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1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기도 방송 연예 종사자를 위하여
연예인들이 세상의 인기와 명예보다 더 고결한 가치가 있음을 알게 하시고 그들을 통해 우리 사회에 건강한 대중문화가 실현되게 하소서
크리스천 연예인들이 담대히 예배의 현장에 나오게 하시며 방송계에 건강한 믿음의 공동체가 세워지게 하소서
방송 연예계의 우상 숭배와 미신의 관습이 끊어지게 하시고 음란하고 퇴폐적인 죄의 문화들이 방송계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하소서
베드로가 이 말을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으로 말미암아 놀라니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 이에 베드로가 이르되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능히 물로 세례 베풂을 금하리요 하고 명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 하니라 그들이 베드로에게 며칠 더 머물기를 청하니라
행10:44-48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본문에는 '이방인의 오순절'이라 일컬어지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 기독교인에게는 오순절이 아주 독특한 의미를 지닙니다. 오순절 사건 그 때로부터 교회가 실질적 의미에서 탄생하기 때문입니다. 그 전의 역사는 결국 이를 위한 준비의 역사였다고 하겠습니다.
오순절 사건이 예루살렘 교회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이제 이방인을 위해서도 그와 같은 사건이 이루어지는데, 바로 고넬료의 가정에서 일어나는 사건입니다.
예루살렘에 있었던 오순절 사건은 사도행전 2장 1절 이하에 있고, 가이사랴에 있었던 이 사건은 지금 공부하고 있는 사도행전 10장에 나타납니다.
우선 공통점이 몇 가지 있습니다. 먼저 생각할 공통점은 '모여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튿날 가이사랴에 들어가니 고넬료가 그의 친척과 가까운 친구들을 모아 기다리더니"
행10:24두 번째로 생각할 것은 성령이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들에게 임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이 말을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행10:44말씀 듣는 모든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 공간과 그 시간에 있다는 것으로가 아니라 있으면서 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듣는 사람에게 성령이 임하는 것입니다. 마음의 자세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간절히 듣고자 하는 자세가 되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33절)"라는 마음의 자세가 필요한 것입니다. 비록 초라한 사람이지만 베드로라고 하는 그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자 바른 자세로 앉아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성령을 받습니다. 그런데 팔짱을 끼고 앉아서 저 목사가 무슨 말 하나 보자 하는 마음으로 앉아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더 중요한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을 할 때에(44절)"라고 말씀합니다.
성령은 말씀과 함께 동시적으로 역사 한다는 사실입니다. 성령님은 독창적인 영이 아닙니다. 성령님은 홀로 역사하시지 않습니다. 성령님은 꼭 말씀과 함께 협력적으로 역사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한번도 성경을 본 적 없고 설교말씀도 들어 본 일이 없는데 빈손으로 입산수도 하러 산에 올라갔다, 산에 올라가 조용히 명상하고 기도하는 중에 어느 때엔가 하늘로부터 문득 성령을 받았다, 그래서 예수도 알고 성경도 알게 됐다-----이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이게 문제입니다. 여러분은 산에 올라갈 때에 빈손으로 올라가면 안됩니다. 특별한 일이 있어 산에 올라간다 해도 맨손으로 올라가서 그냥 엎드려 "주여"하면 되리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그렇지를 않습니다. 꼭 성경을 가지고 올라가야 합니다. 저는 산에 가는 사람보고 꼭 부탁을 합니다. 30분 기도하고 30분 성경보고, 1시간 기도하고 1시간 성경보라고요.
기도하는 것과 성경 보는 것이 제대로 균형을 잡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렇게 산에 가서 기도하는 분들이 처음에는 성경을 읽는 듯하다가 조금 덜 읽고, 또 조금 덜 읽고 하다가 덮어놓고 맙니다. 성경을 베개하고 누워버립니다. 그리하여 성경이 베개구실 밖에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직통으로 알아요" 합니다. 직통으로----이게 병입니다. 그 때부터 병드는 것입니다. 엉뚱한 방향으로 가버립니다.
