회 라고 있습니다. 종로 5가에 있는데 역사가 100년이나 됩니다. 이 교회가 어느 날 장로 투표를 해서 백정 한 사람이 장로가 됐습니다. 옛날에는 백정이면 이른바 '상놈'이거든요. 그런 사람이 예수를 잘 믿어서 온 교인들이 높이 존경한 나머지 장로로 뽑은 것입니다. 그러자 소위 양반들이 되게 기분이 나빴던가 봅니다. 그래서 '나, 이 교회 안 다닌다'하면서 따로 나와 세운 것이 안국동 교회입니다.
우리 한국에도 이런 문제가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양반과 상민, 얼마나 차이가 있습니까? 주인과 종의 차이입니다. 그러나 예수 믿은 다음에는 다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거든요. 형제 됐으면 이제는 '형님' '동생'하고 지내면 되겠는데 그렇지 않았어요. 그런데 '저 사람이 상놈 출신인데 함께 한솥밥 먹는다는 건 말도 안되지. 같이 앉아서 예배 본다는 것은 말도 안되지'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래서 문제입니다.
그뿐입니까? 오늘 이 자리에는 남녀가 서로 섞어 앉았습니다마는 우리 한국 교회에서 이렇게 남자와 여자가 섞어 앉게 된 것도 그리 오래되지 않은 것입니다. 옛날에는 따로따로 앉았었지요. 이쪽에 남자, 저쪽에 여자, 그리고 교회 갈 때에도 남편은 저만치 가고 아내는 이만치 서 뒤따라갔습니다.
옛날 한국 교회는 ㄱ자로 지어진 교회였습니다. 목사님이 여기 서면 남자는 이쪽, 여자는 다른 쪽입니다. 여자와 남자는 서로 못 보게 되어 있었습니다. 들어가는 문부터 따로따로였습니다. 따로 들어왔다가 따로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려고 지을 때부터 ㄱ자로 했었습니다. 장대현교회도 그런 교회였습니다.
조금 지난 다음 그 예배당을 헐고 다시 큰 예배당을 지을 때에야 합했는데, 그래도 앉기는 여전히 따로따로 앉았습니다. 그러다가 세월이 지나면서 섞이고 말았지만 아무튼 남녀가 그토록 유별했습니다. 바로 이런 것이 문화의 문제입니다.
예수 믿어서 예수 안에 하나다 하고 모든 것이 변하여야 되겠는데 풍속은 고칠 수 없고 계층의식은 굳어 있습니다. 수십 년 예수 믿고도 여전히 도로아미타불이지요. 보통 때는 곧잘 형제자매라고들 쉽게 말하지만 내심은 그렇지 않습니다.
가정도 완전히 그리스도화하지 못 한 가정이 많이 있습니다. 바로 이런 것이 문제라는 말씀입니다. 오늘의 본문에도 보면 이방인이 예수 믿었다는 것이 잘못됐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심지어는 세례준 것도 문제 삼지 않습니다. 무엇이 문제가 되었습니까?
"베드로가 예루살렘에 올라갔을 때에 할례자들이 비난하여 이르되 네가 무할례자의 집에 들어가 함께 먹었다 하니"
행11:2-3우리는 당시 유대인 신자들이 심지어 사도들까지 얼마나 깨뜨리기 어려운 아집에 사로잡혀 있었는지를 엿볼 수 있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를 믿었다는 소문을 들었을 때만해도 그들은 사도들을 축하차 내려 보냈습니다. 따지고 보면 사마리아 사람들은 같은 조상을 가진 동족이었기 때문입니다.
빌립이 에디오피아 내시를 전도하고 세례를 주었지만 그것은 광야 한 모퉁이에서 잠깐 있었던 사건인지라 큰 관심거리가 되지 못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지금까지는 유대인 신자들의 아픈 데를 건드리는 일이 일어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고넬료 가정에서 있었던 일은 유대인의 교만과 긍지를 다치는 심각한 도전이었던 것입니다.
그들에게 문제가 되는 것이 뭐냐 하면 표면적으로는 무할례자의 집에 들어가 함께 먹었다는 사실입니다. 이방인의 집에 들어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 믿기 전의 규범입니다. 예수 믿기 전의 생활규범입니다. 이 생활규범을 예수 믿은 다음에도 고치지 못했다는 점, 이 점이 문제인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한 형제인데 왜 함께 못 먹는 것입니까? 왜 오고가지 못하는 것입니까? 왜 그 집에 들어가 잘 수 없느냐, 그 말입니다.
그런데 유대사람들은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를 믿었다 하더라도 이방인은 어디까지나 이방인이다 라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그 집에 들어가도 안되고 들어가 함께 음식을 먹는 것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그 집과 혼인을 해서는 안되고, 그 집에서 하룻밤을 잔다는 것은 더더욱 안 되는 일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래서 문제가 일어납니다.
그러니까 신앙은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과거의 풍속이 오늘도 문제되고 있는 것입니다. 소극적인 의에 속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풍속, 그들의 문화화된 전통만을 고집하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모시고 다니면서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어야 하고 하나님은 유대인만 아니라 이방인까지 구원하시기를 원하신다는 말씀을 수차례나 들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성령을 받으면 땅 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된다는 말씀을 들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상 이방인인 고넬료 집안이 구원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지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이 터진 것처럼 화를 내고 흥분한 것입니다.
2023년 9월 23일 오전 6:4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