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0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기도 한국 교회를 위하여
분열된 한국 교회의 교만과 죄악을 용서하시고 오직 복음 안에서 하나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공동체로 거듭나게 하소서
코로나로 위축된 한국 교회가 기도함으로 영적 위기를 돌파하게 하시고 멈추어버린 전도의 사명이 살아나게 하소서
우리에게 명하사 백성에게 전도하되 하나님이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으로 정하신 자가 곧 이 사람인 것을 증언하게 하셨고 그에 대하여 모든 선지자도 증언하되 그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의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 하였느니라 베드로가 이 말을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으로 말미암아 놀라니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
행10:42-46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우리에게 명하사 백성에게 전도하되 하나님이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으로 정하신 자가 곧 이 사람인 것을 증언하게 하셨고 그에 대하여 모든 선지자도 증언하되 그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의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 하였느니라"
행10:42-43하나님이 택하신 증인에게 명하사 백성에게 전도하라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으로 정하신 자가 곧 이 사람인 것을 증언하게 하셨고, 그에 대하여 모든 선지자도 증언하되 그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의 이름을 힘입어 죄 사람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만 죄 사함을 받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아니고는 다시 말해서 선한 행위나 율법을 지킴으로 죄 사함 받을 수 있는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왜 예수 이름으로만 구원을 받아야 되느냐?’고 반문합니다. 포스트모더니즘과 종교 다원주의가 만연한 세상에서 이제는 서로의 입장이 다르고, 문화가 다른데 어떻게 예수 안에만 구원이 있다고 말하느냐, 다른 종교에도 구원이 있을 수 있다. 자꾸 이렇게 얘기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주신 일이 없다고 분명히 말합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자꾸 말합니다. 꼭 예수 이름이 아니어도 구원이 있지 않겠느냐? 기독교는 너무 옹졸하고 편견이 많고 독선적이고 저만 잘났다고 한다. 얼마나 교만한가. 너에게도 구원이 있고, 내게도 구원이 있다 라고 하면 얼마나 좋겠는가? 불교, 기독교, 카톨릭이 다 함께 서로 사랑하고 사는 것을 하나님이 원하시지, 자기만 옳다고 하면 잘못된 것이 아니냐? 하고 따집니다. 이런 말을 듣다보면 우리도 가끔 할 말을 잊어버릴 때가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그런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기에 기독교의 독특성과 유일성이 있습니다. 예수 외에는 구원이 없습니다. 죄인인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구원 받을 길이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만 죄 사함을 받습니다.
예수 외에 구원이 없다면 이제부터 상황은 심각해집니다. 여러분의 가족, 부모님이 예수 믿지 않은 채 그대로 돌아가셔도 괜찮겠습니까? 제가 어떤 분에게 전도하니까 하시는 말씀이 “제 어머니가 평생 불교를 믿었는데, 지금 와서 바꿀 수가 없으니, 어머니가 돌아가시면 교회에 나오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머니를 지옥까지 잘 모셔다드리고 자기만 천국 가겠다는 말입니다. 정말 진리를 깨달았다면, 예수를 정말 제대로 알았다면 그렇게 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헤드슨 테일러가 중국에 선교사로 가고 싶어 했을 때, 고열이 나면서 귀에 수백만 명이 지옥으로 가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 소리를 들은 허드슨 테일러는 이 영혼들을 어떻게 할 것인지, 지금도 예수 없이 죽어가는 수많은 영혼들을 어떻게 할 것인지 고민했습니다. 결국 그는 전도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어서 중국으로 들어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구원자이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구원하셨고,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택하셨습니다. 여러분이 전도하지 않으면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줄은 당신에게서 끝이 나고 맙니다. 이것을 믿는다면, 우리는 지옥으로 가고 있는 영혼들을 그대로 내버려 둘 수 없습니다. 여러분 안에 성령이 함께 하셔서 전도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베드로가 이 말을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행10:44본문에는 '이방인의 오순절'이라 일컬어지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순절 사건이라고 하면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하시고 그리고 승천하신 후에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마가 요한의 다락방에서 모여 기도하던 사람들에게 임한 성령 세례를 말합니다.
원래 오순절은 히브리 사람들의 한 절기입니다.
"안식일 이튿날 곧 너희가 요제로 곡식단을 가져온 날 (초실절 : 부활의 첫 열매이신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인 부활절)부터 세어서 일곱 안식일의 수효를 채우고 일곱 안식일 이튿날까지 합하여 오십 일을 계수하여 새 소제를 여호와께 드리되 (오순절 : 부활의 첫 소산물인 교회가 탄생합니다)"
레23:15-16우리 기독교인에게는 오순절이 아주 독특한 의미를 지닙니다. 오순절 사건 그 때로부터 교회가 실질적 의미에서 탄생하기 때문입니다. 그 전의 역사는 결국 이를 위한 준비의 역사였다고 하겠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부활절과 오순절의 관계를 대단히 중요하게 여깁니다. 부활절 없는 오순절은 없습니다. 오순절 없는 부활절을 생각하지 못합니다.