성령님은 말씀과 함께 역사 합니다. 이것을 신학적 용어로 말할 때에는 객관적 계시, 주관적 계시라고 말합니다. 성경은 객관적 계시입니다. 성경에 나타난 사건들은 전부 객관적 계시입니다. 십자가의 사건도 객관적 계시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사건도 객관적 계시입니다.
그런데 성령은 주관적 계시입니다. 한사람에게 개인적으로 임하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감동을 주는 것입니다. 객관적으로 받은 계시를 성령이 임해서 주관적으로 수용케 하는 것입니다. 믿게 하고 받아들이게 하는 것입니다. 주관적인 역사입니다. 상징적으로 말하자면, 성찬식을 할 때에 떡을 놓고 기도합니다. 기도함으로 해서 이 떡이 지금 거룩한 떡으로 의미를 가지게 됩니다.
여기서 성찬 떡을 놓고 기도하는 역사는 객관적 역사입니다. 약으로 말하면 아무리 좋은 약이 여기에 있다 하더라도 내가 먹지 않으면 소용이 없지 않습니까? 먹어서 소화해야 소용이 있지요. 반대로는 내가 아무리 좋은 약을 먹으려 애를 쓰고 마음이 확 열려 있다 하더라도 약이 있어야 먹는 것이지요. 좋은 약이 있어야 먹습니다. 그와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객관적 계시가 없는 주관적 계시는 신비주의에 빠집니다. 그런가하면 주관적 계시가 없는 객관적 계시는 효력이 없습니다. 역사적 사실로 남아 있을 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객관적인 역사와 주관적인 역사가 언제나 함께 합니다. 동시적으로 역사 합니다.
오늘의 본문을 보면 그 장면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이 말을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라고 합니다. 말씀하는 바로 그 시간에 성령이 내려오셨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씀인고 하니 지금 이 자리에서 우리의 사건으로 말한다면 여러분이 어디 가서 골방에서 기도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 바로 성경말씀 듣고 있는 이 시간에 성령이 여러분의 마음속에 임한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여러분은 이것을 다 체험했을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 듣고 있는 이 시간에 내 마음이 뜨거워지면서 이상하게도 이 말씀이 내게 주시는 말씀으로 여겨지면서 마음이 뜨거워진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영이 치유되고 몸이 치유되고 문제가 해결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전에 생각할 수 없었던 큰 은혜를 생각하게 되고, 그토록 불평불만으로 차 있던 심령이 감사 찬송으로 바꾸어지는 것입니다. 그토록 나약하던 사람이 새로운 용기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말씀 가운데서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로 방언을 했다고 합니다. 성령 세례를 받으면 보고 들을 수 있는 증거가 나타납니다. 오순절 마가 요한의 다락방에서도 120명의 문도에게 성령이 임하자 다 방언으로 말하고 하나님을 높였습니다. 이와 같이 성령 세례를 받으면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증거가 따르게 되는 것입니다. 고넬료의 집안에 모인 사람들이 성령 세례를 받자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을 높였습니다.
대개 사람들은 성령 세례를 받을 때 처음에는 큰 기쁨과 확신을 가지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감정이 가라앉으면 허전함을 느낍니다. 이럴 때 방언은 변함없는 확신을 주게 됩니다. 우리는 방언으로 말할 때 무슨 내용을 말하고 있는지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할 때도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방언을 통하여 영으로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하며 신앙이 자라게 됩니다. 그러므로 방언 기도를 하면 말할 수 없는 큰 힘을 얻게 됩니다.
주님께서 예루살렘 교회와 고넬료의 집에서 시작된 가이사랴 교회에 똑같은 형태로 성령을 부어주신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요? 하나님은 유대인과 이방인을 차별하지 않으시고 구원하시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사실을 베드로와 그의 동행자들이 어떻게 증명하고 있습니까?
"이에 베드로가 이르되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능히 물로 세례 베풂을 금하리요 하고 명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 하니라"
행10:47-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