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8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기도 동성애를 두고 기도합니다.
동성애를 옹호하며 하나님이 세우신 창조 질서를 거스르는 문화적 기류가 끊어지게 하시고 이를 긍정하고 지지하는 거짓과 궤변들이 무너지게 하소서
미디어를 통해 미화되는 동성애의 실체가 드러나게 하시고 다음 세대들이 동성애에 빠지지 않도록 가정과 교회가 더욱 깨어 기도하게 하소서
한국교회가 성령 안에서 하나 되어 동성애와 포괄적 차별 금지법을 막아내게 하시고 동성애가 합법화되지 않는 거룩한 나라가 되게 하소서
내가 곧 당신에게 사람을 보내었는데 오셨으니 잘하였나이다 이제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 베드로가 입을 열어 말하되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아니하시고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다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
행10:33-35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내가 곧 당신에게 사람을 보내었는데 오셨으니 잘하였나이다 이제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
행10:33제가 고넬료라면 조금 불만스러워 했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어 말씀하실 바에야 아예 다 말씀하시지 굳이 누구를 데려 오라 어쩌라 한 다리 더 놓으시는가, 나한테 대놓고 말씀하시지를 않고 왜 구차스레 간접으로 하시는가, 하필이면 왜 베드로인가, 무엇 때문에 베드로가 필요한가, 내가 직접 받으면 그만이 아닌가, 분명히 천사를 만났는데, 하나님의 음성도 한번 들었는데, 기왕 그렇게 하실 바에야 바로 다 말씀하시지 굳이 베드로를 청하라 하시다니, 베드로를 통해서 들어라 하시다니, 왜 이 과정을 통해야 한단 말인가, 이렇게 말입니다.
사실 요즘도 이 같은 불만 때문에 시험에 빠지는 사람이 많습니다.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 말씀 듣는 것이 싫습니다. 만족치 않습니다. 직통해야 되겠다는 것이지요. 교회에서 목사님 통하여 말씀 듣는 것도 불만스러워요. 왜 하필이면 목사님인가 내가 직접 듣지, 그래 산에 올라가서 직접 듣겠다는 사람들입니다. 바로 여기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고넬료는 간접적으로 듣습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람을 통해서 듣습니다.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사람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합니다.
어떤 사람이 복이 있습니까?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쉬지 않고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하느니라"
살전2:13한나가 어떻게 은혜를 받았습니까?
"엘리가 대답하여 이르되 평안히 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네가 기도하여 구한 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니 이르되 당신의 여종이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하고 가서 먹고 얼굴에 다시는 근심 빛이 없더라 (엘리 제사장의 말을 사람의 말로 듣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여호와 앞에 경배하고 돌아가 라마의 자기 집에 이르니라 엘가나가 그의 아내 한나와 동침하매 여호와께서 그를 생각하신지라 한나가 임신하고 때가 이르매 아들을 낳아 사무엘이라 이름하였으니 이는 내가 여호와께 그를 구하였다 함이더라"
삼상1:17"너희 말을 듣는 자는 곧 내 말을 듣는 것이요 너희를 저버리는 자는 곧 나를 저버리는 것이요 나를 저버리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저버리는 것이라 하시니라"
눅10:16모세를 원망하고 실수함으로 이스라엘의 많은 사람들이 광야에 엎드려져 죽은 이유 가운데 가장 큰 이유가 모세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이 불만스러웠기 때문입니다. 왜 직접 말씀하시지 않고 굳이 저 실수도 많고 변변치 않은 모세라는 영감을 통해서 말씀하시느냐, 해서입니다. 왜 하필이면 모세냐, 모세가 아니면 안 되는냐, 나는 왜 못하느냐, 왜 아론이냐, 그래서 내가 분향하려고 나갔다가 불이 나와서 다 죽었습니다.
누구를 지명했든지 하나님께서 지명한 사람을 통해서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 사람이 누구냐를 묻지 말 것입니다. 한나처럼 그 사람의 사람됨도 생각지 말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셨고 세우셨다 하는 카리스마적 권위가 중요한 것입니다. 바로 그를 통하여 말씀 듣는 자세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승리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베드로가 입을 열어 말하되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아니하시고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다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
행10:34-35본문에는 복음의 진수가 요약되어 있습니다. 흔히 본문을 '베드로의 복음'이라고도 말합니다. 왜냐하면 베드로가 이해하고 믿고 전하고 있는 복음이 이 가운데에 집약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어떤 의미에서는 기독교의 교리, 우리가 믿어야 하고 또 이미 믿고 있는바 기독교 신앙을 간단하게 요약하여 놓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확실히 복음 중의 복음이요, 성경 중의 성경이라 할 만 합니다. 복음의 진수가 드러나 있는 말씀입니다.