부활절이 없는 오순절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신비주의에 속합니다. 그리고 주관적인 것입니다. 오순절이 없는 부활절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역사적 사실에 불과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순절과 부활절, 부활절과 오순절은 기독교에 있어서 뗄 수 없는 두 중요한 사건입니다.
오순절 사건이 예루살렘 교회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이제 이방인을 위해서도 그와 같은 사건이 이루어지는데, 바로 고넬료의 가정에서 일어나는 사건입니다.
고넬료의 가정에서 일어나는 이 사건과 예루살렘교회에서 일어났던 사건을 비교해봅니다. 하나는 예루살렘에서 이루어졌고 하나는 가이사랴에서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는 예루살렘 즉 유대나라 수도, 유대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의 중심부에서 이루어진 일입니다. 하나는 가이사랴에서, 로마사람들이 점령하고 있는 이방 땅입니다. 그곳의 로마 군인인 고넬료의 집에서입니다. 하나는 마가의 다락방에서 이루어졌고, 하나는 로마군인의 집에서 이루어진 사건입니다. 얼마나 큰 차이가 있습니까?
마가의 다락방과 고넬료의 집을 비교해봅니다. 예루살렘에 있었던 오순절 사건은 사도행전 2장 1절 이하에 있고, 가이사랴에 있었던 이 사건은 지금 공부하고 있는 사도행전 10장에 나타납니다.
우선 공통점이 몇 가지 있습니다. 먼저 생각할 공통점은 '모여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튿날 가이사랴에 들어가니 고넬료가 그의 친척과 가까운 친구들을 모아 기다리더니"
행10:24모였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개인에게 일어난, 개인적인 사건이 아닙니다. 누구 한 사람이 골방에서 체험했다는 식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기독교는 여기서부터 독특한 의미를 가집니다. 여느 종교처럼 혼자서 산에 올라가 입산수도 했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함께 모이고 함께 기도합니다. 그리고 함께 역사를 체험합니다. 바로 교회론적입니다.
성경에 나타난 오순절 사건은 백이십 명이 함께 체험한 것입니다. 오늘도 보면 고넬료의 가정에 모였던 사람 모두가 함께 체험을 합니다. 고넬료만도 아니고 고넬료의 가족만도 아닙니다. 그 일가친척과 친구들까지 다 모여서 이 놀라운 체험을 함께 합니다. 모인 중에 사건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교회에 모인다는 것, 함께 기도한다는 것, 한 마음 한 뜻으로 기도하고 함께 음성을 듣고 함께 체험한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두 번째는 다같이 베드로의 복음, 다시 말하면 베드로가 설교 중에 이루어집니다.
"베드로가 이 말을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행10:44예루살렘의 첫 교회도 베드로가 설교하고, 베드로를 중심으로 모인 가운데서 성령의 역사를 체험했으며, 이제 고넬료의 집에서도 베드로를 청하라 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청했더니 베드로가 와서 설교하고, 그 설교를 듣는 중에 성령이 임합니다. 같은 사건입니다.
세 번째, 방언을 말했습니다.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으로 말미암아 놀라니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
행10:45-46"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행2:4오늘의 본문에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몇 가지의 중요한 내용이 있습니다. 먼저는 성령이 거기 모인 '모든 사람'에게 임했다는 것입니다. 그 가운데는 로마군인도 있고 그들의 아내들도 있습니다. 그 자녀들도 있습니다. 친척들도 있습니다. 친구들도 있습니다. 아시는 대로 고넬료는 경건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 집안 식구와 친구들이 다 고넬료와 같이 경건했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때마다 기도를 하는 사람들이었다고 볼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이 자리에 고넬료의 청함을 받고 와서 고넬료를 중심으로 모인 그 사람들이 다 성령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교회에 나와서 여기 모여 앉았습니다. 여러 모습의 사람이 함께요. 도덕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지식으로나 저마다 다릅니다. 얼굴이 다른 것만큼 다 다릅니다. 그러나 지금, 누구나 하나님의 말씀 앞에 겸손할 때에 다같이 성령의 역사를 체험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모인 우리는 문화가 다르고 인종이 다르고, 언어가 다르고 풍습이 다릅니다. 그러나 다 함께 성령을 체험합니다. 우선 외모가 다릅니다. 사람을 외모로 취하시지 않는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분명히 하나님께서는 중심만을 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큰 역사가 일어나는데, 여기 모인 모든 사람이 성령을 받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