베드로가 지금 고넬료 앞에서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이미 우리가 보았습니다마는 예루살렘에서 초대교회가 시작되는 벽두에, 사도행전 2장 14절 이하를 보면 베드로가 3천 명 앞에서 설교를 합니다. 그 설교야말로 설교의 표본이요, 복음의 진수입니다. 이것은 주로 유대사람들을 상대로 하여 펼치는 설교였습니다.
거기서도 그가 믿고 그가 깨닫고 그가 평생 전한 복음이 요약되어 설명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오늘은, 같은 내용입니다 마는, 이방인을 상대로 전하는 복음의 내용이 본문에 나타나 있습니다. 이방인의 대표라고도 할 만한 사람 고넬료 앞에서 설교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우리가 먼저 생각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설교의 분위기입니다. 베드로는 지금 어떤 분위기 속에서 입을 열었는가 하는 점입니다. 이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저희가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할까 염려하라"
마7:6하나님의 말씀은 언제 어디서나 전해야 하겠습니다마는 심령상태가 개같이 되어 있어서 도리어 물어 찢고 발악을 하고 소리를 지르고 발광을 하고 있는 사람 앞이라면 거기에 대고 설교를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곧 설교에는 분위기라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떤 자세로 말하느냐도 중요하지만 그 분위기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면 오늘 베드로가 설교하게 되어 있는 분위기는 어떻습니까? 먼저는 하나님께서 친히 이 역사를 이루십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주선하신 자리입니다. 고넬료에게 환상을 통하여 베드로를 청해오게 하셨습니다. 베드로에게도 환상을 주셔서 고넬료의 초청에 응하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주도로 고넬료와 베드로가 한자리에서 만나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만나는 이 자리에는 어떠한 장벽도 없습니다.
이 점이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높은 경륜과 주도적 섭리 안에서 이 같은 만남의 관계, 설교하는 자와 듣는 자의 올바른 자세와 관계를 이루어 놓으셨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첫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할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이 자리에 있는 것도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요, 목사님이 저 자리에 서 있는 것도 하나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말하는 자와 듣는 자가 다 하나님께서 이 일을 이루셨다고 하는 확실한 고백과 확실한 신앙을 가지고 임할 때에 비로소 그 관계 속에서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내가 가졌던 본래의 편견이나 전통이나 규범이나 규례 같은 것을 다 어기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려면 이전에 가졌던 편견을 버려야 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풍습이나 문화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닐지라도 때때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기에 합당치 못한 일이 있습니다. 때 묻은 심령, 잘못된 생각, 잘못된 세계관, 이런 것은 과감히 버리고 보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용기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 우선해야 합니다. 내 마음에는 안 들어도, 내 생각에는 맞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니까, 주님의 뜻이니까 순종하는 것입니다. 내 뜻이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뜻이라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러나 때때로는 그렇지가 못합니다. 내 뜻을 버려야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가 있습니다. 자기 십자가를 져야만 주님을 따를 수 있을 때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지금 고넬료와 베드로가 다 바로 그런 관계에 있습니다. 그들이 전에 가졌던 규례나 생활이나 철학을 다 버리고, 오직 위로부터 주신 말씀에만 순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세가 참 중요합니다. 고넬료의 모습을 보십시오. 설교자가 들어오는 순간에 발 앞에 엎드려 절을 합니다. 절하는 그 자세가 베드로를 향함이 아니라 하나님께 향한 마음이 베드로에게 나타난 것입니다. 베드로가 잘생겨서라거나 훌륭해서가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께로 향하는 마음이 그렇게 나타난 것입니다. 엎드려 절을 하되 얼마나 진지하게 했든지 베드로가 황송해서 얼떨결에 "나도 사람이오, 일어나시오" 하지 않습니까? 나아가 고넬료의 하는 말을 보십시오. "이제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
얼마나 귀한 자세입니까? 그런 고넬료를 향하여 베드로가 설교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분위기에서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